글/ 중국 대법제자 행운아
[명혜망] 법을 얻기 전 저는 온몸에 병이 가득했습니다. 각혈, 두통, 잦은 복통, 큰 부스럼이 생기는 혈액 질환이 있었습니다. 형은 백혈병에 걸려 10만 위안(약 2천만 원) 이상을 썼지만 낫지 않았고, 17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97년 7월, 저는 대법을 배워 주사 한 대 맞지 않고 약 한 알도 먹지 않고 모든 병이 다 나았습니다. 사부님이 제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당시 세 아이가 어렸고 남편이 병이 있어서 15~16무(畝, 1무는 약 200평)의 땅과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저 혼자 담당했습니다. 예전의 병에 걸린 저라면 울어도 소용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나서 병이 나아 쓰고도 남을 힘이 생겼습니다. 모를 뽑는 일은 허리를 굽히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저는 세 시간 동안 3무의 땅에서 모를 뽑았는데도 허리를 펴지도 않았습니다. 우리집 일이 끝나면 언니, 큰고모네 일을 도와드렸는데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우리집에는 시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개간한 땅이 산언덕에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빈손으로 올라가기만 해도 지쳐서 숨이 가쁩니다. 어느 날 오후, 저는 이 땅에 농약을 뿌리고 산을 내려가 물을 길어와야 했습니다. 당시 마을 서기는 산비탈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제가 농약을 다 뿌리고 산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더니 “오늘 오후에 물을 몇 주전자나 길어왔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일곱 주전자를 길어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 일곱 주전자의 농약을 뿌리는 것만 해도 힘든데, 산 아래서 일곱 주전자나 메고 올라와 다 뿌렸네요. 당신은 신이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병은 대퇴골두 괴사로 목발을 짚고 다녔는데 목발 하나만 놓쳐도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고관절 수술을 하려면 5만에서 10만 위안이 필요했지만 우리는 그런 돈이 없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보세요, 예전에 제 병은 다 나았잖아요. 당신이 수련하지 않더라도 반대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워보세요. 돈도 안 들고 더 좋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제 말을 들었고 몇 달이 지나자 다리가 많이 좋아져서 목발을 하나만 짚게 되었습니다. 더 지나서는 두 목발을 모두 버리고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게 되더니, 나중에는 지팡이도 버리고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은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이 어리고 남편의 병 때문에 자주 화를 냈습니다. 집안일은 많은데 저는 법공부를 적게 해서 남편의 이 고비를 넘기는 것이 때로는 잘되고 때로는 안 되었습니다. 한번은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날이 저물어 급하게 밥을 짓다가 힘을 너무 세게 주는 바람에 그릇 하나가 두 동강이 났습니다. 남편이 산책에서 돌아와 그 모습을 보더니 욕설을 하며 지팡이로 문틀을 두들겨댔습니다. 저는 처음에 ‘내가 밤낮없이 다섯 식구 살림을 하는데 당신은 뭘 했지?’라고 따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참아야 했습니다. 남편이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더니 제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로 새로운 경지를 느꼈습니다.
우리집이 도시로 이사한 후 작은 가게를 열었는데, 그곳에서 기술을 요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세심하지 못해 물건을 자주 못 쓰게 만들어 팔리지 않게 되곤 했습니다. 제가 한마디라도 하면 남편은 욕부터 했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난리를 피웠습니다. 결국 남편이 하기 싫어해서 저 혼자 가게 일을 맡게 됐는데, 너무 바빠서 그 몇 년간 수없이 끼니를 걸렀습니다.
겨울 어느 날 아침 6시 10분에 노점을 펴서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밥은 먹지도 않고 곧장 법공부 장소로 가서 법공부를 마치고 나니 벌써 밤 9시 반이 되었습니다. 밥이라도 먹으려 했더니 밥은 반 공기밖에 없고 반찬도 없어서, 그냥 내일 장사할 물건들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준비를 마치고 보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제 방은 난방이 되지 않았고 전기장판과 딸이 사준 작은 온풍기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남편이 제 방 전기마저 끊어버렸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솜옷을 입은 채로 솜이불을 덮었습니다. 몸은 그런대로 버틸 만했지만 발은 시렵기 그지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녹초가 되도록 피곤한데 밥까지 굶었고, 남편은 훈훈한 온돌방에서 자는데 제 방은 쌀쌀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낮에 먹고 자고 술 마시고 휴대폰 보는 게 전부였고, 심지어 술 마시고는 한밤중까지 소란을 피우곤 했습니다. 이런 삶이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가슴이 미어져 한바탕 실컷 울고 싶었지만 저는 곧바로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뭘 하려는 거야? 감옥의 수련생들 중에는 시멘트 바닥에서 자는 이도 있고 이불조차 없는 이도 있잖아. 난 적어도 침대도 있고 이불도 있는데 뭘 더 바라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환해지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저보다 8살 연상인데 오히려 제가 8살 연상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남편은 저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고 제멋대로 행동했습니다. 두어 번은 차를 몰고 나가더니 3, 4일씩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고, 어디 갔는지 연락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사소한 일로 칼을 들고 저를 죽이려 들기도 했습니다. 또 한번은 주먹으로 제 왼쪽 귀를 때려서 몇 달 동안 듣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술에 취해 자기가 넘어져 머리를 다쳤는데도 제가 밀쳤다고 하기도 했습니다(당시 저는 집에 없었습니다). 남편이 저를 때리고도 친척들에게는 제가 자기를 때렸다고 거짓말했습니다. 제가 번 돈을 몰래 가져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는 도리어 제가 자기 돈을 훔쳤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치료비로 돈을 쓸 때마다 저는 필사적으로 돈을 벌었는데, 남편은 돈을 마구 써대서 지금까지도 셋집에 살고 있습니다. 정말 괴로운 삶이었고 파룬따파를 배우지 않았다면 오늘까지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겁니다.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원망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최근 5년간 남편에게는 최소한 4, 5명의 여자가 있었습니다. 친척들이 남편이 성매매 여성을 만나러 가는 걸 봤다고 했고 고향 사람들은 남편이 고향에 다른 여자가 있다고 귀띔해주기도 했습니다. 저도 직접 마주친 적이 있었습니다. 마음의 평형을 잃고 다른 수련생들을 만나면 남편 욕만 하곤 했는데, 그들은 제가 남편 얘기만 꺼내면 눈에서 증오가 뿜어져 나온다고 했습니다. 법공부하다가도 집에 가서 그들을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성은 저에게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고 일깨워주었습니다. 저는 수없이 남편에게, 선행이든 악행이든 자신에게 하는 것이고 그 업보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전염병은 나쁜 사람을 도태시키기 위한 것이니 좋은 사람이 되어 큰 재난 앞에서 무사하기를 바란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말은 해도 제 깊은 곳에는 여전히 원망과 증오가 남아있었습니다.
어느 날 법공부를 하다가 사부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만 사부가 慈悲(츠뻬이)하여 줄곧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러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고, 아직도 한사코 집착을 붙잡고 내려놓지 않는다.”(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이 말씀으로 저에게 무엇을 일깨워주시려는 걸까요?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왜 남편과 그 여자를 보면서 웃는 얼굴로 대하지 못하는 걸까? 다시 보게 되면 꼭 싱글벙글 웃어야겠다.’ 저는 그 여자에게 달력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녀가 진상을 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제 가슴이 뭉클해지더니 원망심이 싹 가셨습니다. 그제야 제가 겪은 이 모든 난이 사실은 정(情)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했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집 사려는 마음을 놓자 남편에게 “그동안은 내가 여자 혼자 힘으로 돈 벌어 집안을 꾸려왔으니 이제 가게는 당신이 맡으세요. 당신이 가장 노릇을 해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 남편은 더 이상 싸우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 일하기 시작했고, 그 여자도 눈에 띄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 원망심을 그 많은 난을 겪으며 겨우 없앨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그 마음을 없애시려고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이셨는지 모릅니다. 정말 사부님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 수련 체험을 다 쓰고 어떤 필명을 써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러자 머릿속에 ‘행운아’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이 둔한 제자를 위해 얼마나 마음을 쓰셨을까요. 이번 생에 대법을 얻고 사존을 만나 뵈게 된 것은 너무나 큰 행운이고 축복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행운아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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