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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의 병원 근무 중에서도 전염되지 않은 간호사

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의료인이자 간호사입니다. 지난 3년간의 코로나19(중공 바이러스) 전염병 봉쇄 통제를 돌아보면, 모든 중국인들은 마음에 두려움을 품고 있었습니다. 중공(중국공산당)의 이런 방역 정책은 많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무너뜨리고 정신 질환까지 앓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부님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지나왔습니다.

저는 1999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20여 년이 됐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늘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왔기에 환자와 가족,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가와 인정을 받았습니다. 3년간의 전염병 기간, 제 동료들은 저를 새롭게 알게 됐고 파룬따파에 대해서도 완전히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존경했습니다. 지난 일을 돌이켜 보면 눈물이 가득 차오르고 사부님께 감사함을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대법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아래에서 몇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초과 근무 중 마음 수련하기

병원에서는 전염병 예방을 위해 과 사이에 왕래할 수 없었고, 외부인은 각종 정보를 등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업무량이 늘어났고, 외지 지원 인력까지 가세하면서 과 인원이 턱없이 부족해졌습니다. 저는 주말에도 쉴 수 없었고 계속 초과 근무를 해서 때로는 무슨 요일인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수간호사가 저에게 “수고했어요”라고 말하자 저는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답했습니다.

한동안 견디다 보니, 전염병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일부 외부 지원을 갔던 동료들이 돌아왔음에도 저는 여전히 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업무를 할 수 있는 동료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번은 한 후배 간호사와 저는 거의 3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는데, 그 후배가 “수간호사에게 말해서 다른 사람이 하루라도 대신해주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그냥 버티자고 했습니다.

너무 지쳐서 저는 마음속으로 불평하고 원망하다 증오심까지 생겼습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다음 주 근무표를 보면 제 이름에 휴일이 없어서 근무표를 내팽개치고 싶었습니다. 수간호사도 저를 배려해서 다른 동료를 불러 제 일을 가르쳐 줘서 하루라도 대신해 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엔 원망이 가득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일이 생기면서 모든 잘못된 마음가짐이 바뀌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또 속으로 수간호사의 근무 배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일부로 그러는 거야.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 초과 근무를 시키다니, 날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어. 과장 다음으로 내가 과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데….’ 이렇게 저는 마음이 뒤숭숭해졌고 바닥을 닦으면서 계속 생각에 잠겼습니다.

걸레를 빨 때 갑자기 목욕통 아래에서 물이 줄줄 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통을 치우자 아래에 많은 수도 파이프가 있었는데, 어디서 새는지 알 수 없었고, 수도꼭지만 열면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마치 제 머리 위로 물을 부어진 것 같았고, 마침내 저는 깨우쳤습니다. 바닥에 흘려진 물을 닦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이건 내 마음에 구멍이 난 거야. 병원 수도 기술자에게 전화하면 5분 만에 고칠 수 있어. 하지만 난 전화하지 않을 거야. 내 마음의 구멍을 찾지 못한다면 소용없어. 난 근무 배치에 불만인 거잖아.’

그때 갑자기 물이 더는 새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믿기지 않아 다시 수도꼭지를 열어 물을 받았는데, 아래 파이프에서는 물이 한 방울 새지 않았습니다. 두 통의 물을 더 받은 후 수건과 화장지로 아래 파이프를 닦았는데, 화장지에도 물이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쁨에 너무 흥분했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파이프는 아주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 집착심이 너무 강해 마에 이용당할 뻔한 것을 보시고 저를 깨우쳐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안으로 찾겠다는 제 결심을 보셨고, 제대로 찾자 수도관도 고쳐주셨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자비를 저버릴 수 없었기에 더는 근무 배치에 신경 쓰지 않고 수간호사에 대해서도 어떤 생각을 하지 않으며, 진심으로 일을 잘하려 했습니다. 전염병이 시작된 후 봉쇄가 해제된 3년간, 약 156주 중에 하루 종일 쉰 날은 60일이 채 안 됐습니다. 동료들은 모두 “선생님은 마음가짐이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고, 저는 그들에게 제가 수련인이라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럼 저도 선생님처럼 해야겠어요”라고 했습니다.

2022년 10월, 우리 시에서 여러 명의 확진자가 발견되어 한 달 가까이 봉쇄됐고, 우리 병원의 일부 동료들은 집에 갇혀 있어서 저 혼자 세 사람 몫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직원 숙소 소독도 제가 자진해서 했습니다. 이 기간에 한 동료는 식당 카드에 돈이 없어서 충전도 할 수 없었는데, 제가 “괜찮아요, 제 카드에 돈 있으니까 제 걸 쓰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동료가 잘 먹을 수 있도록 먹고 싶은 걸 물어보고 미리 주문해 줬습니다. 그 동료는 너무 감동했고,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더 굳게 믿게 됐습니다. 설날 전에 그 동료는 교통사고를 당해 얼굴이 다쳤지만 생명은 무사했습니다.

끝이 없는 것 같았던 3년, 그 속에서 겪은 고난은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제 심성을 불평, 분노, 원한, 좌절에서 벗어나 어떤 일에도 마음 쓰지 않게 단련시켜 주었습니다. 병원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 외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갈등에 부딪혔을 때는 스스로에게 일깨웠습니다. ‘수련에는 우연한 일이 없다. 어떤 기회라도 잡아서 자신을 수련하자.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자신을 해친 사람을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 모두 우리의 제고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양성’ 판정 속에서 감염되지 않다

2022년 12월 11일 아침 조회에서 수간호사가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방역이 중단되고 전면 개방되어 이제는 코로나는 일반 감기와 같아졌습니다.” 모두 즉시 기뻐했지만 점심때 수간호사가 발열 증상으로 일을 계속할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다음부터 다른 동료들도 발열 증상으로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 아기에게 처치를 하는데, 너무 예뻐 보여서 안고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잠시 후 아기 아빠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우리 아이가 코로나 양성이래요. 당장 퇴원하래요.” 그가 병실로 걸어가자 복도까지 쫓아가서 그의 귀에 대고 말했습니다.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면 좋아질 거예요.” 그가 잘 듣지 못하고 “뭐라고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라고 외치세요”라고 말하자 그가 “알겠어요, 말씀대로 할게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병실에서 아기 엄마가 저를 불러 아기 옷을 입히는 걸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청소 직원이 제 뒤에서 크게 소리치며 쫓아왔는데, 아이가 양성이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옆에 있던 동료가 “뭘 그래요, 같이 자기 직전인데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방금 전까지 그 아기를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병실에 들어가서 주머니에 있던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꺼내 아기 엄마 손에 쥐어 주며, 긴장하지 말고 집에 가서 “파룬따파하오”를 진심으로 외치면 좋아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 아기는 그날 첫 번째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였습니다.

환자가 퇴원한 후에는 병실을 소독해야 하는데, 침구류를 모두 한데 모아 소독 덮개로 덮은 다음 오존 기계를 연결해 1시간 동안 소독하고, 다시 1시간 동안 환기해야 합니다. 청소 직원이 들어가 청소하는데, 이 일을 맡은 간호사가 자기는 면역력이 약해서 들어가기 무섭다며 일을 끝내지 않고 퇴근 시간도 안 돼서 그냥 퇴근했습니다. 병실을 사용해야 할 때가 되어도 아직 소독이 안 된 걸 알게 되어 제가 들어가 소독을 했습니다. 소독을 끝낸 후 담당 청소 직원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간호사님, 저 면역력이 약해서 그러니 들어가서 창문 좀 열어서 환기시켜 주시겠어요?” 저는 웃으며 “그럴게요”라고 하고 들어가서 창문을 열었습니다. 청소 직원의 말을 그의 조장이 듣고는 그를 꾸짖었습니다. “어떻게 간호사님에게 부탁을 해?” 저는 그의 조장에게 말했습니다. “그분을 나무라지 마세요.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셔야 해요.” 나중에는 제가 병실 소독을 전담했습니다. 이때 제 머릿속에는 전염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고, 수련인에게 지금이 바로 사람을 구하는 때라는 걸 알았기에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전파 속도가 정말 너무 빨라서, 며칠 만에 우리 팀 30여 명 중 낮에는 5명밖에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아침 만나면 제일 먼저 듣는 말이 “괜찮아?”였는데, 저는 호신부를 꺼내 들고 “이게 비결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앞에서 모두가 믿게 됐습니다.

한번은 작은 아기를 안고 있는데, 그 아기가 갑자기 대변을 제 몸에 묻혔습니다. 아기의 할머니가 매우 미안해하자 저는 웃으면서 “괜찮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할머니가 “어떻게 이렇게 착하세요. 더러운 걸 꺼리시지도 않고”라고 하자 저는 “애기 똥이 뭐가 더러워요”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아니에요,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게 못 해요”라고 하자 저는 진상 호신부를 꺼내 들고 “이게 제 신념이에요”라고 하며 바로 진상을 알렸습니다. 할머니는 “요즘은 정말 신을 믿어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대략 2주 후에야 수간호사가 출근했습니다. 출근 후 그녀는 매일 저에게 “괜찮아?”라고 물었고, 저는 늘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답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저에게 “언니, 정말 괜찮아요?”라고 묻자 저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턱을 괴고는 제자리에서 세 바퀴를 돌며 연신 “신기해! 너무 신기해! 너무 신기해!”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우리 과에서 유일하게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 병원 직원은 모두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했는데, 저는 “몇 년 전 전염병 지원 때 호흡기를 단 환자와 직접 대면했을 때도 백신을 맞지 않았어요. 저는 백신에 민감해서 주사를 맞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병원 감염과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고, 병원에서는 저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염병 때 저는 한 가지 마음을 굳게 품었습니다. ‘나는 전염되지 않는다.’ 저는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와 직원들 속을 분주히 오가며 과의 모든 일을 즐겁게 했고, 다리는 가볍게 움직였습니다.

봉쇄가 해제된 날부터 저는 퇴근 후 휴대폰을 지하실에 놓아두고 밖에 나가 자료를 배포하며 사람들을 구했는데, 한 번에 3~4개 아파트 동을 다녔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밥을 좀 먹은 후 다음 날 배포할 자료를 만들고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그 며칠 동안 700여 부의 자료를 배포했고, 때로는 새벽 1시까지 바쁘게 일하다 잠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생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료를 배포할 때 복도에서는 기침 소리만 들렸습니다. 어느 날 2층에 막 도착했는데, 누군가 위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 저는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도 걸음을 멈추더니 크게 기침하고는 다시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저도 따라 올라갔는데, 그 사람은 또 멈춰 서서 기침하고 다시 걸었습니다. 꼭대기 층까지 그랬는데, 기침을 마친 후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따라 올라가 자료를 문 옆에 붙였는데, 문만 열면 바로 보일 수 있게 했습니다. 맞은편 집에도 한 부를 붙였습니다. 저는 계단을 몇 개 내려간 후 뒤돌아보며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제가 만약 예전에 이런 방식으로 그녀를 구하겠다고 약속했다면 오늘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 건물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중생들이여, 꼭 자료를 소중히 여기세요. 이것이 여러분이 구원받을 희망입니다!” 말을 마치자 저는 이미 눈물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바쁘게 지냈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고, 매일 2시간씩 가부좌를 해도 다리가 거의 아프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지지에도 매우 감동했는데, 그는 자발적으로 조용히 자료 정리를 도와주었고 원망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저를 지지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고, 그는 매우 평온하게 한마디 했습니다. “이건 내 선택이야.” 정말 그렇습니다. 사부님의 정법이란 큰일 앞에서 모든 사람이 선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료들은 저를 둘러싸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마음가짐이 그렇게 좋아요?” 저는 “수련인은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해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다며 어떻게 연공하는지 물었는데, 눈빛에는 희망의 빛이 가득했습니다. 지금 두 명의 동료가 제가 준 자료를 들고 가족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있습니다.

파룬따파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건 확실한 사실입니다. 69세인 제 큰언니는 시골에 살고 있는데, 사부님 법을 들은 후 예전에 체력이 약하고 병이 많았지만 지금은 건강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이번에 형부가 양성 판정을 받고 발열과 요통으로 일어나지도 못했는데, 두 사람이 함께 먹고 살면서도 큰언니는 아무 일 없었고, 심지어 산에 가서 나무도 주웠습니다. 시골에 사시는 69세 되신 둘째 외사촌 언니도 딸과 외손녀와 함께 먹고 살았는데, 딸과 외손녀가 모두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둘째 외사촌 언니는 사부님 법을 들었기에 역시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저를 더욱 고무시켜 대법제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알아야 하고, 오직 법을 잘 배우고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리며, 예전에 시간을 낭비한 것에 대해 통탄하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구해야겠습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2023년 9월에 투고됐음]

 

원문발표: 2024년 4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4/19/4742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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