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수련생
[명혜망] 티베트 불교가 모시는 밀레르빠 부처의 수련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이다. 밀레르빠의 사부는 밀레르빠에게 험준한 산 위에 돌집을 짓게 했는데, 가축을 사용하지 않고 밀레르빠 혼자서 돌을 짊어지고 날라야 했기에 매우 고생스러웠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집을 짓고 나니 그의 사부는 또 생각을 바꾸어 밀레르빠에게 집을 허물고 다시 지으라고 했다. 이렇게 수차례 반복했다.
밀레르빠는 자신이 무엇을 하러 온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사부에게 자신을 제자로 거두어주시고 수련해 제도해주실 것을 청하러 왔다. 수련은 육도윤회를 넘어야 하는 것이지 사람 중에서 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부의 제자가 되기 위해 밀레르빠는 인간세상의 고생은 신경 쓰지 않았다.
밀레르빠는 진심으로 수련하고 싶었는데, 정말 수련하려면 반드시 사부가 있어야 했다. 미혹된 꿈속에 있는 사람이 속세의 이치로 각성하기란 불가능하고, 이는 꿈같은 소리다. 수련해 개공개오(開功開悟)한 각자(覺者)만이 사람을 제도해 속세에 매몰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
밀레르빠는 사부가 뭘 하는지 알고 있었고 사부가 위대한 각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각자의 법리와 사람을 제도하는 모습을 통해 밀레르빠는 판단했으며 이를 굳게 믿었다. 이것은 맹종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명예와 부를 맹종하기에 수련하기 어렵다. 게다가 수련은 깨달음을 중시하는데, 매 한 걸음은 모두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야 하기에 맹종할래야 맹종할 수 없다. 밀레르빠는 수많은 해 동안 사부를 찾아다녔고 유명한 라마들을 따라다녔다. 그 자신도 초능력이 있었지만 그러한 것으로는 해탈할 수 없었기에 계속 사부를 찾았으며, 마침내 진정으로 자신을 구해줄 사부를 만났다.
밀레르빠는 진정한 사부를 만난 후 고통스러운 긴 어둠 끝에 빛을 본 것 같았다. 그래서 절대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고, 아무리 고생스럽고 어렵더라도 사부를 따르겠다고 결심했다. 어둠의 바다를 떠돌던 생명이 얼마나 많은 생을 거치면서 찾던 빛인가? 그 빛은 반드시 누군가를 비춰야 하는 것은 아니며, 특히 어둠을 버리지 않고 빛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비치지 않을 것이다.
밀레르빠는 모든 어려움을 자신에 대한 시험으로 여겼다. 사부가 자신을 거두어주기만 한다면 어떤 시험도 다 넘겠다고 생각했다. 거듭된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그는 사부가 자신을 편안하고도 즐겁게 해주지 않아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더 이상 시험을 통과하려고 애쓰지 못하고, 자신의 죄업이 너무 깊어 사부가 진정으로 인정하는 제자가 되지 못해 고통스러웠다.
밀레르빠는 사부의 안배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무리 고생해도, 다른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려도 사부를 결코 원망하지 않았고 시키는 대로 굳건히 해냈다. 수련은 누구의 일인가? 누가 수련 성취하려는 것인가? 자신이다. 누군가가 사람을 제도한다고 꼭 당신을 구해야 하는가? 당신은 제도받을 자격이 있는가? 당신이 남을 사부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가 당신을 제자로 삼아야 하는가? 당신은 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가?
밀레르빠는 사부의 안배를 모르고 사부의 묘법(妙法)을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로는 다섯 차례에 걸쳐 집을 짓고 허무는 과정에서 밀레르빠의 사부는 밀레르빠의 수련 문제를 안배하고 해결하고 있었다. 훗날 밀레르빠가 수련 성취했을 때, 자신을 해치러 온 사람에게 자신을 해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바로 그의 업력이 수련 과정에서 사부의 묘법에 의해 제거됐기 때문이다.
밀레르빠는 매일 집을 짓고 있을 때, 사부가 그에게 안배해준 수련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의 사부는 그에게 투철히 말해줄 수 없었다. 투철하게 말해주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부는 제자를 위해 조건 없이 많고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지만, 제자라면 반드시 확고해야 한다. 수련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수련하려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제로다.
밀레르빠는 정말로 수련하고 싶었기에 매일 사부의 말대로 에누리 없이 확고하게 해냈다. 이와 동시에 그의 자비로운 사부도 고심을 다 해 그에게 일체를 안배해주고 그를 제도했다. 사람을 제도함에 명예를 추구하지 않기에 사부는 제자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밀레르빠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제자에게 말할 필요도 없고 일부 일은 또 말할 수도 없었다.
밀레르빠 사부의 안배는 마침내 대다수 목적에 도달했고, 훗날 밀레르빠의 수련에 매우 좋은 기초를 다져줬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점도 좀 있었다. 그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진 주변 사람들의 방해로, 훗날 밀레르빠는 확고한 인내심에 동요가 일어났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온 호의는 확실히 밀레르빠가 훗날 수련하는 데 고비를 남겼다. 사람이 매번 고비를 넘을 수 있을지는 모두 미지수다. 그런 업력은 당시에 제거해 훗날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편이 낫다. 그러므로 고층차 수련을 대할 때는 정말로 저층차의 사람마음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사람마음에서 나온 호의로 일하면 실제로는 나쁜 일일 수 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집을 지었으니 밀레르빠의 집 짓는 기술은 분명 좋아졌을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집을 짓는 것은 한 가지 형식일 뿐인데, 밀레르빠는 집을 짓는 법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니고, 그의 사부도 밀레르빠에게 집을 짓는 걸 가르친 게 아니다. 밀레르빠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 그 자신을 수련하고, 사부는 이런 형식으로 제자의 수련을 안배한 것일 뿐이다.
수련 이야기는 정말 다양한데, 오늘날에 와서는 더욱 다채롭다. 사람은 집 짓는 과정에서 수련할 수 있고, 매체 일을 하면서 수련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각양각색 직업이나 생활 속에서도 수련할 수 있다. 각종 환경에 있는 제자들은 일을 오래 하거나, 많이 하거나, 큰일을 하거나, 유명해지거나, 돈을 많이 벌었다. 많은 사람은 자기가 하는 그 일이나 업무에서 밥을 하고 장사하면서, 그리고 매체의 아나운서부터 회사 사장에 이르기까지 분명 전문가 못지않을 텐데, 그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도 밀레르빠처럼 수련하러 왔지 밥하는 법을 배우거나 아나운서가 되는 법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의 수련을 이런 형식 속에 안배하셨다. 그것은 제자들을 이끌어 수련하는 것이지 제자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다.
제자는 사부의 안배대로 잘해야 하는데, 자신의 수련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밀레르빠가 확고하게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은 자신이 그 속에서 수련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일을 잘하면 당연히 각종 수확이 있을 것이지만, 수련의 열매만이 당신이 진정으로 증명해야 할 열매다. 다른 모든 것은 단지 수련 중의 일종 수단일 뿐이다. 당신이 반복해서 연습하는 데 사용할 도구와 게임 캐릭터를 안배해줬을 뿐이다.
일단 사람이 이런 게임에 미혹되면, 심지어 자신이 게임을 대단히 잘한다고 집착하거나 게임에 중독되어 사부님께서 내려놓으라고 하시는 것조차 고수하고 내려놓지 않을 수 있는데, 수련을 어린애 장난으로 대하는 태도가 갈수록 심해진다. 얼마나 많은 생으로 바꿔온 수련의 기연인가? 자칫하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게임이 끝날 수도 있다.
일은 속세 속에서 하지만 마음은 속세 밖에서 수련한다. 번지르르한 화려함 속에서 그것을 담담히 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수련인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께서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12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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