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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을 전환하는 것에 대한 몇 가지 인식

글/ 내몽골 대법제자

[명혜망] 관념의 전환에 대해 약간의 인식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1. 속인의 진정한 ‘성취’는 ‘천시(天時)에 순응하고, 업을 적게 짓는 것’에 있다

속인들은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고’, ‘금의환향하며’, ‘가문을 빛내는 것’을 중시합니다.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심지어 자신이 이루지 못하면 자손들에게 기대를 걸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일생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점을 치는 사람, 역학을 연구하는 사람, 심지어 일부 낮은 영체들조차도 사람들에게 그렇다고 말해줍니다. 사람은 각본대로 연기할 뿐이며, 때로는 순풍에 돛 단 듯 순조롭지만, 때로는 아무리 애써도 헛수고일 뿐입니다. ‘성취’ 역시 운명 중에 있어야 할 것인데, 성취했다고 무엇을 그렇게 과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속인의 성공과 실패는 인과응보의 ‘결과’이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쟁취하고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며 도취합니다. 사람은 무지 속에서 얼마나 많이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고, 얼마나 많은 업력을 쌓는지 모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슬픈 일입니다.

사사로운 마음을 내려놓고 남을 위해 선을 행한다면 반드시 결실을 볼 수 있습니다.

2. ‘때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 인재’라는 관념을 개변하다

‘때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 인재’라는 말은 변이된 관념이지만, 지금은 이미 많은 중국인들이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세상 기풍이 나날이 떨어지고, 물욕이 범람하며, 강권이 판을 치고, 양심마저 사라진 말세에 많은 사람이 양심을 저버리고 악을 돕는 상황에서 이 말로 기세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위를 떳떳하게 하는 자기기만적인 이유를 제공해, 본성 속의 불안감을 감추는 데 쓰입니다.

당시 중공 악당이 대법제자들을 박해할 때, 직장의 일부 간부가 저를 불러 대화를 나눴는데 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행한 선행과 악행 중에서, 자랑스러운 일은 무엇이고 부끄럽고 후회되는 일은 무엇일까요? 정상적인 업무라면 누구나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고, 업무에 노력하는 것은 특별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큰 선과 악 앞에서 양심의 물음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 이것이야말로 신이 가장 주목하는 바입니다. 신의 눈은 번개와 같으나, 오직 선악을 위해서만 뜨십니다!” 예전에 어떤 간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대법제자에게 어떤 서명을 받으라고 어떻게 위협해도 저는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간부는 말했습니다. “사방에서 파룬궁을 공격할 때, 저는 그 압력에 맞서 박해받는 파룬궁수련자들을 보호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제 인생에서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입니다.”

만약 누군가 “파룬궁이 아무리 억울해도 공산당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라고 한다면, 이치에 명백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것이 그 생명에게 영원한 치욕이 될 것임을 알 것입니다. 악의 요구 앞에서 ‘총구를 1cm 들어 올리거나'(역주: 상부의 총살 명령에도 일부러 빗맞힌다는 뜻), 심지어 악에 저항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또 다른 인생, 즉 덕을 쌓고 복을 쌓으며 생명을 승화시키는 인생입니다.

사부님께서 “선악을 식별함이 준걸(俊傑)이로다”(홍음4-언제 깨어날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저에게 크나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진정한 ‘준걸’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셨습니다! 사회는 큰 연공장이고 모든 사람은 수련 중에 있습니다. 사부님의 정법은 그 어떤 생명도 빠뜨리지 않으셨습니다. 미래로 나아가려면 수련을 통해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3. ‘공직’에 대한 잘못된 인식

대법제자를 박해하면서 악당은 공직으로 위협합니다. 박해 대상뿐 아니라 그 부모의 공직, 그 자녀의 공직과 장래까지 위협하니 이는 극악무도한 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0년 말, 저와 아내는 모두 소위 ‘제로화’에 직면했습니다.(역주: 코로나 제로화를 구실로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것) 수련을 견지하면 자진 사직해야 하거나 해고되어야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모두 30년 넘게 근무했고, 아내는 몇 달만 더 있으면 퇴직할 수 있는데 해고되면 악당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됐습니다. 당시의 압력이 상상되실 겁니다. 하지만 집에 와서 장모님(수련생)께 말씀드리자 장모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 글자도 서명할 수 없고, 자진 사직은 더더욱 안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생활 수단 없이 오직 딸 집에서만 여생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시골 출신의 노모가, 정성을 다해 키워내고 노후에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인 딸이 ‘공직’을 잃게 될 상황에서도 이런 선택을 하시니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는 진정 깨달은 생명입니다!

우리는 사악과 타협하지 않고, 반드시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길을 갈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은 이후 전혀 곤경에 빠지지 않았고, 여유로운 시간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쁘게 대법 수련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말겁말세에 중생을 구하고 경고하기 위해, 모든 것이 현세에서 즉각 응보를 받으며 세상일은 매우 빠르게 윤회하고 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장사하는 친구들도 신용을 중시하게 됐어요.” 맞습니다. 사부님의 정법이 추진됨에 따라 사람들은 점차 자신의 길을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걸어야 더 넓은 길을 걸을 수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현재 악당의 통치 아래서는 아무도 감히 자신을 ‘철밥통’이라고 자랑하지 못합니다. 탐관오리들이 틀어쥔 ‘금밥통’도 언제든 깨져 ‘쌍개(雙開, 당적과 공직 박탈)’를 당할 수 있습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월수입이 1만 위안(한화 약 190만 원)을 넘는 사람은 8500만 명뿐이며, 기타 대다수는 저소득자나 무소득자입니다. 하지만 온종일 전전긍긍하며 삶이 무료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그 8500만 명 중에 대다수일 것입니다. 공직과 인생은 반드시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에 맞선다는 것은 사람의 관념이며, 죄업을 없애고 생명을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생명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속인의 이치는 반대이므로, 올바른 법리 중에서 수련하는 대법제자는 고난을 배척하고 향락을 추구하는 이런 관념을 반드시 개변해야 합니다. 이는 심성을 제고하는 한 부분입니다. 수련인에게 다가온 좋은 일, 나쁜 일은 모두 좋은 일이며, 우연한 일은 없고, 수련과 무관한 일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4. 총명하거나 우둔하다는 관념

제 딸은 업무처리에서 늘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고, 남과 다투지 않으며 남을 도우려 최선을 다하는데, 때론 속상해할 때면 저희가 수련인의 표준으로 딸에게 일깨워줍니다. 저는 딸이 지혜롭고 총명하며 오성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그녀의 동료들로부터 딸이 “너무 바르고, 손해만 보며, 심지어 좀 어리석다”는 말을 들으면 저희는 그저 웃어넘깁니다. 딸은 여전히 직장에서 좋은 평판을 듣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처조카가 한 명 있습니다. 원래 저희가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면 그는 매우 잘 받아들였고, 때로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스스로를 요구할 줄도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 장사를 시작할 때 고객을 위해 배려하고, 애프터서비스도 아주 잘해서 어떤 고객은 감동해 그에게 새로운 고객을 소개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물정을 접할수록, 큰 염색통에서의 오염 속에서 서서 생각이 달라졌고, 오히려 저희가 하는 말이 ‘형세’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 저희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이제 만나는 사람도 많아지고 폭도 넓어졌으며, 견문도 많아졌구나. 그런데 예전처럼 노동자나 이웃에 대한 겸손함은 없어진 것 같아. 전에는 화가 나도, 손해를 봐도 참고 웃어넘길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한마디 말 때문에 법정에 가려 드는구나. 내가 보기에 너는 사회에서 점점 더 영리해지고 똑똑해진 것 같지만, 사실은 작은 일에도 늘 신경 쓰다 보니 도량이 오히려 작아지고, 마음도 예전처럼 너그럽지 못해졌으며, 노심초사하느라 오성도 예전처럼 맑지 않은 것 같구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이치는 낮고 복잡해집니다. 제 생각에 속인의 영리함은 사실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이며, 그것은 오성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속인의 이치는 사실 반대입니다. 사람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진정으로 좋은 것이 아니고, 사람이 나쁘다고 해서 반드시 진정으로 나쁜 것도 아닙니다. 수련인은 사람의 많은 문제를 반대로 봐야 합니다. 사람이 가장 바꾸기 어려운 것은 관념입니다. 저는 정통적인 전통문화든 예전의 불법(佛法)이나 도가의 이치든 모두 대법 수련에서 대법으로 새롭게 가늠해야 하고, 대법에 동화시켜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수련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설령 과거의 신전문화(神傳文化)라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인류의 도덕을 유지하고 대법을 널리 전하는 기초를 다지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예수님 등 이런 대각자들이 진언(眞言)을 남기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법이 얼마나 높고 심오한지 펼쳐 보이지 않은 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우주대법을 전하실 때 대법을 인식하고 동화하는 데 방해가 없게 하기 위함이며, 낮은 층의 법은 층차의 국한성 때문에 더 높은 법리를 깨닫는 데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대법만이 좋고 나쁨, 시비를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자 생명이 천국으로 돌아가는 사다리입니다.

일체의 관념을 내려놓고 항상 사부님의 법을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본성으로 되돌아가고 승화하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4/15/4738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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