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당당하게 연금을 되찾는 과정에서 수련 제고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어머니가 부당한 감옥 생활을 끝내고 직장에 앞으로 받을 연금에 대해 문의하자, 직장 측은 어머니의 1심 판결이 내려졌을 때의 연금을 절반을 삭감했고, 어머니가 1심 판결 후부터 출옥할 때까지의 연금은 한 푼도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당시 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약간의 상심과 함께 불공평함과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어머니는 사악한 감옥에서 바른 믿음을 지키며 사방에서 오는 사악한 압력에도 ‘전향(수련 포기)’하지 않고 간신히 돌아오셨는데, 왜 또 경제적 박해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만사가 처음이 어렵다

소위 연금 절반 삭감 주장에 직면해 저와 어머니는 연금 전액 지급을 요구하는 편지를 썼고, 불법 구금 기간에도 지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저와 이모, 어머니 세 사람이 함께 그 편지를 어머니 직장의 각 부서에 전달했고, 집에 온 주민센터, 파출소, 직장 관계자들에게도 어머니의 연금 삭감이 불법이라고 설명하고 자료도 함께 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어머니는 여전히 매월 2천 위안밖에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으셨고, 저는 어머니보다 먼저 출옥했지만 수련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까지 진행한 후에는 어떻게 더 진행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결국 연금 문제는 그대로 방치됐고 더 이상 추궁하거나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수련에서 따라가지 못한다고 느꼈고 조금만 일해도 매우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법공부에 전념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지금 보면 이 점이 나중에 우리가 연금 문제를 해결할 때 매우 중요한 기초를 닦았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법을 공부하고 암송하며, 사부님의 모든 저서를 통독하고 사부님의 경문과 설법을 보았습니다. 점점 더 박해의 그림자와 사악한 감옥에서 강제로 주입된 많은 사악한 영체와 부패한 물질들이 몸과 사상에서 제거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우리 곁으로 보내주시다

양로금 문제는 작년까지 계속 방치됐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모두 이 일을 다시 들추고 싶어 하지 않았고 인터넷에서 수련생들이 연금을 되찾는 것에 대해 교류하는 것을 보면 약간 거부감이 들어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때 한 수련생이 감옥에서 돌아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의 문제는 감옥에 있을 때 사회보험국이 그를 고소해 감옥에서 초과 지급된 연금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는데, 2심을 거쳐 수련생이 승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보험은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사적으로 수련생에게 연금 반환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수련생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사회보험국을 고소하겠다고 했고, 어머니의 상황도 그와 비슷하니 어머니도 함께 법적 절차를 밟기를 희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물론 수련생의 행동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저 거부감이 들어 움직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이 지원 변호사를 구하고 사건이 법원에 성공적으로 접수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우리는 줄곧 연금이 사회보험국에서 지급되는지 아니면 직장에서 지급되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는데, 수련생과의 교류와 연금 계좌 확인, 그리고 여러 방면의 문의와 확인을 통해 마침내 알게 됐습니다. 어머니가 퇴직한 후 연금은 사회보험국에서 지급됐고 직장과는 무관하며, 직장에서는 어머니의 연금을 삭감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이 점이 명확해지고 수련생의 소장을 참고한 후, 다시 명혜망에서 연금 관련 교류를 자세히 검색해보니 사실 수련생들이 어떻게 법적 절차를 통해 연금을 되찾는지에 대해 매우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고, 실행 가능성도 매우 높아 소장 형식을 직접 복사해 자신의 상황에 맞게 수정하면 바로 법원에 접수할 수 있었습니다.

첫걸음을 내딛다

이전에 우리가 지역사회에 어머니의 연금 자료를 제출했기 때문에 우리 세 가족 수련생(어머니, 저, 이모)은 교류 후 연금 회수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먼저 지역사회 지원 변호사에게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당시 우리의 생각은 이 일을 빌어 진상을 알리는 것이었고, 단순히 연금을 찾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곧 지역사회와 지원 변호사와의 만남이 성사됐고 상황을 설명한 후 변호사는 매우 열정적으로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사회보험국에 민원을 제기하고, 민원에 대한 답변이 없거나 만족스럽지 않으면 소송 절차를 밟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두 억울한 감옥 생활의 경험과 박해의 진상을 이야기했고,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듣고 있었습니다. 내려가보니 구(區) 국보(국내안전보위부) 경찰 두 명이 아래에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당시 ‘양로금을 찾으려는 것뿐인데 국보까지 놀라게 할 일인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대법제자가 오늘 무슨 일을 하든 다른 공간에서는 모두 천지를 뒤흔드는 일이며 또한 모두 정사(正邪)의 대결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평범해 보이지 않는 것은 미혹 속에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며, 그래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곧이어 우리 세 사람은 사회보험국에 가서 민원실에 상황을 설명하고 자료를 제출했으며, 등록도 했습니다. 또 상층의 여러 부서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고 교류 과정에서 당연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피드백을 보면, 복역 기간 연금 삭감에 대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어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제시된 것은 모두 문서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서는 법률로 사용될 수 없으며, 헌법 등 실체법과 상충되어 그 자체로 위법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명혜망과 공의포럼(公義論壇)의 연금 교류 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설명을 했더니 사회보험 직원들이 회피하기 시작하며 직장에 가서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파룬궁 진상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맹점이 있어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는 모두 중공 악당의 거짓 선전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는 사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적다고 느꼈고, 사람들은 여전히 진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정말 안 되면 법원에 소송하라고 말했습니다. 법원에 가는 것은 쌍방이 적대적 관계라는 뜻이 아니라, 그저 한 가지 일에 대해 우리가 이론을 따져보고 이 일을 명확히 해서 모두를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세인들이 모두 명백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고 이 관점이 꽤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법정에 가는 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돌아와서 상황을 지역사회 지원 변호사에게 알리려 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우리라는 것을 알아채고 놀라서 급히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우리는 기죽지 않았고 이모는 고밀도로 정념을 발하기 시작했으며, 저와 어머니는 소장을 준비해 직접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의 순조로운 소송 제기를 가호하시다

전에 지원 변호사를 구한 그 수련생은 변호사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여러 번 좌절을 겪었고, 한 달쯤 고생한 끝에 겨우 소송이 접수됐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일에 너무 큰 영향을 받지 않기도 하고 어머니의 호적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처음에 제가 자신감이 없어 이치상으로는 연금을 삭감해서는 안 되지만, 구체적으로 왜 그런지, 사회보험국이 어디서 위법을 했는지, 어머니가 연금을 받는 것이 왜 합법인지 등 문제에 대해 아직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명혜망의 관련 교류와 소장 형식을 자세히 살펴본 후, 저는 마음속으로 매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어머니의 상황을 추가하고 신중히 정리한 후, 저는 이 소장이 너무나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법률적으로 이치에 맞고 근거가 있으며 평화롭고 안정적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마음속으로 누가 보더라도 사회보험국이 연금을 삭감하는 것이 위법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 소장을 갖고 법원에 갔습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사람이 좀 많았고 저와 이모는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 대기실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혼자 들어가셨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한참 걸렸습니다. 나중에 창구 접수 직원이 어머니의 소장을 보더니 최근 6개월간의 연금 명세서를 보충하라고 하며 월요일에 다시 와서 접수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은행에 가서 명세서를 뽑았고 어머니는 은행 직원에게 왜 이 명세서가 필요한지 설명하셨습니다. 은행 직원들은 매우 친절하게 뽑아주었고, 우리는 또 어머니의 퇴직증 사본과 신분증 사본을 준비했습니다. 이게 전부였습니다. 월요일에 다시 법원에 갔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셋 모두 신분증을 가져갔고 대기실에 들어갔습니다. 창구 직원이 보더니 초심이 통과됐다고 하며 돌아가서 소식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7일 업무일 안에 접수과에서 검토할 것이며, 접수되면 우리에게 연락이 갈 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법원을 나왔을 때, 그날은 제가 기억하기로 가장 추운 날이었습니다. 기온이 거의 10도나 떨어져 바람이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공간의 사악한 세력이 압박해왔다고 느꼈습니다. 가장 뚜렷한 것은 우리 세 사람의 신체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연금을 찾기 시작한 이후로, 외출하는 날이면 세 사람 모두 설사를 했습니다. 다행히 사부님께서 항상 곁에 계셔서 가는 길에 공중화장실까지 다 준비해주셨습니다.

우리는 3~4일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다음 날 법원에서 전화가 와서 사건이 접수됐다고 하며 7일 업무일 내에 와서 서류를 작성하고 비용을 납부하라고 했습니다. 행정소송 사건이라 소송 비용은 50위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세 사람 모두 매우 기뻤습니다. 접수가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재판이 열리고 법원에서 심리할 것이니 누가 옳고 그른지 말할 수 있는 장이 생긴 것입니다.

수련하는 사람은 세간의 승패를 다투지 않지만, 법률은 인간세상 이 차원에서 공평과 정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인간세상의 법률도 바로잡아야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법률은 본래 정의로운 요소를 위해 책임져야 하고 권선징악해야 하는데 사악이 이를 이용해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박해도 마찬가지로 불법입니다. 대법제자가 나서서 인간 세상의 법률을 이용하는 것은 법률을 바로잡는 과정이며, 법률이 진정으로 그 역할을 발휘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제가 이것들을 이해하자 저는 더 이상 법원이라는 장소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고, 법률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사악의 박해가 신성한 법률을 더럽혀 사람들이 더 이상 법률을 믿지 않고 세상의 정의를 믿지 않게 되어 나쁜 풍조에 휩쓸리거나 심지어 조장하게 됐는지에 대해 더 이상 혼란스러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기회를 잡아 진상을 알리고 자신을 바로잡다

처음부터 우리의 입장은 연금을 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건이 접수되자 우리는 곧바로 지원 변호사를 찾고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를 찾아 이번 기회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지원 변호사를 찾는 것은 소송 제기만큼 순조롭지 않았고 장애가 컸습니다. 우리는 지원 변호사를 구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나중에 변호사를 찾는 데 매우 도움이 되는 많은 정보를 얻었고, 우리는 또한 기회를 이용해 알릴 수 있는 진상을 모두 알렸습니다.

인상 깊었던 일이 있습니다. 한번은 법원에서 어머니가 서류를 작성하실 때 제가 어머니 옆에 앉아 어떻게 작성하는지 설명해드리는데, 옆에 있던 부부가 제가 법원 직원이라고 오해했습니다. 그 남자가 제 옆에 서서 얼굴에 웃음을 띠며 약간 겁먹은 듯이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 서류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먼저 어머니 것부터 작성하고 있어서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더 난처해하며 “아, 제가 당신을 직원으로 착각했네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서류를 제출한 후 저는 돌아와 이 부부에게 도움이 더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앉히며 계속해서 “아이고, 좋은 분이네요! 좋은 분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서류를 작성하는 것을 도와주었고 어머니와 이모는 매우 호흡이 잘 맞아 각각 그들 두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공산당, 공청단, 소년선봉대 탈퇴)를 권유했습니다. 부부는 매우 기뻐했고, 그 아내는 의료기관의 진단 지연으로 인해 신체 일부에 암이 생겨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9자 진언(眞言)을 적어주며 돌아가서 외우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천만번 감사하다며 우리에게 택시를 불러주겠다고 하고 식사도 대접하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는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한번은 우리가 매우 호화로운 법률사무소에 갔는데, 그 빌딩은 매우 고급스러웠고 그 빌딩에 들어가려면 등록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올라갔을 때 안내데스크에서 막혀 들어가지 못했고, 변호사 상담은 600위안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왜 변호사를 찾으러 왔는지 설명하고 파룬궁 진상을 알렸더니, 몇몇 안내데스크 여직원들이 동정을 표했지만 그들의 규정상 그렇다고 했습니다. 이때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려 했는데 마침 한 변호사가 그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저는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안배해주신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변호사이신가요?” 그가 그렇다고 하자 우리는 대략 우리의 사건과 의향을 설명했습니다. 1층 다과실에 도착해서 그는 휴대폰으로 우리의 소장을 찍었고 검토 후 연락하겠다고 했습니다. 이틀 후 그가 연락해 와서 우리는 면담 약속을 잡았고 그 법률사무소로 갔습니다. 그의 안내로 우리는 상담료를 내지 않고 바로 법률사무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또 다른 변호사를 불러 이 사건을 맡을 수 있다고 했고, 동시에 우리도 우리의 생각과 대법 진상, 박해 경험을 그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마지막에 비용을 말하며 우리에게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또 다른 대형 법률사무소에도 갔는데 거기서도 매우 괜찮은 변호사를 만나 우리에게 매우 좋은 조언을 해주었고,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것도 들어주었습니다.

이 두 가지 일은 제가 그동안 가졌던 열등감을 바꿔놓았습니다. 아마도 박해받은 후 제게는 계속해서 박해의 그림자가 있었고, 게다가 연금을 찾으려는 것이 인간세상에서 보면 우리 같은 약자 집단이 이런 큰 유명 법률사무소에 가는 것에 대해 약간 비관적이었고, 작고 이름 없는 곳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길가의 그런 작은 법률사무소 변호사들은 이 사건을 맡기를 두려워하거나 이것저것 얘기하며 전문성이 떨어져 보였고, 우리가 말한 것만도 못했습니다. 반면에 큰 법률사무소들은 변호사들의 자질과 전문성이 모두 꽤 높았고, 우리의 일을 듣고 모두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왜 션윈(神韻)이 반드시 주류사회를 향해야 하고, 큰 극장에 가야 하며, 고위층 사람들이 와서 보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차이나타운에서 소리 지르며 홍보해서는 안 되는지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수련생이 자신을 약자 집단으로 정의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습니다. 일반인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대법제자로서, 사부님의 제자로서, 우주의 모든 생명이 주목하는 생명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움츠러들고, 말할 때도 허리를 펴고 가슴을 들지 못한다면, 제가 누구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강한 팀

법원에 가고 변호사를 찾는 과정에서 저는 이제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 더 이상 홀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법원에 가면 판사들도 자신들이 하나의 팀이라고 말합니다. 누구누구 판사 팀이라고 합니다. 법률사무소에 가면 더욱 그렇습니다. 모두 하나의 팀이고 혼자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하나의 팀입니다. 저와 어머니, 이모, 우리 세 사람. 사실 진정으로는 우리 세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명혜망의 수련생들, 공의포럼 수련생들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법률문제는 모두 수련생들에게 문의해서 해결했는데, 답변은 전문적이고 정확할 뿐만 아니라 수련인으로서 일반인과는 다른 정념의 가지(加持) 요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전례 없는 힘을 느꼈습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 세 사람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수련생이 묵묵히 우리를 협조하고 가지해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릅니다. 사방에서 오는 수련생들의 가지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대법제자들은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인간세상에서도 이렇게 많은 인재가 있고 인재가 넘칩니다. 그때 우리는 특별히 자신감이 생겼고 어떤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우리 뒤에는 가장 강한 팀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연공을 많이 하는 것의 오묘함을 체험하다

이 과정에서 뜻밖의 놀라운 점 하나는, 그 두 달간 우리가 사회보험국, 법원, 법률사무소 및 여러 곳을 다니면서 저는 항상 발에 ‘풍화륜(風火輪, 봉신연의에서 나타가 사용한 둥글고 불이 나는 바퀴 모양 무기)’을 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걸음이 바람을 가르는 듯했으며, 정말로 하루에 천 리를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저와 어머니가 매일 아침 3시 10분에 일어나 새벽 연공을 하는 것 외에도, 매일 밤 우리는 다시 한번 대원만법의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했기 때문입니다. 즉, 매일 동공과 정공을 두 번 연마하고, 포륜도 한 시간씩 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매일 우리의 시간이 매우 빡빡했고, 잠자는 시간도 매우 적었습니다. 하지만 정신은 매우 좋았고 온몸에 다 쓰지 못할 힘이 넘쳤습니다.

이 점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다른 공간에서 대법제자가 아무리 신통광대하다 해도, 인간 세상에서 무언가를 하려면 이 인체를 떠날 수 없습니다. 많은 경우, 신체의 피곤함, 피로, 병업 등이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방해합니다. 하지만 공법을 많이 연마함으로써 인체의 무한한 오묘함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체가 정말 작은 우주 같다고 느꼈고, 신체의 각 부위가 모두 신처럼 되어 전체 신체와 협조해 세간에서 매우 강력한 정체(整體)를 형성한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닥친 문제에 직면해서도 머리가 맑고 사고가 민첩해서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대응 방안을 낼 수 있었고, 그것도 대뇌로 생각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신의 도움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동시에 전체적인 행동력도 매우 빨라졌고, 손발도 매우 민첩해졌으며, 마음이 맑고 눈이 밝아졌고, 기억력도 좋아졌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머리에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바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온몸이 구름을 타고 안개를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두 다리로 걸을 때도 힘들이지 않고도 매우 빨리 걸을 수 있어서 더 이상 어떤 소위 현대화된 도구의 제약을 받지 않았습니다.

다른 수련생을 돕는 것은 실제로 자신을 위해 길을 닦는 것

앞서 언급한 출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원 변호사를 구해 소송을 제기한 수련생은 무슨 일이 있으면 와서 우리와 교류했고, 우리는 서로 토론했습니다. 수련생들이 함께 협력하면 무슨 일을 하든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특히 막 감옥에서 나왔을 때는 힘이 좀 약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 세 가족 수련생은 그와 함께 그의 지원 변호사를 만나러 갔고, 함께 변호사에게 법률 관련 자료와 의견을 제공했으며, 변호사에게 진상도 알렸습니다. 재판 전에도 그의 변호사와 함께 사회보험국이 제출한 자료를 보고 함께 대응했습니다. 재판 때도 우리는 법정에 가서 방청하며 그를 가지했습니다. 나중에 수련생의 1심 판결이 나왔을 때 결과가 좋지 않아서 우리는 또 그와 함께 변호사를 찾아 2심 상소를 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다른 수련생을 돕는 것 같지만 실제로 하는 모든 일, 모든 단계가 우리 자신의 연금 사건을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이 기회를 빌려 우리가 미리 한 번 연습하게 하신 거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일부 견해 차이로 의견 충돌도 있었습니다. 그 수련생은 걱정이 있어서 대법 진상을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고, 단순히 연금 소송만 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상을 알리지 않고 대법제자가 순수하게 연금을 찾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우 강하게 수련생을 지적했습니다. 결국 그 수련생은 연금을 찾는 기회를 빌려 대법 진상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제 자만과 수련생에 대한 관용 부족, 타인에 대한 가혹함을 드러냈습니다. 제가 막 감옥에서 나왔을 때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제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법공부와 수련을 거쳐 어머니의 연금 일을 시작할 수 있었는지, 그 수련생은 막 출옥했는데 바로 시작했으니 비교하면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사부님께서 수련생이 우리와 함께 이 일을 하도록 안배하셨다면, 부족한 점을 보면 보완하면 되는 것이고, 모두가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입니다.

숨겨진 변이된 관념을 바로잡고 자신을 수련하니 사악이 저절로 패배하다

처음 우리가 사회보험국을 고소했을 때부터 마음속에는 약간의 걱정이 있었습니다. ‘보복당하지 않을까?’ 그때 어머니는 매달 2천 위안을 받고 계셨는데, 이렇게 고소하면 이 2천 위안마저도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었습니다. 비록 약하긴 했지만 있었습니다. 과연 사회보험국 민원실 직원이 어머니의 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전에 지급된 것은 모두 직장을 대신 지급한 것이고,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연금이 없다며 앞으로는 직장에 가서 문의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달에 어머니의 계좌에는 여전히 연금이 입금됐습니다. 우리가 은행에 가서 조회해보니 지급자가 사회보험국에서 직장으로 바뀌었지만 항목명은 여전히 연금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민원실 직원이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소송을 제기한 바로 그달에 연금이 중단됐다는 것을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그 후 우리가 법원에 가서 소송 청구를 변경할 때 판사의 요구에 따라 우리의 사건에 제3자(어머니의 직장)가 추가됐습니다. 이렇게 추가되자 제 마음이 더 불안해졌습니다. ‘직장에서도 보복하지 않을까?’ “당신들은 사람 마음이 귀신을 불러온다는 것을 정말로 모른단 말인가?”(정진요지3-각성하라)라고 하셨듯이, 과연 직장에서도 지급을 중단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어머니는 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셨습니다.

마침 그때 중공 바이러스가 우한에서 폭발해 악당의 거짓 선전이 더 이상 가려지지 않아 전국 여러 지역이 봉쇄됐고 우리 지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시기가 우리가 연금을 찾는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전체적인 환경이 매우 폐쇄적이었고 사악이 직접 경제적으로 우리를 차단해 우리의 퇴로를 끊으려 했습니다. 전염병 때문에 우리의 연금 사건 재판도 언제 열릴지 모르는 상황이 됐습니다. 원래 계획은 설 지나고 나서였는데 이렇게 되니 아득히 멀어 보였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법을 베껴 쓰셨고 저는 《전법륜》을 두 번째로 암송했습니다.

양로금은 어머니의 사유 재산이고 사회보험국이 지급을 중단한 것은 불법입니다. 우리가 정당한 법적 절차를 통해 사회보험국을 고소해 이 불법 행위를 바로잡으려 했는데 오히려 보복과 타격을 받았습니다. 직장이 사회보험과 공모해 어머니의 합법적 권익을 침해했고, 이제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되자 보복을 시작한 것입니다. 현대의 변이된 사람들의 관점으로 보면 고소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매달 2천 위안이라도 받았는데 고소했다가 오히려 손해만 봤구나.’ 우리가 법공부를 통해 이해하게 된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도덕 기준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우리가 사회보험국을 고소한 것이 잘못된 일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를 공격하고 보복하는 것이 우리의 잘못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과 그런 행위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우주의 진선인 특성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불안해하고, 비록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보복이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악당(중국공산당)이 통제하는 사회에서 정의를 주장하고 도리를 지키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예상치 못한 화를 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팔은 다리를 이길 수 없다'(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뜻)거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와 같은 변질된 관념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이 손해 볼 것이 두려워 정의를 고수하는 것보다 그 변질된 마음이 훨씬 더 컸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게 되자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크게 말하자면, 이는 구(舊) 우주 가장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이기적인 관념입니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판단할 때, 자신에게 해가 있는지, 자신의 이익이 손해 볼지 보는 것이지, 우주의 진리를 고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이해한 후, 저와 어머니는 더 이상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우리는 연금을 지급하느냐 마느냐 하는 그 일 자체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됐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겁주려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대법을 굳게 믿고 사부님을 믿으며, 자신을 바로잡고 수련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일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어머니의 연금은 두 달간 중단됐다가, 나중에 소식이 퍼져나가자 국내외 수련생들의 공동 노력으로 직장에서 어머니에게 중단됐던 두 달 치 연금을 소급 지급했고, 그 이후로는 매달 2천 위안을 정시에 어머니에게 지급하고 있습니다.

끈기 있게 견지했기에 희망이 있었다

중국의 전염병 상황이 다소 호전된 후, 어머니의 연금 사건도 재판 일정이 잡혔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사회보험국에서 관할권 이의를 제기해 법원은 우리의 사건을 다른 법원으로 이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서야 판사는 “당신들의 사건이 어떻게 접수됐는지 모르겠네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접수될 수 없는 사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가호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른 법원으로 이송된 후에도 재판 개정 통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재판 직전에 사회보험국이 판사에게 압력을 가했고, 판사는 매우 강압적으로 우리에게 소송을 취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니면 소송 청구 범위를 축소하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소장은 안 된다며 만약 판사의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재판도 열어주지 않고 절차상 하자로 기각해버릴 것 같은 기세였습니다. 동시에 그녀는 또 다른 면모를 보이며 소장을 수정하면 오히려 우리에게 유리할 거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시간대별로 소장을 다음 세 부분으로 나누라고 했습니다. 복역 기간 중 연금 삭감, 형기 만료 후 적게 지급, 우리가 소송 제기 후 사회보험국의 지급 중단. 그녀는 또 우리가 그녀의 말대로 수정하면 첫 번째 소송은 이길 수 없지만 나머지 두 개는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행정 행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우리는 다시 포럼의 법률 전문가들에게 문의했고 권위 있는 해석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소송이며 사회보험국의 행위는 하나의 행정 행위라 분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이 중요한 시점에서 우리는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변호사도 이것은 하나의 소송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우리가 변호사와 함께 판사를 만났을 때 판사는 우리가 그녀의 요구대로 소장을 수정하지 않은 것을 보고 즉시 안색이 변했고 매우 화를 냈습니다. 이때 변호사도 갈등을 우리에게 떠넘기며 우리에게 원래대로 하나의 소송으로 고집할 것인지, 아니면 판사의 요구대로 분할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위험 분석을 해주었습니다. “판사의 요구대로 분할하지 않으면 기각될 가능성이 있고 재판도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즉 사회보험국의 연금 삭감 행위 자체에 대해 판단을 하지 않고 절차상 하자(판사의 뜻에 맞지 않는 소장)로 기각할 수 있습니다. 분할하면 적어도 하나의 소송에 대해서는 재판을 열어 심리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의 말을 빌리자면 패소하더라도 명명백백하게 패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적어도 재판을 통해 쌍방이 변론하고 최종적으로 법원이 판결을 내리게 한다는 뜻)

이렇게 각종 의견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순간 저는 어머니와 즉석에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나의 소송으로 가겠습니다. 분할하지 않겠습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양로금 소송을 하든 말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저는 내 이 사건으로 행정 행위가 몇 개인지 정의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이렇게 결정하자 양쪽이 다 잠잠해졌고 판사는 화가 나서 가버렸습니다.

법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변호사가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중요한 순간에는 당사자만이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동시에 만약 소송을 몇 개 더 제기하게 되면 변호사 비용도 추가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한 건당 변호사 비용이 책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제가 감옥에서 본 한 문장이 떠올랐고, 나중에 출옥한 수련생과 함께 법률사무소에 갔을 때 그 문장이 생각났습니다. “희망이 있어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견뎌냈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저는 당시 변호사에게 이 말을 했고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변호사로서 그는 사건이 법정에 들어가 법정에서 변론하고 최종적으로 승패를 가리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의뢰인이 이익을 얻거나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를 고려합니다. 가족으로서는 2만 위안의 변호사 비용을 헛되이 쓰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재판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재판도 열리지 않는다면 이 돈을 쓴 보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련인입니다. 우리가 확신하는 길이라면 그것을 견지해야 합니다. 비록 희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우리가 견지하는 과정에서 희망이 생깁니다.

저와 어머니의 결정에 대해 당시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의 고집 앞에서 그들이 할 말이 없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뜻밖의 전환을 맞이했습니다. 며칠 후 제가 판사에게 연락해 사회보험국의 답변서와 증거를 받으러 갔을 때, 우리가 판사를 만나자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전의 일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으며,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말을 통해 저는 원래 계획대로 재판이 열리리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사실 우리도 이익심 때문에 흔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시간대별로 새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지, 만약 후반부 두 건이라면 이길 가능성이 있고 돈도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왜 이 소송을 하기로 했지? 돈 때문이었니? 이 정도까지 와서 좀 희망이 보이니까, 돈을 좀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우리의 초심을 잊고 어떻게 하면 돈을 좀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인간적인 계산에 빠진 건 아닐까?” 맞습니다. 우리가 처음 이 소송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이를 계기로 진상을 알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바로잡고 제고하기 위함이었지, 결코 연금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어머니의 연금 소송 재판이 연기되어 현재까지 구체적인 개정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담담하며 형식 자체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여러 자극과 충격을 받았지만 끊임없는 법공부와 제고를 통해 저 자신이 실제로 제고되고 있음을 느꼈고, 생명이 승화된 후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지속적인 법공부와 안으로 찾기를 통해 저는 자신을 바로잡아야만 주변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모든 일의 발생이 사실은 자신이 아직 제거하지 못한 사람마음을 겨냥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좋은 일

처음에 어머니의 연금이 압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복잡한 심정으로 돌아가보면, 이번 박해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는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연금을 찾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 내면은 오히려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매우 감사했고, 어머니와 함께 연금을 찾는 과정에서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수련의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진정으로 좋은 일임을 느꼈습니다.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였지만, 제가 진정으로 대법제자답게 이 일을 통해 자신의 사람마음과 집착을 찾고, 이 일을 통해 진상을 알리고 사악을 폭로하며, 이 일 속에서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고 바로잡았습니다. 돌이켜보니 정말 시야가 넓어지고 새로운 경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수련자들이 연금 반환 요구와 연금 지급 중단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는 물론 사악한 박해의 광기 어린 표현이지만, 제 생각에는 대법제자로서 이 기회를 잘 활용해 더 큰 범위에서 진상을 알리고 자신을 제고할 좋은 기회로 만든다면, 그것은 정말 수련의 길에서 큰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직 많은 이야기와 소감이 있지만 지면 관계상 더 이상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사실 이 순간 저 자신을 돌아보면,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매 단계마다 사부님의 보호와 안배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빌어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저를 성취시키기 위해 안배하고 준비해주신 모든 것과 제 수련의 매 단계 제고를 위해 기울이신 모든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그리고 묵묵히 우리를 가지하고 지지해주신 모든 수련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6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6/25/43908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6/25/439089.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