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예전에 불교 거사였고 16년 동안 불교를 믿었으며, 13년 동안 채식을 했고 경전을 인쇄하고 방생을 했습니다. 2019년에 저는 해외 소셜 플랫폼에서 한 대법제자를 만났는데 그의 도움으로 파룬궁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읽기 시작했고 2022년 초, 아내와 저는 수련의 길에서 서로 도우며 함께 정진하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正法)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제25회 세계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날을 맞아, 제가 불교에서 파룬따파 수련으로 전환한 개인적인 경험을 써서 사람들이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의 생명이 대법의 구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금융사기를 당한 후 영혼이 각성되다
2018년부터 수백 개의 P2P 온라인 대출(역주: 전통적인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개인 투자자와 대출자를 직접 연결하는 금융 서비스) 기관들이 잇달아 폐업했습니다. 친척과 친구들은 제 추천을 믿고 투자했다가 수천만 위안을 잃었는데, 이는 제가 모든 것을 잃는 것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지난 3년간 전국의 수천만 금융사기 피해자들은 호소할 곳이 없었고 권익 보호도 번번이 탄압받았습니다. 그들은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인터넷 금융’이 하루아침에 불법 자금모금으로 변한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점점 더 많은 금융사기 피해자들이 치료받지 못하고, 자녀를 돌보지 못하며, 생활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보면서 저는 국민을 위해 진심을 담아 당시 총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때 저는 금융사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지방정부가 ‘정부의 성의를 속였기’ 때문이며, ‘당 중앙은 좋은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어이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그 편지가 전달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제 금융사기 피해자 친구 중 한 분은 남부 모 대학의 박사 지도교수인데,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신화통신에서 일해서 국무원에 내부 제안서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제자는 이 편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신화통신 관련 간부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자리에서 그 간부는 “P2P에 대해 상급에서 누구도 언급하지 말라는 명확한 지시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상급’이 바로 ‘당 중앙’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입니다.
그때 모든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이는 금전적 손실과 정부에 대한 절망일 뿐 아니라, 부처님과 보살님께 기도해도 수많은 중생의 이토록 큰 재난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 것입니다. 수천만 명이 매일 고통받는데 이는 얼마나 큰 업보이며 얼마나 큰 재난을 초래할까요! 저는 전례 없는 무력감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중공(중국공산당)이 통제하는 정부로 인해 이런 인도적 재난이 일어났는데 권익을 지킬 길이 없고 하늘도 무심했습니다. …… 10여 년 만에 저는 처음으로 제 불교 신앙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원 제기가 소용없고 제 인생관이 완전히 무너지려 할 때,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습니다. 중공의 대변인인 국내 언론은 아무도 감히 이 문제를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저는 에포크타임스 기자를 만나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 뜻밖에도 금융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낸 첫 언론은 파룬궁수련자들이 설립한 매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터넷 검열을 우회하는 법을 배우고 파룬궁의 진실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중공 언론이 선전한 ‘1만 명이 중난하이(中南海, 중공 고위층 집단 거주지)를 포위했다’는 것이 실제로는 파룬궁수련자들이 신앙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평화로운 ‘4.25’ 청원이었으며, 소위 ‘천안문 분신자살’은 중공이 조작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제 인생관이 완전히 뒤바뀌었고 저는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중공은 수천만 명의 금융사기 피해를 냈을 뿐 아니라 정권을 빼앗은 이후 8천만 중국인을 비정상적으로 사망케 했습니다. 인터넷 검열을 우회하여 저는 구이저우성의 ‘장자석(藏字石, 중국공산당이 망한다는 글자가 적혀 있는 고대의 돌)’ 기적을 보았습니다. ‘추배도’와 ‘마전과’ 등 중국 고대 예언서에서도 이미 중공의 해체와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불경에 기록된 우담바라 꽃이 이때 세상에 피어난 것은 부처님이 세상에 법을 전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집의 불상 앞에 무릎 꿇고 부처님과 보살님께 제가 신성한 인연을 만날 수 있도록 거듭 빌었습니다.
2019년 저는 해외 소셜 플랫폼에서 대법제자를 만났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저는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6년간 믿어온 불교를 쉽게 내려놓을 수 없어서 파룬따파 수련을 결심하지 못했습니다.
이 인연으로 저는 더 많은 대법제자를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파룬궁수련자들이 매우 선량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법공부를 더 잘할 수 있도록 수련생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저에게 우편으로 책을 보내주었습니다. 제 생활이 매우 어려워 인터넷이 끊길 뻔한 것을 보고 그들은 저에게 통신요금을 충전해주었습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수련생이 제가 노모를 봉양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을 알고 자발적으로 저에게 5천 위안을 송금해 주어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준 것입니다. 저는 불교 신도들 사이에서 16년을 지냈지만, 저를 그렇게 열정적으로 도와준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불교에서도 선을 말하지만 대법제자들은 선을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그들이 이 사악한 세상의 진정한 수행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법제자들의 거듭된 이타적인 도움에 완고했던 제가 마침내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번 경제난 이후 평생 혼자 살아야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사회에서 어느 여성이 집도, 차도, 저축도 없는 사람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런데 우연히 수련생 중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그녀는 키가 크고 예쁘며, 회사를 차리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속인 중에는 구혼자가 많았지만 아내는 인품을 더 중요하게 보고 저를 선택했습니다.
대법은 저에게 아름답고 선량하며 뜻이 맞는 배우자를 주셨습니다. 2022년 초 아내가 저와 결혼했고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수련의 길에서 서로 돕고 함께 정진하면서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2. 구치소에서의 이야기 – 어려움 속에서도 중생 제도를 잊지 않다
1)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다
결혼한 지 3개월 남짓, 진상 전단을 배포하고 돌아오던 중 아내와 저는 현지 파출소 경찰에게 불법 감금되었습니다. 경찰의 불법 심문에 직면했을 때 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수천만 금융사기 피해자들과 저는 정부의 선전을 믿고 P2P에 투자했다가 결국 돈을 모두 잃었을 때 오직 파룬궁 매체만이 우리에게 사실을 보도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단호하게 “파룬궁 외에는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 저를 감시하던 경찰은 몽골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공이 ‘이중언어교육’을 강요하며 몽골어와 문화를 말살하려 한다고 하자 그는 민감한 내용임을 알고 화제를 피했습니다. 저는 그가 거리낌이 있음을 알고 “부샤오린(布小林)은 기개 있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자치구 주석을 포기할지언정 자기 동포를 탄압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그의 아픈 곳을 찔렀습니다. 전임 내몽골 자치구 주석 부샤오린은 중공이 계속 ‘이중언어교육’을 강제 추진하여 큰 압박을 받자 자치구 인민대표대회에서 보고하다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이후에 스스로 사임했습니다.
이후 그 몽골족 경찰은 “사람은 역사를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중공의 폭정이 곧 무너질 것임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당신이 이해했다면 저도 이곳에 헛되이 온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규정대로 저를 스펀지 감옥에 수갑을 채웠습니다. 수갑을 채우면서 그는 목소리를 낮춰 “업무상 압박 때문에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진상을 받아들인 것을 알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구치소로 가는 길에 차에 타고 있던 6~7명의 경찰에게 구동독 정치경찰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일자리를 잃고 중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말하면서, 그들에게 진상 전단지에 적힌 대로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해서 빠져나갈 길을 남겨두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큰 전염병이 닥치면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워야 큰 재난을 모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차에 있던 모든 경찰은 조용히 듣고 있었고, 저는 그들이 귀담아듣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진선인(真·善·忍)’을 믿는 선한 사람을 박해할 때 마음속으로 자신감이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구치소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자정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1년 넘는 수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 어디서든 정정당당하게
구치소에 들어간 지 사흘 만에 옆 감방에 노숙자가 수감되었습니다. 누군가 전동스쿠터 배터리를 훔쳐 그를 통해 팔아 돈을 나눠 가졌는데, 결국 그만 잡혔습니다. 그는 들어와서 계속 자신은 무죄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온 사람은 누구나 당번을 서야 하는데 그는 당번을 거부하고 매일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어느 날 대장이 무전기로 누군가를 꾸짖고 있었는데 그는 자신을 꾸짖는 줄 알고 큰 소리로 대장에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상식적으로 경찰이 그를 때려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잠시 후 4~5명의 경찰이 다가왔고, 옆 감방 문이 열리더니 곧이어 벨트로 때리는 소리, 주먹과 발로 구타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노숙자의 몸은 계속 철문에 세게 내동댕이쳐졌고 ‘쿵쿵’ 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맞으면서도 노숙자는 계속 욕설로 중공을 저주했습니다.
저는 문득 마음이 밝아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사부님께서 날 깨우쳐 주시는 거구나! 노숙자도 사악한 세력 앞에서 굴복하지 않는데, 나는 대법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거야. 나는 죄가 없고 수련하는 사람이야. 생사를 내려놓아야 하는데 어찌 아직도 매를 맞고 족쇄에 묶일까 봐 두려워하는가.’
제가 있던 감방에는 G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50대로 30년 가까이 감옥에 있었습니다. 이번엔 자동차 촉매변환기를 불법 구매한 혐의로 네 번째 수감된 것이었습니다. 매일 가부좌하는 시간에 그는 예전에 사회에서 제멋대로 행동한 일을 이야기하면서 감옥에서 마치 우두머리인 양 행세했습니다.
그날 오후 또 가부좌 시간이 되었는데 G는 무슨 이유에선지 저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또 파룬궁 연마하면 신고할 거야.” 저는 “신고하세요!”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같은 감방에 있던 9명이 똑똑히 들었습니다. 저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습니다. ‘내가 그의 통제를 두려워한다면 그 노숙자만도 못한 게 아닌가? 대법제자는 어디서든 당당해야 한다.’ G는 의외로 대답하지 않고 제 말을 듣지 못한 척 웃으며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러 갔습니다.
자유시간이 되자 저는 평소처럼 연공하러 갔고 5가지 공법을 다 마쳤지만 G는 ‘신고’하지 않고 포커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형기를 마치고 풀려날 때까지 어떤 수감자도 제가 연공하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3) 글자 없는 장기알
구치소에 들어간 지 보름 넘어 저는 처음으로 바깥 신선한 공기를 마실 기회를 얻었습니다. 구치소 경찰은 저를 사무실 구역에 있는 심문실로 데려갔습니다.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유행 기간 모든 심문은 화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검사가 저에게 “당신의 개인 투자가 실패했는데 왜 공산당을 탓합니까?”라고 묻자, 저는 “2020년에 이르러 모든 P2P 플랫폼이 강제로 청산되었습니다. 연못에서 수십 마리, 심지어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죽었다면 물고기 탓일 수 있겠지만, 모든 물고기가 죽었다면 그건 물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검사는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은 파룬궁 사부를 만난 적도 없는데 어째서 그렇게 믿습니까?” 저는 “검사님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저는 믿습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이 맺혔습니다.
제가 처음 수련을 시작했을 때 아는 수련생들은 지금 수련에 들어선 사람은 제2기 정예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도 스스로를 제2기로 여겼습니다. ‘만약 내가 대법 진상을 알리고 중공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수련생들이 제1기 제자라면,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얼마나 걱정하실까’라고 생각해 저는 줄곧 나서지 못했습니다.
대법 수련 전 저의 유일한 취미는 장기였습니다. 때로는 이틀을 밤새 자지 않고 두기도 했습니다. 수련 후 어느 날 꿈을 꿨습니다. 누군가 저를 사부님 앞으로 데려가 사부님과 장기를 두게 했습니다. 사부님이 장기판을 펼치시는데, 장기알들이 불규칙한 모양이었고 글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글자 없는 장기알로 어떻게 장기를 둘 수 있을까?’ 그때 꿈에서 깼습니다.
1년 넘게 지난 지금, 저는 자유를 잃고 수갑에 묶인 채 검찰관 앞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문득 그 꿈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와 글자 없는 장기를 두신 것은 저를 수련으로 이끄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제1기 대법제자가 될 수 없다고 여긴 이유는 소위 ‘어머니가 걱정할까 봐’인데, 이는 후천적 관념으로 스스로 수련에 장애물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마음속으로 ‘사부님 알겠습니다! 제 어머니의 생사는 운명에 달린 것이니 저는 더는 어머니가 걱정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제자는 반드시 끝까지 수련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저는 검사에게 “저는 죄를 인정하지 않고, 처벌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어떤 ‘삼서(三書: 수련 포기 각서)’에도 서명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4) 감시반장의 변화
2022년 9월 말, 전염병이 재발하여 우리 도시는 봉쇄되었습니다. 구치소 급식 상태도 점점 나빠졌습니다. 예전에는 부식을 한 달에 두 번은 살 수 있었지만, 전염병 봉쇄로 몇 달 동안 부식 공급이 중단되어 매일 야채국과 찐빵뿐이었습니다. 야채국에는 양배추 외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12월이 되자 감방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도 부식을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F는 전기 스쿠터 절도죄로 수감되었는데 키가 크고 뼈만 앙상할 정도로 말랐습니다. 그는 세 번째 수감이었고 가족 중 아무도 그에게 돈을 넣어주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편도선에 염증이 생겨 매일 고열이 내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전염병 봉쇄로 약품도 매우 부족했습니다. F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제가 솔선해 F 대신 당번을 섰습니다. 그러면 하루에 제가 두 번 당번을 서는 셈이었습니다.(총 3시간 40분)
S 반장은 1중대 모든 감시반장 중 가장 엄격한 사람입니다. 그날 그는 모든 수감자를 모아놓고 특히 엄중하게 말했습니다. “지금 구치소에 약이 부족한데 몸에 별 이상이 없으면서도 소동을 피워 여러분의 소중한 의료자원을 낭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양심을 개가 먹었습니까?” 그는 말하다 격분하기까지 했습니다. S 반장이 당번일 때는 수감자들이 보통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도 꾹 참고 ‘보고’를 외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가장 조용합니다.
이날 F는 거기 앉아 계속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머리를 만져보니 뜨거웠습니다. 저는 곧바로 ‘다푸(大鋪, 감시반장이 정한 감방의 실제 관리자)’에게 가서 의논했습니다. 원칙상 그가 ‘보고’에 동의해야 반장을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푸는 제가 보고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은 S 반장 당번이야. S 반장이 너한테 족쇄 채우는 게 두렵지 않으면 보고해. 족쇄 차면 어떻게 연공하겠어?”라고 했습니다.
F가 점점 더 심하게 떨면서 안색도 나빠지자 저는 속으로 결심했습니다. ‘사람 목숨이 위험한데도 구하지 않고 자기 일만 생각한다면 어떻게 진정한 대법제자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저는 과감히 “보고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잠시 후 S 반장이 와서 F의 체온을 재니 39.5도였습니다. S 반장은 즉시 F에게 잠자리를 펴주고(밤 9시 취침 전 잠자리를 펴려면 반장의 특별 허가 필요) F에게 이부프로펜(구치소에선 매우 귀한 약)도 먹으라 주면서 당부했습니다. “내일 작은 병원에 가서 진찰받읍시다.”
이 기회에 저는 또 다른 대담한 부탁을 했습니다. “S 반장님, 저는 F에게 라면 한 박스를 사주고 싶은데 될까요?” S 반장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안 됩니다. 지금 전 중대에 라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S 반장의 온화한 태도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S 반장이 떠난 후 F가 저에게 속삭였습니다. “이봐요. 돈도 없고 인맥도 없는 사람이 그러면 되겠어요. 당신은 자기를 보호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저는 “내가 당신을 돕는 건 돈이나 인맥 때문이 아니라 저의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어디에서나 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캐나다법회 설법)’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믿는 것은 바로 ‘진선인(真·善·忍)’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말을 마치자 감방 안 여러 사람이 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음 날 S 반장은 F를 데리고 작은 병원에 갔습니다. F는 방호복을 입고 나가 세팔로스포린을 맞았습니다. 돌아온 후 F의 정신은 확실히 훨씬 나아 보였습니다. 그는 흥미롭게 저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S 반장님이 저에게 ‘어제 라면 사주겠다던 그 사람은 무슨 일로 들어왔어요?’라고 물어서 제가 ‘파룬궁’이라고 하니 S 반장님이 웃더라고요. 파룬궁 연마하는 것이 무슨 범죄냐는 의미였어요.” 수감자들에게 늘 엄격하기로 유명한 S 반장이 갑자기 보기 드문 미소를 지어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저는 그의 미소가 대법제자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 것이라 믿었습니다.
5)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겁니다”
70세 D씨는 뇌경색 환자라 걸을 때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그의 두 딸은 아버지가 창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D가 구치소에 간 지 거의 1년이 되어가는데, 타지에 있는 조카가 300위안의 생활비를 넣어준 것 외엔 아무도 돌봐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D의 잠자리는 전체 감방에서 악취가 가장 심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씻지도 못하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샤워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들어온 후로 그를 목욕시키고, 옷을 빨아주고, 손톱을 깎아주었으며, 매일 아침 잠자리를 펼 때 일으켜 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밤 그가 자다가 설사를 해서 온 감방에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저 말고는 모두 그를 질책하며 어서 씻으라고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몸이 불편해 한쪽 팔을 쓰지 못해 다른 팔로 계속 물을 끼얹어도 깨끗이 씻지 못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저는 앞장서서 그를 씻겨주었습니다.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파룬궁 빼곤 누가 D 같은 사람을 돌봐주겠어?”
그때부터 감방 사람들은 농담 삼아 ‘파룬궁 친목회’를 만들고, 저를 ‘사형(師兄, 도반의 존칭)’이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D는 여섯 번째 회원이 되었습니다. 친목회에 가입한 사람들은 모두 삼퇴(중국공산당 탈퇴)를 했습니다. 저는 중생들이 이런 방식으로 파룬따파를 인정하고 지지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잇따라 62명의 수감자가 삼퇴하고 대법 진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중생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다시 물품을 주문할 때가 되었습니다. D는 감방에 들어온 지 1년이 넘도록 아무것도 산 적이 없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황설탕 두 봉지를 샀습니다. 그는 한 봉지를 저에게 주려 했지만 저는 한사코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법제자가 보답을 바라고 남을 돕는 게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D는 저에게 억지로 쥐여주면서 결국 울컥하며 말했습니다. “어서 받으세요. 계속 안 받으시면 전 울 것 같아요…” 그의 정성을 거절하기 어려워 저는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샤워하는데 D 씨가 자진해서 한쪽 팔다리가 불편한 채로 제 등을 문질러 주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에게 그러라고 할 수 없어 제가 그를 도와준 게 그의 보답을 바란 게 아니며, 그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기억하면 된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이때 D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는 “걱정 마세요. 죽어서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치소의 열악한 환경에서 모두가 자기 자신을 돌보기도 힘든데 남을 돕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진선인’을 수련하는 대법제자만이 어려운 시기에 대가와 사심 없이 타인을 도울 수 있습니다. 저에게 좋은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신 사부님께 마음속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순간 저는 속으로 사부님께 “사부님, 제자는 사부님께 부끄럽지 않게 행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맺음말
위의 내용은 제가 직접 겪은 경험들입니다. 지면 제약으로 몇 가지 작은 사례만 나열했을 뿐입니다. 뒤늦게 대법을 얻은 제자로서 저는 오랜 대법제자들과 아직 큰 차이가 있음을 잘 압니다. 제 체험은 수천만 대법제자 중 작은 한 부분일 뿐 보잘것없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올바른 믿음을 박해한 일체는 지금까지 성공해 본 적이 없다.”(정진요지2-강제로는 사람의 마음을 개변할 수 없다)
제가 진정한 대법제자가 된 후에야 중공이 온 힘을 다해 무기 없는 사람들을 탄압해도 20년이 넘도록 쓰러뜨리지 못한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수많은 대법제자가 개인의 안전을 돌보지 않고 납치와 투옥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오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파룬따파의 제도를 받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직도 중공의 거짓말에 속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진심으로 깨어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길 바랍니다. 하늘이 중공을 멸하기 전에 공산당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하고 스스로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명혜망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4년 5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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