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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을 버리고 가정 고비에서 걸어 나오다

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수련한 지 이미 24년이 됐지만 어제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정당당하게 집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할 수 있게 됐다.

1. 결혼 후 감옥에 들어간 것처럼 20년간 욕설과 매를 맞다

나는 한 속인과 결혼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집은 매우 가난했다. 남편은 대학 졸업 후 회사에 입사했지만 얼마 안 가 휴직하게 됐다. 내 급여는 매우 낮아서 시어머니는 날 깔보셨다. 내가 팔자가 나쁘다며 욕하셨고 늘 남편을 부추겨 날 때리게 하셨다. 그들 일가족은 내 수련은 더더욱 받아들이지 못했다.

1999년 박해가 시작되자 남편은 대법 책을 전부 없앴다. 나는 마음속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반항할 용기가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이미 남편에게 매를 맞아 두려움이 생겼고 시부모님이 무서웠다. 시어머니가 문 여는 소리만 들어도 손이 떨렸다. 이 집에서 내가 무엇을 해도 모두 틀렸고 내 머리는 또 흐리멍덩해서 조금도 지혜가 없었다. 대뇌는 잠긴 것 같았고 오로지 인내와 양보만 알고 있었다. 나약함은 악을 키웠고 시어머니 가족들은 내 앞에서 주저 없이 인간성의 악한 면을 펼쳤는데 그들이 죄업을 짓게 만든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 수련 시기에 나는 사상업(思想業)이 커서 대법이 무엇을 말했는지 기억나지도 않았고 단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전법륜)만 기억났기 때문이다.

고달픈 나날 속에서 나는 포켓판 ‘전법륜’을 얻고 보물을 얻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점심에 퇴근해 집에 돌아와야 겨우 책을 볼 수 있었다. 매일 점심에 집에 돌아오면 침대 커버를 열고 베개를 꺼내 봉합 부분을 열고 ‘전법륜’을 꺼냈다. 30분 넘게 본 후 다시 순서대로 책을 숨겼는데 배가 고픈 것을 참고 출근했다. 대법 책을 보았기에 나는 갈수록 명석해졌고 주의식(主意識)이 강해졌으며 남편에게 수련하겠다고 요구하고 연공하겠다고 요구했다. 매일 마구 얻어맞아도 나는 집착을 찾는 것을 모른 채 견지만 했고, 그 기간에 그가 발로 걷어차서 늑골이 부러지기도 했다. 반년간 별거하다가 다시 합친 후에도 내가 연공하기만 하면 그는 계속 가차 없이 날 때렸다. 그 시기 내 가장 큰 소원은 방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이었다.

2. 정욕을 담담히 보니 수련 환경이 바뀌다

나는 사상업이 컸고 그 중에 색욕이 매우 심했다. 구세력은 남편을 이용해 날 오염시켰고 날 끌어내리려고 시도했다. 생활이 조금 나아지자 그는 다른 한 회사에 고용됐고 얼마 안 가서 내연녀가 생겼다. 남편에 대한 나의 정은 더욱 심해졌다. 어느 날 그 여자가 그의 차에 앉아있는 것을 보게 됐다.(평소 남편은 내가 차에 앉지 못하게 함) 나는 집에 돌아와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마음이 너무 괴로워. 네 아빠가 그 여자를 집에 데려다주는 것을 봤어.” 억압되고, 질식되고, 괴로운 순간에 갑자기 명백해졌다. 단번에 마음을 내려놓고 딸에게 말했다. “우리 둘은 먹어야 할 때 먹고, 마시고 싶을 때 마시자.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단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와서 내 코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당신이 내기를 걸지 않으면 당신이 이기는 거야.” 나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마음에 걸렸던 그 한 덩어리가 없어졌다. 더는 남편과 다른 여자가 어떻든 신경 쓰지 않았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생활도 변했다. 남편은 다른 곳으로 파견 근무를 가게 됐다. 나도 느슨한 수련 환경이 생겼고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3. 원한심을 장기간 내려놓지 않자 몰골이 완전히 바뀌다

나는 장기간 시부모에게 억눌리고 남편에게 매질과 욕설을 당하면서 강렬한 원한이 생겼다. 머릿속에 늘 그들의 언행이 떠올랐는데 배척하지도 않았다. 하루는 베란다를 청소하는데 시어머니의 나쁜 말들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 말들을 떠올리며 원한을 품었다. 그러자 나와 30cm 떨어져 있던 유리병이 이유 없이 깨졌고, 손목에 한 가닥 상처가 나서 살점이 떨어졌다. 나는 비로소 그런 생각에 따라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또 늘 수련생과 동료에게 시어머니에 대한 말을 하고 수구(修口)하지 않아 입에 늘 궤양이 생겼다. 원한이 무거워 법에서 수련할 줄 몰랐고 그들이 내 물건을 빼앗고 날 업신여기는 것을 중하게 봤다. 그 기간에 시부모님께도 진상을 알렸지만 내가 이런 상태인지라 그분들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그 시기 남편은 지사장이 됐고 연봉도 올랐다. 그러나 이전처럼 나에게 돈을 주지 않았고 우리 모녀는 여전히 나의 얼마 안 되는 급여로 생활했으며, 시부모님은 좋은 생활을 누리셨다.

시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옷을 사 입고 곳곳을 다니며 과시하셨지만, 나는 갈아입을 옷도 없었고 옷 한 세트를 갖고 삼계절을 입었다. 여름에는 날이 추워지기를 기다리고, 겨울에는 날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면서 버텼는데, 그 고달픔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시어머니가 남편을 손에 꼭 쥐고 나와 딸을 배척시킨다고 원망했다. 이후에 시어머니는 뇌졸중에 걸리셨고 남편은 형제가 두 명이지만 치료비는 전부 우리집에서 냈다. 또 시부모님께 집을 사드리고 가정부를 고용해드렸다. 나는 이것이 효도라고 느끼고 지지해야 한다고 여겼다. 비록 시어머니가 병이 난 시간에 정성껏 간호해드렸지만 남편은 내 선량한 행위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고 수련하기만 하면 가차 없이 매질했다. 이때 나는 이미 거의 20년 가까이 수련했다. 고생만 할 줄 알았지 법에서 수련할 줄 몰랐고 사람의 마음으로 수련을 대했다.

끝내 어느 날 원한심이 팽창해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루는 머리에 바르지 못한 염두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이 정도로 참았지만 가정 고비를 늘 넘지 못했어. 나는 수련해도 안 되는 게 아닐까?’

내 업력이 컸지만 사부님께서는 계속 날 보호해주셨고 구세력은 날 깔보았지만 감히 손대지 못했다. 그러나 사부님께 불경하고 대법에 불경한 이 악념이 나오자 구세력은 구실을 잡고 한순간에 머리 오른쪽 우측에 무엇을 쏟아부었다. 내 머리는 마치 정지된 것 같았고 얼굴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속인 말로 하면 안면마비가 온 것이다. 이 상태는 내 모습을 추악하게 만들었고 대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대법에 먹칠했다.

4. 안으로 찾아 진정으로 심성을 닦으니 새로운 길이 열리다

나는 거울 속에 얼굴이 일그러진 날 마주하고 놀라서 깨어났다. 수련의 엄숙성을 알았고 진정으로 법에 따라 자신을 수련해야 했다. 남편은 갑자기 본사로 불러들여지더니 지사장에서 일반 직원으로 강등됐다. 높은 연봉이 사라졌고 더 이상 좋은 생활을 누리지 못했다. 나는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했고 과거를 따지지 않고 생활 곳곳에서 그를 걱정하고 그의 고민을 덜어줬다. 시어머니는 뇌출혈 수술을 하신 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셨고 언어와 지력이 떨어지셨다. 형님은 젊었을 때 시어머니한테 당하더니 지금은 반대가 됐다. 가정부도 시어머니를 깔보았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으시니 시어머니 몸에서는 늘 냄새가 났다. 지금은 가련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이 됐는데 나는 시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6년간, 나는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었고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시어머니께 정갈한 옷을 사드리고, 시어머니가 내가 산 지 얼마 안 되는 반지를 좋아하시자 바로 선물로 드렸다. 시간을 내 목욕을 시켜 드리고 옷을 세탁하고 몸을 닦아드려서 시어머니가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해드렸다.

아주버니 부부는 남편이 돈을 벌지 못하자 우리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의 용돈과 가정부 비용을 제때 주지 않고 못 본 척하고 못 들은 척했다. 나는 얼마 안 되는 급여에서 1천 위안을 내어 남편에게 주고 남은 돈으로 아이의 학비를 댔다. 거의 절임 채소로 식사를 했다. 시어머니는 끝내 감동하셨고 남들에게 내가 딸 같다고 하셨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시어머니의 원신(元神)이 나에게 고별 인사를 하셨다. 우리 사이의 악연은 끝내 선해(善解)됐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주버니는 아들이 도박을 해서 수십만 위안을 잃고 거위를 키우는 사업을 하다 20~30만 위안을 또 배상했다. 원래 그들은 마을에서 버금가는 부자였는데 단번에 빚더미에 앉았다. 나는 되도록 그들을 위로해주고 관심을 보였다. 그 당시 돼지고기 한 근이 20위안이었는데 그들이 사지 못하는 것을 보고 대신 사줬고 일 년간 육류가 끊어지지 않게 했다. 형님은 그 시기에 대출도 안 되어 살길이 없다고 여겼다. 나는 내 급여로 그들에게 담보를 서줬고 은행에서 12만 위안의 이자 없는 대출을 해주어 급한 불을 꺼줬다. 그 당시 그들이 갚지 못하면 내가 대신 갚아야 할까 봐 걱정도 됐다. 그러나 그들이 어려운 시기에 처했으니 마땅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음의 용량을 넓혔다. 그러자 마비된 얼굴도 바로 돌아왔는데 이전보다는 못하지만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더욱 즐거운 것은 가정 환경이 변한 것이다. 집이 조용해지고 생활 부담도 적어졌다. 안심하고 법공부하고 연공할 수 있었다. 남편의 변화도 커서, 기름병이 엎어져도 상관하지 않던 그가 설거지도 했다. 매일 바삐 보내면서 날 걱정해줬다. 어제 새집으로 이사 가면서 내가 아침에 남쪽 방에 가서 연공하겠다고 하자 그는 묵인해줬다. 20년이 넘는 세월 끝에 나는 끝내 정정당당하게 집에서 연공할 수 있게 됐다! 제5장 공법을 연마할 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비록 한 단락 길을 더 걸어가야 하고 남편에게 진상을 알리고 공산당 조직을 탈퇴시켜야 하지만) 나는 끝내 새로운 오늘을 맞이했다.

맺음말

사부님의 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를 받은 후 나는 가정에서의 시련은 반드시 넘어야 할 관임을 더욱 똑똑히 알게 됐다. 이 일체는 모두 내 업력으로 조성된 것이었다. 사존의 크나큰 은혜를 마주하고 나는 부끄러웠고 은혜에 감사해서 눈물이 끊이질 않았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이는 내가 처음으로 교류문장을 쓴 것이다. 나와 같이 장기간 관을 넘지 못했던 수련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비록 우리 이 부분 사람들의 업력이 크고 오성(悟性)이 낮지만, 반드시 견지해야 하고 수련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면 반드시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게 된다. 동시에 20년 넘도록 나에게 수련 환경을 제공해준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원문발표: 2024년 1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6/693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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