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여 년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때론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쳐오기도 하고, 때론 심성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도 있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부딪히는 모든 사람과 일을 대법의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어려움을 쉽게 넘길 수 있겠지만, 현실에선 시련인 걸 분명히 알면서도 수련인답게 대하지 못해 전반 수련의 길에서 자주 넘어지고 비틀거렸습니다.
그럼 이제 제가 직접 겪은 두 가지 사건을 여러분과 공유해 보려 합니다.
1. 가방 사건
얼마 전, 한 수련생이 매주 정기적으로 우리집에 와서 자료를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매주 많은 자료를 들고 배포하러 다니는 걸 보더니, 자신이 바느질을 잘한다며 저렴하고 튼튼한 원단으로 가방을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박해가 막 시작되던 시기에 그녀가 만들어 준 큰 가방은 외지로 자료를 전달할 때도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그 후 그녀는 수련생들이 자료 전달과 배포에 쓸 가방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고, 저는 그렇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 자료를 들고 다닐 때 따로 개인 소지품을 넣을 가방을 메기 어려워, 자연스레 그 가방은 자료 전용이 아닌 일반 가방처럼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 번 값을 주려 했으나 그녀는 거절했습니다. 네다섯 개 중 하나는 제가 쓰고 나머지는 모두 수련생들에게 나눠 주었는데, 그들도 별생각 없이 당연한 듯 사용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퍼졌고, 꽤 심각한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가방이 점점 큰 파장을 일으키더니, 저의 협조인 역할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안으로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자금 관리에 있어서 누가 뭐라 해도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시내외 크고 작은 자료점들이 파괴되고 수련생들이 납치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마다 즉시 새로운 자료점을 세웠지만, 자료점이 널리 분포되어 있지 않아 안전상 위험이 컸습니다. 일부 수련생들은 자료점에 돈을 내는 걸 생각하지 못했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몇몇 수련생들만 돈을 냈습니다. 저는 그 돈을 단선 연락망을 통해 시내와 시골 자료점들에 전달했는데, 자금 관리에 아주 엄격했습니다. 지금까지 자금 문제에 대해선 떳떳하다고 여겼기에 저에 대한 소문이 돌아도 크게 마음 상하지 않았고, 스스로 결백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명을 쓴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수련의 길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특히 자신에게 직접 일어난 일인데도 저는 안으로 찾기보다는 사람의 마음으로 상황을 판단했습니다. ‘자료점 자금을 사적으로 쓴 적이 없고, 오히려 내 돈으로 기계를 수리하고 교통비를 댔는데….’
그때 제가 완강하게 가방값을 치르려 했지만 가방을 만들어 준 수련생이 거절하며 한참을 실랑이했던 게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지금이라도 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거절하며 마치 자신과 무관한 듯 굴었습니다. 하지만 주위의 소문 때문에 저는 그 돈을 자료점에 넣었고, 이제 제 결백함을 더욱 확신했습니다. 거짓 소문도 자연히 사그라들 거라 여기며 여전히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깊이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어도 험담에 동참한 이들을 경멸했습니다. ‘품행 좋은 일반인들도 저러진 않을 텐데’하고 말입니다.
얼마 뒤, 오랫동안 협력해 온 수련생이 가방 이야기를 꺼내며 누군가 저에 대해 안 좋게 말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순간 화가 치밀어 “내가 쓰는 가방은 다 명품이고 개당 1,500위안도 넘어요. 내게 그따위 가방이나 돈이 문제겠어요?”라며 서운함을 토로했습니다. 이렇게 일부 수련생들의 마음이 바르지 않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이렇게 가방 사건은 조금씩 제 마음속에 좋지 않은 물질을 형성했고, 무의식중에 진실을 밝혀 결백을 입증하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왜 계속해서 험담이 들려오는지, 안으로 찾아보고 어떤 집착을 제거해야 하는지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두어 달 지나 더욱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을 때도, 이런 일이 수련생들 사이에선 있어선 안 된다며, 속인들이나 할 짓이라고 치부했습니다. 제가 그들보다 높은 경지에 있다고 여기며 그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으려 했지만, 여전히 안으로는 찾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가방을 만들어 준 수련생 집에 갔는데 그녀는 표정이 어두웠고 어투도 이상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입을 열어 “그 가방 값을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황해하며 “여러 번 드리려 했는데 거절하셔서 자료점에 넣었어요”라고 했더니, 그녀는 화를 내며 “누가 자료점에 넣으래요? 난 그런 적 없어요. 당장 내놔요”라고 윽박질렀습니다. 모멸감에 그 자리에서 바로 돈을 건넸더니 그제야 그녀는 만족해했습니다. ‘무슨 사람이 이렇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더욱 흔들렸지만 겉으론 티 내지 않고 “아주머니, 이제 깨끗이 정리된 거죠? 앞으로 예전처럼 잘 지내요”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녀도 기뻐하며 알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평소처럼 찾아갔더니 그녀는 저의 방문 후 매우 후회했다며 돈을 도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엔 제 마음도 가라앉아 있어서 “아주머니, 속인들 사이에 이런 일 있었다면 얼굴 붉히고 다시는 서로 만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우린 수련인이잖아요. 계속 법에서 서로 협력해요”라며 그녀를 안심시켰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전개된 건, 제 마음이 외부적인 충격으로 닦인 것이지 적극적으로 안으로 찾아 바로잡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제가 고상하며 그들과 식견을 나누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심성에 대한 고비가 점차 높아졌습니다.
사건 초기에 수련인의 자세로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했다면 이렇게 끝없이 반복되진 않았을 겁니다. 결국 이 일련의 상황들은 마치 연극처럼 계속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사건에 연루된 수련생들이 하나같이 주연과 조연, 감독의 역할을 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문제의 근원이 오로지 저에게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법의 높은 기준에서 저 자신을 단속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수련생의 호의를 함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텐데 어찌 이런 사태까지 번질 수 있었겠습니까? 수련생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은 분명 수련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당시의 사소한 일들과 관련된 모든 이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니, 제가 평소 어느 수련생과 대할 때나 평화롭고 너그러우며 상처 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깨달음이 왔습니다. 모든 게 저 자신이 초래한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 수련생과의 관계는 소원해지진 않았습니다. 그 일 이후로 그녀는 저를 아주 신뢰했고 우리 사이엔 더는 어색함이 없었습니다. 밖에서 대면해 진상을 알릴 때는 시장이나 길거리, 골목에서 종종 마주치곤 했는데 그녀도 열심히 진상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서로 몇 마디 격려와 응원의 말을 주고받는 건 잊지 않았습니다.
2. 컴퓨터 사건
작년에 저는 두 번째 사건을 겪었습니다. 아주 가까운 수련생들과의 일인데, 그들과 함께 수련한 지 어언 17년이 넘었습니다. 이번엔 감정이 북받쳐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 수련생의 컴퓨터를 무상으로 사용해서 그녀의 자녀에게 원망을 샀기 때문입니다. 수련생들은 선한 마음으로, 잘 처리해서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어야 한다고 일깨워주거나, 수련생 사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잘 처리하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온갖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오랜 기간 그 수련생 가족과 쌓아 온 정과 컴퓨터의 내력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그 수련생은 컴퓨터를 구매한 후 한동안 사용하지 않고 방치했고, 저는 두 대의 컴퓨터가 필요한 상황이라 쓰지 않는 거라면 양해를 구하고 그녀의 컴퓨터를 사용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흔쾌히 승낙하며 좋은 일에 써 달라며 기뻐했습니다.
그 컴퓨터는 오로지 대법 항목에만 사용했고 사적인 용도로는 일절 쓰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이 동요된 건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수련생 자녀에 대한 각별한 정 때문에 그 아이의 섭섭한 태도가 저를 더욱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그는 제 제자였고 각별히 아꼈던 터라 오랜 사제지간이 이렇게 틀어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더군다나 그 인연은 대법 중에서 맺어진 성스러운 인연이었습니다. 마치 전생의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것처럼 그 가족과는 늘 특별히 가까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이번 갈등을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컴퓨터 사건이 일어난 후, 속인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그 컴퓨터를 개인 재산으로 여기고 쓴 게 아니잖아. 그 아이는 6년이나 나에게 보충 수업을 들었는데, 다른 과외 선생님은 한 시간에 300위안씩 받았지만 나는 훨씬 저렴하게 받았는데…. 나는 최선을 다해 수학 보충수업을 해주고 고1, 고2 때는 한 시간에 70위안, 고3 때는 80위안을 받았어. 정상 과외비로 두 달치만 해도 3천여 위안을 적게 받았는데, 그간 아낀 돈이 얼마나 돼? 그럼 그 돈으로 컴퓨터를 몇 대나 더 살 수 있겠어? 고작 2천 위안짜리 컴퓨터 하나로 이렇게 원망하다니….’ 한편으론 애초에 안 쓰던 컴퓨터인 데다 사양도 낮아서 큰돈 주고 산 것도 아닌데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밤새 뒤척였습니다. 세속의 정에 빠져 사람마음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억울함을 토로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날 밤, 슬픔에 잠겨 생각했습니다. ‘나는 수련인이야. 수련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말고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해.’ 관련 법을 외우고 또 외우면서 최대한 빨리 정에서 벗어나고, 사람마음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결국 저는 컴퓨터값을 수련생에게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돈을 주려고 할 때 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이 컴퓨터는 8년이나 됐는데 이제 와서 감가상각도 없이 다 갚으라니…. 전액 다 주면 귀띔이라도 해서 내가 그녀에게 빚지지 않았다는 걸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돈으로 따지면 그녀는 나에게 이미 몇만 위안이나 빚졌는 걸….’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어느새 또 사람마음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문득 ‘이런 낡은 컴퓨터가 그 정도의 값어치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웬일인지 그 뒤로 컴퓨터에 고장이 나더니 부팅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새 컴퓨터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때서야 저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컴퓨터에게 속으로 말을 건넸습니다. ‘컴퓨터야, 미안해. 내 불평하는 마음 때문에 네가 제대로 작동을 못 하는구나. 다 내 잘못이야. 당장 모든 좋지 않은 생각을 버리고, 사람마음 때문에 수련생과의 성스러운 인연을 망치면 안 돼. 우리 사이에 누가 누구에게 빚졌다는 건 없어. 서로 이해하고 관용하면서 바른 수련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뿐이야.’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신기하게도 컴퓨터도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새 컴퓨터를 사지 않고 계속 그 컴퓨터를 쓰고 있습니다.
수련생 사이의 성스러운 인연을 생각하니 마음속에선 감동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저는 그 수련생을 원망하거나 제가 억울하다고 귀띔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얼른 컴퓨터값을 주었는데, 그때의 제 마음에는 일말의 불평이나 동요도 없이 겉과 속 마음이 일치했습니다. 억지로 웃는 얼굴로 마음의 응어리를 감추는 그런 위선이 아니었습니다. 원만하게 일을 처리한 덕에 파장 없이 수련생과의 관계도 예전처럼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됐습니다.
이 두 차례의 사건을 통해, 문제가 일어난 근본 원인은 모두 남의 물건을 공짜로 썼다는 데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익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것입니다. 작은 이득에 연연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그런 마음 말입니다. 비록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앞으로는 반드시 이런 일들을 바로잡고 올바르게 처리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수련이란 조건 없이 하는 것입니다. 대법 일을 하는 것 역시 조건 없이 해야 합니다. 제가 진상을 알리는 일을 한다고 해서 수련생들이 저에게 무조건 협조하고 무상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모든 일은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우린 모두 수련하는 사람인데 제가 무슨 자격으로 다른 수련생의 컴퓨터를 공짜로 쓸 수 있습니까? 생각해볼수록 제 처신이 부족했음을 통감하게 되었습니다.
수련의 길에는 이렇듯 고통스러운 일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그때마다 조건 없이 자신을 수련하고 안으로 찾는다면 갈등과 시비를 신속히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누가 옳고 그른지 가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찾고 수련해야 할 요소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이 두 차례 사건을 쓰면서도 처음엔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 이 일들을 글로 남기려 하는지, 그 근본 목적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걸러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펜을 들 때쯤엔 이미 수련인의 자세로 임할 수 있었습니다. 안으로 찾는 이 법보(法寶)가 수련인들에게 가져다주는 변화를 나누고 싶게 됐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그때의 상황들을 회상하면서 지나간 일들이 마치 영화처럼 제 눈앞을 스쳐 갔습니다. 수련생들의 표정, 성격, 천성까지도 상세히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안으로 찾는 원칙으로 저 자신을 되짚어가며 원고를 마무리 짓자, 그 모든 이들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다시 제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들의 해맑은 웃음을 바라보니 너무나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워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 찰나 다른 공간에선 틀림없이 천지개벽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을 겁니다. 제 이곳이 변했고, 심성이 승화되었으며, 안으로 찾는 법리에 따라 주위의 모든 것이 순조로워지고 막힘없이 통했으니까요. 수련이란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오묘한 것입니다!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원고를 마무리하기까지, 내내 제 마음은 ‘안으로 찾는’ 법리로 씻기고 정화되었습니다. 그 느낌은 너무나 아름답고 신성했습니다. 글 속에서 사람마음의 잔재를 발견하면 즉시 그것을 닦아내고 고쳐 나갔습니다. 글을 다 쓰고 나자 온 마음이 맑고 깨끗해진 것 같았습니다. 마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깨끗이 씻긴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자비롭고 조화로운 에너지장이 저를 감싸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 속에서 모든 극단적인 생각들이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주위의 모든 수련생이 너무나 고귀하게 느껴집니다. 모든 수련생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을 열고 손을 잡고 아름다운 천국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는 아름다움을 깊이 느꼈습니다.
자비로운 사부님의 가지(加持) 아래 안으로 찾아 꾸준히 착실히 수련하다 보니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예전엔 도량이 좁았지만 이제는 아량도 생기고 인내심도 커졌으며, 수련의 길에서 점점 더 굳건해지고 있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3/25/4709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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