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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병업관을 뚫고 지나온 체험

글/ 캐나다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작년에 심각한 병업관을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은 저에게 뼈에 새겨질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구세력을 부정하고 생사를 내려놓는 과정이었습니다. 지금 이를 적어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제 병업 가상은 작년 5월 초 프랑스어 학습을 시작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이민 신분은 작년 2월 9일에 완료됐는데, 가족 재결합으로 딸이 저를 프랑스어 수업에 등록시켰습니다. 4월 26일 저는 프랑스어 수업을 시작했고 이 프랑스어 반에 오게 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반에는 총 12명의 학생이 있었고 모두 외국인이었습니다. 아랍인, 흑인, 그리고 저 중국인이 있었고, 선생님은 프랑스인으로 60세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표정에서 저를 매우 환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모든 사람이 저를 안아주며 친절하게 제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저는 그들 모두에게 작은 연꽃을 선물했고 선생님은 그것을 매우 좋아하셔서 매일 수업에 메고 오는 작은 가방에 걸어두셨습니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하자 저는 매우 짜증이 났습니다. 입에 물집이 생겼고 수업 시간에는 계속 졸음이 왔으며, 밤에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고 때로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매우 괴로웠습니다. 저는 매일 계속해서 프랑스어를 배우러 갔지만 선생님은 제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시고 어느 날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을 데려와 통역을 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매우 좋아하시지만 수업 시간에 졸고 있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쉽다고 하셨고 제가 걱정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울음을 터뜨렸고 저도 조급하지만 이해를 못해 정신을 차릴 수 없고 더 이상 배우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은 너무 아쉽다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수업을 듣고 싶어하는데 들어오지 못하는지 모른다고 하시며,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딸과 상의도 하지 않고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곧이어 가정 난이 찾아왔습니다. 딸과 사위는 저를 못마땅해하며 눈치를 주었고, 거기 앉아만 있어도 돈을 벌 수 있는데 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프랑스어를 배우면 정부에서 매달 1000캐나다달러를 지원해주기 때문임) 평소에 저와 매우 잘 지내던 어린 외손녀도 저를 못마땅해했습니다. 저는 정말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구세력은 이렇게 저를 공격했습니다. 먼저 제 정신을 무너뜨린 후 곧바로 병업 가상이 나타났습니다. 소변에 피가 섞이고 소변도 잘 나오지 않았으며, 아랫배가 아팠고 음식을 먹지 못하기 시작했으며, 온몸에 힘이 없었습니다. 법공부를 해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법의 내포를 볼 수 없었으며, 온라인에서 법을 읽을 때도 자주 글자를 빠뜨렸습니다. 수련생들이 저와 함께 법공부하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 것 같았고 몇 번이나 조정을 요청받았지만 여전히 글자를 빠뜨렸습니다. 혼자 법공부를 해도 집중이 되지 않았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있었으며 정신이 몽롱했습니다. 나중에는 심각해져서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수련생이 전화를 걸어 왜 온라인으로 법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눈물을 머금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제 상태가 좋지 않아요. 프랑스어도 더 이상 배울 수 없고 법공부도 마음에 와닿지 않아요. 온라인에서 법을 읽을 때도 글자를 빠뜨려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이고! 이건 구세력이 당신을 사정없이 공격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저는 이 말을 듣고 온몸이 떨렸습니다. 생각해보니 이것은 사부님께서 수련생 입을 빌려 저를 깨우치시는 것이었습니다. 구세력은 왜 저를 공격하고 박해하는 걸까요? 저는 제 수련에 틈이 있어 문제가 생겼거나 심지어 큰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아보았습니다. 원망, 체면, 과시심, 환희심, 그리고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 등 많은 사람마음을 찾아냈습니다.

1. 딸에 대한 원망 버리기

남편이 45세 되던 해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해 저는 40세였고, 딸은 겨우 16살로 중점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습니다. 저 혼자 장사하며 딸을 키워 대학에 보냈고 또 유학을 보내 캐나다로 이민 갔습니다. 이제 딸이 성공해서 저도 캐나다에 와서 딸과 재결합했습니다.

캐나다에 온 지 3년 남짓 동안 저는 계속 무료 보모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딸은 저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았고, 저는 오직 제 미약한 1000여 위안의 퇴직금을 그들의 캐나다 달러로 환전해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작년 토론토에서 법회에 참석할 때 저는 그들과 500캐나다달러를 환전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제 돈인데도 다른 사람들에게 딸이 준 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 아닌가요? 이는 공산당 문화의 사고방식이며 체면을 차리려는 마음입니다.

작년에 퀘벡에 가서 션윈 홍보를 할 때 우리 차에 네 명의 수련생이 있었는데 식사는 모두 다른 수련생들이 돈을 냈습니다. 다음 날 홍보를 다 하고 나서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식사하고 돌아갑시다!” 하지만 저는 돈이 없었고 더 이상 수련생들에게 신세를 질 수도 없어서 배고프지 않다고 하고 집에 가서 먹겠다고 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식당에 가느라 차에서 내렸고 저 혼자 차 안에 있으면서 딸에 대한 원망이 올라왔습니다. ‘내 평생 번 돈을 모두 너에게 줬어. 마지막 10만 위안도 너에게 줬는데, 이제 네가 성공했으니 엄마에게 보답해야 하지 않니? 왜 한 푼도 주지 않는 거야?’ 딸을 원망하며 한동안 울었고 마음을 풀 수 없었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마음을 풀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전생이나 어느 생에서 딸에게 많은 빚을 졌을 것이고, 이번 생에는 딸에게 빚을 갚으러 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련해 되돌아가야 하므로 오히려 딸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병업관을 지나고 나서 온몸과 마음이 변했습니다. 정말 전과 후가 천지 차이입니다. 저는 기꺼이 딸의 집에서 소화상(작은스님)이 됐습니다. 지금 저는 매일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것도 힘들지만 집안일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번 돈은 모두 딸의 휴대폰으로 관리되고 있어서 딸이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때때로 딸이 저에게 말합니다: “엄마, 오늘 엄마 돈으로 채소를 샀어요.” 저는 즐겁게 웃으며 마음 편안하게 “사용해!”라고 말합니다.

저는 변했고 더 이상 딸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딸과 사위도 변했습니다. 매주 맥길 대학에서 법공부를 하고 돌아올 때 그들은 자발적으로 버스 정류장에 저를 마중 나옵니다. 이 모든 것은 대법의 힘이며 사부님의 자비입니다. 저는 그들이 언젠가는 대법에 들어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딸이 대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제가 아직 많은 사람마음을 버리지 못해 대법이 제 몸에서 나타나는 것을 그녀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딸이 대법에 들어오면 제 수련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것입니다.

2. 자심생마(自心生魔)의 화근 중 하나, 과시심

저는 제 과시심이 매우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항상 그것을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계속 없애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제게 물었습니다. “이 옷 정말 예쁘네요, 어디서 샀어요?” 저는 매우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이건 제 딸이 입다 준 옷이에요.” 그 말의 숨은 뜻은 여전히 제 몸매가 좋아서 딸의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말하고 나서 깨달았고 다음에는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음에 누군가 물어볼 때 또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 과시심이 왜 이렇게 없애기 어려운지 생각했습니다.

서명 운동을 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서명을 더 많이 받으면 환희심이 생겼습니다. 수련생이 제가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이 이것저것 잘못됐다고 지적하거나, 어떤 수련생이 제가 나눠준 전단지가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고 말할 때, 저는 “꼭 제가 나눠준 것만은 아닐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속으로는 그들이 제가 서명을 많이 받은 것을 질투하는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은 안으로 찾아야 합니다. 깊이 파고들어 보니 저에게는 과시심이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사부님이시고, 제자는 단지 발로 뛰고 입으로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하든 그것은 모두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이니 제가 어찌 하늘의 공을 탐할 수 있겠습니까?

작년 문손잡이 걸기 항목에 대한 몇 차례 교류에서도 모두 자신을 과시하고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교류에서 저는 개요만 작성하고 교류를 시작했는데 협조인이 저에게 작성된 교류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없다고 대답하고 오히려 “제가 이렇게 교류하면 안 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협조인은 “괜찮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럽습니다.

또한, 저는 대법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고 가정에서는 수련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션윈 광고를 나가기 위해 집안일을 밤에 하려고 했는데, 사위가 제가 밤에 집안일 하는 것을 반대하며 매우 화를 내고 불을 꺼버렸습니다. 딸은 제 코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엄마는 너무 이기적이에요.”

3. 정념정행(正念正行)으로 병업관을 뚫고 지나가다

이러한 사람마음들을 찾아낸 후 저는 정념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이며 사부님과 대법이 관리하시고 삼계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근본적으로 구세력이 안배한 이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으면 세상을 떠난 친척들과 동창들을 꿈에서 보곤 했습니다. 여러 번 꿈에서 깜짝 놀라 깼습니다. 한번은 꿈에서 길가에서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이때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음침하게 저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어린이용 시체 침대 있습니까?” 저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한 번 쳐다보고 떠났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생각했습니다. ‘이 꿈은 무엇을 깨우쳐 주는 걸까?’ 저는 절대로 구세력이 안배한 이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반드시 생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생사를 내려놓아야 하는데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안 되고 딸에게 말해서 날 병원에 데려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구세력이 좋아할 것이다.’ 저는 병업 중에 있는 몸으로 대법 활동에 똑같이 참가했고 집안일도 똑같이 했습니다.

어느 날 사위가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장모님, 마당을 왜 쓸지 않으셨어요?” 저는 그저께 쓸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오늘 밥을 먹었으니 내일은 안 먹어도 되겠네요?” 저는 “알겠어, 곧 쓸게”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은 있어도 힘이 부족했습니다! 힘이 없어 할 수 없었지만 억지로 했습니다. 딸도 “이것도 안 하고 저것도 안 했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딸이 하는 말이 아니라 구세력이 저를 침대에 눕히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구세력의 안배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심각한 병업 중에, 가정의 난 속에서, 저는 오히려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수련생이 저에게 식당에서 만두를 빚는 일자리를 찾아주었는데 이 일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식당은 차이나타운에 있었고 오전 11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했습니다. 저는 매우 멀리 살았기 때문에 매일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거의 자정이 다 됐습니다. 저는 전혀 저 자신을 환자로 여기지 않았고 구세력의 방해를 부정했습니다. 한번은 퀘벡에 가서 행사를 했는데 저는 서명 받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그날 저는 몸이 불편한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끝까지 서명을 받았습니다. 돌아와서 협조인이 저를 칭찬했는데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수련생 입을 빌려 저를 격려하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부님의 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가 발표됐는데 마치 큰 망치로 저를 깨우치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구하시는 어려움을 깊이 느꼈습니다. 사부님의 법은 제 마음을 진동시켰습니다. 정말 너무 위험했습니다. 제가 겪은 병업관은 모두 자신의 집착심과 업력이 만들어낸 것 아닙니까? 그래서 구세력이 저를 사정없이 공격한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의 경문을 거듭 읽고 또 읽었으며, 여러 번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위대하신 사부님께 깊이 참회했고 마음 깊은 곳에서 강한 정념을 발하여 생명의 근원에서 그러한 사람마음의 집착을 없앴습니다. 제 병업 가상은 하루하루 사라졌습니다.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좋지 않은 물질을 없애주셨고 제 신체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굳건히 사부님과 법을 믿는 가운데 저는 마침내 병업관을 뚫고 지나왔습니다. 제자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이상은 제가 최근 병업관을 뚫고 지나온 개인적인 인식이며,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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