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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알리기 항목은 자신을 성취시킨다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어느덧 연례 RTC 심득교류회가 다가왔습니다. 이번 기회를 빌어 자신의 수련을 되돌아보고 사부님께 보고드리며 수련생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023년 1월부터 9월까지 사부님께서 다섯 편의 경문을 발표하셨고, 우리 모두는 그 속에서 정법형세의 변화를 깨닫고 자신의 수련에서 부족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제자들을 깨우치기 위한 사부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 수련생 A와 함께 새로운 경문과 다른 경문의 일부분을 외웠습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저는 사부님이 나쁜 물질을 제거하도록 도와주고 계시다는 것을 정말로 느꼈습니다. 법을 잘 배우고 법에 동화되는 것만이 관념을 바꾸고 저 자신을 바로잡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경문을 암송하기 전에도 수련자는 욕망을 담담하게 내려놓고 세상의 명예, 이익, 정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는 여전히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언급하신 젊은이들처럼 “한번 분투하여 속인의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는 종종 진취심과 수련자가 해야 할 ‘무위(無爲)’의 균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경문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사부님 정법의 내포와 인간 세상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경문을 외우면서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법리를 깨달을 수 있었지만, 사람이 신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착실한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수련의 표준에 이를 수 없고, 하는 말에도 에너지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진상 알리기 항목 과정에서 수련생과 온갖 심성 마찰을 겪기도 했습니다.

A 수련생은 저에게서 사악한 공산당 통치 아래서 자란 젊은 세대의 특징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부모가 애지중지하게 키웠으며, 학교나 직장에서도 항상 듣기 좋은 말만 들었고, 일을 함에 있어서 자기 생각만 하고 남의 감정은 전혀 배려하지 않으며, 자신밖에 모르고 매우 이기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수련생의 이 말은 가혹하게 들렸지만 제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항목에서 여러 번 탈퇴하려고 하다

대법 항목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 일반 사회의 정상적인 회사처럼 운영하기 어렵고, 수련생마다 시간과 에너지, 능력, 수련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인 주류사회에서 일하는 저에게는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제 가장 큰 문제는 항상 제가 깨닫고 성취한 것을 기준으로 다른 수련생들을 가늠하고 요구하며, 그들이 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제가 생각하는 높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만들어내면 그 수련생들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짐작한 것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련생들은 저의 불친절을 참을 수 없었고, 저는 그들에 대한 인내심을 잃었습니다. 갈등이 갈수록 심해졌고, 저는 수련생들과 협력하기 어렵기 때문에 글쓰기 팀을 그만두고 저에게 더 적합하고 능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는 영문이나 미디어 등의 항목에 참여하겠다고 여러 번 건의했습니다.

한번은 A에게 글쓰기 팀에서 탈퇴하겠다고 메시지를 남기자 그는 사부님의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의 한 구절을 보내왔습니다. “일부 수련생들은 일단 모순의 충돌, 감정의 충격을 당하면 곧 언짢아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여전히 수련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수련하는 사람은 문제를 거꾸로 보는 것으로, 이런 마난(魔難)과 고통을 모두 제고할 좋은 기회, 좋은 일로 보면서 그것으로 하여금 많이 오고 빨리 오게 해서 자신을 빨리 제고하게 한다.”

사부님께서는 일찍 수련인은 문제를 거꾸로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관념을 바꾸지 않고 사람의 이치를 붙잡고 놓지 않았으며, 수련생과 소란을 피우고 울고 나서야 갈등이 완화됐습니다. 수련은 고생을 겪고 인내심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어떤 종류의 항목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더 명확히 알게 됐습니다.

언젠가 플랫폼에서 한 수련생이 구술로 밀라레빠 부처의 스승이 밀라레빠에게 집을 짓게 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저에게 큰 계발을 주었습니다. 밀라레빠의 스승은 그에게 집을 짓고 허물고, 또 허물고 다시 지으라고 했습니다. 밀라레빠는 집 짓는 기술을 향상시키고 멋지고 튼튼한 집을 설계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였을까요? 분명히 집을 짓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며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사부의 배치를 깨닫고 의지를 연마하며, 자신을 수련해 업력을 없애는 것입니다. 밀라레빠가 집을 짓는 것과 오늘날 대법 진상 알리기 항목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수련생이 협력하는 환경에서 오랫동안 한 일, 많은 일을 해낸 것, 약간의 업적이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단지 수련의 과정일 뿐이며, 우리는 지상 세계에 있으나, 염(念)은 세상 밖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느 항목에서 무엇을 하는 것에 신경 써서야 되겠습니까? 사부님께서 저를 글쓰기 팀에 배치하셨다면 원인이 있을 것이며, 아마도 제가 사부님과 서약을 하고 역사의 관건 시각에 전화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에게 한쪽 팔이 되어 돕기로 했을 것입니다. RTC 플랫폼은 제1선에서 소중한 중국인을 구하고 있으며 사람을 구하는 플랫폼입니다. 모든 수련생은 하나의 정체이며, 한 사람을 구하는 건 사실 배후에서 정체가 대가를 치렀기 때문입니다.

질투심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닦아 버리다

수련생과 함께 법을 지속적으로 외우고, 법에서 깊이 있게 교류하고, 긴밀히 협력해 글을 수정하면서 저는 수련의 신기함과 신성함을 점점 더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타의 경지를 수련해낼 수 없음에 괴로웠고, 대법 책만 내려놓으면 다시 일반인과 같아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평화롭게 소통할 수 없었습니다. A는 저의 가장 큰 집착이 질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통상적으로 타인이 저보다 우월할 때 질투심이 일어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글쓰기 팀에서 제가 주된 글을 작성하니 다른 수련생에게서 질투할 게 없었습니다. 나중에 명혜망에서 질투심에 관한 교류 글을 읽고 눈에 거슬려하고 얕잡아보는 것도 질투심이라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현재 처한 경지에 비해 그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고 더욱 엄격해야 된다고 여겼습니다. 타인의 결점을 집착하고 타인의 좋지 않은 것을 입에 담고 다니는 건 표면에서 볼 때 타인이 개선되길 바라는 것이나, 잠재의식에서는 타인을 개변시켜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게 하려는 것으로, 그 근원은 ‘이기심’이었습니다.

또한 수련생 간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으며, 과시하고 쟁투하는 건 이기심과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질투심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이 물질이고 생명이고 질투도 일종의 물질인데, 내가 닦아 버리지 않으면 내 몸 안에서 작동합니다. 질투는 내가 아니고 원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실제로 항목을 할 때는 수련생과 차분하게 소통 할 수 없었고 ‘그 수련생의 수준이 높지 않구나’, ‘수련 수준이 완벽하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는 등 표현이 있었습니다.

A는 종종 제 심성이 제자리에 있지 못해서 전화 대본을 잘 쓸 수 없고, 대본이 너무 길어서 전화 받는 사람도 그렇게 오래 듣지 못하며, 통화하는 수련생은 제가 쓴 대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수련생들이 저와 소통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진상을 똑똑히 알리려면 어찌 몇 마디 말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사건 전반을 똑똑히 말하고 이치와 근거가 있게 분석하고, 중생을 선으로 권고하고 인도해야 사람 구하는 일을 실제로 해낼 수 있다며 반박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제 주장이 타당해 보였지만, 얼마 전에 ‘전법륜2-불성’을 A와 함께 외울 때 비로소 제가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이 집착심을 닦아 버리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자신을 낮추지 못하고 통화하는 수련생의 요구를 만족하는 글을 써내는 더 큰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명혜망에서 ‘집착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약간의 이해’라는 제목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글쓴이가 사부님의 이전 경문과 각 지역 설법을 공부하면서 문득 사부님께서 반복해서 언급하셨던 ‘관념’이라는 개념을 깨닫게 됐다고 했습니다. 1999년 박해가 있기 전, 사부님께서는 거의 모든 설법에서 이 개념을 언급하셨고, ‘전법륜’에서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인간의 관념 문제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생과 제가 다시 글을 수정하면서 의견이 다를 때,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 어떤 관념도 없이 문제를 보면, 모두 자신의 선량한 본성에서 나온 견해가 있고, 진정한 자신의 견해가 있게 되어, 慈悲(츠뻬이)하고 선한(慈善) 마음으로 사물을 보게 된다.”(전법륜2-불성)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련생이 한 말을 사고해보았습니다. 그러자 제 인생의 얕은 경험 때문에 제가 쓴 글은 객관적이지만 사악한 공산당의 본질을 드러낼 만큼 깊이가 부족하다고 한 수련생의 말이 참 맞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심성이 제고함에 따라 갈수록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의식할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고 수련생과 함께 수정할 때마다 스스로 승화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수련과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 생활에서 마주치는 일들을 연결하면 진상을 알릴 때 힘이 있으며, 단순히 진상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쓰거나 수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맺음말

수련생과 협력하면서 다툼도 많았지만 그 속에서 다양한 집착과 마음을 발견하고 고통을 견뎌냈으며, 팀이 정체로 승화하자 모두 대법의 위력을 느끼고 서로 간의 성스러운 인연을 더욱 소중히 여길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천 마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상은 저의 수련 경험의 일부이며, 부적절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4 RTC 플랫폼 연례교류회 원고)

 

원문발표: 2024년 4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4/1/47422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4/1/4742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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