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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고한 정념으로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다

글/ 산둥성 대법제자(본인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89세인 나는 어릴 적부터 가족에게서 유전된 심장병을 앓았다. 나이가 들면서 심장병은 더욱 심해져 늘 120구급차를 불러 응급 처치를 받았고 구심환(救心丸)을 항상 지니고 다녔다. 매일 밤 산소 베개를 끼고 자야 했고 온몸에 기력이 없어 집안일도 하지 못하고 자녀들이 대신해 주었다. 이외에도 머리 떨림, 허리와 다리 통증, 손 떨림 등으로 고통받았다. 남편도 퇴직한 후 건강이 좋지 않았다.

2003년 봄, 시댁 친척들이 우리집에 와서 그들이 파룬궁(法輪功) 수련을 통해 얻은 신체적 변화를 들려주었는데, 특히 원래 앓던 담석과 현기증이 모두 나았다고 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다른 파룬궁수련생들도 기적 같은 일들을 경험했다며 이 공법을 배워보라고 진심으로 권했다. 나는 듣고 나서 꼭 배워보고 싶었다. 남편은 중국공산당의 무신론과 과학을 맹신하는 영향으로 기공 수련을 믿지 않았으나, 친척들의 진지한 권유에 함께 배우기로 했다.

‘전법륜(轉法輪)’ 책을 구해 읽기 시작한 나는 며칠 만에 아홉 개 강의를 다 읽었다. 사부님 말씀이 너무 좋았고 모두 가슴에 와닿았다. 이렇게 좋은 책은 처음 읽어봤고 진정한 보배이자 하늘에서 내려온 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몰랐던 이치를 많이 깨닫게 되어 읽으면 읽을수록 보고 싶어 여러 번 연달아 읽었다. 이건 평범한 책이 아니라 수련을 지도하는 책으로, 사람의 마음을 선하게 이끌어주며 간단명료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고 많은 사례도 제시하고 있었다. 나는 이 공법을 만난 게 정말 큰 행운이고 인연이라고 느꼈다. 사부님 말씀대로 반드시 잘 배우고 끝까지 수련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하는 것을 일상의 가장 중요한 일과로 여겼다. 연공할 때 가끔 몸이 갑자기 불편해지거나 이곳저곳 아플 때도 있었지만, 나는 수련인으로서 그것을 병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업력을 제거하는 과정이고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주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여기자 좋지 못한 반응은 금방 사라졌다.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신체에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났다. 심장병, 머리 떨림, 허리와 다리 통증 등이 모두 없어졌고 손도 떨리지 않아 손님에게 물과 차를 대접할 수 있게 됐고 스스로 생활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사부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내 변화를 지켜본 남편도 “당신의 변화가 나보다 훨씬 크네”라고 말했다. 수련하지 않는 가족들도 모두 대법이 좋고 사부님이 훌륭하신 분이라고 인정했다. 자녀들은 “병원에서 고치지 못한 병을 파룬궁으로 다 나았으니 정말 신기해요. 이제 엄마 건강을 걱정 안 해도 되고 우리도 자주 오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놓여요”라고 기뻐했다.

이를 계기로 내 두 딸과 남동생 부부도 잇따라 수련을 시작했다. 우리 집에 법공부 모임이 생겨 정기적으로 모여 배운 법에 대해 깨달은 점과 체득을 나누었다.

1. 확고한 정념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다

우리 가족 수련생들은 수련 중에 마음이나 신체적으로 크고 작은 고비와 어려움을 겪었고, 대법에 대한 이해도 서로 달랐다.

수련 초기, 사부님께서는 우리 몸을 꾸준히 정화해주셔서 병이 모두 사라졌다. 특히 둘째 딸은 심장병이 심각해 몇 년간 출근도 못했는데, 수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이 회복되어 일도 할 수 있게 되고 기분도 좋아져서 작은 서점까지 차렸다.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주셔서 모두 기뻐하며 병이 사라져 예전에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우리가 수련을 했기에 사부님께서 이렇게 해주신 것이고, 건강한 몸을 얻은 것은 수련을 위한 것이지 속인의 삶을 누리기 위한 게 아니라는 점을 잘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룬궁수련생으로서 누구나 수련의 길에는 예상치 못한 많은 고비와 어려움, 시험이 있기 마련인데, 자신이 수련인임을 깨닫고 대법의 요구에 따라 수련할 수 있는지, 진짜로 수련하는지 가짜로 수련하는지 등을 가늠해봐야 할 것이다. 이는 수련생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더군다나 처음 입문한 사람들은 수련이 무엇인지,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잘 모를 수 있고, 어려움에 부딪히면 법에 따라 생각하지 못하고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쉽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수련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둘째 딸과 남편에게 심각한 병업(病業)이 나타났다. 그때 노수련생들이 자주 우리집에 와서 함께 법공부를 하고 사람의 관념을 개변하는 것에 대해 교류했다. 하지만 둘째 딸은 법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을 때 정념으로 대하지 못하고 속인의 많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으며, 정에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해 결국 병세가 악화되어 2015년 1월 13일에 사망했다.

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은 살점을 도려내는 듯이 고통스러웠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중병에 걸린 남편이 있어 크게 울 수도 없었다. 이는 내가 극복해야 할 큰 난관이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남편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당시 정말 수련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슬픔을 참으며 남편에게 비보를 전하고 딸의 일을 법리로 이해시키려 했다. 건강을 되찾은 딸이 늘 아버지를 찾아왔던 걸 남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현실과 정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건 딸 자신이 걸어야 할 길로서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들부들 떨고 눈물을 흘렸다.

딸의 사망을 안 뒤로 남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그해 3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3개월도 안 되는 사이 사랑하는 가족 둘을 잃고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밥도 먹을 수 없고 잠도 자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때 수련생인 친척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나와 함께 법공부를 하면서 법리로 깨우쳐주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아직도 수련하고 싶은가?” “어떻게 수련할 건가?” “진정으로 수련할 건가, 그저 겉모습만 그런 건가?” “이 문제를 진정으로 법에서 바라볼 수 있는가?” 등을 물었다.

사부님의 법은 환한 등불처럼 나를 일깨워주셔서 고통에서 벗어나 뜻밖의 큰 난관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셨다. 사부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사부님의 법 덕분에 내가 속인이 아닌 수련인이며 반드시 수련하고 싶다는 걸 똑똑히 알게 되었다. 이는 내가 평생 찾아 헤맨 것이기도 했다. 지금의 생명도 사부님께서 연장해주신 것이고 사부님이 안 계셨다면 나 역시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딸과 남편을 잃고 너무나 괴로웠지만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명확하게 말씀해주셨다. 그들과 나는 다만 이번 생에 맺은 인연일 뿐, 각자 자신의 운명을 개창해 나가는 과정에서 누구도 누군가를 대신할 순 없는 것이다. 비록 슬프지만 그들이 대법과 인연을 맺고 수련까지 했다는 게 나에겐 위안이 되었다. 비록 원만에 이르진 못했어도 그건 그들 자신의 선택이었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잘 배치해주셨는데 내가 내려놓지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나는 수련인으로서 이 일로 인해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부님 법상 앞에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사부님의 제자입니다. 오직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수련해 나갈 것이며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수련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해내겠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자녀들은 돌아가며 내 곁을 지키려 했지만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사부님이 계시고 내가 수련인인 만큼 아무 문제없을 거라며 그들의 일을 하라고 타일렀다. 그렇게 나 혼자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하고, 집안일을 하고, 식사 후에 법공부와 ‘홍음(洪吟)’ 암기를 하는 등 규칙적인 일과를 가졌다. 오후에는 사부님의 해외 설법을 읽거나 녹음 또는 비디오로 된 설법을 들었다. 늘 시간이 모자라고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날씨가 좋으면 작은 손수레를 끌고 길거리로 나가 앉아서 발정념을 하며 사람들을 구했다.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에겐 진상을 알리고 그럴 수 없는 이에겐 정념으로 구원했다.

우리집 근처에 학교가 몇 개 있고 교통의 요지여서 왕래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하면서, 그들을 정념으로 구하고 그들을 조종하는 사악한 생명, 공산악령과 기타 나쁜 요소들을 깨끗이 제거하고자 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여 구원받을 기회를 주고 장래에 좋은 생명이 되게 하고 싶었다.

2. 확고한 정념으로 병업 고비를 넘다

나는 대법 수련을 시작한 이래로 크고 작은 고비를 많이 겪었지만, 모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잘 넘길 수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답답한 기분이 들더니 심장 앞뒤로 통증이 오고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식은땀이 나면서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서 있을 수조차 없었고, 괴로운 나머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당시 집에 아무도 없어서 무의식중에 현관 쪽으로 기어갔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왜 현관 쪽으로 기어가고 있지? 설마 집에서 혼자 죽으면 아무도 모를까 봐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속인의 생각이구나. 나는 속인의 생각을 갖고 싶지 않아. 나는 수련생이고, 사부님께서 책임지시는 제자야.’

그 순간 머리가 맑아졌다. 두 손을 모으고 사부님께 ‘사부님, 저를 좀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러자 즉시 사부님의 설법 한 구절이 즉시 떠올랐다. “당신이 괴로울 때일수록 물극필반(物極必反)임을 설명하는데, 당신의 온몸을 정화(淨化)해야 하며, 반드시 전부 정화해야 한다.”(전법륜)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일깨워주신 거구나. 사부님께서 내 심장을 교체해 주고 계시는 거야. 정말 좋은 일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천천히 방으로 기어 들어가 의자에 앉아 사부님께서 지난(濟南)에서 하신 설법 비디오를 틀었다. 볼수록 마음이 환해지고 통증도 점점 가벼워졌다. 4강을 보는 동안 모든 증상이 어느새 사라졌다. 감격한 나머지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흘리며, 제자의 심장을 새것으로 교체해주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신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수련하는 동안 깨달은바, 앞으로 정진할수록 법의 요구가 더 높아지고 엄격해진다는 것이다. 어느 날 오전, 우리 팀에서 법공부를 마치고 모두 돌아간 후 딸(수련생)도 우리집에서 식사하고 자기 집으로 갔다. 그런데 오후 2시쯤 갑자기 등이 너무 아파서 등과 허리를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우려 하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팠고 어느 자세로 누워도 소용없었다. 병이 아니라 업을 없애는 과정임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만으로는 안 됐다. 이내 가슴 앞뒤까지 다 아파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어느 부분에서 법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았던 걸까.’ 반나절을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연공 동작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연마하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도 한 동작이라도 해 나갔다. 그리고 법을 공부하고 외웠던 경문을 암송하며 ‘홍음’도 배웠고 사부님 설법 녹음도 들었다.

당시 나 혼자 그렇게 4~5일을 버텼다. 너무 아파서 밥도 할 수 없었고, 배고프면 묵은 죽을 조금씩 먹었다. 밤에 너무 피곤하면 이불 더미에 무릎 꿇은 채로 잠시 잠들곤 했다. 6일째 되던 날, 도저히 깨달을 수 없어서 딸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했다.

우리는 함께 법을 공부하고 법리로 가늠했다. 내가 연공을 갓 시작했을 때 병업 고비를 만나면, 내가 수련인이고 이건 병이 아니라 업력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여기기만 하면 대부분 잘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통하지 않는 걸까? 물론 법은 좋은 것이고, 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내 오성이 너무 부족해서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딸이 “엄마, 자신을 돌아보세요. 혹시 법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를 하진 않으셨나요? 아니면 아직 찾아내지 못한 집착심이 있지는 않나요?”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듣고 최근 자신의 수련 상태를 돌이켜 보니 정말 마음이 느슨해져 있었다. 법을 읽을 때도 딴 생각을 했고, 입으로는 법을 읽으면서도 마음은 다른 데 가 있었다. 때로는 너무 졸려서 그저 침대에 누워 편히 쉬고만 싶어 했다. 안일함에 젖어 자신이 수련생이란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건 다 안일함을 추구하는 마음 때문이 아닌가.

딸은 또 이렇게 일깨워주었다. “며칠 전에 갓 수련을 시작한 두 명의 수련생 우리집에 법공부를 하러 왔었잖아요. 한동안 열심히 하더니 엄마가 그 부부에게 ‘멀리 사는데 집에서 법공부해도 괜찮으니 자주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엄마는 우리 법공부 팀의 팀장인데, 엄마가 그들을 잘 이끌어 함께 제고해 나가는 게 마땅한 게 아닌가요?” 딸의 지적이 맞았다. 그들이 멀리 살아서 왕복하는 데만 3시간이 넘게 걸리긴 하지만, 법공부 팀에 참가하고자 하는 건 좋은 일이고 모두 사부님의 배치 아닌가. 그런데 내가 신수련생을 잘 이끌어주기는커녕 도리어 그들을 내쫓은 꼴이 되고 말았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맡기신 임무를 저버렸고 수련생들의 나에 대한 믿음도 저버렸으니 정말 잘못했다. 번거로움을 꺼리는 마음, 책임감 없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처럼 큰 병업 고비에 부딪힌 것도 모두 이 나쁜 마음들이 작용한 결과 아닐까.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잘못된 길로 빠질까 봐 이렇게 일깨워주신 거였다!

깨달은 즉시 전화를 걸어 그 부부를 다시 초대했고, 실천으로 잘못을 바로잡았다. 과연 그날 저녁 등의 통증이 가셨고, 밤에는 평소처럼 침대에 누워 잠들 수 있었다.

3. 확고한 정념으로 진정한 수련생이 되다

이 몇 년간 수련을 통해 사부님께서 너무나 많은 걸 주셨다고 느꼈다. 이렇게 건강한 몸과 이렇게 좋은 수련 환경까지 주셨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한 것은 너무 적고 법의 표준과 요구에는 한참 못 미쳤다. 그래도 나는 이 수련의 기회와 인연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법은 엄숙한 것으로, 오로지 앞으로 전진할 뿐 물러설 수 없다는 걸 명심했다. 이는 내 수련의 신조이자, 대법제자라는 명예를 지키기 위한 다짐이었다.

남편이 세상을 뜬 후로 나는 계속 혼자 살면서 최대한 아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썼다.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다른 이를 위해 생각하는 것이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가정을 나의 수련 환경으로 삼았다. 평소 법공부와 연공 외에도 내 능력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했다. 매년 설이 다가오면 침구류를 빨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일을 매일 조금씩 해 나갔다.

아이들이 묻곤 했다. “엄마 혼자 사시는데 외롭지 않으세요? 누군가 모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가 거의 90살인 건 맞지만 나이를 의식하진 않아. 수련 덕분에 사부님께서 이렇게 건강한 몸을 주셨고 뭘 해도 불편함이 없으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치 않아. 매일 알차게 보내고 있고 사부님께서 늘 곁에 계시니 전혀 외롭지 않아. 오히려 하루가 짧게만 느껴진단다. 너희들에게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가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 언제든 말해.”

이 몇 년 동안 수많은 고비를 겪었는데 대부분은 신체적인 고통이었다. 어느 부위가 아프고 괴롭든 간에 아이들에겐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내가 수련인인만큼 그건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할 고비이고, 속인에겐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걱정하거나 오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무슨 일로 갑자기 집에 들르더라도 내가 소업하는 중이라 할지라도 평소처럼 밥을 하고 할 일을 했다. 그들 앞에선 언제나 바른 모습으로 대법의 이미지와 수련생의 풍모를 지켜나갔다. 수련인의 바른 외모 역시 무형 중에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한다고 여겼기에,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도록 했다. 정법이 아직 진행 중인 지금, 이 모든 것이 수련생에겐 매우 소중하고 다시 없을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장차 유감을 남기지 않게 잘해야 한다.

하지만 나의 오성 부족으로 인해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즉시 자신을 찾지 못해서 마땅히 넘어야 할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하고, 제고해야 할 때 오히려 제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설 명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아침, 대문을 열고 마당을 쓸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버린 더러운 변기가 문 앞에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3일이 지나도록 치우는 이가 없었다. 그제야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속인의 마음이 들끓어 올랐다. ‘이런 걸 여기 버려두다니, 날 무시하는 거야? 명절인데 집 앞에 더러운 걸 놔두고. 정말 속상하고 화나네. 근데 누가 한 짓인지도 모르겠으니 어쩌나.’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속으론 정말 화가 났다. 분한 마음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리도 울렁거렸다. 결국 홧김에 힘겹게 그것을 끌고 가 담장 밑에다 갖다 놓았다.

이틀 후 나의 왼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고 점점 더 심해져서 덜덜 떨 정도였다. 가부좌를 틀 수도 없었고 걷기조차 어려웠다. 당시 나는 이것이 내게 주어진 고비이자 심성을 제고할 기회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오성이 모자라 결국 설 연휴가 지나서야 이 난관을 넘길 수 있었다. 때로는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 나 자신도 안을 향해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찾아내지 못했다. 나는 사부님 법상 앞에 앉아서 사부님께 “제자가 도대체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제발 일깨워주세요”라고 간청했다. 나는 거기에 앉아서 법을 배웠고, 사부님께서 새로 발표하신 경문도 배웠다.

법을 배우고 나자 마음에 진동이 왔고 문득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정말 깨어나야 했다. 정법 노정이 이미 이 정도로 완성되었는데 내게 어찌 그토록 큰 업력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법의 표준과 요구에 따라 마음을 평온히 하고 진지하게 꼼꼼히 최근의 수련 상태가 어떠했는지 되짚어 보았다. 이렇게 찾다 보니 적지 않은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수련 중에서 나 자신에 대한 요구가 엄격하지 않았고, 생활 중에서 접하게 되는 모든 일들을 수련으로 여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오랜 이웃들을 만나면 그들은 모두 내가 그 나이에 맞지 않게 보인다거나, 스스로 손수레를 밀고 장을 보러 다니며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 없다는 등 칭찬을 해주곤 했는데, 이런 칭찬을 많이 듣다 보니 내심 기뻐하면서 약간 들뜨게 되어 내가 누구인지, 세상에 무엇 때문에 왔는지를 잊게 됐다. 이는 기쁨에 도취된 마음, 과시심, 허영심 등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나는 또 설날 전에 누가 우리 대문 앞에 낡은 변기를 버려둔 일이 생각났는데, 그것이 우연한 일일 리 없었다. 이는 내가 평소 깨끗함을 좋아하고 체면을 중시하며 사사로운 일에 신경을 쓰는 마음을 겨냥한 것이 아닌가? 이 일을 통해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도대체 어떻게 수련하고 있는지 시험하시고, 내가 심성을 제고하고 사람의 마음을 버릴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이번 제고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마땅히 그 사람에게 감사해야 하는데도 사람마음이 너무 강해 오히려 그 사람을 나쁜 사람, 원수로 여기며 마음에 담아뒀다. 이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진선인(真·善·忍)의 표준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가?

계속 안을 향해 찾아보니, 작년 11월 어느 날 나는 딸과 또 다른 한 명의 수련생(친척)과 함께 법을 배우고 깨달은 바를 나누었다. 딸은 심성 고비에 부딪혔다. 시댁에서 돈을 잃어버렸는데 모두가 딸이 가져간 것으로 의심했고, 원래 관계가 꽤 좋았던 사람들도 딸을 외면했으며, 시댁 식구들이 딸에게 좋은 낯빛을 보이지 않았다. 근거 없이 의심받은 딸은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여기며 이해할 수 없어 했다. 나는 갑자기 내가 젊었을 때 시어머니댁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시어머니 방의 작은 나무 상자에 있던 돈이 없어졌는데, 온 집안 식구 중 나만 외부인이었기에 모두가 내가 가져간 것으로 의심했다. 당시에도 억울함이 극에 달했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었겠는가! 나중에 도둑이 잡히면서 내가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게 의심받았을 때의 마음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겪었던 이 일을 딸에게 들려주었다. 자신이 바르게 행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니 이 일을 마음에 두지 말라고 했고,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니 더욱 이 일을 담담히 여길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수련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딸에게는 이렇게 말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입으로는 내려놓았다고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아직 억울함을 품고 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 세 사람은 다시 함께 법을 배우고 느낀 바를 나누었다. 딸은 또 자신이 겪은 일을 꺼내며 너무 억울하다고 했고, 그 일이 떠오르면 머리가 아프다면서 때때로 머릿속에서 이 일이 떠올라 법을 배우고 연공하는 데 영향을 준다고 했다. 말하는 중에 딸이 눈물을 종종 닦는 것을 보자 나는 마음이 불편해졌고 갑자기 화가 나서 큰 소리로 그들에게 소리치며 즉시 다른 곳에 가서 말하라고 했다. 어디로 가고 싶으면 어디든 가라면서 빨리 가라고 했으며, 듣기 거북한 말도 했다. 그때 그 둘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수련생이 “왜 그렇게 화를 내시나요? 제가 법에 부합되지 않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절대 화내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손이 떨리고 고개도 흔들렸다. 그녀는 내 감정이 그렇게 격해진 것을 보고는 딸에게 몇 마디 하고는 먼저 떠났다.

딸이 말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어머니도 수련하는 사람 아니에요? 어떻게 그렇게 무례할 수가 있어요? 왜 화를 내세요? 저희 둘이 뭘 잘못했다는 거예요?” 딸의 잇따른 질문에 나는 멈칫했다. 그렇다. 이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당시 내가 왜 그렇게 이성을 잃고 충동적이었을까? 그것은 마(魔)적인 표현이 아닌가? 법을 배우고 안으로 찾아보니 내가 인식하게 된 것은 내가 마땅히 없애야 할 그런 좋지 않은 마음들을 건드린 것이었다. 어찌 나와 딸이 겪은 일이 그렇게 흡사할 수가 있겠는가? 이는 딸이 겪은 일을 통해 수십 년 전부터 내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원망과 억울함을 건져 올려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 수련하는 사람인데 어찌 아직도 이런 좋지 않은 마음들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당시 나는 다른 수련생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렇게 무례한 말들을 내뱉었다. 깊이 파고들어 살펴보니, 바로 나의 수십 년 전의 억울함과 원망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며, 또한 당시 질투심과 딸에 대한 정(情) 역시 모두 드러났기 때문에 그렇게 비이성적이었고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수련인답지 못했다. 나는 잘못했다.

마성을 제거하고 불성(佛性)을 수련해내야 한다. 내 잘못을 알게 되자 그 좋지 않은 마음들을 모두 버렸다. 그렇게 깨달은 후 내 다리와 허리의 통증이 사라졌고 손 떨림과 머리 흔들림도 없어졌다. 딸의 심성 고비도 지나갔다. 그날은 토요일이어서 나는 그 수련생을 집으로 불러 진심으로 그에게 사과했다. 수련생은 이렇게 말했다.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우리는 모두 수련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 수련생들끼리 잠시 서로 마(魔)의 역할을 하는데 사실 좋은 일이에요. 그 과정에서 제가 버려야 할 것들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수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모두가 고비와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데 그건 다 좋은 일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법공부 팀이라는 수련 형식은 바로 우리가 이 정토에서 진지하게 법을 배우고 서로 토론하고 격려하며 자신의 체득을 교류함으로써 좋지 않은 생각과 사람마음을 끄집어내어 해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야 우리가 수련의 길을 더 빨리 걸어갈 수 있다. 우리는 법공부 팀을 법의 주유소로 여기고 법공부를 통해 끊임없이 인식을 제고하고 사부님과 대법을 믿으며 서로 배우고 수련해나가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원만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시 사부님께서 보고 싶어 하시는 모습일 것이다.

이상은 본인이 깨달은 바를 현재의 층차에서 말한 것이다. 만약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자비롭게 제도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7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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