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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문장 ‘자아에서 걸어 나오다’를 읽고 깨우친 것

글/ 산둥성 대법제자 우진(宇眞)

[명혜망] 나는 ‘자아에서 걸어 나오다’라는 교류문장을 읽고 깊이 감동해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우리 법공부 팀에서 수련생 A는 늘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자기 의견만 주장했고, 수련생 B와 C는 그런 점을 지적했다. 지적받은 A는 받아들이듯 했지만 변한 게 없었다. 그 후 법공부 때도 상황은 역시 마찬가지여서 법을 얻은 지 얼마 안 된 수련생 D마저 A에게 대드는 것 같은 말을 하게 됐다. 보다 못한 나는 이제 그만하라고 A에게 눈치를 주면서 만류했지만, 그래도 A는 날 무시한 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순간 난 참지 못하고 “수구(修口)하세요!”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A는 “맞아, 수구가 맞아. 내가 잘못했네”라고 말을 멈췄지만, 역시 자아는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법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그녀가 왜 계속 깨닫지 못하는지 생각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 ‘자아에서 걸어 나오다’란 문장을 읽다가 문득, ‘오히려 나에게 강한 자아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나 자신이 관념으로 남의 시시비비를 가리려 했고, 말로서 남을 억누르기만 하면서 나 자신의 자아는 살펴보려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사람 사이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 제삼자가 보게 됐다면, 제삼자도 ‘나 자신은 어디에 잘못이 있는가, 왜 나에게 보게 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미국동부법회 설법) 이런 경우 마음을 닦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수련이 아니다.

교류문장에서는 ‘자아’는 고립되어서는 안 되고, 남에게 신임받지 못해도 안 되고, 무시당해도 안 되고, 남이 나보다 잘나도 안 되는 등등을 열거했다. 바로 이런 ‘자아’가 나에게 있음을 알았다. 어떻든 자아는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 상처를 회피하려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오늘 폭로된 것이다. 자아는 진정한 내가 아니고 이기적인 것이므로 바로 수련으로 닦아버려야 한다. 왜 지금까지 그걸 발견하지 못했는지 후회했다.

며칠 전, 한 수련생이 나에 대해 말한 것이 생각난다. 그녀는 나와 함께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 부부는 자신들은 물론 다른 수련생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모두 나와 직접 교류하기를 꺼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만약 내가 그 말을 듣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도 자신이 꽤 괜찮게 수련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자아는 매우 강해서 타인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생각만 강요한다. 만약 그들의 지적을 듣지 못했다면, 나는 스스로 표준에 맞게 수련을 잘하고 있고, 다른 수련자들에게 법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계속 그렇게 했다면 오히려 다른 수련생들에게 부담만 줬을 것이다. 나는 자아가 그렇게 강했는데도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A의 그런 언행을 보고 나는 자신을 찾아본 적이 없었다. A가 바로 나에게 보여준 표현인데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사부님께 죄송함을 금할 수 없다. 그동안 시험지 문제를 풀지 못하는 꿈을 꾸고, 열쇠를 잃어버린 꿈을 꾸었는데, 이것이 바로 깨닫지 못하는 날 지적하신 게 아닌가. 깊이 숨겨진 자아를 드디어 오늘 찾았다. 그것은 원래 내가 아니고, 내가 원하지도 않는 것이다. 나는 나의 본래 본성 즉, 사심 없고 자아가 없는 새로운 우주의 본성을 수련해내야 한다. 무슨 일이든 내 안에서 찾아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면을 수련해내야 한다!

사부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10/4707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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