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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안 돼! 안 돼! 이건 녹화하지 마!”

당시 CCTV 카메라 앞에서 진실을 말했던 기억

글/ 중국 대법제자(본인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제가 36세가 되기 전까지는 대다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실 사회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고,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저는 만족스러운 직장이 있었고, 남편과 활발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었으며, 삶은 평온하고 자연스러우며 순조롭게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뜻밖의 교통사고로 인해 제 인생에는 큰 위기가 나타났고, 생명의 절망 속에서 어둠이 걷히고 밝은 빛을 보게 되기까지 그 길을 걸어온 경험은 마치 신화 같았습니다.

뜻밖의 재앙

그해 여름날 아침, 저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고 직장으로 출근했습니다. 철로 건널목에 이르렀을 때 제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남자가 재빨리 건널목을 지나갔고, 저도 그 뒤를 바싹 따라 건너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마주 오는 한 대의 대형 버스가 제가 기차를 살피는 시야를 가렸습니다. 버스가 건널목에 이르렀을 때, 저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은 승객들이 모두 급히 차량 앞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고, 그 순간 기차가 이미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버스가 막 지나가자마자 그 기차가 저를 향해 곧장 달려오는 것이 보였는데, 이때 제 자전거 앞바퀴는 이미 철로를 지나갔고, 뒷바퀴는 겨우 조금만 더 가면 건널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는 자전거와 함께 쓰러졌습니다….

제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병원 병상에 누워있었습니다. 의사로부터 제 한쪽 다리의 무릎 아래가 산산조각 나는 골절상을 입어 목숨을 구하려면 절단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벼락을 맞은 것 같았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느낌이 들었으며, 이 잔혹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젊음, 아름다움, 건강, 행복, 한때 가졌던 이 모든 좋은 것들이 저를 영원히 떠났다고 생각했고 제 인생은 완전히 절망에 빠졌습니다.

당시는 여름이었는데 상처 감염으로 인해 두 번째 절단 수술을 받았고, 심신의 고통과 엄청난 정신적 충격이 매 순간 저를 따라다녔으며, 하루하루가 일 년 같았습니다. 저는 멍해지고 얼굴빛이 어두워졌으며,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고 더 이상 살아갈 용기도 없었습니다. 제 생명은 이미 끝에 이른 것 같아 몰래 유서를 썼습니다. 어머니는 제 마음을 알아채시고 간절히 타이르고 위로해주셨으며, 열 살 난 아들은 저에게 무릎을 꿇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절 버리지 마세요!” 그 말을 듣고 제 마음은 전부 산산조각 났습니다….

6개월 후, 저는 의족을 착용하고 직장으로 돌아가 계속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존감이 낮아졌고 쉽게 화를 냈으며, 기분이 쳐졌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조금만 있어도 화를 냈습니다. 이전에는 상스러운 말을 하지 않던 저도 사람을 욕하기 시작했고, 마음속 짜증과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방식이든 선택했습니다.

몇 년 후, 저는 직장에서 정리해고됐고 한 달에 300위안 남짓한 생활비만 받았습니다. 밖에 나가서 일하려니 몸이 버티지 못해 스스로 포기했고, 밤낮 마작만 하며 시간을 때우고 아무렇게나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대법을 만나 새로운 길이 열리다

1998년, 제 여동생이 파룬궁을 수련하게 됐고 저에게 와서 법을 전하며 신나게 말했습니다. “언니, 이 공법 정말 좋아. 언니도 연마해 봐.” 동생은 저에게 연공 동작을 시범 보였는데 저는 제5장 공법에서 가부좌를 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겁이 났습니다. 저는 “내가 어떻게 연마하겠어? 내 다리는 제대로 구부릴 수도 없는데, 못 한다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다시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언니, 연공은 안 하더라도 일단 책부터 봐.” 저는 동의했습니다.

제가 파룬궁의 주요 저서인 《전법륜》을 들고 읽기 시작했을 때 하품이 끊이지 않았고 너무 졸려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생이 이전에 특별히 “책을 볼 때는 멈추지 말고 한 번에 다 봐야 해”라고 당부한 것이 생각나서 세수를 하고는 다시 와서 계속 읽었습니다. 책에서 ‘수련(修煉)’이라는 두 글자를 보자 제 마음이 움직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격동이 일었으며, 그 순간 마음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수련할 거야!’

1999년 3월, 저는 연공장에 가서 단체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자존감이 낮아서 수련생들이 저를 싫어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제가 사부님의 《북미 제1기 법회 설법》을 배웠을 때, 그중에 사부님께서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신 내용을 보게 됐습니다.

“제자: 다리가 없고(외다리), 손마저도 없어서(손이 모자람) 가부좌를 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동작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수련해야 합니까?

사부: 내가 말했다.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엄숙한 것이다. 내가 여기서 법을 전함은 사람에게 수련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수련할 수 있지만, 또 사람 마음을 중요시하고 있다. 손이 없고 또 발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 한 마음이 있어 수련한다면 당신이 한쪽 발, 한쪽 손으로 해도 내가 생각하건대 기적이 나타날 수 있다. 관건은 사람의 마음을 본다.”

여기까지 보고 저는 감격에 겨워 울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바로 제 이 마음을 보고 계신 거였군요! 저는 반드시 잘 수련하겠습니다!’

고생과 소업(消業), 끈기와 견지를 거쳐 마침내 저는 양다리를 가부좌할 수 있게 됐으며 정말 기뻤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가부좌 연공을 할 때 한쪽 다리의 무릎 아래는 의족이었지만 종아리에서 발까지, 발가락, 특히 엄지발가락까지 모두 느낌이 통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진짜처럼 느껴졌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의 모든 신경과 맥을 통하게 해주셨고, 다른 공간의 몸이 연공하고 변화하는데 아무것도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흥분과 격동을 금할 수 없었고 대법은 정말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 자비롭고 위대하셨습니다! 사부님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제 인생이 막다른 골목에 빠졌을 때, 대법이 저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함으로써 저는 수련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실제로 느꼈고, 이는 제 수련의 신념을 더욱 확고히 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인생은 새로운 길로 나아갔습니다.

CCTV 카메라 앞에서 진실을 말하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 장쩌민 일당은 파룬궁에 대한 광란의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중국중앙TV(CCTV), 신화통신, 인민일보, 광명일보, 중국청년보 등 중국 언론매체들은 장쩌민 일당의 통제 하에 전 국민을 세뇌하는 선전 공세를 펼쳤고, 증오심을 부추기고 파룬궁을 비방하고 모함하기 위해 날조된 거짓말들을 내놓으면서 이 광란의 박해를 위한 여론을 조성하고 잔혹한 박해를 부채질했습니다.

순식간에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거짓말이 천지를 덮으며 중생들을 해치고 있었습니다. 파룬궁수련생들의 4.25 평화청원은 중난하이(中南海: 중공 고위층 집단 거주지)를 포위 공격한 것으로 모함당했습니다. 베이징에 올라가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강제노동과 실형을 받아야 했습니다. 전국의 모든 TV 방송국, 라디오 방송국, 신문은 오직 중공 악당의 탄압과 박해에 목소리를 냈을 뿐이었습니다. 파룬궁수련생들의 합법적 권리는 박탈당했고, 진실을 말할 곳조차 없었습니다.

1999년 7.20 이후, 지역 보도원들은 모두 납치돼 감금당했고, 각 파출소와 직장에서는 누가 파룬궁을 연마하는지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고 기분은 침울했으며, 마음속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부정적인 선전을 위해 사전에 기획된 갑작스러운 인터뷰가 제가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폭로하며 심경을 표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됐습니다.

그날 저는 동생과 함께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있었는데 파출소에서 사람이 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당시는 한여름이라 제가 착용한 의족이 밖으로 드러나 뚜렷이 보였습니다. 들어온 사람은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제가 아무개 아무개 맞느냐, 파룬궁을 연마한 후 다리에 변화가 있었느냐, 몸에 변화가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모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잠시 후 사람들이 와서 당신을 취재할 겁니다”라고 하자 저는 “오세요, 바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와 동생은 취재에 맞춰 예쁜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했는데, 아직 갈아입기도 전에 엄청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하고 밀려들어 왔습니다. 이 무리 속에는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파룬궁 탄압 담당기관), 시 공안국, 지역 파출소, 주민센터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략 16~17명 정도 됐고, 그 중 한 사람은 큰 카메라를 메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당신들은 파룬궁을 연마하나요?”라고 물었고,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기자는 또 “얼마나 오래 연마했나요?”라고 물었고, 저는 “오래 연마하지 않았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럼 파룬궁을 연마하니 어떻게 좋아졌는지 말씀해 보세요.”

저는 침대에 앉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장애를 입은 후로 가족들에게 적지 않은 번거로움을 끼쳤어요. 의족을 착용한 이쪽 몸 전체가 영향을 받아서 팔과 손에 힘이 없었고, 물 한 그릇도 들지 못해서 다른 손으로 받쳐야만 했죠. 늘 가족들의 도움과 보살핌이 필요했고 매우 괴로웠어요.”

그때 기자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국가에서 연마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연마하시겠어요?” 저는 되물었습니다. “우리 이런 늙고 병들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우리 몸을 책임질 수 있나요? 우리가 국가의 의료비를 얼마나 절약해 주었는데요?” 그러자 기자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는 또 말했습니다. “저는 장애를 입은 후 심리적 충격을 받아 성질이 급해졌고 기분이 초조해졌으며,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을 하곤 했는데 사람을 욕하지 않으면 말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어요. 파룬궁을 배운 후 성격이 좋아졌고 욕하지도 않게 됐으며, 인내심도 생겼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해졌어요. 혼자서 일상생활도 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좀 거들 수 있게 되어 가정도 화목해졌죠.”

이어서 말했습니다. “파룬궁 수련을 하고 나서 저는 정말 크게 달라졌어요. 이전에는 계단을 오를 때 이 다리를 들어올려야 했는데 너무 무거웠거든요. 지금은 아주 가볍게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됐고 온몸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정말 좋아졌어요…”

기자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그 다리로 가부좌를 할 수 있나요?” 동생이 “언니, 한번 해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아요, 제가 한번 해서 보여드릴게요”라며 가부좌를 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한 경찰이 바로 “어, 하지 마세요.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라고 하며 천천히 다리를 움직였는데 불과 몇 초 만에 양다리 가부좌를 했습니다. 경찰은 보고는 재빨리 “빨리 내리세요. 볼 필요 없어요, 볼 필요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가부좌를 하려면 먼저 다리를 비틀고 움직이는 등 준비 작업을 해야 했는데 그때는 단번에 가부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를 가지(加持)해주신 것이고, 제가 이를 통해 대법을 실증하도록 하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부좌를 한 후 저는 파룬궁 제5장 공법 신통가지법(神通加持法)의 수인 동작도 시범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공법은 누구든 연마하면 이로움을 얻어요. 제 몸이 지금 아주 가벼워졌고 몸과 마음 모두 좋아졌어요. 제게 연마하지 말라고 한다면 여러분 중 누가 제 몸을 책임질 건가요?”라고 말했습니다.

기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지금 국가에서 연마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연마하시겠어요?” 저는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마주하고 단호하게 “연마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법위원회 사람은 이 말을 듣고는 눈을 부릅뜨며 화를 냈습니다. “안 돼! 안 돼! 이건 녹화하지 마!” 그러더니 “파룬(法輪)이 그녀 뱃속에서 돌고 있는데 어떻게 연마 안 하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 무리 사람들은 급히 물러갔습니다.

그들이 가자마자 저는 동생과 함께 흥분하여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랫동안 억눌렸던 마음이 마침내 풀렸습니다. 동생은 신이 나서 “정말 너무 좋아! 우리가 대법을 실증했어!”라고 했고, 저도 감격스러워하며 “그래, 우리가 드디어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었어. 난 드디어 마음속 말을 했어!”라고 했습니다. 우리 자매는 너무 기뻐서 한편으로는 웃고 한편으로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은 행복이고, 기쁨이며, 감격이고, 더욱이 감사였습니다.

지역 정법위원회 등 부서에서 기획 준비한 이번 취재는 당시 온 나라를 뒤덮은 박해 형세로 저를 겁주어, 압박 앞에서 더는 연마하지 않겠다고 말하게 한 다음 녹화 내용을 부정적인 선전에 이용해 대법을 비방하고 중생을 해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번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말하고 사악의 거짓말을 폭로하며 자신의 심경을 표현함으로써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실증한 것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0여 년이 흘렀지만 제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 한 장면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고 기억이 또렷합니다. 그때의 감격과 기쁨은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집니다. 제25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맞아 제 수련 경험을 적어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려 하며,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초심으로 되돌아가 정진하라고 격려하는 바입니다!

파룬따파가 저에게 새 생명을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위대하신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명혜망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 특집 중에서)

 

원문발표: 2024년 5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5/21/4776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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