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용(小溶)
[명혜망] 80년대에 태어난 나는 일찍이 소녀 시절에 운 좋게 대법을 만났지만 대법에 들어오지는 못했다. 지금은 내면의 근본적 집착을 버리고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지 3년이 넘었다. 개인적인 수련의 깨달음과 체득을 적어본다. 절 구해주시고 이 미천한 생명이 대법 속에서 승화할 수 있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추구하는 마음으로 얻은 심신의 상처
젊었을 때 나는 항상 좋고 더 나은 삶을 동경했지만 현실에 대한 실망은 지극히 컸다. 그러다 1998년 보서(寶書) ‘전법륜(轉法輪: 파룬궁 수련서)’을 보고 사람의 관념으로 대법이 좋다고 생각했고, 이제 사회가 구원되어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별로 연공을 하지 않았고 항상 추구하는 마음을 품고 법공부를 했는데, 법공부도 아주 적게 했다. 그래서 파룬따파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었고, 이런 집착 때문에 어떠한 법리도 보지 못했다. 1999년 ‘7.20’ 이후 중국에서 박해가 시작됐는데 나는 두렵기도 하고, 사회의 도덕성이 회복될 것 같지도 않아서 자신을 방종하고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사회에 진출하고 난 후 나는 인간의 추악함을 더 많이 보게 됐다. 작은 이익을 위해 도덕과 양심에 어긋난 행위를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하고 싸움을 벌였으며, 사람들 사이에 신용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사업도 더 나은 삶을 위한 내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내 인생에는 풍랑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오랜 단짝 친구인데 나중에 인연이 되어 부부가 됐다. 나는 지기를 찾아 평생을 함께하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결혼 생활에서 인생의 만족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공산당 문화에 침식당해 내 현대적이고 변이된 관념은 매우 심했고 전통을 잃어버렸다. 그때는 속인 차원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법리만 조금 알았을 뿐 바른 생각이 없었다. 늘 자신이 이 사회에서는 좋은 사람이고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미끄러져 내려온 도덕 기준으로 자신을 가늠한 것임을 몰랐다.
사람이 고통받고 병드는 것은 모두 살아온 생생세세의 빚을 갚는 것임은 알았기에,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참기도 했지만 억지로 참느라 매우 고통스러웠다. 겉으로는 남들과 다투지 않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고 분했다. 그럼에도 법의 요구에 따라 하고 있다고 핑계를 댔다. 친구들은 내가 하는 일이 믿음직하고 인색하지 않으며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 내 마음속 깊은 곳은 체면과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남이 날 좋다고 말해주고, 좋은 평판을 얻고, 남들이 나에게 잘해주고, 남의 긍정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 했다. 그래서 사는 게 늘 조심스러웠고 겉과 속이 달랐다.
남편은 선량한 사람이다. 가족을 부양할 책임을 지고 날 잘 보살펴 준다. 안일한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베풀고 감사할 줄 모르고 책임감도 없었으며,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평하기 좋아했다. 남편은 일이 너무 바빠서 같은 집에 살아도 자주 만나지 못했다. 이런 기간이 오래 되자 마음이 편치 않았고 남편에게 나와 가정을 중시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지 매일 둘이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생활일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간단한 것도 뜻대로 되지 않지?’ 그래서 항상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를 바꾸려고만 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참을 수 없었고,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그가 날 불공평하게 대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이런 행위가 잘못임을 깨닫지 못했고, 결국 이런 방법들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포자기해 제멋대로 했다. 드라마를 보고, 게임도 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불평하며 한밤중까지 놀았다. 결국 남편과의 사이가 점점 나빠지고 대화가 사라졌으며, 마음속은 온통 트집과 불만뿐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이런 상태가 더욱 심해졌다. 생활의 변화(퇴사하고 집에서 육아함)는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으며 종종 한계에 부딪혔다고 느꼈다. 집착이 너무 심해서 나는 어처구니없게 변했으며 대법의 요구와 반대로 갔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자 신체적 문제도 나타났다. 그때 나는 부비동성 빈맥을 앓고 있었다. 자주 숨이 차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상일 때도 심박수가 분당 100회 정도였다. 아이가 두 살이 되기 전에는 마음 놓고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초조하고 긴장해서 자주 한밤중에 깨어났다. 심장이 마구 뛰고 숨을 크게 헐떡거리며, 오랜 시간이 지나야 가라앉았다. 손이 떨리고 등과 목뼈가 아파서 몸을 곧게 펴지 못하고 머리를 뒤로 젖히지 못했다. 허리가 뻐근해서 끊어질 것 같았고 두통이 심하고 구토할 것 같았다. 정말 몸도 마음도 지쳤다.
타인을 위하면 자신도 얻게 된다
냉정해질 때 나는 생각했다. ‘인생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 명예와 이익, 돈과 권력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다음 세대를 위해서인가? 사회에서 아무리 많이 얻어도 소용없고, 결국엔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야 한다. 내가 줄곧 가지려던 보다 나은 삶은 도대체 무엇인가? 더 나은 삶을 산다 한들 어떻단 말인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자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날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수련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셨다.
수련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고 대법의 요구 대로 하자 심신에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파룬따파는 끊임없이 내 인생을 바로잡아줬다. 일상생활에서 나는 법으로 가늠하고 문제가 생기면 먼저 안으로 자신의 잘못을 찾았다.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 예전의 나의 일사일념은 모두 이기적인 것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법리에 밝아지자 내 생활은 더 이상 걱정과 부담이 없어졌고, 마음은 점점 더 밝고 활달해지고 평온해졌다. 나도 자신이 진정으로 떳떳한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누가 모든 일에서 천지와 양심을 걸고 떳떳하게 했다고 말할 수 있고, 정말 사심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파룬따파는 사람들에게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진선인(真·善·忍)’으로 모든 것을 가늠하도록 가르친다.
남편과 갈등을 겪어도 예전처럼 큰소리로 강변하고 논쟁하지 않았으며, 상대방의 관점에서 평화롭게 위로했다. 나는 자신이 예전처럼 쉽게 이끌리지 않고 냉정해지고 생각이 명확해졌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오해가 있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너그러움과 이해심이 생겼다. 이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게는 지금까지 없었던 표현이다. 대법 수련인으로서 모든 것은 표면에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을 할 수 있고 저것은 할 수 없다는 행동상의 규범이 아니라, 생명에 근원적인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이런 변화야말로 가장 강하고 견고한 힘이었다.
대법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의 많은 부족함을 찾아냈고, 이전의 갈등은 남편의 처지와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게 됐다. 오랜 세월 사치스럽고 안일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남에게 의지하고, 잘난 척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이기려 하고, 남들이 무시할까 봐 두려워하는 등, 많은 나쁜 마음을 길렀다. 남편이 일을 우선시하자 나는 불만스러워서 자신도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남편이 돈을 많이 쓰는 것도 불만스러워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써야 마음이 편했다. 아이를 가진 후 전업주부가 되자 더욱 불만스러웠다. 왜 내가 포기하고 내가 베풀어야 하는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수련 후 나는 남편에게 편지를 써서 깊은 사과의 뜻을 전했다. 나는 내 이기심, 좋지 않은 관념과 나쁜 생각에 용감하게 맞서기 시작했다. 과감히 머릿속에서 그것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문제에 직면하며, 다른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고 자신의 결점을 타인이 볼 수 있도록 과감히 공개했다. 이렇게 하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승화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몸의 불편함은 하나둘씩 없어지고 온몸에 힘이 솟는 것을 자주 느끼며, 마음의 용량이 확대되어 늘 타인의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해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이 마음은 곧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 자선지심(慈善之心)이고 慈悲(츠뻬이)이다.”(전법륜)
나에게 감당과 책임을 가르쳐 준 대법
지금의 나는 완전히 변해 이전의 게으른 습관을 버리고 집안일을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 남편이 날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해 더 이상 전전긍긍하지 않고, 갈등이 있어도 상대방 처지에서 이해하고 선의로 대하며 원망하지 않을 수 있다. 남편과 아이에 대한 집착을 많이 내려놓고 진정한 아내와 어머니의 모습이 됐다. 올바른 이치로 아이를 잘 가르치고 자제하며 마음을 닦고, 아이의 품성을 기르는 데 주의를 기울이고 더 이상 명령적인 훈육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내 뜻대로 성장하는지 전전긍긍하지 않았다. 차츰차츰 나는 더 이상 아이의 마음속에 있는 무섭고 화를 잘 내는 엄마가 아니었고 아이도 아주 귀엽고 말을 잘 들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한없이 감사드립니다! 우주의 대법은 넓고 심오해, 남을 배려하고 위하면 자신도 얻게 된다. 나 같은 부족한 생명도 자비롭고 순수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생명의 승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니 인생이 더욱 넓어지다
나는 현대인들이 모두 전통에서 벗어나 우주의 ‘진선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어려서부터 공산당 문화에 젖어 질투와 원망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말과 행동이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르다. 사실을 과장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한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약속은 하지만 지키지는 않는다. 선행을 자랑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진정으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싸움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한다. 항상 책임을 회피하고 남의 흠을 잡으며, 자신이 남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가정에서 아내는 신랄하고 엄격하며, 남편은 가정을 감당하지 않고 책임감이 없다. 이는 모두 전통에 어긋나고 현대적으로 변이된 관념과 행위이며, 공산당의 무신론, 진화론에 세뇌되어 인간의 도덕성을 파괴한 결과다. 이것이야말로 현재 사회 및 가족 문제의 근원이다. 사악한 공산당이 중화민족의 뿌리를 끊은 것이다.
사실 사람은 누구의 일생을 좌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사람은 다 다르고 각자의 인생이 있다. 빈부, 생명의 길고 짧음은 모두 자신의 덕행과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아름다운 삶도 전생에 쌓은 복덕으로 얻은 것이다. 행복한 인생과 아름다운 미래를 원한다면 전통으로 돌아가 덕으로 원한을 갚고 덕을 쌓고 선을 행하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파룬따파를 수련하면서 나는 인생에 대해 더 깊고 넓고 자비롭고 너그러우며 겸손하고 자숙하는 인식과 태도를 갖게 됐고, 나 자신만을 위해 살 줄 알던 사람에서 자신보다 남을 우선시 하는 생명으로 변하게 됐다. 나와 마찬가지로 수천수만 파룬궁수련자들은 수련 후 모두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모두 ‘진선인’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생명과 도덕이 진정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원문발표: 2023년 12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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