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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수련하며 박해받는 수련생들을 구출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우리 가족과 친척 중 많은 사람이 대법을 수련하고 있다. 친척들이 연이어 법을 얻고 수련을 시작할 때 나는 타지에서 학업 중이었고, 친척 중 같은 세대 가운데 나는 가장 늦게 대법 수련에 입문했다. 내가 법을 얻을 때는 중공 악당의 박해가 이미 시작된 뒤였다. 내가 박해에 반대하며 수련생 구출 과정에서 겪은 수련 체험과 깨달음을 적어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친척 수련생 A 구하기

2002년 3월 5일, 중국과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창춘 케이블TV 삽입방송이 성공한 후, 중공은 현지 대법 수련생들에 대한 대대적 검거를 시작했다. 친척 A는 출근 중 호적지 파출소 경찰과 직장 보위과 사람들의 공모로 납치돼 시 구치소에 수감됐다. 며칠 전에 A는 막 모범 근로자로 회사에서 공개 표창을 받을 예정이었다.

봄의 쌀쌀한 기운 속에 경찰차는 늑대가 울부짖는 듯한 사이렌을 울리며 도처를 누볐고, 도둑질이나 강도 같은 형사 사건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파룬궁수련자들만 붙잡았다. 당시 거리의 치안이 특히 나빴다. 나는 밖에 나가 10분 정도 걸었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소매치기에게 지갑을 도둑맞았다. 우리 친척들의 심정도 아주 우울하고 긴장됐다. 매일 어느 이웃, 어느 수련생이 경찰에게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A의 아내 B는 A의 직장에 가서 따져 묻고 싶어 했고, 나는 그녀와 함께 갔다. 회사 보안과에서 들어갈 때 등록을 하는데 B의 손이 떨렸다. 나는 B에게 “우리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 뭘 두려워해요!”라고 말했다. 사실 내 마음도 긴장됐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모두 선량하고 본분을 지키며 자제력 있는 사람들이라 경찰과 상대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B가 겁내는 걸 보니 나는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게 됐고, 반드시 회사와 경찰에게 이치를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문을 들어서자 아무도 우리를 맞아주지 않았다. 간부들은 모두 아침 회의 중이었다. 우리는 좀 기다렸지만 여전히 아무도 우리를 상대해 주지 않자, 나는 B의 손을 잡고 간부들이 회의하는 방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큰 소리로 말했다. “A는 제 친척인데 여러분 회사에 출근하다 경찰에게 끌려갔어요. 그가 무슨 죄를 지었나요? 살인방화라도 했나요? 아니면 강간이나 강도질이라도 했나요? 그는 여러분 회사에서 두각을 나타내 막 표창을 받았는데, 어째서 경찰이 그렇게 훌륭한 직원을 잡아가도록 내버려 두었죠? 이유를 말해주세요!”

회의 중이던 간부들이 고개를 들었고, 앞에 앉은 한 사람이 우리에게 먼저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저 아가씨 정말 대단하네”는 속삭임을 들었다. 사실 A는 수련을 통해 좋은 사람이 됐고 직장에서 두루 칭찬을 받고 있었다. 간부들도 모두 그의 억울함을 알고 있었다. 나중에 직장 간부는 구치소, 파출소와 적극 소통하고 보증했으며, A를 위해 인력과 물력을 들였다. A가 불법 구류되는 동안 전문 인력을 파견해 매일 구치소에서 함께 있었고, 그가 고생할까 봐 걱정하며 A가 석방될 때까지 계속 동행했다. 그래서 A는 계속 박해받지 않았다.

친척 수련생 C가 구타당해 불구가 되다

2003년 사스가 기승을 부릴 때 나는 타지 학교에 고립되어 있었는데, 친척 C가 사고가 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가 세 들어 살던 집이 엉망이 됐고 사람은 실종됐다. 친척들은 도처에서 소식을 물었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몇 달 뒤 어느 날, 한 친척이 병원 부근에서 C가 경찰차에 실려가는 걸 보고 뒤따라가 물었더니, C는 자신이 아프다고 했다. 경찰은 아는 사람을 만난 걸 보고 황급히 C를 경찰차에 태워 끌고 갔다.

이후에 친척들이 C의 직장에 찾아가서야 그녀가 진상을 알리러 외출했다가 악인의 고발로 납치돼, 경찰의 고문을 당하고 그 자리에서 두 팔이 불구가 되어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됐음을 알게 됐다.

학교가 봉쇄 해제된 후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 분위기는 처참했고 모든 친척들은 말이 없었으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D는 가서 사람을 데려오자고 주장했고 C를 구출하자고 했다. E(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음)는 C가 이후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텐데 집에 데려와도 돌봐줄 사람이 없을 거라고 걱정했다. 당시 사부님께서 막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을 발표하셨는데, 나는 타지에서 공부하느라 사부님 설법을 제때 보지 못했기에 먼저 서둘러 경건히 설법을 읽어보았다. 법을 다 공부하고 나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잘 알게 됐다. 나는 D의 의견에 찬성했고 E와도 의견을 통일해 우선 사람을 데려온 다음에 생각하자고 했다.

우리 세 사람은 함께 시 공안국에 갔다. 한 간부처럼 생긴 사람이 위선적으로 말했다. “왜 이제야 오셨나요? 벌써 몇 달이나 지났는데요! 그녀는 파룬궁을 연마해서 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감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추궁했다. “그녀가 어떻든, 어떤 조치를 받든, 왜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습니까? 거주지 감시도 특수한 상황이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어떤 조건에 부합합니까? 도대체 그녀는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신들은 아무 절차도 없이 사람을 가두고, 산 사람이 사라진 듯이 만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법을 집행하는 게 법에 부합합니까?” 얼굴에 살이 가득한 까만 뚱보 경찰이 즉시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큰소리로 고함쳤다. “무슨 사람이 사라졌다는 거야? 내가 말해주겠는데, 내가 누구를 노동교양 보내고 싶으면 보내는 거고, 내가 몇 년이라고 하면 몇 년이야!”

이번에 경찰을 대면한 후 수련하지 않는 E도 경찰들이 비록 겉으로는 호통을 쳤지만 사실 내심은 아주 두려워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은 야만적으로 법을 집행해 사람을 불구로 만들었으니 가장 두려워하는 게 가족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이후에 D와 E가 또 한 번 가서 요구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C는 풀려났다.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고, E가 걱정했던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네 명의 친척이 동시에 납치되다

2012년 가을, A, B, C, D 네 명의 친척이 동시에 납치되고 집안이 수색당했으며, 교외 각기 다른 곳에 감금됐다. 모든 친척 가정이 박해당했고, 80대 노인은 돌봐줄 사람이 없었으며, 타지에서 공부하는 자녀는 부모가 감옥에 갇혔다. 경찰은 계속 날 찾고 있었다. 수련하지 않는 친척들은 초조해하고 화를 냈으며, 병들거나 두려워했다. 불법 감금당한 친척들에게는 면회하러 가서 옷과 돈을 전해줘야 했다. 당시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악당 18대 시기에 그들이 불법 판결을 받게 될 거라고 했다.

친척 중에서 나는 법을 늦게 얻었기에 그들이 보기에 나는 신수련생이었고, 수련 중 많을 때 그들과 교류하며 그들이 어떻게 법리를 깨닫는지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들이 감옥에 갇히자 나는 그들과 상의하거나 교류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에겐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었다. 나는 F수련생과 적극적으로 연락해 구출 경험이 있는 수련생과 함께 구출 행동을 전개했다. 우리는 친척들에게 경찰에게 돈을 주고 그들을 석방시키려는 행위를 만류했고, 끊임없이 진상을 알렸으며, 친척에게 파출소, 공안국, 정법위원회, 기율검사위원회, 감옥 관리대, 시 정부, 구 정부, ‘610(파룬궁 탄압기구)’, 검찰원, 법원 등 각급 기관에 가서 석방을 요구하도록 격려했다.

수련생 구출 과정에서 나는 수련이 무엇인지 진실로 체험했다. 집착을 도려내는 고통 속에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품고, 감정과 사람의 마음에서 벗어나는 수련의 길을 실천했다. 한번은 내가 구치소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D의 의료보험증을 요구하며 그녀가 병원에 갈 때 필요하다고 했다. 또 한번은 집안 노인이 쓰러져 입원해 간병할 사람이 필요했다. 또 들으니 C가 구치소에서 병원에 끌려갔다고 했다. 또 한번은 집안 속인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우리를 욕하고 비방했다. 이럴 때마다 낙심하고 의기소침해지며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나는 법공부를 하러 갔고 대법 법리의 격려 속에서 다시 용기를 내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구출 과정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모든 중생에게 자비로우시며 모든 사람을 구하고 계심을 진실로 이해하게 됐다. 억울한 사건을 처리하는 한 판사가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정말 억울해,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야.” 시 민원사무실 접대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건 처리 기관과 연락해 주었고, 주재 검찰관이 자발적으로 친척 수련생이 있는 감방에 면회 갔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대법 수련자들이 겪은 억울한 사정을 말할 때 감옥 교정과 과장은 엄숙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대신했고, 구치소장, 정위 일행은 정중하게 집으로 와서 노인을 문병했다. 붉은 공포가 만연한 가운데, 공안, 검찰, 법원에 몸담고 있던 이 사람들 중 일부는 진상을 모르고, 일부는 권세에 굴복해 대법 박해 업무에 배치됐지만, 대법제자와 접촉하고 진상을 알게 되는 기회가 있었다. 그들이 행한 모든 선행은 자신의 입장을 결정하고 생명이 구원받을 기회였다.

구출 과정에서 나는 중생이 구원되는 기쁨을 진실로 체험했다. 집안의 수련하지 않는 속인들은 구출 과정에 참여하면서 대법 진상과 수련인의 선량함, 중공의 독재 폭정과 불량배 본성을 더욱 깊이 알게 됐다. 오해에서 지지로 바뀌었고, 심지어 공개 자리에서 대법 진상을 말하게 됐으며, 사악의 정신적 속박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진상을 알리는 ‘살아 있는 매체’가 됐다.

구출 과정에서 나는 사부님의 끝없는 자비와 무한한 법력을 더욱 진실하게 체험했고, 사부님께서 항상 지켜봐주신다는 것을 체험했다. 어떤 연락처도 없었지만 수련생를 만나고 싶으면 만나게 됐고, 수련생이 감금된 감방의 전화번호를 알고 싶으면 감옥경찰이 인터폰에서 말해줬다. 고립무원할 때는 눈밭에서 타지 수련생이 수감 중인 수련생에게 우편으로 보낸 글씨체가 단정한 안부 카드를 보았고, 여러 곳에서 피어난 우담바라 꽃도 보았으며, 많고 많은 신기한 일들이 있었다. 걸음마다 진전이 어렵고 몸과 마음이 피곤할 때, 마치 첩첩산중이고 물길이 막힌 듯할 때, 대법의 요구에 따라 견지하기만 하면 희망이 보이는 전환점이 나타났다. 사부님 말씀과 같았다. “그러나 그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포는 오직 수련하는 사람이 부동(不同)한 층차 중에서 진정으로 수련해야(眞修)만 비로소 체험하고 깨닫고 나타낼 수 있으며, 비로소 법(法)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볼 수 있다.”(정진요지-박대)

정체(整體) 협조, 가족을 격려해 수련생 구출하기

공안, 검찰, 법원 사람들을 대면하고 나서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박해에 반대하라고 하신 의미를 더 잘 이해했고, 수련자에 대한 가족의 태도가 사악이 수련생을 박해하는 정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도 더욱 깊이 인식했다. 나는 능동적으로 다른 수련생 구출에 참여했는데, 주로 박해받은 수련생 가족이 나와서 자신의 가족을 구출하도록 격려하는 것이었다.

한 여성 수련생과 그녀의 어머니가 동시에 납치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집에는 수련하지 않는 남동생만 남았다. 경찰이 창문을 깨고 들어와 수련생을 납치할 때 남동생의 다리까지 다치게 했다. 남동생은 원한이 있어서 누가 그 집에 문병 가도 상대하지 않았다. 나는 두 수련생과 함께 그의 집을 찾아갔는데, 처음에는 집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문밖에서 말하게 했다. 우리는 그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인내심 있게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법률을 이용해 가족을 구출하도록 격려했다. 몇 번 간 후 그는 우리의 선의를 느끼고 우리를 집에 들어오게 했으며 자리도 내주었다. 하지만 그는 변호사에게 희망을 걸지 않고 아무 소용이 없다고 여겼으며, 돈도 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 인권 변호사가 우리 지역에 와서 다른 수련생을 변호했는데,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나서 바로 이 남동생을 찾아가 함께 변호사가 묵는 호텔에 갔다. 변호사는 아주 바빴고 동시에 여러 가족의 질문에 답하면서 각자의 사건 내용에 따라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분석해줬다. 이 남동생은 옆에서 변호사의 분석을 듣고 나서 고민을 털어버리고 자신의 누나와 어머니를 위해 인권 변호사를 고용하려 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 남동생을 격려했고, 명절 때마다 선물을 갖고 그를 보러 갔다. 그의 정의감은 점점 더 강해졌고 어머니와 누나를 위해 무죄 변호를 해줄 인권 변호사를 위임했으며, 자발적으로 차를 몰고 변호사를 데리러 다녔고, 때로는 다른 박해받은 가족이 변호사를 마중 나가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의 집안 사건은 우리 지역에서 몇십 년 만에 보기 드문 공개 재판을 하고 변호사의 법정 변론을 허용한 사건이었다. 이 남동생은 현장에서 변호사의 논리정연한 변론을 들었고, 검사는 현장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그를 쳐다보지도 못했으며, 그는 이런 경험을 통해 대법 진상을 더욱 명백히 알게 됐다. 사건이 끝난 후 그는 법률을 독학해서 변호사 시험을 보고 변호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한 노부부는 고급 지식인으로 고위 간부 대우를 받고 있었는데, 그들은 악당의 기득권층으로 공산당 문화의 독소에 심각히 중독되어 대법에 대한 태도가 사악했다. 그들의 아들, 며느리가 신념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자주 박해당하자, 이 노부부는 매번 인맥을 통해 사람을 찾는 방식으로 자녀가 당하는 박해 정도를 완화하려 했고, 심지어 파출소장을 불러 구치소에 함께 가서 자녀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권유하기까지 했다. 어떤 수련생이 과일을 사서 두 노인을 문병 갔는데, 노부인은 오히려 선물을 문밖으로 던져버리고 아래층까지 차버리면서 수련생의 선의를 문전박대했다.

우리는 그들의 겉모습에 이끌리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사례를 들어 그들에게 말해줬다. 진심으로 자식을 돕고 싶으면 법률을 이용해 자식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고 했다. 이후 노부부는 정말로 두꺼운 법률 서적을 사서 돋보기를 쓰고 진지하게 탄원서를 쓴 후 각급 기관에 가서 말했다. 나는 수련생과 끊임없이 그들을 보러 갔고, 매번 정성스레 고른 선물을 가져갔으며, 설, 단오, 추석 때 생활상 그들을 관심 갖고 도와주고 묘안을 내주었으며, 법률 문서를 수정해주는 한편, 그들에게 중공의 사악함과 대법제자의 선량함을 알려주고 노부부가 대법제자의 선량함을 느끼고 대법의 제도를 받기를 희망했다. 그들은 심하게 세뇌를 입어 대법을 완전히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견지한 노력 덕분에 그들은 수련인의 이타적인 면모와 선량함을 느꼈고, 아들과 며느리의 억울함을 이해하게 됐다. 노인은 심지어 아들을 위해 법원 판결문에서 잘못 계산한 형기를 찾아내 해결하기도 했고, 아들 며느리를 위해 거짓 증언한 소위 ‘증인’을 고소하려 하기도 했다.

맺음말

세월이 흘러 대법 중에서 수련한 지 벌써 20여 년이 됐다. 내 수련 과정은 거의 대법이 중국에서 박해받은 과정과 함께했다. 내 수련의 길을 돌이켜보면서 자비로우신 사부님께 늘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는 날 선택하시고 지켜봐주시며, 붉은 공포 속에서도 수련을 견지하게 하시고 오늘까지 이끌어주셨다. 오직 끊임없이 정진해 사부님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우신 제도에 보답할 따름이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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