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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베이성 스옌시 파룬궁수련자 천쉬전, 박해로 사망

[명혜망](후베이 통신원) 후베이성 스옌시 단장커우 파룬궁수련자 천쉬전(陳緒珍)이 지난 3월 14일 박해로 사망했다.

그녀가 납치돼 불법 감금된 지 거의 1년 만에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스옌시 구치소는 책임을 회피하려 천쉬전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한 달 후 천쉬전은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시작한 이후, 천쉬전은 중공 무법자들에게 여러 차례 납치돼 구치소와 세뇌반 등에서 박해를 받았다.

1997년 천쉬전은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면서 인생의 목적이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임을 알게 됐다. 수련 전 천쉬전은 욕하길 좋아했고, 남편과 말다툼을 하며 이기려 했으며 일이 지나간 후에도 화를 내며 갈등을 일으켰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생활하면서 이전에 앓았던 늑막염, 우측 신장통, 잦은 감기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 기분도 좋아졌고 모두에게 화목하게 대했으며, 자신에게 상처준 사람들에게도 너그럽고 진실하며 선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됐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과 장쩌민 일당이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연공장 보도원이 갑자기 공안에 납치되자 천쉬전은 우한으로 가서 성 정부에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 돌아온 후 사진이 찍혀 등록되면서 불법 감시를 받기 시작했다.

2000년 봄 어느 날 아침, 천쉬전은 다른 파룬궁수련자들과 함께 기차역 승강장에서 연공을 했다. 그들은 연공을 통해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리려 했지만 경찰에 의해 쥔저우루 파출소로 끌려간 후 단장커우시 구치소에 한 달간 불법 감금됐다. 그 기간 장사를 할 수 없었고(남편은 실직했고, 천쉬전은 일이 없었기에 가족 4명이 석탄을 캐서 생계를 유지했음),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었다.(아들은 고3으로 공부에 바빴고 딸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음) 사무처와 주민위원회는 천쉬전의 남편에게 “천쉬전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당신 집 문을 봉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후 천쉬전은 불법적인 거주지 감시를 당했으며 종종 가택수색, 괴롭힘, 위협, ‘전향'(수련 포기) 강요, 서명 등 정신적 고문을 받았다. 또한 천쉬전의 집엔 매일 감시자가 배치되어 아이들은 오랫동안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고 학습에 영향을 받았다. 아들의 대학입시 전후로 천쉬전은 세뇌반에 불법 감금됐는데 ‘전향’하지 않으면 나가지 못했다. 아이들은 연로한 할머니의 돌봄에 의지해야 했고 매일 라면과 절인 채소, 삶은 달걀을 먹었다.

2000년 6월 4일 천쉬전은 몇몇 파룬궁수련자와 함께 베이징행 버스를 탔다. 난양에 도착했을 때 단장 관리국 공안처 경찰에 의해 납치돼 단장 구치소에 감금됐다. 어느 날 밤, 천쉬전이 다른 수련생들과 연공하자 경찰은 죄수들을 시켜 그들을 구타하게 했고 수갑을 채워 복도에 묶어두다가 한밤중이 되어서야 풀어줬다. 천쉬전은 한 달 넘게 불법 감금된 후 605호텔 세뇌반으로 다시 끌려갔다.

세뇌반에서 천쉬전은 자유를 박탈당하고 체벌을 받았으며, 세 명이 감시하면서 수면을 허용하지 않았다. 매일 대법과 사부님을 모욕하는 영상을 강제로 시청하고 대법을 비방하는 과제를 쓰도록 강요받았다. 그곳은 인간 지옥이었고 하루가 1년 같았으며 목적은 강제 전향이었다. 수련을 포기하지 않고 전향하지 않으면 각종 고문과 박해를 받았다. 천쉬전은 8월 초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세뇌반은 또 천쉬전에게 매일 50위안을 갈취했다.

2000년 음력 12월 1일 늦은 밤, 경찰들이 천쉬전의 남편을 속여 석탄 작업장에서 집으로 돌아오게 한 뒤, 그에게 천쉬전을 불러 문을 열라고 했다. 경찰들은 상황 확인을 위해 그녀에게 사무실로 같이 가자고 거짓말을 했다. 천쉬전은 가지 말고 집에서 이야기하자 했으나 그들은 반드시 가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내일 일해야 하니 가서 설명하고 돌아와 자라고 권했다. 이에 속은 천쉬전은 차에 탄 후 단자오루 구치소로 직행했는데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천쉬전은 음력 12월 24일까지 불법 감금됐다.

2001년 중공은 ‘톈안먼 분신 조작사건’으로 파룬궁을 모함했다. 2001년 3월 천쉬전이 어머니를 찾아가자 그들은 또 천쉬전의 친정으로 쫓아가 길가에서 태도 표명을 강요했다. 당시 천쉬전은 톈안먼 분신사건은 거짓이라며 “우리 여기 이렇게 많은 파룬궁수련자들은 왜 분신하지 않는 걸까요? 저는 왜 분신하지 않는 걸까요?”라고 반문했다.

2001년 3월 7일, 다바루 파출소의 장 씨, 량 씨 등 경찰들이 석탄 작업장의 천쉬전을 다시 세뇌반으로 끌고 가 그녀의 자유를 박탈했다. 박해 기간 천쉬전과 그녀의 언니, 형부는 여러 번 납치돼 감금과 강제 세뇌를 당했다. 천쉬전의 어머니는 두 딸과 사위가 장기간 박해받는 것에 마음 아파하며 온종일 눈물 흘리다 충격으로 병을 얻어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2001년 7월 세상을 떠났다.

2004년 10월 어느 날, 스옌시 610사무실(파룬궁 탄압기구)과 단장커우시 610사무실은 또 천쉬전 등 파룬궁수련자 몇 명을 다바 사무처 4층 회의실로 끌고 가 태도 표명을 강요했다. 2008년 8월 올림픽 개최 며칠 전, 주민위원회 주임과 610 직원이 천쉬전에게 서명과 보증서 작성을 강요했다.

2023년 3월 2일 오후, 천쉬전과 언니 천쉬윈(陳緒雲)은 파룬궁수련자 우쉬융(吳緒勇) 집으로 법공부하러 갔다가 건물 아래를 지키던 스옌시 공안국 장완분국 경찰에게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다. 이후 장완구 세뇌반(현 스옌시 뉴터우산 삼림공원 내)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당시 많은 수련자가 그곳에 끌려가 강제 세뇌를 당했다. 악인들은 목적을 조금도 달성하지 못하자 3월 20일경 이 수련생들을 스옌시 구치소로 옮겨 불법 감금하고 그들을 모함할 ‘증거’를 수집해 박해를 지속하려 했다. 천쉬전과 천쉬윈 등 수련자 7명은 장완구 법원에서 부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중 천쉬윈은 3년 형에 벌금 5천 위안, 천쉬전은 1년 형에 벌금 2천 위안을 선고받았다.

 

원문발표: 2024년 5월 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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