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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이익, 정을 내려놓고 사람에서 벗어나다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정련(淨蓮)

[명혜망] 작년 봄 나는 베이징 외곽에 있는 딸의 집에 산후조리를 도우러 갔는데, 가는 길에 많은 고생을 겪고 겨우 딸 집에 도착했다.

1. 명예, 이익, 정 속에 빠지다

딸 집에 도착한 후에도 일은 순조롭지 않았는데 3일도 좋은 일이 없었다. 나는 사돈의 건강을 생각해 힘든 일은 되도록 내가 했다. 장을 보러 시장에 가면 비록 길이 멀어도 식자재를 내가 다 들었으며, 사돈은 잠깐씩 나 대신 들었다.

사돈은 뭘 먹고 싶으면 아들 집이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스스럼없이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이든 다 만들어 먹었다. 딸은 사돈이 한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 때도 웃으면서 맛있다고 했다. 하지만 날 대할 때는 태도가 달랐다. 딸은 시어머니랑 사위와 같이 있을 때는 웃고 떠들다가도, 나와 함께 있으면 냉담하고 웃음이 적었으며, 심지어 가끔 나와 다투면서 울고불고했다. 그러면 나는 딸 옆을 떠나 침실로 돌아왔는데 그때마다 슬픔과 상실감에 빠졌다. 나는 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딸의 산후조리를 위해 죽을 끓여줬는데 인덕션에서 스테인리스 냄비로 조리하다가 가끔 냄비 아랫부분이 검게 됐는데 사위는 그때마다 잔소리를 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생각했다.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냄비가 얼마나 한다고, 집에서 애를 돌보고 온 가족을 보살피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하는데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잔소리만 하다니.’ 사위와 사돈은 바닥이 더럽다느니, 내 옷을 그들의 옷과 따로 세탁하니 전기랑 물이 많이 든다느니 하면서 뒤에서 수군거렸다.

딸 집에 오려면 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해서 사용할 물건을 많이 가져오지 못하고 옷 몇 벌만 가져왔다. 나는 매일 아기를 안고 있어서 아기가 변을 보거나 오줌을 싸거나 자주 토해서 옷을 바로 갈아입어야 했으며, 또 세탁물을 말리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바로 옷을 빨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들의 옷과 같이 세탁할 수 있겠는가?

이전에 딸은 “집에서 제 교육비를 내시느라 돈이 많이 들었는데 결혼지참금은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대대로 농사지으며 딸을 대학원까지 졸업시키고 아들도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학비를 대느라 농사짓고 잡일까지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우리는 아직도 임대주택에서 살고 있으며, 아들은 아직 결혼하지 않아서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다. 딸의 교육비로 20만 위안(약 3,700만 원) 이상을 지출했지만 딸 결혼 때 남자 측에 예물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위와 그 부모의 월급을 다 합쳐도 딸 월급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딸은 그 집안의 가장과 같았다.

나는 딸의 시댁 식구들이 당연히 만족하고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고마워하기는커녕 도리어 우리에게 지참금을 요구했으며 딸은 눈물을 흘리면서 “시집갈 때 집에서 아무것도 받지 못했어요”라고 말하면서 서운해했다. 나는 이전에 효심이 깊고 이해심 많던 딸이 딴사람이 된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 날 나는 사돈과 갈등이 생겨 화를 내면서 “우리 딸은 이전에 자기가 교육비를 많이 써서 결혼지참금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 했어요. 지금 딸의 저런 행동은 모두 당신들의 영향을 받은 거예요”라고 말했다. 사돈은 잠깐 말을 멈추더니 다시 욕을 시작했다. 나는 욕을 하려다가 자신은 연공인이기에 욕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참았다. 욕을 하진 않았지만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저녁에 혼자 침실에 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해서 눈물이 났고 몸은 나른해 힘이 없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딸이 효심이 깊어 공부시킨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 했다. 딸이 사위와 사귀기 전에는 효심이 깊었으며 대학에 다닐 때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을 알기에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딸은 집에 있을 때면 날 도와 종종 집안일을 하기도 했다. 내가 아파트 경비 일을 할 때 겨울에 큰 눈이 내리면 딸은 날 도와 눈을 쓸었고, 나는 그런 딸의 모습을 보니 추운 날씨였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우리는 딸을 대학뿐만 아니라 대학원까지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했고, 딸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게 됐다. 딸은 출근하게 되면서 나에게 경비를 서지 못하게 했고, 우리를 위해 아파트를 임대해줬으며, 동생의 교육비를 부담하겠다고 했다. 나는 “너희 아빠가 아직 뒷바라지할 수 있으니 동생 교육비는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순수하고 착했던 딸이 오늘날 이렇게 생소하게 느껴질 줄은 생각지 못했다.

2. 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람 속에서 나오다

딸 집에서 돌아온 후 매번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답답하고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가슴과 등이 아팠으며 뼈 마디마디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마음속은 짜증으로 가득했고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완전히 자신을 속인으로 생각했다.

정말 부끄러웠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는데 내 이런 일들은 다 뭐란 말인가? 이 모든 것은 사람마음 때문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날 구하시기 위해 내 업력을 제거해주셨고 신체를 정화해주셨다. 내 이 몸은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서이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이지, 편안히 살거나 향수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다. 내 몸은 중생을 구하는 사명을 가진 대법 자원이기에 나는 훼손할 권리가 없다.

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나는 중생 제도를 책임져야 하기에 신체의 건강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중생 제도를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한 신체로 대법을 실증해야 하며 대법에 먹칠해선 안 된다.

지금 내가 겪는 일들은 자신의 과시심과 환희심으로 인한 것이다. 나는 딸이 효심이 깊고 직업도 좋다고 생각해서 사람들 앞에서 자주 자랑했는데, 이것을 내가 수련 잘했다는 증거로 생각했다. 사람들이 칭찬 몇 마디를 하면 나는 속으로 기뻐했는데 이는 얼마나 더러운 마음인가. 이는 거짓 자아의 표현이기에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이 일에는 쟁투심, 명예욕, 금전욕, 체면, 딸에 대한 정, 원망, 불평과 보상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어떤 일이든지 모두 인연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내가 어느 한 생에 딸에게 빚을 졌고 이번 생에 딸이 빚을 받기 위해 우리집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딸이 시집간 시댁도 딸이 전생에 진 빚을 갚기 위해 그곳에 갔을 것이다. 나는 점차 딸에 대한 정을 내려놓게 됐고, 사위 집안을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자 마음의 용량이 점차 커졌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과 수련생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내 몸은 나날이 좋아졌고 한 달 후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번 우여곡절을 통해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난에 직면했을 때 사람의 이치로 생각하고 처리하면 막다른 골목에 들어간 것과 같이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정진하고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해야 하는 것으로, 그래야만 그 난이 바로 수련제고하는 기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원문발표: 2024년 2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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