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오늘 나는 법공부 팀에 가서 《전법륜(轉法輪)》을 공부한 후, 수련생들과 함께 2024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원고모집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교류했는데, 그것을 통해 나는 격차를 발견하고 수확이 많았다. 아래에 내 수확을 적어 여러 수련생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두 수련생은 먼저 최근 며칠 동안 수련생들이 원고모집에 참여하도록 격려하고 도운 경험을 교류했다. 그들은 곁에 있는 수련생들이 글을 쓰는 것을 도울 뿐만 아니라, 이웃 현으로 가서 수련생들이 이번 원고모집의 의미를 인식하도록 도왔다. 그들이 말한 한 여성 수련생의 이야기는 나를 감동시켰다. 그녀는 손목뼈가 부러졌지만 수련생의 격려 속에서 “나는 이 가상을 부정하고 확고하게 글을 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줄곧 펜을 들지 않았는데, 수련생들은 그에게 원고모집 공지를 읽어주며 그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었다. 그는 20여 년 전 법을 실증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정념과 행위를 떠올렸고, 곧바로 펜을 들어 30분도 되지 않아 매우 훌륭한 원고를 썼다. 오랫동안 가부좌하지 않았던 한 수련생은 교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두 다리를 가부좌했고, 감격에 겨워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수련생들이 최근 원고모집 이야기를 마치자, 우리는 다시 한번 원고모집의 의미에 대해 교류했다. 한 수련생은 매번 원고모집을 위해 나갈 때마다 명혜망의 원고모집 공지를 갖고 간다고 했다. 해마다 1년에 차례 원고모집 때마다 그들은 지치지 않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며, 더 많은 수련생이 적극적으로 원고를 투고하도록 격려하고, 수련생들의 원고모집 참여를 방해하는 사악한 마의 방해를 깨뜨렸다. 올해 명혜망이 원고모집 공지를 발표한 첫날, 한 수련생은 자신의 원고를 써냈고 그다음에는 다른 수련생들이 원고를 쓰도록 격려하고 도왔다.
한 편의 글 제목이 내 주의를 끌었는데, 바로 명혜망 2024년 3월 23일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몇 번이나 주실까’였다. 이 몇 글자가 나에게 준 충격은 매우 컸다. 그렇다, 명혜망 ‘5.13’ 원고모집에 이렇게 참여할 기회가 우리에게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사악한 박해 속에서, 대법제자들이 우리 자신의 매체에서 풍모를 펼칠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우리에게 인터넷 봉쇄를 뚫고, 우리가 정법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은 기적을 기록해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들과 함께 나누며, 중생들에게 광명과 희망을 가져다줄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사부님께서 무한한 자비로 대법제자들에게 하사하신 은혜를 함께 소중히 여기자!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수련생들이 원고모집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내 생각에 주로 다음 몇 가지라고 본다.
첫째,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했다고 생각해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지금까지도 대법제자로 남아 있고, 오늘날까지 걸어온 이들은 모두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다. 다만 최근 수련 상태의 문제로 인해 자신의 제고를 가로막았을 뿐인데, 이것 역시 하나의 과정일 뿐이며,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상태가 좋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정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남겨진 기회다.
명혜망 원고모집에 참여하는 그 자체도 법을 실증하는 것이며, 사부님께서도 여러 차례 설법에서 원고 투고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하셨다. 법회의 형식 역시 사부님께서 우리 대법제자들에게 남겨 주신 것이다. 만약 박해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세계 각지에서 법회를 열고 분회장을 설치했을 것이며, 그때는 참여하고 싶지 않은 수련생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단지 박해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온라인 원고모집의 형식을 취해, 중국의 더 많은 대법제자들이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경축하는 성대한 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형식은 다르지만 의미는 같으며, 사악한 박해 속에서 더욱 위대하고 신성해 보일 뿐이다. 3가지 일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것인데, 만약 최근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아 잘하지 못했다고 느껴진다면, 지금 명혜망 원고모집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바른 일을 원만히 하는 것이다.
원고를 쓰고 투고하며 명혜망의 원고모집을 돕는 것 역시 바로 우리 자신의 상태를 조정할 좋은 기회다. 원고를 쓸 때는 모두 자신의 가장 좋은 상태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원고를 투고해 본 사람들은 모두 이런 느낌이 있는데, 마음을 다해 쓰기만 하면, 설사 자신의 부족함을 쓰더라도 안으로 찾는 과정 그 자체가 하나의 심성 제고와 승화의 과정이 된다.
원고를 투고한 후, 어떤 이는 자신의 부족함을 찾았고, 어떤 이는 당시 법을 실증할 때의 여러 기적을 떠올리며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를 되찾았는데, 나는 이것 또한 사부님께서 중국 내 수련생들에게 원고모집에 참여할 기회를 주신 목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의 많은 수련생이 원고를 쓰겠다는 생각을 확고히 세웠을 때 기적이 나타났다.
둘째, 자신이 잘 쓰지 못한다고 생각해 쓰지 않는 것이다.
“쓰는 법을 모른다”고 말하는 이런 수련생들에 대해, 나는 더더욱 스스로 능동적으로 붓을 들어 사람의 관념에 얽매이는 것을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혜망에는 너무나 많은 노년 수련생에게 호미를 내려놓고 마우스를 잡는 등의 신기한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쓰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 주로 투고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회는 일 년에 단 두 번뿐이며, 우리의 수련 역시 일 년이 더해졌으니, 반드시 기록해 둘 만한 수련 체험이 있을 것이고, 주변의 친척 친구들과 진상을 알게 된 세인들이 대법의 은혜를 입고 보호받으며 구원받은 신기한 이야기들은 모두 우리가 써내어 대법을 실증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수련생들은 명혜망의 원고모집 공지를 여러 번 더 읽어볼 수 있다. 매번 명혜망 수련생들이 어떤 일을 쓰고, 어떤 내용을 쓰며, 어떤 각도에서 대법제자들의 풍모를 보여줄 것인지를 아주 명확히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많은 수련생이 중시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며, 한 번 읽고 알았다 싶으면 한쪽에 치워둔다. 사실 매번 원고모집 공지는 모두 매우 명확한데, 여러 번 읽어보면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알 수 있게 된다.
때로는 대법제자들이 다반사로 여기는 일이라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듣기에, 특히 세인들에게는 모두 대법제자들이 진선인(真·善·忍)의 법리를 실천하는 기적으로 비춰진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어떤 특정한 공간 중에서, 사람들이 이 일을 마치면, 즉 사람이 손을 한번 휘둘러 어떤 일을 하면 모두 물질로 존재하며,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영상(影像)과 정보(信息)가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 법을 실증하는 일을 어떻게 이 공간에 남길 수 있을까? 나는 우리가 펜으로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사부님께서 하사하신 신필(神筆)은 모두 갖고 있으며, 쓰면 쓸수록 더 잘 쓸 수 있고, 쓰면 쓸수록 더 좋게 쓸 수 있다. 신·노 대법제자 모두 진정으로 신처럼 일어서기를 희망한다!
셋째, 자신이 써도 반드시 발표되는 것은 아니라고 여기며, 차라리 잘 쓰는 수련생들이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써도 반드시 발표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 그로 인해 자신의 제고와 대법을 널리 전하고 실증할 책임을 포기하는데, 내 주변에도 이런 수련생들이 많다. 나는 이런 수련생들이 자신의 이런 생각이 사욕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사사로움과 자아가 없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본다. 많은 수련생, 특히 중국 내 대법제자들은 명혜망이나 명혜주간에 실린 교류문장들을 자주 보는데, 명혜망 문장들은 많은 수련생을 격려해 주었다. 하지만 그런 문장들은 누군가 교란을 제거하고 써내어, 봉쇄를 뚫고 명혜망에 보내야 하고, 또 명혜망 수련생들의 힘든 교정을 거쳐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모든 수련생이 자신은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문장들은 어디에서 오겠는가? 우리가 명혜망에서 가져가기만 하고 기꺼이 바치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만약 모든 수련생이 기꺼이 조건 없이 명혜망의 매번 활동을 지지하고 적극 협력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전체적으로 제고되고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원고를 하루 일찍 투고하면, 명혜망 편집 수련생들이 원고를 수정할 충분한 시간을 하루 더 가질 수 있겠지만, 만약 우리가 모두 마지막 며칠까지 미뤄 원고를 투고한다면, 모르는 사이에 인위적으로 편집하는 수련생들에게 매우 큰 압력과 부담을 안겨주게 된다.
사실 우리의 글이 발표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수련 체험을 기록해둬야 하며, 이것은 자신의 수련에 책임지는 것이다. 발표되지 않은 글들도 법공부 팀에서 교류할 수 있고, 역시 다른 수련생들을 격려할 수 있다. 우리 팀의 많은 수련생의 글들은 서로 교류를 통해 매우 큰 작용을 발휘했다. 이런 글들을 수련생들과 나눌 때, 어쩌다 그 중 한마디 말이 수련생들을 도울 수 있어서 그 수련생은 즉시 관념을 바꾸었다. 때로는 수련생의 사상에 일부 장애가 있었는데, 수련생의 글을 보고 즉시 교란을 제거하고 사람의 관념을 돌파했다. 그러므로 발표 여부는 우리가 원고를 쓸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명혜망 제25회 파룬따파의 날 원고모집 공지가 발표된 지 한 달 넘게 지났다. 아직 원고를 제출하지 않은 수련생 여러분께서는 모두 시간을 쪼개어 이번 원고모집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수련 체험과 이야기를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대법제자의 신의 풍모를 보여주시기를 희망한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파룬따파의 신기함과 위대함을 실증하자!
층차가 제한적이라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린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4/2/474811.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4/2/4748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