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쑤성 대법제자
[명혜망] 작년 8월 어느 날, 제 남편은 갑자기 눈이 아프고 두통이 있으며 시야가 흐려져 물체를 잘 볼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급성 녹내장 진단을 받았는데, 응급 중증에 속합니다. 즉시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의사는 “안압이 너무 높아서 60을 초과했습니다(측정표의 최고치). 정상은 20을 넘지 않습니다. 만약 이틀에서 사흘 안에 안압을 낮출 수 있다면 수술 준비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제 남편은 긴장되고 두려운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입원 이틀째 되는 날 오전에 안압이 정상으로 내려갔고, 눈 통증과 두통 증상이 기본적으로 사라졌습니다. 그의 긴장된 감정도 누그러졌습니다. 오후 퇴근 전에 의사가 다시 그에게 “이틀 후에 수술 준비를 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의사가 간 후 그의 감정은 다시 긴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무심코 “두려워 마세요. 입원했는데 치료 효과가 아주 좋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남편과 함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길을 걷는데 제 허리 부분이 갑자기 무거운 물체에 부딪힌 것처럼 매우 불편했습니다. 저는 참고 소리 내지 않았고 밥을 먹은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즉시 침대에 누워 쉬었는데 몸을 뒤집기도 힘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힘들지?’ 안으로 찾아보니 지난 이틀 동안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을 많이 신경 썼고 오르락내리락 왔다 갔다 하면서 원망 없이 매우 세심하게 보살펴주었습니다. 그래서 남편도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피곤해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피곤해서 이런 상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분명 심성에 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저는 고통 속에서 즉시 엄숙하게 안으로 찾았습니다. 갑자기 뇌리에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있는데, 당신이 정법을 수련(煉)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연공(煉功)하면 다른 사람은 이익을 얻는다.”(전법륜) ‘아, 사부님 죄송합니다.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한 것이 아니라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자 가족의 난을 해결해주신 거였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자신의 문제를 찾았고 허리 통증도 완화됐으며 곧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허리가 거의 아프지 않았고 저는 즉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남편에게 그날 밤 몸 상태와 마음 수련의 과정을 자세히 말했습니다. 그는 듣고 나서 마음속으로 놀라워하면서도 기뻐했고 내심 감동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방금 간호사가 통보했는데 먼저 안구 레이저 치료를 받으라고 했어. 먼저 레이저 치료를 하고 이틀 후에 수술한다고 하더군.” 제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제 사부님께서 당신을 도와주시고 보호해주시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효과가 나오겠어요. 당신 지금 상태가 얼마나 좋은지 보세요.” 그는 웃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결정했습니다. 레이저도 하지 않고 수술도 하지 않고 퇴원해서 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의사는 제 남편의 퇴원에 동의하지 않았고 레이저 치료와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에겐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니 남편의 눈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지금 반년이 지났는데 남편의 눈은 멀쩡하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두 가지 작은 일
몇 달 전, 초등학교 1학년인 손녀가 감기에 걸렸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데려왔습니다(아들 내외와 함께 살지 않음). 집에 와서 제가 손녀에게 말했습니다. “감기 나으면 독감 예방 접종하러 가자.” 그런데 전에 저는 예방 접종에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부님의 법을 통해, 수련하지 않는 속인이 병에 걸리는 것도 업(業)을 갚는 한 가지 형식이며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 없이 손녀에게 예방 접종을 맞으러 가자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한 지 2시간도 안 돼서 온몸이 오싹해지고 식은땀이 나면서 인후통, 코막힘 등 감기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스스로 금방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사부님,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이것은 속인의 정이 아닙니까? 손녀가 감기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고 수련인의 표준을 잊어버리고 속인의 이치로 문제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즉시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하고 사부님께 용서를 간청하자 감기 증상이 즉시 사라졌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갑자기 다시 감기 증상이 나타났는데 매우 심했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았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고 발정념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을 했거나 잘못된 생각을 했거나 잘못된 말을 한 것입니다. 저는 계속 찾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며칠 동안의 생각과 행동, 말과 행위를 하루하루 따져보며 세심하게 찾았는데 중점은 또 손녀 쪽에 맞춰졌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또다시 감기에 걸려 폐렴까지 발병해 어린이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며 치료를 받았는데 제가 계속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녀가 아파서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아들 며느리는 모두 출근해야 하니 낮에 링거를 맞힌 후 아이를 우리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집에 와서 아이가 저와 장난치면서 때로는 제 목을 끌어안고 저에게 뽀뽀했는데, 남편은 보고는 “조심해, 폐렴은 전염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손녀에게 말했습니다. “애야, 말해봐. 할아버지, 저 나았어요.” 그때는 이 말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 말을 되새겨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그 아이의 폐렴이 나아서 전염성이 없으니 제가 안전하고 전염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속인의 위치에 놓은 것이 아닙니까? 속인은 당연히 감기에 걸립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았고 즉시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하자 감기 증상도 자연히 가라앉았습니다.
며칠 전 오후, 저는 수련생과 함께 법을 배웠습니다. 법을 배우자마자 갑자기 목에 가래가 껴서 기침도 나오지 않고 말도 하기 힘들었고 몸은 오싹해졌습니다. 즉시 안으로 찾아 문제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수련생 앞에서 제 문제를 폭로했습니다. “저는 오늘 잘못된 일을 했어요. 오전에 저와 남편이 털실 시장에 가서 양모 스웨터를 주문했는데, 남편이 제안한 그 가게에서 사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어요. 이유는 그 가게에서 전에 저를 속였기 때문이에요. 올해 봄에 저는 그 가게에서 양모 바지 한 벌을 주문했는데 400여 위안을 냈어요.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대놓고 60여 위안을 더 받았어요. 제가 그녀에게 돈을 잘못 계산했다고 말했고 그녀 남편도 옆에서 돈을 더 받았다고 그녀에게 알려줬어요. 그런데 그녀는 ‘이것은 국가에서 허용하는 오차예요’라고 말했어요. 그때 저는 자신이 수련인이니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마도 전생에 그녀에게 빚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면 갚은 거고 그래서 이 일을 담담히 지나갔어요. 그런데 오늘 다시 이 일이 떠올랐고, 우리가 양모 스웨터를 주문한 다른 가게 주인에게 이 일을 말했어요. 이것은 뒤에서 남을 헐뜯고 그들의 명성을 해친 게 아닌가요? 이 이익에 대한 마음을 아직 마음속에 두고 버리지 않은 게 아닌가요?”
저와 수련생은 이 일에 대해 계속 깊이 찾아보았습니다. 이것은 아주 강한 원망심 아닌가요? 집착을 찾은 후 앞으로는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고 다시는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더니 불편한 상태도 사라졌습니다.
맺음말
저는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기 전에 법을 얻은 노대법제자입니다. 20여 년의 수련 과정에서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저는 법을 배우고 베끼고 암기하는 것을 강화했고, 법에 대한 인식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평소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일들에서,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대부분 법으로 가늠할 수 있었고, 특히 병업이 엄습해 올 때는 법을 스승으로 삼고 안으로 찾는 원칙을 견지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두 순조롭게 고비를 넘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정법 수련은 이미 법정인간 시기로의 과도기에 들어섰습니다. 저는 절대다수 대법제자, 특히 노대법제자들은 기본적으로 병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은 대법제자들에게 여전히 병업 가상 현상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중에는 세 가지 일을 특별히 잘하는 노대법제자도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저는 대법제자들이 고집하는 좋지 않은 관념을 개변하지 못했거나 완고한 집착심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집착심이나 좋지 않은 관념으로 인해 발생한 병업 가상 현상은 발정념을 한다고 해서 부정할 수 있거나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수련생은 자신에게 병업 가상 현상이 나타나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정념이 강한 표현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수련인에게 병업 가상 현상, 특히 심각한 병업 가상 현상이 나타날 때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병업 가상 과정에서 잘 눈에 띄지 않고 깊숙이 숨겨져 있는 집착심을 찾아내야 합니다! 병업 가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절대 까닭 없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수련하는 사람에게 버려야 할 집착심, 완고하고 좋지 않은 관념을 개변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중시하지 않고 수련인으로서 제거해야 할 집착심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찾아내 제거하지 못하고, 나쁜 관념을 개변하지 못한다면 병업 가상 현상은 질질 끌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길어지면 수련인의 수련 신심이 타격을 받게 되고, 심성을 지키지 못하면 원망, 조급함, 불안, 의심 등 사람의 마음이 쉽게 생길 수 있으며, 심각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위에서 말한 몇 가지 작은 사례처럼 제때 문제의 소재를 찾아냈기에 순조롭게 작은 일, 작은 관문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즉시 안으로 찾지 않고 자발적으로 대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병업 가상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끄는 시간도 점점 더 길어질 것입니다. 왜 지금 일부 노수련생들에게 나타난 병업의 가상 현상을 수련 초기처럼 잘 넘지 못할까요? 수련인의 층차가 끊임없이 제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이 수련인에 대한 요구도 상보상성하여 점점 더 높아지고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병업을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과정 중에 수련자가 비록 문제의 소재를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일정 기간의 난을 겪으면서 수련인이 고통을 감내하고 최종적으로 고생을 겪고 업을 갚았기에 병업 현상이 점차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대다수 노대법제자의 신체에는 비록 병업이 없지만 병업의 가상 현상을 이용해 수련인에게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자신의 어떤 사람마음이 떠올랐는지, 어떤 생각과 행위가 법과 맞지 않는지 찾아보고 법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것도 사람마음을 제거하고 관념을 개변하며 층차를 제고하는 한 가지 형식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생활의 작은 일에서 자신의 일사일념을 많이 수련하고 법으로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속인 사회의 명예, 이익, 정과 현대적 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배치해주신 이 수련의 길을 바르게, 착실히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본인이 현 단계에서 인식한 것이며 맞지 않는 곳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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