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캐나다 파룬궁수련자
[명혜망] 우연히 명혜망에 최근 게재된 한 편의 교류 글 ‘동북 지역 수련생들의 쟁투심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를 읽었는데, 최근 한 수련자 A와 중국 남북 사회문화의 차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던 일이 떠올랐다.
해외에서는 중국 남부와 북부 출신의 수련자들이 같은 도시에 거주하면서 오랫동안 접촉하다 보면 사고방식의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상하이 출신이고 A 수련자는 베이징 출신이다. 비록 우리는 성별과 나이가 비슷하지만 과거에는 종종 사고방식에서 서로 ‘접점이 없는’ 어려움을 느꼈다. 다행히 여성들은 소통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중에 우리는 여러 가지 ‘기이한 현상’과 ‘우연의 일치’라는 ‘깨우침’을 받았고, 사부님의 배치 하에 우리 둘은 무심코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
나는 우리 둘이 무심코 사고방식에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한편, 상대방에게 익숙한 사고방식도 이해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중에 서로의 대화에서 놀랍게도 세상에는 그렇게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러한 다른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오해를 줄이고 효과적인 소통을 촉진할 수 있었다.
우리 둘의 개인적인 인식으로는 남북 문화의 차이에는 많은 측면이 있는데, 아래에 간단한 예시만 들겠다.
나는 A로부터 북방인들의 사고방식은 보통 다음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화려함’, ‘두각을 나타내는 것’, ‘현란함’을 좋아하고, ‘현저한 명성’이 있는 것들에 쉽게 이끌리며 ‘열정이 넘친다.’ 반면에 ‘묵묵히 있는 것’이나 ‘어울리지 않는 것’을 ‘부정적인 성격’으로 보기 쉽고, ‘얼빠진 것’이나 ‘겁먹은 것’을 ‘거의 용납할 수 없는 치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갈등을 처리할 때 ‘기세로 상대를 누르는 것’을 비교적 우선시하는 ‘선택지’로 삼는다. 인간관계에서는 ‘의리’와 ‘열정’을 보여주는 것을 비교적 우선시하며 기준으로 삼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처음에 분명히 우호와 열정을 표현해야 상대방이 ‘경계심’을 풀고 교류하며, 일단 교류가 이뤄지면 ‘깊고 뜨거운 교류’를 한다. 그러나 ‘싸움’으로 인해 ‘흩어지기’도 쉽다. 비록 내면적으로는 ‘두각을 나타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좋아하지만, 주변에 모두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으스대는 것’으로 ‘비난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일부러 과시하지 않고’ ‘무심코 드러난 것’처럼 ‘기교’를 부리기도 한다. ‘집단의식’을 중시하며, ‘인기’에 의지해 힘을 얻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상하이 사람들이 보통 중시하는 특질은 ‘순발력’(대략 ‘순종’과 ‘민첩함’을 뜻함), ‘정면충돌을 최대한 피함’, ‘눈앞의 손해를 보지 않음’, ‘영리함’, ‘실속’, ‘분별력’(문제를 세심하게 분별함), ‘무리 짓지 않음’, ‘한마디도 하지 않음’ 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참지 못함’을 ‘교양이 없는 것’으로 여긴다. 갈등을 처리할 때는 ‘빨리 피하는 것’과 ‘그만두자’(에너지를 아끼자)를 비교적 우선시하는 ‘선택지’로 삼는다. 인간관계에서는 ‘경계심이 강함’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함’을 비교적 우선시하는 ‘도덕’으로 삼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쉽고 가벼우며 편하고 즉각적인 표면적인 ‘친밀한 상호작용’을 형성할 수 있지만, 큰 힘을 들여 깊이 교류하기는 어렵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싸우기’는 어렵지만 쉽게 ‘몰입하지 않고’ ‘흩어진다’. 내면적으로 비교적 ‘저자세’와 ‘번거로움을 피하고 힘을 아끼는’ 성향이 있으며, 주변에 모두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마음 놓고 대담하게’ 자신이 얻은 이익과 ‘장점’을 ‘칭찬’하며, 나중에 자신이나 타인 모두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데, 이는 서양인들처럼 ‘투명한’ 상태와 약간 비슷하다. ‘개인의 권리’를 중시한다. ‘물질적인 방법’에 의지해 힘을 얻는 경향이 있다.
위에 열거한 남북 문화의 특징들은 각 지역의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것 같은데, 남녀를 막론하고 그렇다. 정말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중국 남북 문화의 특징 중에는 모두 사부님의 법에서 요구하는 면이 있다. 정법시기에 중국 남북 문화의 요소들은 모두 좋은 작용을 발휘했다.
나는 비록 지금 속인사회의 인터넷에서도 남북 문화에 대해 많이 논의하고 있지만, 복잡한 상황은 이러한 ‘논의’에서 서로 칭찬도 하고 서로 조롱도 하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속인사회에서는 현재 중국 남북 문화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배운 후, 만약 인체·생명·우주의 관점에서 직접 사물을 본다면 비교적 쉽게 명확히 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내 개인적인 깨달음을 통해 남북 문화에 대해 말해보겠다.
나는 남북 문화가 마치 하나의 생명 전체 내의 음양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는 생명에게 있어 어느 하나도 빠질 수 없다.
속인사회에서 논쟁하는 북방 문화와 남방 문화 중 어느 것이 ‘우수’하고 어느 것이 ‘열등’한지에 대해, 나는 이것에 대해 논쟁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두 지역은 역사상 모두 찬란했던 시기가 있었고, 신(神)께서 시간축의 서로 다른 점에서 그들이 각각 찬란하게 출현하도록 배치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신께서는 그들 중 어느 쪽이 더 ‘찬란’하고 어느 쪽이 덜 찬란한지 결정하지 않으신 것 같다. 게다가 그들은 각기 다른 측면에서 찬란했는데, 이는 마치 생명 내부의 각 부분의 기능과 같다.
하나의 생명체 내의 서로 다른 ‘기능’들에 대해, 신에 의해 서로 다른 임무를 부여받고 그에 상응하는 서로 다른 능력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 같다. 어떤 임무를 수행할 때 상응하는 능력이 바로 장점이 된다. 서로 다른 임무에 대해서는 대응하지 않는 능력이 장점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문제를 보면 아주 간단하고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남북 문화 자체도 하나의 생명 전체 내의 두 개의 독립된 생명과 같다. 이 두 개의 독립된 생명에는 또한 좋은 시기와 쇠퇴한 시기가 있다. 말법(末法) 시기에 이르러, 생명이 쇠퇴의 단계에 있을 때는 다양한 정도의 쇠퇴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때 이 생명을 ‘조롱하고 폄하’하려 한다면 항상 ‘약점’을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이 생명은 여전히 좋은 본질을 간직하고 있기에, 이 생명을 칭찬하려 한다면 칭찬할 만한 점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끊임없이 이 생명의 좋은 점을 발견하여 자신의 정신에 도움이 되게 한다면, 마치 이 생명의 정수를 ‘추출’하여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과 같아서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만약 쇠퇴기의 약점만 찾는다면, 자신은 마치 쓰레기통과 같아서 오로지 잡동사니만 주워 모아 집으로 가져가는 꼴이 되어 실제로는 이득이 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어떤 일을 대하든지 모두 마땅히 긍정적으로 대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일면을 보지 말고 늘 다른 사람의 좋은 일면을 보아야 한다.”
사부님의 법을 배운 후 나는, 삼계 전체가 창세주가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창조한 것임을 이해했다. 나는 오천 년 신전문화(神傳文化)를 연출해 온 중국에 존재하는 남북 문화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생각났다. 우리는 속인 층차의 사유방식으로 이 ‘남북 문화’ 현상을 간단히 대해서는 안 되며, 수련자의 지혜로 자신과 타인을 인식하고, 이러한 문화적 자원을 선용(善用)해야 한다. 그래야 문화적 차이로 인해 불필요한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협력하는 데 더욱 완벽하고 강력해질 수 있다.
A 수련생은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 이런 남방 문화를 이해한 후 그녀의 쟁투심을 바로잡는 데 매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나는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때 북방 수련자들의 ‘열정’이 나에게 추진력을 준다고 느낀다.
이 글을 쓴 것은 진정으로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하는 객관적인 태도로 남북 문화를 전면적으로 바르게 바라보려는 시도에서다. 나는 우리 대법제자들이 각 방면에서 모두 자신만의 바른길을 걸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원문발표: 2024년 5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5/18/477051.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5/18/4770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