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대만법회] 살아가며 은혜에 감사드리다

글/ 대만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2004년에 법을 얻었지만 지금까지 수련심득을 쓰려고 할 때마다 안일한 마음에 가로막혔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자신의 수련을 솔직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수련 과정을 상세히 사부님께 보고드리려 합니다.

1. ‘전법륜’을 읽자 오래된 눈질환이 낫다

저는 젊었을 때 눈에 자주 염증이 생겨 안약에 의존했는데, 장기간 사용하다보니 부작용이 생겨 바람, 빛, 탁한 공기를 쐬면 눈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외출할 때면 보안경을 꼈는데 의사도 각막 염증으로 실명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당시 저는 출근하기도 힘들었고 아이도 돌볼 수 없어 늘 신세 한탄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사한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그녀는 자신이 지금 좋은 기공을 연마해 건강해졌다면서 법공부 장소가 마침 우리집 아래에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무슨 기공인지 물었더니 ‘파룬궁(法輪功)’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이름을 듣자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습니다. 기쁘면서도 눈물이 나왔는데 정말 이상했습니다. 그렇게 되어 저는 파룬궁 9일 학습반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한 수련생에게서 파룬궁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빌렸고,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전에 1시간씩 읽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한밤중에 갑자기 마늘 썩은 냄새가 심하게 나서 잠에서 깼습니다. 일어나서 집에 있는 마늘을 살펴보니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남편과 아이는 모두 잘 자고 있었고, 저만 냄새를 맡은 걸 보니 ‘혹시 내 몸에서 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世間法(쓰젠파) 수련과정 중에서 줄곧 당신의 신체를 정화(淨化)해 주고, 신체를 정화해 주고, 신체를 정화해 주는데, 줄곧 고에너지물질로 완전히 전화될 때까지다.”

다음날 깨어나니 눈에서 누런 고름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눈이 점차 좋아졌습니다. 10년 넘게 저를 괴롭혔던 눈병이 약을 먹지 않고 치료되면서 외출할 때도 더 이상 보안경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무한한 감사를 느꼈습니다.

2. 홍콩에 가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사람을 구해야 하는 법리를 이해하게 되자 저는 요고(腰鼓)팀에 합류했고, 요고팀 수련생들과 함께 홍콩에 가서 퍼레이드를 하며 대법을 널리 전하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진상을 모르는 중국인들이 그렇게 많은 걸 보니 사람을 빨리 구하고 싶었습니다.

2007년은 마침 홍콩 주권 반환 10주년이어서, 많은 대만 수련생이 단체로 7월 1일 홍콩 퍼레이드에 참가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중공의 지시에 따라 홍콩 정부는 아무런 이유 없이 대만 수련생 500여 명을 강제 추방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요고팀과 함께 홍콩에 가려고 했던 저는 망설이기 시작했습니다. ‘홍콩에 꼭 가야 할까?’ 저는 추방될까 봐, 언론에 노출될까 봐, 회사 사장님이나 동료들이 알까 봐 두려웠는데, 정말 많은 두려움이 한꺼번에 올라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3-생사의 고비(死關)에서 벗어나라’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운 마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릇된 일을 할 수 있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기연을 잃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사람이 신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생사의 고비이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대법 속에서 다시 태어났고, 중국 수련생들의 고난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원래 계획대로 가자!’

그런데 이번에는 가족이 절 시험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대법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막은 적이 없지만, 이번에 집을 나서려 하자 갑자기 말렸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요고팀 참여는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고, 별일 없을 테니 잠깐 다녀오겠다고 하자 남편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요고를 메고 확고하게 집을 나섰는데, 이번 고비를 넘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정(中正) 공항에 도착해 뜻밖에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모든 항공편이 지연됐고, 심지어 결항됐습니다. 제가 탄 비행기는 비행 중에 계속 심하게 흔들려 승객들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계속 발정념을 하다 보니 마침내 홍콩 공항에 도착했고, 사부님의 보호로 순조롭게 입국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외톨이가 됐습니다. 길 안내를 담당한 수련생이 대만 공항에서 출발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혼자 공항버스를 타고 홍콩 수련생들이 마련한 숙소로 향했습니다. 겨우 마지막 버스에 올랐지만, 차 안에 정류장 이름을 표시하는 전광판이 없어서 운전기사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하차벨을 눌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광둥어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자리에 앉은 후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때 한 청년이 여행 가방 두 개를 끌고 버스에 올랐는데, 저는 그가 힘들게 서 있는 것을 보고 손짓으로 불러 제 옆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가 운전기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걱정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는 같은 역에서 내릴 거라고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후 그 젊은이는 수련생 집 앞까지 데려다줬습니다. 그에게 집이 어디냐고 묻자, 그는 집이 두 역 전이었는데 저를 데려다주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며,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갈 거라고 했습니다. 큰 여행 가방 두 개를 끌고 이슬비를 맞으며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줄곧 제 곁에서 저를 보호해주셨음을 알았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3. 중국고전무용과의 첫 만남

저는 어려서부터 음악과 춤을 좋아했고, 결혼 전에는 무용대회에도 자주 참가했습니다. 법을 얻은 지 3년이 되던 해, NTD TV에서 중국고전무용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홍보 인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지원했습니다. 당시에는 NTD TV에 대해 잘 몰랐고, 중국고전무용이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홍보를 하면서 점차 알게 됐습니다.

대만은 일반 교육을 중시해 예술을 배우는 데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고, 무용은 대부분 취미로 배우기 때문에 학생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국고전무용에 전념하는 교사나 학생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낮에는 출근해야 해서 밤이나 휴일에 춤 학원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제가 무슨 핑계로 휴가를 낼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초등학생 딸이 장 바이러스에 걸려 고열이 났습니다. 그래서 순조롭게 휴가를 내고 집에서 딸을 돌봤습니다. 저는 딸에게 “엄마가 아주 신성한 일을 해야 하는데, 힘내서 엄마랑 같이 인연 있는 사람들을 찾으러 갈래?”라고 물었습니다. 딸은 어려서부터 법공부와 연공을 해왔기에 명백한 일면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순히 저를 따라 여기저기 방문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려는 제자의 마음을 보시고 도와주셨는지, 딸은 고열 때문에 졸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저를 도와 전단지를 배포했습니다. 그날 저는 대회에 참가할 선수를 찾았고 딸도 열이 내렸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한 재능학원의 원장이었습니다. 제가 찾아가자 원장은 자신의 학생이 제1회 때 우리 대회에 참가했다가, 중국 입국을 금지당했다면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저는 당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올바른 일을 하게 하시므로 어떤 교란도 허용할 수 없다는 일념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강한 정념이 생겨 말했습니다. “중국이 왜 예술대회를 두려워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공산국가에서 훈련받은 예술가들을 보면 눈빛부터 달라요. 예술에 대한 사랑은 없고 명예만 다툰다는 걸 알 수 있죠. 중국 무대는 진정한 예술가들이 설 곳이 아니에요. 가지 못하게 돼도 아쉬워할 필요 없어요. 저희는 순수하고 바르고 아름다운 예술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 말을 듣고 뜻밖에 원장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더니, 미국에서 션윈 공연을 본 적이 있고 우리의 취지에 대해 매우 공감한다면서, 중국고전무용 홍보를 기꺼이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학원 선생님에게 우리 대회의 홍보를 맡겼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홍음2-사도은’에서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라고 하신 사부님 말씀을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4. 질서 있게 배치된 서약

저는 중국고전무용대회를 홍보한 덕분에 션윈을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처음 온 가족이 션윈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두 아이는 아직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서 아들에게 어떤 춤이 가장 좋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은 어린 스님 이야기나 서유기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은 말했습니다. “엄마, 제일 좋았던 이야기는, 착한 사람이 위험하게 됐을 때, 나쁜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하늘의 신이 와서 구해주고 나쁜 사람도 잘못을 뉘우쳤다는 이야기예요. 저도 그를 용서할 거예요.”

저는 그때 아들의 순수한 표정과 빛나는 얼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들은 단 한 번의 공연으로 학교에서 왕따당하는 두려움을 털어버렸고 인생의 깊은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션윈 공연이 사람을 구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당시 신주(新竹) 션윈홍보팀은 서서히 형태를 갖추면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저도 홍보팀에 합류했는데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다가 나중에는 공연 소개를 담당했습니다. 처음에는 수련생들이 제공한 자료를 외웠는데, 나중에는 직접 PPT를 만들고 직접 발표 원고를 작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저를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지만, 사부님께서 ‘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션윈(神韻)예술단 공연은 매 차례 공연에 최저 몇백 명, 일반적으로 모두 천여 명이며, 심지어 2천명, 3천명이고, 많을 때는 한번 공연에 5천명인데, 극장의 크기에 달렸다. 그러나 션윈을 본 사람은, 90% 이상이 대법에 대한 태도가 모두 변해, 사악에 대해 명확한 인식이 있으며, 사람이 이미 완전히 정면(正面)적으로 되었다.”

그렇습니다, 제가 어떻게 물러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한 번, 또 한 번 관을 넘었습니다. 강연할 때마다 션윈 공연이 보여주는 전통문화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PPT를 준비하느라 자주 새벽에 잠들고 다음 날 또 출근했지만, 제 마음은 좋은 에너지로 가득 차 전혀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돌이켜 보면 이것이 제 서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시를 좋아했는데, 반 친구들이 휴식 시간에 만화를 볼 때도 저는 당시(唐詩)와 송사(宋詞)를 읽었고, 커서는 독학으로 무용을 배웠습니다. 이후 중국고전무용대회 홍보와 션윈 홍보에 참여했는데, 이런 걸 보면 모든 것이 질서 있게 배치된 것 같습니다.

5. 남편이 수련생이 되다

남편은 항상 파룬궁에 우호적이었고, 제가 대법 행사에 참가하는 걸 지지했지만 수련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재작년부터 건강이 점점 나빠졌는데 관찰해보니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제 생각이 바르지 않고 남편이 법을 얻어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해서인지, 남편은 일이 바빠서 그런 거라며 법공부와 연공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다리가 심하게 부어 누워서 잠도 잘 수 없게 됐는데, 검사를 해보니 심근경색이었고 심부전으로 폐에 물이 차서 바로 입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격주로 다과회를 열고 공연 소개를 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교란이라는 것을 깨닫고 즉시 발정념을 했습니다. 저는 관을 돌파하기로 하고 협조인에게 전화해 제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예정대로 다과회를 열 것이며 협조인에게 정념으로 지지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후 남편은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았는데, 심혈관의 혈전이 너무 커서 수술하면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그 당시 코로나로 빈 병실이 없어서 집에서 약을 먹고 혈전이 좀 작아지기를 기다려 다시 입원해야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다과회에서 강연을 마칠 수 있었는데 끝날 무렵에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사람을 구할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원래 강연을 힘든 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병원 입원을 기다리는 동안, 저는 남편에게 계속 수련을 권했습니다. 그동안에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았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도 이번에는 법공부와 연공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남편을 포기하지 않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남편은 비록 몸이 허약해 법공부와 연공을 짧게만 했지만, 수술하기 전까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수술 후 통증과 불편함으로 성격이 크게 변했습니다. 그가 늘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다보니 저도 자주 심성 시험을 겪게 됐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2004 시카고법회 설법’에서 이런 법을 읽었습니다. “당신들 모두 강렬한 언어 충격 하에 심태가 평온할 수 있고,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면 당신이 보라. 아직도 이런 요소가 존재하겠는가?” 그렇습니다,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아내로서 제 역할을 잘해야 하는데 마음을 움직여서야 되겠습니까? 그동안 저는 성격이 강하고 제멋대로였지만 늘 남편이 포용해줬습니다. 지금은 아마 예전에 잘하지 못했던 것을 고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마음을 내려놓아서인지 9일 학습반이 열릴 때 남편에게 갈 생각이 있는지 물었더니 뜻밖에 선뜻 가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수술 후 후유증으로 계속 기침하고 가래가 나왔는데 학습반에서는 전혀 기침을 하지 않았고 기분 좋게 첫날 공부를 마쳤습니다. 그 후 남편은 아무 일 없이 9일 학습반을 마쳤고 건강이 빨리 회복돼 의사도 놀랐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남편은 매일 저녁 스스로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저에게 연공을 너무 적게 한다고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남편이 점차 건강을 회복하고, 대법에 들어와 저를 일깨워주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동수(同修)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을 수련생이 되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6. 맺음말

저는 수련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련을 늘 정념으로 대하고, 선과 악의 대결에서 늘 자신의 위치를 잘 선택해야 진정한 수련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수련하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내려왔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층차의 한계로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2023년 대만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원고)

 

원문발표: 2023년 12월 18일
문장발표: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12/18/46941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12/18/469410.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