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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심 깊은 며느리 납치되자 80대 시부모 통곡

[명혜망](지린성 통신원) 지난 2월 5일, 지린성 자오허시 파출소 경찰들이 파룬궁수련자 쑨위잉(孫玉英)을 납치해 구치소에 불법 구금한 후 사법적 박해를 시도하고 있다.

당시 파출소 경찰들이 마을에 가서 주민들에게 쑨위잉이 어떤 사람인지 물었더니 모두 쑨위잉이 좋은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쑨위잉의 80대 시부모는 “효성스러운 며느리가 징역형을 받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어요”라며 통곡했다. 3월 26일, 쑨위잉은 ‘처분보류(取保候審: 1년간 보석하되 보증금·보증인을 세워 수사와 재판을 회피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로 풀려났다.

쑨위잉은 올해 54세로 자오허시 신눙가 난황디촌 출신이다. 그녀가 이번에 겪은 납치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24년 2월 5일 저녁 6시경, 쑨위잉은 자오허시 민주가(民主街) 파출소 경찰 완푸젠(萬福建) 등 세 명에 의해 집에서 납치됐고, 집은 불법 수색을 당했다. 파출소에 이틀간 불법 구금된 쑨위잉은 구치소로 강제 이송되었다(원래 구치소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음). 쑨위잉은 파룬궁에 대한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고, 2월 19일 지린시 구치소로 다시 끌려가 불법 구금됐다. 이 기간 민주가 파출소 경찰 완푸젠과 뤄닝(羅寧)은 구치소에 가서 쑨위잉을 불법 심문했다.

3월 22일, 자오허시 검찰원 직원들이 지린시 구치소를 찾아와 쑨위잉에게 범죄 인정 여부와 처벌 수용 여부를 묻고 “당신의 수련은 자녀 앞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쑨위잉은 “수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잘못이 아니므로 아이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섣달 26일 밤 쑨위잉이 끌려간 뒤 가족들은 모두 눈물바다가 되었다. 천리 밖에서 설을 쇠러 집에 돌아온 아들은 어머니를 보지 못했고, 80대 시부모는 집에서 서럽게 울었으며, 음식 못 하는 남편 대신 마음 좋은 친척이 설날 저녁 밥상을 차려줬다. 설 넷째 날, 아들은 근심과 그리움, 서글픈 마음을 품고 집을 떠났다.

그동안 파출소 경찰들은 쑨위잉이 사는 마을에 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그녀에 대해 물었다.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쑨위잉이 좋은 사람이며, 남편은 멀리 돈 벌러 가고 농사일은 혼자 다 하면서 시부모에게 효도한다고 전했다. 쑨위잉의 시부모는 80대 노인이다. 경찰이 쑨위잉 집에 와서 시부모에게 “며느리가 잘해주나요?”라고 묻자 시아버지는 “며느리는 매우 효성스럽고 우리 노부부를 보살피며 속옷까지 다 빨아줘요”라며 “며느리가 감옥에 가면 우리는 살길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며느리가 잡혀간 후 시어머니는 온종일 울고 한밤중에 깨어나서도 울곤 했다. 경찰이 며느리가 잘 대해주냐고 묻자 시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며느리는 친딸보다 더 나를 잘 대접하고 공경해요. 매일 그리워서 어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에게 비관적으로 말했다. “당신은 며느리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거야. 형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엔 우리는 이미 세상을 떠났을 테니. 이것이 바로 영원한 이별이라는 거야, 다시는 볼 수 없어.” 그러면서 노부부는 또다시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3월 26일 오후, 민주가 파출소의 완푸젠 경찰과 다른 경찰이 쑨위잉을 구치소에서 파출소로 데려와 가족들에게 거주지 감시 신청을 하라고 했고, 그날 저녁 쑨위잉은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 몇 년간 쑨위잉이 받은 박해

쑨위잉은 한때 요추 골다공증으로 척추에 거위알만 한 혹이 세 개나 생길 정도로 주사를 맞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병 때문에 성격도 괴팍해져 남편과 자주 다퉜다. 1998년, 그녀는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온갖 병이 말끔히 나았고 집안 분위기도 화목하고 따뜻하게 바뀌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의 사악한 우두머리 장쩌민이 파룬궁에 대한 광적이고 잔인한 탄압을 개시했다. 진선인(真·善·忍) 신념을 지킨다는 이유로 쑨위잉은 중공 간부와 경찰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했고 여러 번 끌려가 감금되었다.

2000년 7월, 쑨위잉은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하려 베이징에 갔다가 기차역에서 자오허시 신눙향 부서기 왕춘푸(王春福)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신눙향 정부로 끌려가 3천 위안을 뜯긴 뒤 며칠간 불법 감금되었고, 다시 자오허시 구치소로 끌려가 15일간 감금되었다. 이후 신눙향 파출소 정쉐궁(鄭學功), 우쥔(吳軍) 등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날이면 늘 그녀 집에 쳐들어와 파룬궁 서적을 찾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2001년 봄, 자오허시 ‘610(파룬궁 탄압기구)’이 룽성 호텔에 세뇌반을 만들어 쑨위잉을 끌고 가 박해했다.

2001년 11월 28일 밤, 자오허시 공안국이 파룬궁수련자들을 집중 납치할 때 신눙향 파출소 윈셴보(云憲波), 정쉐궁 등은 쑨위잉 집을 불법 침입해 집안을 뒤지고 쑨위잉을 파출소로 끌고 가 영하 30도 혹한에 두세 시간 동안 바깥 농구대에 수갑을 채웠다가, 다시 수갑을 채워 수조에 가뒀다. 나중에 쑨위잉이 풀려나자 윈셴보와 정쉐궁은 또 여러 번 그녀 집에 가서 불법 수색을 자행했다.

2002년 8월, 신눙향 부향장 왕칭하이(王慶海)와 파출소 경찰 정쉐궁이 쑨위잉을 납치하려고 훈춘에 갔다 실패하자, 훈춘 경찰과 함께 그녀가 일하는 식당과 꽃집을 불법 수색했다. 이후에도 그들은 여러 번 쑨위잉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상처를 줬다. 경찰이 집에 오면 시어머니는 심장병 발작을 일으켰고, 시아버지는 분통이 터져 엉엉 울었으며 아이들도 정신적 충격이 컸다. 그녀가 집에 없자 농사 수확량도 줄었다. 남편은 두려움과 걱정으로 30대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2008년 8월 말 어느 날 새벽 4시, 신눙향 저우수옌(周書彦) 향장, 종합사무실 한융민(韓永民) 주임, 신눙파출소 소장과 경찰들이 쑨위잉 집에 들이닥쳐 그녀를 끌고 가 세뇌반에 가두려 했다. 쑨위잉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20여 명을 더 불러 집을 포위했다. 오전 10시가 넘어 파출소 경찰 궈위바이(郭玉柏)가 도끼로 침실 창문을 깨부수고 강제로 침입해 쑨위잉을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이어 그녀의 친정어머니와 언니, 여동생까지 세뇌반으로 협박해 끌고 와 “쑨위잉이 전향(수련 포기)하지 않으면 노동수용소에 보내겠다”는 등으로 위협해 그들을 울게 만들었다. 겁에 질린 나머지 친정어머니가 심장병 발작을 일으키고 나서야 경찰은 그들을 내보냈다. 쑨위잉은 단호히 전향을 거부해 또 5일간 불법 구금을 당했다.

2011년 8월 1일 오후 5시 20분, 고3 아들이 저녁을 먹으려 집에 오기를 기다리던 쑨위잉은 신눙 파출소 경찰 왕건(王根), 장리(張利), 쉬원밍(徐文明)에게 월세방에서 납치됐다. 이 세 명의 경찰은 매우 비열한 방법을 동원해 학교에 가서 담임교사에게 먼저 쑨위잉 아들이 누군지 확인하고, 스파이 수법으로 뒤를 밟아 쑨위잉 집까지 와서 납치를 감행했다. 아들이 열쇠로 막 문을 열자마자 몰래 뒤따라온 경찰들은 먼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쑨위잉은 그날 밤 지린시 사허쯔 세뇌반으로 끌려가 9일간 박해를 당하다 8월 10일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17년 5월 17일 오후 1시쯤, 자오허시 신눙가 파출소 경찰 3명이 쑨위잉 집 앞에서 소란을 피우며 그녀를 별도의 방으로 불러 장쩌민 고소에 관해 물었다. 그러나 쑨위잉이 협조하지 않자 경찰들은 그냥 가는 척했다가 30분 후 다시 와서 몰래 녹화기를 설치해 녹음과 녹화를 했다. 쑨위잉은 그들의 불법 행위를 지적하고 그들이 써온 것을 찢어버리며 선과 악에는 반드시 응보가 있다는 이치를 말해주자, 경찰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작은 녹화기를 가져갔다.

2021년 3월 22일, 자오허시 신눙가 정법위 가오퉁(高彤)은 신눙가 난황디촌 서기를 시켜 쑨위잉 집에 가서 신념을 포기하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들의 앞길에 지장을 주겠다고 위협했으나 쑨위잉은 거절했다.

2021년 5월 17일 오후, 신눙가 정법위 부서기 가오퉁과 부서기 탕(唐) 씨, 여직원 쉬(徐) 씨가 또 쑨위잉 집으로 와서 소란을 피웠다. 당시 쑨위잉은 농사일로 밭에 나가 있었기에 그들은 마을 부녀회장을 앞세워 밭으로 그녀를 찾으러 갔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쑨위잉의 남편과 시아버지를 위협했고, 지난번 가오퉁의 소동 사건이 폭로돼 해외에서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 바람에 그의 전화카드를 쓸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2023년 10월 27일, 자오허시 민주가 파출소 경찰 5~6명이 쑨위잉 집에 들이닥쳤다. 쑨위잉이 없자 경찰들은 시아버지에게 아들한테 전화해서 쑨위잉을 돌아오게 하라고 했다. 쑨위잉의 남편은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라고 했다. 10여 분 후 경찰은 쑨위잉의 시아버지를 밭으로 끌고 가 그녀를 찾았지만 실패하자, 다시 집으로 돌아와 불법 수색을 하며 모든 파룬궁 서적과 노트북, 쑨위잉 아들의 결혼식 영상이 담긴 USB 메모리를 압수해 갔다. 저녁 5시쯤 민주가 파출소 경찰이 차를 몰고 와 밖에서 일하는 쑨위잉의 남편에게 “쑨위잉이 돌아왔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집까지 뒤졌는데 돌아오겠어요?”라고 했다. 경찰이 또 “어디로 갔을까요, 친척 집 같은 데 있을까요?”라고 묻자 남편은 모른다고 했고, 경찰은 어쩔 수 없이 돌아갔다.

알려진 바로는 그날 30명 넘는 파룬궁수련자들이 납치됐는데, 최고 연장자는 70대였다. 거의 모두가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을 당했고, 일부는 좁은 철창에 갇혀 제대로 앉거나 설 수도,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마궈셴(馬桂賢), 류수판(劉淑范), 류수펀(劉淑芬), 장카이잉(姜開英), 위안언주(袁恩柱), 장수친(張淑琴) 등은 구치소로 끌려갔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3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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