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우리 지역 수련생들은 매우 애석하고 비통한 마음으로 이곳의 54세밖에 안 된 한 남성 수련생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일에 대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여러 수련생들의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그의 죽음은 현지에서 비교적 큰 파문을 일으켰고, 생긴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이 지역 수련생들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수련생들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련적인 관점에서 문제점을 잘 찾아 교훈을 얻음으로써, 정법의 최후의 단계에서 우리 모두 더 크게 제고되고 새롭게 돌파하여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표준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다음 두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첫째, 먼저 그 자신의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한 수련생이 문병을 갔을 때 그는 기쁜 듯 꿈에서 깬 것처럼 수련생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사부님께서 제게 두 가지 장면을 보여주셨는데, 하나는 제가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제가 너무 거만하고 높은 곳에 있다고 여기면서 다른 이들을 얕잡아 보고, 선의의 조언이나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신을 평범한 수련생의 위치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는 현지 협조인이었는데 이 이야기를 하면서 매우 부끄러워했고 기력도 다한 것 같았습니다. 문병 온 수련생은 잠시 대화를 나누고 돌아갔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순간 하늘은 적막했고 모두들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사부님께서 그를 일깨워주셨는데 왜 그렇게 빨리 떠났을까요? 그가 요점을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모든 수련생이 깊이 생각해 볼 만한 핵심 문제입니다. 당시 그가 말할 때의 표정을 보면, 그는 정말 갑자기 크게 깨달은 듯했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서 몹시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단지 개인적 견해일 뿐 반드시 법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자신의 문제가 크고 많아서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여겨서 노력해서 고치고 계속 제고할 자신감은 없고, 다만 몸이 좀 나아지기만을 바랐던 것은 아닐까요?
이때 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하신 몇 단락 법을 떠올렸습니다. “대법제자는 수련한 그날부터 시작하여 당신의 일생은 이미 새롭게 배치됐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이 일생은 이미 수련인의 일생이고 어떠한 일도 우연한 것이 아니며, 또 우연한 일이 나타나지 않는데, 인생길의 일체는 모두 당신의 제고와 수련에 직접적 관계가 있다.”(로스앤젤레스시법회 설법)
“매 한 생명의 길은 모두 아주 복잡하고, 부딪히는 상황 역시 복잡하다. 가장 관건적인 시각에 걸어 지나올 수 있을지 걸어 지나올 수 없을지, 양단간에 섰을 때 잘하지 못하면 곧 생명을 잃을 것이고 잘하면 곧 뚫고 지나오게 된다.”(각지 설법13-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우리는 이 점을 강조한다. ‘당신이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당신이 그 병을 내려놓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당신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전법륜)
이 수련생은 작년 3~4월부터 병업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때부터 1년 넘게 그는 기본적으로 단체 법공부나 토론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수련 상태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고, 허영심과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병업관을 어떻게 넘어야 할지 다른 이들과 탐구할 수 없었기에 착실한 수련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일찍 떠난 원인 중 하나입니다.
둘째, 이 수련생의 사례에 비추어 우리 수련의 전반적인 상태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 일은 우리 수련의 전반적 상태와 큰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전체가 그의 거만함과 다른 이들을 얕잡아 보는 태도, 어떤 면에서는 수련생을 배척하는 행동 등을 조장해왔고, 이로 인해 일부 수련생들은 심성 제고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심지어 망가지기도 했습니다. 우리 일부 수련생들은 그를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본보기로 삼아 배웠습니다. 더 심각한 경우는 1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병업관을 넘기고 있는 수련생을 들것에 실어 차로 그의 법공부 장소로 데려갔는데, 그의 도움과 지도를 받고 싶어서였습니다. 그곳의 에너지장이 강해서 빨리 업을 없앨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업을 없애고 관을 넘기는 일을 마치 그가 해준 것으로 여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놀랍고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의 이런 장기적인 행위가 사람을 망치고 수련 성취하지 못하게 하려는 구세력의 함정에 말려든 것이 아닙니까? 법을 스승으로 모시지 않고 수련생을 숭배하며, 법을 따르지 않고 사람을 따르는 것은 그를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 것입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오직 법만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전 세계 대법제자들에겐 오직 한 분의 사부님만 계십니다. 절대로 수련생 중 특정인을 숭배하거나 모범으로 삼아선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과 남을 해치게 되는데, 본질적으로는 그 수련생을 구세력이 배치한 죽음의 길로 내모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피의 교훈입니다.
이상의 두 가지 면에서 볼 때 사부님께서 그에게 일깨워주신 두 장면은 그뿐만 아니라 이곳 수련생들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것입니다. 첫째는 실질적인 수련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법공부가 자신을 과시하거나 다른 이들로 하여금 자신을 숭배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법공부의 목적은 착실한 수련을 위한 것이며, 진선인(真·善·忍)의 법리에 따라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고, 집착을 하나도 남김없이 없애며, 무사무아(無私無我)하고 선타후아(先他後我)한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수련은 극히 엄숙한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5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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