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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배우면서 ‘자신을 위해 하는 것’과 사심을 깨닫다

글/ 대만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한 항목에 참여하면서 처음에는 간단한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점점 일이 많아지고 스트레스를 받자 어려움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사실 나도 안일함을 바랐던 것이 있는데, 다른 항목에서는 일이 익숙하고 규칙도 잘 알고 있어서 시간 활용도 비교적 자유롭고, 더 많은 일을 맡거나 찾아서 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짜증이 났고 이것이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 기분이 나쁘면 마음속으로 그 상태를 없애거나 발정념을 강화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교란이 심해지면서 며칠간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 찼다. 항목 일과 가정, 속인 일뿐만 아니라 많은 과거의 일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원래는 신경 쓰지 않았던 일인데 자꾸 마음에 걸렸고 ‘사람의 총명함’으로 ‘사람들 사이의 시비와 득실’ 같은 걸 따지게 됐다. 그리고 불평이 생겨나 지난 주말에 절정에 달했는데, 매우 강한 부정적인 물질에 강요된 것 같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잠잘 때조차 ‘이 원망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두 번째 공법을 연마하는 한 시간 내내 과거의 억울함이 계속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바보처럼 말 한마디 못 하고 그저 참기만 했다. 너무 괴로웠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런 느낌은 신경 쓰지 말고 그건 정(情)일 뿐이니 연공에만 전념하자고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그 업력과 나쁜 것들에게 교란하지 말라고 간청했다. 그때 어떤 목소리가 일러주었다. “사실 해답은 간단하다. 가장 큰 제고는 포기하는 것이다.” 연공을 마치고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 직감은 나에게 “과거의 모든 일과 그 누구에 대한 원망이라도 말끔히 털어버려라. 뒤돌아보지 말고, 지난 일이 떠올라도 개의치 말아라”라고 알려줬다.

사부님께서‘북미 제1기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 개개인이 진정하게 자신의 사상을 주의하기만 하면 순간에 곧 변화하며 일 초 동안에 가히 많은 염두가 변해 나옴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 자신도 이 염두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른다. 어떤 것은 상당히 괴이한데 바로 당신이 생생세세에서 갖고 온 부동한 관념이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것이 반영되어 나오는 것이다.”

내가 어머니 앞에서 끊임없이 남편의 잘못을 나무라고 직장에서 겪은 시비와 일부 소인배들을 나무랄 때 어떤 목소리가 “지금 뭐 하는 거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다”라며 깨우쳐주었다. 정말 부끄러웠다. 사실 진짜 내 마음은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도량을 늘려야만 정(情)이 자비로 변할 수 있음을 알았다. 반드시 심성을 높여야 했기에 더 이상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세속의 물질이나 돈에 연연해지고, 주변 사람들이 자꾸 내 돈을 쓴다고 여길 때면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이 자신을 수호하려 할 때 생각은 모두 ‘사(私)’에서 나오며 ‘사(私)’를 위한 그런 소원으로서 고통을 겪지 않으려 하고 행복하려고만 한다.”(북미 제1기 법회 설법)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저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예전엔 돈 걱정이 별로 없는 집안에서 자랐기에 수련을 시작한 후로도 돈을 조심스럽게 다루거나 아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을 겪으면서 없다고 여겼던 그 집착이 정말 없었던 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마치 내가 항목에서 늘 협조적일 거라 믿었지만 요즘 들어 계속 비협조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법을 얻은 첫 10년 동안은 각 항목마다 전력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우연히 밀라레파 존자가 집을 짓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다. 오늘 내가 어떤 일을 했는데 내일 협조인이 갑자기 뜻을 바꾸기도 하고, 오랫동안 기울인 노력이 총협조인의 한마디로 물거품이 되기도 했으며, 한도 끝도 없이 이런저런 일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하지만 협조인은 내가 힘에 부치고 수련할 시간도 없다는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는 듯했다. 한번은 너무 심각해져서 침대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겨우 기어서 온라인 회의에 참석했지만 협조인에게선 관심은커녕 어서 결과물을 내놓으라는 재촉만 들어 몹시 실망스러웠다. 그때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사부님께 “중생을 구해야 하니 제 육신은 아직 남아있어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 후 몸은 서서히 회복되었으나 지난날의 경험 때문에 새 항목에 참여할 때면 두려움이 생기고 협조 업무는 맡기가 무서웠다. 비록 내면의 또 다른 목소리가 “잘 감당하고 중생들 앞에 떳떳하도록 최선을 다하자”라고 말해도, 오랫동안 나 자신에겐 협조나 행정 업무는 절대 맡지 말아야 한다고 단언했다.

얽히고설킨 인연 관계 속에서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 쉽게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법 속에서 사부님의 격려와 자비는 내가 법공부를 통해 더 잘하려는 정념을 갖게 해주셨다.

최근 문득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하는 일체는 모두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나는 깨달았다. 사부님의 크나큰 자비로 말미암아, 우주 생명의 본성은 사심이 없고 진선인(真善忍)에 부합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사부님을 위해 일을 한다 해도 무방하다고 여겼는데, 사실 ‘남을 위해 한다’는 생각 자체에도 일종 사심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됐다. 지금이든 훗날이든 보답받기를 바라는 간사한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기에, 당장은 대가를 바라지 않을지 몰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원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사부님의 자비 덕분에 모든 생명이 자신을 위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는 인간 세상에서 수동적으로 법에 동화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을 수련해 나가야 한다. 스스로 수련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자신을 정화시켜야만 비로소 진정하게 본래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 고난을 달게 받아들이고 시련과 고통마저 좋은 일로 여기며, 천상의 이치에 부합할 만큼 사상이 순수해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명백히 알게 됐다. 예전에는 표면적인 글자로 법리(法理)를 인식했지만, 지금의 인식은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거는 큰 기대이자, 우리가 원만을 이루고 끊임없이 도량을 확대해 가기를 희망하시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 그리고 도량을 넓혀 가는 과정이야말로 중생을 향한 일종 자비임을 깨달았다.

이런 체득이 있은 후로는, 속세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것을 담아내기 위해 자신의 도량을 더 크게 확장해야겠다는 걸 절감했다. 사람마음이 우위를 점하거나, 뻔히 알면서도 어기고, 깊이 인식하지 못한 척 빠져나가려 하거나, 수련을 엄숙히 여기지 않고 응당 겪어야 할 고초를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난 며칠은 여러 생각과 감정이 격렬히 충돌하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어쩌면 내 수련 상태가 도량을 넓히는 중이든, 정(情)을 자비로 승화시키는 과정이든, 아니면 업력을 제거하는 것이든 간에 우연한 일은 없으며 모두 좋은 일임을 깨달았다.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고 싶고, 어떤 항목이나 수련생, 속인과 거리를 두고 싶어질 때면, 나는 내가 참고 있음을 안다. 수련인으로서 인내하는 것이든, 중사(中士)로서 불편해하며 참는 것이든 상관없다. 스스로를 다잡고 있으며, 진정 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정념을 자주 내보내고 법공부를 더욱 강화하면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더 높은 경지를 요구하고자 한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5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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