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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베이징TV를 평화롭게 방문해 진상을 알리다

글/ 베이징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3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한 베이징 대법제자로 올해 82세다. 사부님의 도움 아래 30여 년간 고난의 수련길을 걸어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이라는 경사로운 날이 지나가고 5월 31일이 다가오고 있다. 24년 전 이맘때, 수백 명의 대법제자들이 베이징 텔레비전 방송국에 모여 법을 수호한 장거를 몸소 경험한 나는 감회가 깊다. 진실하고 순수하며, 선량하고 평화로웠던 그 광경은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천국세계의 아름다움을 십악(十惡)이 구비된 더러운 인간 세상에 펼쳐 보이심으로써 선량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소중함을 보여주신 것으로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5월 30일, 베이징TV를 평화롭게 방문하다

먼저 베이징TV 평화방문 사건의 전말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1998년 5월 23일, 베이징TV의 ‘베이징 특급’ 프로그램에서 기자가 베이징 옥연담(玉淵潭) 파룬궁 연공 현장을 취재하며 수련자들이 파룬궁 수련의 효과를 소개하는 장면을 방송했다. 하지만 허줘슈(何祚庥) 같은 인간 말종이 파룬궁에 대해 비방하는 내용도 함께 방송해 파룬궁을 봉건 미신이라 칭하며 대중을 오도했다. 방송이 나간 뒤 베이징과 허베이 지역의 수백 명 파룬궁 수련자들은 편지를 쓰거나 베이징TV를 직접 찾아가 진상을 알리며 방송 내용이 사실과 크게 다르다고 지적했다. 1998년 6월 2일, 베이징TV는 상황을 파악한 뒤 지난번 파룬궁 관련 프로그램이 개국 이래 가장 심각한 실수였다고 인정하고 책임자 한 명을 해고했다. 그러나 1999년 7월 20일, 중공(중국공산당)은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중공은 베이징TV 방문 사건의 진상을 왜곡했다.

1998년, 자죽원(紫竹院) 연공장에는 8천여 명의 수련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란정(牡丹亭)과 서남문 두 곳의 연공장으로 나뉘어 연공했고, 수십 개의 법공부 팀이 있었다. 나는 당시 자죽원 연공장의 보도원이었고 내가 살고 있는 서남문 연공장만 해도 수련자가 2천여 명이 넘었다.

1998년 5월 30일 아침, 단체 연공이 끝난 후 8시부터 10시까지는 우리 보도원들이 함께 법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법공부가 끝난 후 우리는 베이징TV의 비방에 대해 토론했다. 모두들 대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튿날과 그다음 날 베이징TV에 가서 진상을 알리기로 했다.

베이징TV는 화원교(花園橋) 북쪽에 있었고 우리 연공장에서 두세 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었기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수련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를 탈 수 없는 사람들은 버스나 걸어서 갔다. 우리 법공부 팀에는 9명이 있었다. 한 수련자가 병중의 아내를 돌봐야 했기에 참가하지 못한 것 외에는 나머지 8명이 모두 갔다. 다른 팀에서는 아마 그렇게 많이 가지는 않은 것 같다. 이는 파룬궁은 조직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일을 수련자들에게 알려주었지만 가거나 말거나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며, 어떠한 강제적인 명령이나 조치도 없었다. 결국 베이징TV에 700~800명만이 방문했는데, 이는 베이징의 평소 수련자 수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당시 자죽원 연공장에만 평소 8천여 명의 수련자들이 연공을 했음)

5월 31일, 베이징TV 방문이 인산인해를 이루다

1998년 5월 31일, 아침 연공을 마친 후 나는 한 노(老)수련자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BTV에 갔다. 8시 전에 도착했는데 그때 도착한 사람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자죽원의 부소장은 우리 몇몇 보도원에게 “최대한 말을 아끼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하세요”라고 당부했다. 8시가 지나자 방송국 직원이 와서 17~18개 정도의 큰 원형 탁자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이 인원이 적어 바쁜 것을 보고 의자를 옮기는 걸 도왔다.

이후 전국 각지에서 속속 수련자들이 도착했고 북쪽으로 가득 앉았으며 기자들이 이따금 오가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일찍 왔기에 서쪽의 첫 번째 테이블에 앉아서 오전 내내 자리를 뜨지 않았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한 사람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젊은이였다. 우리는 그에게 다가가 “기자 선생님, 파룬궁이 어디가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이 수련을 통해 몸이 좋아졌으니 이는 국민들에게 이로운 것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동의를 표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서 있으면서 의자를 주어도 앉지 않았다. 우리 10여 명은 원형으로 둘러앉아 한마디씩 법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나누었고, 자신이 수련하게 된 과정과 수련 전후 몸과 마음이 어떻게 정화되었는지, 그리고 사회, 가정, 직장에서 어떻게 진선인(真·善·忍)의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젊은 기자는 줄곧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먼저 한 할머니가 발언했다. “파룬따파는 정말 좋습니다. 전에 저는 이가 모두 흔들리고 붓고 아파 음식을 먹지 못했습니다. 연공을 하니 이가 흔들리지 않고 다시는 아프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나와 함께 온 수련자가 발언했다. 그 수련자는 바로 내 옆에 앉아 있었는데, 정직하고 착하며 군부대 문예 공작단의 베테랑 예술병이었다. 그녀는 몇 년간 이명 증세를 앓아 무엇을 들어도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니 어느새 신기하게도 나았다고 했다. 가족들과 이웃들이 그녀에게 “어머, 어찌 된 일이에요? 우리가 소곤대는 소리도 다 들으시네요? 정말 신기해요!”라고 묻자 그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바로 파룬궁을 연마해서 나은 거예요. 당신도 저와 함께 연마해 보세요!” 같은 건물에 사는 한 할머니는 신장이 좋지 않아 소변이 잦았는데 그녀와 함께 연공한 후 모두 나았다고 했다.

또한 지(紀) 의사는 신장결석을 오랫동안 앓았는데 대법을 수련한 후 건강해지고 성격도 활달해져서 약병을 전부 버렸다고 했다. 그는 매일 싱글벙글 웃으며 ‘병 없는 가벼운 몸’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몸소 체험했다고 했다.

모두 한마디씩 하면서 파룬따파가 자신과 가족, 직장, 사회에 가져다준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목격한 이야기들을 했다. 이 기자는 아주 오랫동안 경청하다가 모두 말을 끝내자 젊은이들이 많이 있는 다른 테이블로 가서 또 들었다.

다음 날인 1998년 6월 1일, 아침 연공에 참가한 후 나는 녹음기를 집에 갖다 놓고 또 자전거를 타고 BTV로 달려갔다. 8시 좀 넘어 도착했는데 사방에서 온 사람들이 특히 많아서 비집고 들어갈 수조차 없었고, 건물 밖 남북으로 뻗은 두 도로의 양쪽에도 가득했다. 간단히 말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당시 방송국장이 연설을 하면서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 더는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현장 질서를 유지했다. 모두가 안의 상황과 사태 전개를 매우 궁금해했다. 나중에 밖에 있던 수련자들이 모두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위의 아는 수련자, 모르는 수련자와 함께 교류를 나누기 시작했다. 곁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요? 파룬궁은 정말 좋은데, 질병을 제거하고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니 얼마나 좋습니까! 사회에 좋은 사람이 많은 것이 두려운 겁니까?” 이런 특수한 장소에서 각지 대법제자들이 함께 모여 수련 심득을 교류한 것은 흔치 않은 신성한 법회와 같았다. 다만 주최자가 진상을 모르는 베이징TV 직원이었을 뿐이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토론했다. 베이징TV 사람들이 시비를 가리지 않고 흑백을 전도해 대법에 이렇게 큰 유언비어를 만들어낸 까닭이 무엇일까? 이 일은 반드시 명백히 해야 하고, 대법과 사부님께 해명해 드려야 하며, 반드시 그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철저히 시정하여 대법의 결백함을 증명하게 해야 한다!

당시 베이징TV 사건에 대해, 나는 여러 해 사부님의 전수반을 따라다니며 수련한 노(老)제자였기에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자신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파룬따파는 바른 법이고 사부님은 억울하시다. 내 생명은 모두 대법이 준 것이니, 제자로서 이 긴요한 때에 용감히 나서서 대법을 증명하고 수호하며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생명

한 달여 뒤 사부님께서는 ‘뿌리를 캐다’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두 편의 설법을 발표하셨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법공부와 연공, 개인수련과 대법 실증 및 수호의 관계를 더욱 명확히 이해하게 됐다.

우리 법공부 팀 수련자들은 사부님 설법을 공부한 후 함께 교류했다. 나는 당시 이 두 편의 설법이 베이징TV에서 대법을 실증한 일에 관해 쓰신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 진수제자는 모두 잘 생각해 보고 대법에 비추어 자신의 사상 중 대법에 부합하지 않는 뿌리를 캐내야 합니다. 사명을 지닌 대법제자로서 어떤 일에서도 앞장서지 못하고 두려워한다면, 어서 속히 사람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한 노수련자가 말했다. “맞는 말입니다. 우선 두려운 마음부터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두려움이 앞서면 대법을 실증하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수련자들도 말했다. “맞아요. 대법을 실증해야 합니다. 앞으로 또 이런 기회가 있다면 우리 모두 반드시 참여해야 해요!”

이듬해, 국내외를 진동시킨 ‘4.25’ 중난하이(中南海) 만 명 평화청원 사건이 발생했다. 교류에 참여했던 대법제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푸유가(府右街)에 갔다. 자전거가 없는 이는 걸어서 갔다. 모두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신의 길로 나아가며 굳건히 정법 노정을 바짝 따랐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모두 법을 널리 알리고 대법을 실증하고 수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여하는 것과 참여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르다. 가지 않은 사람은 개인의 어떤 이익 때문에 어려움을 돌파하지 못하고 참여하지 않았기에 이 일의 깊은 내포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참여한 수련자는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보호해주시고 가지(加持)해주셨기에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고 평온하게 오늘에 이르렀다. 저에게 다행히도 1998년 베이징TV 사건에 참여하게 해주시고, 대법의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실증하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1999년 7월,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나는 수련자들과 함께 천안문 성루에서 ‘파룬따파는 좋다(法輪大法好)’ 현수막을 펼쳐 대법을 실증한 적이 있다. 2015년 5월, 장쩌민 고소 물결 중에서 나와 주변 수련자들은 가장 먼저 고소장을 제출한 베이징 대법제자들이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박해는 나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 나는 확고하게 수련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자주 나에게 묻는 사람이 있다. “할머니, 어디든 다 가시는 겁니까? 아무것도 두렵지 않으세요?” 나는 대답한다. “두렵지 않습니다. 제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기에 나는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생명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전법륜)

 

원문발표: 2024년 5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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