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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대법을 만나 시련 속에서 대법을 실증하다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성련(聖蓮)

[명혜망]

1. 대법을 찾아 헤매다

20대 때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백만 권의 경서를 저술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능력으로 그렇게 많은 책을 쓸 수 있을까요? 당시에는 사람, 신, 부처의 개념을 알지 못했습니다. 불교 수행에 대한 이해는 모호했지만 늘 그 본질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바람이 생겼습니다. 사업으로 돈을 벌어 차 한 대와 최고급 휴대폰을 사서 쓰촨 불교대학에 가서 6년 동안 공부하며 ‘불법(佛法)’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출장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점, 책 시장,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보물을 찾듯 수행 관련 책을 찾아다녔지만, 매번 실망하고 돌아왔습니다. 삶 속에서 자주 희망 없고 돌아갈 곳 없는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1) 천목(天目)과 초능력

1992년 5월 어느 날, 시내 중심가 어린이 공원에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무술을 하고 검을 휘두르며 권법을 연마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가 공법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린 곳을 발견했습니다. 한 사람의 손가락 끝에서 흰색 기둥 같은 것이 손짓에 따라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다 보니 주변 환경이 바뀌었고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큰 피라미드 모양의 것이 나타났는데, 네온사인 같은 아름다운 초록색이었고 모두 직사각형 블록으로 배열되어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거대한 피라미드 모양이었습니다.

이후 연속해서 여러 가지 공능(功能, 초능력)이 나타났고, ‘진안(眞眼)’도 생겼습니다. 제가 본 것은 바로 저 자신의 눈이었는데, 무섭지 않았고 다만 소의 눈만큼 컸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것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4년 후 설날, 수백 킬로 떨어진 고향에 갔을 때 두 동생의 가슴에 돌처럼 딱딱한 덩어리가 있어서 빨래도 못하고 밥도 못 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제가 손으로 몇 번 문질렀더니 기적처럼 덩어리가 사라졌고, 발등의 검붉은 멍까지도 사라졌습니다. 저는 병 치료를 할 줄도 모르고 해본 적도 없어서 저 자신도 매우 이상했습니다. 집에 돌아갈 때 동생이 말했습니다. “언니, 돌아가서 다시 한번 더 치료해주세요.” 저는 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돌아온 다음 날 밤에 다시 한번 어설프게 해보았는데 이번에는 제가 피해를 봤습니다. 갑자기 기력이 빠져버려 급히 침대에 누웠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10여 분 후 조금 나아졌을 때 어렴풋이 베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쿵푸(功夫)는 모두 무형 중에 있다.” 듣고 나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오늘 혹시 고수를 만난 걸까?’ 마음속으로 그 목소리에 대답했습니다. “당신 말씀이 정말 맞습니다. 당신이 누구신지 알고 싶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2) 대법과의 행운의 만남

1996년 봄여름 교차기, 어느 날 아침 4시가 조금 넘어 저도 모르게 서둘러 자전거를 타고 도매 서점이 있는 큰 책시장으로 갔습니다. 마음속으로 계속 자문했습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지? 책시장은 아직 문도 열지 않았는데.’ 문이 열린 작은 가게로 갔는데, 주인이 혼자서 바닥에 쌓인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긴 테이블 위에서 무심코 책을 뒤적이다가 갑자기 《전법륜(轉法輪)》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것이 분명 불가의 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절의 벽에서 ‘법륜상전(法輪常轉)’이라는 글자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차를 보자마자 부평초 같던 마음이 한순간에 안정됐습니다. 세상에, 모든 각 강의 제목이 이 몇 년간 고민하며 좌선하면서 찾고자 했던 답이자 해독할 수 없었던 내용이었습니다. 너무나 운이 좋았습니다. 정말 신의 도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늘이 내린 보배 책을 전혀 수고를 들이지 않고 얻었습니다. 12위안(한화 약 2천 원)을 지불하고 제비처럼 기뻐하며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날아갔습니다. 갈증 난 사람이 물을 마시듯 읽어 나갔고 하루 만에 《전법륜》을 다 읽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더 이상 쓰촨 불교대학에 갈 필요가 없어졌어.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바로 내 사부님이야.’(나중에 깨달았지만 사부님의 법신이 저를 도와 대법 책을 모셔 온 것이었습니다.)

1996년 5월, 저는 정식으로 파룬따파에 입문해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의 수련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해했습니다. 반본귀진, 이것이 이 별에 있는 모든 생명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입니다.

2. 법공부와 집착 버리기

처음 법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단어 하나하나를 따지는 것을 좋아해서 이해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일깨워주셔서야 잘못을 알았고 이 우주 대법이 지고무상한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 수련을 매우 엄격하게 보셨습니다. 한번은 사부님께서 베이지색 바람막이를 입으시고 위엄 있는 높고 큰 체구로 나타나셨습니다. 저는 몇 살 된 아이처럼 사부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 했지만 사부님이 너무 높아서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 얼굴의 장엄함과 엄숙함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과 함께 초원을 걸어가고, 숲을 지나고, 가시덤불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대부분 시간 동안 깊은 바퀴 자국이 있는 길을 걸었는데 저는 항상 사부님보다 반 발짝 뒤처졌습니다. 사부님을 따라잡아 나란히 걸으려고 하면 곧바로 다시 뒤처졌고, 항상 반 발짝 차이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냥 이대로 가기로 하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제 손에는 보라색 꽃무늬가 있는 삼각형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반쯤 찬 무언가가 들어 있어 묵직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어느 정도 걸을 때마다 주머니에서 대각선 위쪽으로 한 줌의 물건이 튀어나와 길가에 흩어졌습니다. 저는 매우 아쉬워하며 주워 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 또 한 줌이 나갔고 생각해보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그냥 앞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제가 들고 있던 콩 모양의 심장 모양 물건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바로 집착심이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집착심들이 걸어가면서 조금씩 없어진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께 일깨움을 구하는 것에서 스스로 깨닫는 법공부 과정을 거쳤고, 추구하는 마음과 조급한 마음이 모두 집착임을 알게 됐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이후의 정법 수련을 위한 견고한 기초를 다졌습니다.

한동안 제 공능이 하나씩 나타났습니다. 운반공, 타심통, 혜안통 등등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한 책임자 수련생과 그의 직장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제 양손을 뒤로 포개고 벽에 기대어 있었는데, 그 수련생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는 저를 보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제 상반신이 두꺼운 벽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다른 공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사고도 그 공간의 상태였습니다. 저는 거의 “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 여기서 할 말이 있는데”라고 말할 뻔했습니다. 순간 다시 이 공간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미 저를 법안통의 경지로 밀어올리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겨우 1년 만에 이 법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주셔야 할 것은 다 주셨으니 저는 절대 떠나지 않겠습니다. 제자는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3. 구치소에서 대법을 실증하다

1999년 9월 베이징 여행에서 저희 10여 명은 기차에서 철도 경찰에게 납치돼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우리는 범죄자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살인, 마약, 도둑질, 매춘 등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40대쯤 되는 농촌 여성이 갑자기 간질 발작을 일으켜 온몸을 떨며 침상 위에서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입에서 하얀 거품이 나왔고 모두가 그녀를 피했습니다. 잠시 후 그녀는 소변을 지렸고 침상이 온통 오줌으로 엉망이 됐습니다. 네 명의 당번과 다른 50~60명의 사람들이 보고만 있었고 아무도 간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제 원래의 깔끔한 성격으로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오늘 제 신분은 대법제자이고 제 모든 모습이 파룬따파를 대표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이해하도록 하고, 우리의 실제 행동으로 중공(중국공산당)의 거짓말을 부정하고 세인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속옷과 겉옷을 벗기고 물을 가져와 수건으로 그녀의 몸을 깨끗이 닦아내고 새 바지로 갈아입혔습니다. 그런 다음 침상을 여러 번 깨끗이 닦아냈고 화장실에 가서 그녀의 바지를 빨아 말렸습니다. 수련생들과 그 속인들도 매우 감동했습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기회를 찾아 조심스럽게 제게 말했습니다. “언니, 파룬궁은 정말 좋아요!”

며칠 후 오전, 감방 밖 복도에서 당직 여경이 급하게 걸어왔고 그녀 뒤에 제복을 입지 않은 남자 경찰 세 명이 따라왔습니다. 그들은 중간에 있는 큰 창문 앞(유리가 없고 굵은 철봉으로 만든 창문)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60여 명의 사람들 중 아무도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습니다. 여경이 말했습니다. “아무개, 파룬궁 수련과 공산당원이 되는 것이 왜 모순되지 않는지 말해보세요.” (사실 저는 92년에 이미 스스로 사악한 당에서 탈퇴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저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제가 ‘시험장’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옆에 계시니 저는 자신 있게 일어섰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했습니다. 저는 제 수련에 대해 말했고 제 몸과 정신 경지, 그리고 인생관의 중대한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제 인생 이력에서 파룬궁수련생과 공산당원은 전혀 비교할 수 없습니다. 파룬궁의 ‘진선인(真·善·忍)’ 수련 원리는 본질적으로 사람을 교화하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계층이나 직위에 있든, 법에 따라 수련하기만 하면 사상이 신속하게 정화되어 높은 경지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떤 이론 교육으로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저는 진정한 이상과 목표를 갖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 수련 후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는 두 가지 사실을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10여 분이 지났습니다. 중간에 있던 사람이 제가 말을 마치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앉으세요.” 계속 무표정하던 세 사람은 이 짧은 한마디만 남기고 떠났습니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나, 당직 여경이 저를 불러냈습니다. 그녀는 제게 우리 쪽의 한 남자 경찰이 저에게 물건을 가져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수련생이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자 경찰이 떠난 후 그녀는 저를 앉히고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오전에 온 세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가운데 있던 사람이 우리 상급의 큰 간부예요. 그 사람 2년 동안 우리 구치소에 오지 않았어요. 모두가 당신 말을 듣고 있었다는 걸 아세요? 그들(남녀 경찰들)이 말하길 마치 차오관화(전 중공 외교부장)가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는 것을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대요. 우리 모두 그 과장님을 비웃었어요. 그는 한마디도 못 하고 그냥 갔으니까요.”

며칠 후 우리에게 구치소 규칙을 외우게 했는데 제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당번은 평소의 엄숙한 표정을 바꿔 웃으면서 저를 보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우리가 여기서 만난 것도 정말 인연이 작지 않네요. 우리 파룬궁수련생들은 맞아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욕하지 않는 좋은 사람들이에요. 사실 좋은 사람이 되는 기준은 바로 ‘진선인’이에요. 우리에게는 어떤 불법적인 부분도 없어요. 이 감방 규칙은 외우지 않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전법륜》의 ‘논어’를 한 번 외워드릴게요. 불법(佛法)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운인지 모릅니다. 들으면 모두 이롭습니다.”

60명이 있는 큰 감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외우기 시작했고 모두가 끝까지 들었습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고 그들의 사고가 억제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셔서 이 인연 있는 자매들을 구원하시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수련생이 제게 자신들도 ‘감방 규칙’을 외우고 싶지 않지만 두려워서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모두와 교류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범죄 용의자로 여기는 틀에서 벗어나 법을 실증해야 합니다.”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저는 그럼 우리 다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수련생들이 함께 ‘논어’를 암송했고, 속인 용의자들 중 일부는 조용히 있었고, 일부는 감방 규칙을 외웠으며, 일부는 소리 지르며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다른 감방에서는 모두 감방 규칙을 외우지 않고 우리 감방의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무 일도 없었고, 다음 날 새벽 2시가 조금 지나 저는 일어나 복도에 서서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포륜할 때 다른 한 수련생도 일어나 앉았습니다. 당직자가 긴 대나무 막대기로 그녀를 찔렀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당직자가 물었습니다. “뭐 하려고?” 그녀는 말하지 않고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당직자가 말했습니다. “연공하려고? 네가 그녀와 비교할 수 있어? 누워!” 그리고 계속 긴 대나무 막대기로 찔러대다가 결국 수련생이 눕게 됐습니다. 이 광경을 보며 저는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감방 규칙 외우기를 법 암송으로 대체한 행동이 다른 공간의 사악을 자극했습니다. 3일 후, 우리 10여 명의 수련생은 이 가장 큰 감방에서 다른 몇 개의 작은 감방으로 흩어져 배치됐습니다. 감방에 도착한 우리 몇몇 수련생은 2주 이상 마음가짐을 조정하고 교류한 후, 강제 노동 생산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법을 암송하며 연공했습니다. 한 남자 경찰 과장이 큰 철문을 열고 저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아무개 나와, 분명 또 너겠지.” 그리고 모두를 구치소 대기실로 끌고 갔고 우리는 당직 중이던 모든 남녀 경찰들에게 20분 이상 집단 폭행을 당했습니다. 한 남자 과장이 눈을 부라리며 저에게 고함쳤습니다. “감방 규칙을 안 외우고, 일도 안 하고, 공개적으로 연공하고 법공부하고, 구치소가 너희 집이라도 되는 줄 알아? 응? 거의 파룬궁 영역이 되어버렸잖아.” 그는 말려있는 잡지로 저를 미친 듯이 때리면서 계속 욕했습니다. 모두에게 수갑이 채워졌고 두 사람씩 한 쌍의 족쇄가 채워졌습니다. 저만 혼자였는데 사형수가 차는 대형 족쇄 두 개를 위아래로 겹쳐서 채웠습니다. 당직자들은 상부에게 불려 갔고 잠시의 정적 속에서 우리는 교류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모두의 인식이 높아졌습니다. “우리는 잘못이 없어요, 수련하는 사람이 수련도 하지 않고 연공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수련자일 수 있겠어요?” “언니가 한 일이 맞아요. 그들에게 협조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당직자가 돌아온 후, 저는 혼자 노동반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곳에는 수련생이 없었고 두 개의 무거운 족쇄가 양발에 채워졌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규칙을 위반’한 주동자가 되어 전 구치소가 술렁였습니다. 오후 내내 ‘구타’를 당한 후 모든 감방이 죽음과 같은 침묵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탄압하고 폭력을 가하는 자들이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수련인은 어디에 있든 수련해야 하고, 세간의 환경은 사악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이 파룬궁을 이해하게 하는 것은 모두 좋은 일입니다.

저는 이불을 사용할 권리를 박탈당했고, 수갑과 족쇄를 찬 채로 맨바닥에서 잤습니다. 첫날 밤에 정말 잠들 수 없었습니다. 두 개의 큰 쇠 족쇄가 제 몸 절반을 덮었고 뼛속까지 시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몸에는 천 한 조각 없이 추위에 온몸이 떨렸고, 몸이 떨릴 때마다 쇠사슬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그날 밤 아무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둘째 날 밤, 노동반의 몇몇 여동생들이 몰래 얇은 이불을 가져다주었고, 몇몇 감방 동료들이 재빨리 저를 들어 올려 이불을 제 밑에 깔아주었습니다. 그들은 절대 제게 이불을 덮어주지 못했습니다. 경찰들이 순찰할 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이 좋은 꿈을 꾸기를 기원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이 몇몇 감방 동생들에게 장쩌민 일당이 왜 파룬궁에 대해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꿨는지, 제가 왜 감방 규칙을 외우지 않는지, 제 인생의 전환점, 제 수련 이야기, 인류와 우주에 대해, 무신론과 유신론의 대립, 생명과 만사만물을 창조한 우주 대법에 대해 등을 이야기해주었고, 그들에게 ‘논어’와 ‘홍음’을 외우도록 가르쳤습니다.

여동생들은 파룬궁을 매우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언니와 함께 있고 싶어요, 언니는 정말 대단해요.” 제 좌우에 붙어 있던 두 사람이 제 귀에 대고 말했습니다. “언니는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 둘도 이제 대법제자예요.” 저는 이것이 사부님의 안배라는 것을 알았고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언니, 무슨 일 있으면 말씀하세요, 우리는 당신 말을 들을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제멋대로 박해당해선 안 됩니다. 우리도 사람이고 살아있으니 어디에 있든 존엄성 있게 살아야 합니다.

감방 반장은 여러 차례 구치소와 노동수용소를 드나든 마약 중독자였는데 매우 예쁘게 생겼습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나서 그녀가 갑자기 저를 붙잡고 말했습니다. “저를 딸로 삼아주세요, 제가 어머니로 모실게요. 저를 관리해주세요, 그러면 저도 좋게 변할 수 있어요. 새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의 믿음에 감사드려요. 당신의 생각은 정말 좋아요.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대법과 인연을 맺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당신에게 사부님이 계시면 어머니가 있는 것보다 더 좋을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에 감동의 눈물이 고였습니다.

족쇄 두 개를 차고 화장실에 가는 것은 매우 불편했고 쪼그려 앉을 수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저를 잡아주어야 했고 매번 용변을 본 후에는 따뜻한 물을 가져와 저를 씻겨주었습니다. 이 일은 매일 저를 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계속 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선례도 본보기도 없으니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부님의 《홍음》 중 ‘난중불란(難中不亂)’의 법이 제 머리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사부님이 계시니 사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악은 바름을 이길 수 없습니다. 5일째 되는 날 오후, 경찰들이 모두 출근했을 때 갑자기 철문이 열렸고 그 남자 과장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신발을 신은 채로 침상 위로 올라갔고 그가 말하기도 전에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과장님, 종이와 펜이 필요해요. 소장님께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좋아요, 지금 바로 찾아다 줄게요.” 그는 남자 감방의 한 사람을 불러 원고지와 펜을 가져오게 했고 그는 이것들을 가져올 때 제가 차고 있는 두 개의 큰 족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그 과장이 다시 말했습니다. “열쇠를 가져와 수갑을 풀어줘, 그녀가 글을 써야 하니까.” 그 사람은 대답하고 뛰어갔습니다. 과장은 매우 기뻐하며 침상 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식당 사람들을 불러 과일 상자 두 개를 가져와 제게 책상으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감방이 조용해졌을 때 한 감방 동료가 귓속말로 말했습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네요.” 제가 무엇 때문에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녀가 말했습니다. “과장님은 바쁘게 움직이시는데, 틀림없이 당신이 잘못을 인정하는 글을 쓸 거라고 생각하시나 봐요. 하하하하.” 모두가 동시에 웃었습니다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펜을 들자마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썼습니다. 우리와 모든 수련인들에게 일어난 불공정한 대우는 우리 민족 전체에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고 썼습니다. 신앙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합법적인 권리이며, 파룬궁 수련은 국가와 민족에게 백 가지 이로움은 있어도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고 썼습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이 파룬궁을 집단 조사한 후 선의적이고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고 썼습니다. 그래서 모든 파룬궁수련생들을 무죄 석방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두 번째 문제로는 구치소의 관리에 대해 썼습니다. 중국의 법률, 법규, 조례 어디에도 구치소 수감자들이 생산 노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고 직접 지적했습니다. 저와 같은 감방에 있던 28세의 미혼 여교사가 이쑤시개 8상자를 완성해야 하는 과제를 받았는데, 그녀는 밤늦게까지 일해도 절반도 완성하지 못했고 너무 졸려 이쑤시개가 눈꺼풀에 찔려 정신이 거의 붕괴 직전이었다는 사례를 들었습니다. “구금된 사람들의 심신은 이미 극도의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만약 그 여성이 눈을 다치면 누가 책임질 건가요? 자신들의 사익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생사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불법적인 사실에 대해 소장으로서 져야 할 책임을 고려해야 합니다.”

다음 날 점심 식사 후, 그 과장이 고개를 떨구고 저를 불러냈습니다. 소장실에서 저는 두 개의 무거운 족쇄를 끌고 갔고, 그는 그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편지를 봤습니다. 석방 요구에 대해서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구치소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규정이 있습니다. 관리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의견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못했다면 고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족쇄를 풀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원래 있던 4번 감방으로 돌아갈 순 없고 노동반에 있어야 합니다.”

4개월 후 저는 불법적으로 제1구치소로 갔습니다. 그곳의 기결수들은 마치 회전문처럼 왔다 갔다 했는데, 그들의 입을 통해 저는 그 편지 이후로 제2구치소의 노예 노동 생산이 완전히 중단됐고,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다시는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가호로 인한 결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4. 세인에 대한 자비

제1구치소는 더욱 음산하고 무서웠습니다. 저는 갑자기 고독하고 우울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사부님, 단 한 명의 수련생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제 맞은편에 앉아 있기만 해도 좋으니, 말하지 않아도 돼요.’ 매번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저는 혹시 수련생이 있을지 궁금해했습니다. 며칠 후 제 생각 속에 갑자기 극단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검은 철문을 향해 몇 발자국 달려가 머리를 박으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깜짝 놀라 깨어났습니다. 이것이 제 집착심을 버리지 않아 마(魔)를 불러온 것이 아닌가요? 저는 천천히 마음 상태를 조정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최선을 다해 자신을 통제했습니다. 이 생각이 어디서 왔을까요?

생명의 깊은 곳에서, 저는 여전히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하든 친구가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농촌에 갔을 때, 일할 때, 수련할 때, 저는 한 번도 제가 살던 집단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제가 수련자가 됐는데도 여전히 친구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추구하는 마음이 아닌가요?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당신을 깊은 산 속 오래된 숲에 놓는다면 수련할 수 있을까요? 갑자기 사부님의 “몸 고생은 고생이 아니나니 마음 수련이 가장 어렵도다”(홍음-마음 고생)라는 법이 제 머릿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잘 수련해야 했습니다.

이 집착을 버린 후 저는 새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제 눈앞의 자매들 한 명 한 명을 수련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제게 수련생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 환경이 바로 제가 수련하기 위한 것 아닌가요? 저는 시간을 다투어 그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에게 법을 알렸습니다. 조금씩 저는 새로운 수련생들을 얻게 됐습니다. 제가 있던 감방에는 18~19명이 있었고, 많을 때는 20명이 넘었습니다. 제 좌우에는 사형수들이 있었는데 그 여경이 말했습니다. “그들을 당신 옆에 두면 제가 마음이 편해요.” 그래서 제가 그들과 대화를 나누어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고 이를 통해 저는 그들에게 법을 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매우 젊고 똑똑하고 아름다웠지만, 단지 일을 대할 때 극단적이었을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저는 가족처럼 매일 교류하며 생명은 윤회한다는 것,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는 것,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면 우리는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생겼습니다.

어느 날 밤, 제 오른쪽에 있던 아가씨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때로는 제가 여기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를 때가 있어요. 머릿속이 하얘져요. 아주머니가 제 옆에 계시니 마음이 안정돼요. 저는 사부님이 말씀하신 인과응보를 믿게 됐어요. 제 생명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아요. 저는 처녀 때 재혼한 남편과 결혼했는데, 그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어요. 저는 참을 수 없어서 그의 전 부인의 딸과 다른 두 소녀의 얼굴에 황산을 부어 얼굴을 망가뜨렸어요. 이 충동으로 제 생명을 대가로 치르게 됐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너무 후회돼요. 저는 이번 생에서 수련을 바라지 않고 다음 생을 바랄 뿐이에요. 아주머니, 저는 사부님과 당신을 잊을 수 없어요. 당신과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어요.” 저는 그녀에게 마음을 넓게 가지라고 권했습니다. “당신은 파룬따파를 얻었는데 무엇이 두렵나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당신이 인간 세상에서 사라져도 어디로 가든 사부님께서 당신을 돌보실 거예요. 반드시 사부님을 굳게 믿고 법을 굳게 믿어야 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달콤하게 웃었습니다.

제1구치소에서 8개월 동안 저는 두 개의 감방을 거쳤는데, 모두가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했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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