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항상 인터넷 접속이 잘 됐다. 그런데 최근 수련생이 인터넷 접속이 어렵다며 자료 업로드와 다운로드를 도와달라고 했다. 도와주기로 했는데 그날 밤에는 접속이 안 됐다. 남편이 인터넷 우회 소프트웨어를 몇 번씩 바꿔줘도 접속되지 않았다.
다음 날 법공부 때 다음 설법을 읽었다. “수련 중에서, 바로 수련자가 언제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똑같은 심태를 유지하며, 로켓처럼 위로 올라가고, 정진 중에서 자신의 부동한 층차를 충실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부동한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구세력도 이 환경을 어지럽혀 사람 마음을 고험하는 등등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다.”(각지 설법12-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이런 난관은 수련을 정진해 돌파해야 하며, 수련의 표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날 밤,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한 것은 속인의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바로 전, 대보름 잔치에 참석했을 때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났고, 집에 돌아와 언니(수련생)에게 전화로 “오늘 기분 나쁜 사람을 만났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언니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그 사람과 관련 있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과는 접촉하지 않겠다는 관념을 늘 품고 있었다. 사람을 원망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보기만 하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런 마음이었으니 저녁 식사 후 인터넷 접속이 안 된 것이었다. 이 모든 게 어머니에 대한 정 때문이고, 그건 시험이었다. 내가 불쾌하게 여긴 그 사람은 단지 구세력에게 이용당한 것일 뿐이다.
어머니는 1996년 대법 수련을 시작하면서 명예와 이익을 모두 내려놓으셨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정은 내려놓지 못해 구세력에 틈을 주어 생사관을 만드신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과 견주어 볼 때, 착실히 수련하지 못했고 정진하지도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제고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잔치에 언니도 갔는데 그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언니가 보지 못했다는 말은 나에게 듣고 깨달으라는 말이 아닌가? 나도 그를 보지 않았다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법에서는 은혜와 원한이 마음을 번거롭게 만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건 바로 정으로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자의 마음이 움직이면 중요한 일을 지체하게 하거나 그르치게 한다.
수련 중에 부딪힌 모든 일은 되도록 잘 넘겨야 하며, 어떤 사람에 대해 생긴 좋지 않은 마음과 관념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누가 좋고 누가 좋지 않고, 누가 마음에 들고 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 집착 아닌가? 이것저것에 따라 마음이 움직인다면 어떻게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후에 혼자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되지 않았다. 인터넷 우회 프로그램을 바꿔봐도 소용없었다. 그때 법이 떠올랐다. “비(非)가 없으면 사람의 마음이고, 마음이 있으면 비(悲)가 아니다(無非是人心,有心不是悲).”(각지 설법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나의 이해로는 ‘비(悲)’자에서 ‘비(非)’를 없애면 ‘심(心)’만 남는다. 사람의 마음이 있으면 ‘자비심’이 나올 수 없다. 어제 그 일은 나의 자비심을 수련하도록 내게 배치된 것이 아닌가? 이는 사람마음을 버리라는 뜻이 아닌가?
그런 깨달음이 있은 후, 평소 사용하던 인터넷 우회 프로그램을 사용하자 신호가 잡혔고 명혜망도 열렸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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