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중국공산당이 20년 넘게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있다. 많은 수련생이 불법적으로 감옥에 갇혀서 잔인한 박해를 받았는데,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여전히 현지 ‘610(파룬궁 탄압기구)’이 통제하는 사법부, 공안국, 파출소 및 주민센터 사람들의 교란과 박해를 받는다. 일부 가족들은 가족 수련생을 감옥에서 집으로 데려갈 때 이런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가 그들의 요구에 따라 한다. 그래서 수련생들은 감옥에서 풀려난 뒤에도 계속 박해당하고 많은 압력을 받았다. 가슴 아픈 일이다!
어느 수련생이 박해받는 수련생 가족과 교류하면 좋겠다며, 내가 가족 수련생을 집으로 데려갔던 과정을 써보라고 격려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올봄, 수련생인 내 남편은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남편은 불법적으로 갇혀있던 기간에 줄곧 소위 ‘전향(수련 포기)’이라는 사악한 요구를 거부했다. 감옥 측은 출소 하루 전까지도 남편에 대한 고문과 세뇌를 멈추지 않았다.
가족 수련생으로서 나는 밖에서 계속 박해 반대 활동을 했다. 남편을 박해한 감옥경찰, 검사, 판사, 감옥 구역장을 고발했다.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선행을 권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나에게 존재하는 많은 사람마음, 특히 두려움, 원망, 증오, 쟁투, 선하지 않은 등 집착심이 모두 어느 정도 없어졌다.
다음은 남편이 감옥에서 석방되기 전후로 겪은 일이다.
남편이 출소하기 얼마 전부터 나는 현지의 관련 부서, 박해에 가담한 시와 구 사법부, 파출소, 주민센터 등 관련자들을 겨냥해 배후에서 그들을 조종하는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하고, 사악이 중생을 이용해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범죄를 저질러 중생을 소멸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용된 중생들이 선념을 움직여 대법제자를 잘 대하도록 발정념을 했다.
남편이 출소하기 약 한 달여 전쯤, 본시 사법부에서 누군가가 내게 전화했다. 대략적인 뜻은, 남편이 곧 출소하게 되는데 그들 상급 부서는 반드시 데리러 가는 공무원이 있어야 석방할 수 있다는 규정을 내렸다고 했다. 내가 “몇 명이 가시나요?”라고 묻자 그는 “저 혼자 갑니다”라고 했다. 내가 그의 성씨를 물었더니 그는 나에게 이름(이 기사에서 L로 대체함)을 말했다. 나는 “그래요, 그럼 그날 뵙지요”라고 말했다.
남편의 출소 며칠 전, 구 사법부의 L이 다시 전화했다. 나는 “선생님이 제 남편을 데리러 가시는 데 무슨 법률 규정이 있나요? 제 남편은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기에 이 안건에 대해 저는 계속 고소했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오게 되는데 선생님이 데리러 갈 필요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L은 좀 불쾌해하며 말했다. “우리는 규정이 있습니다. 2013년부터 성(省) 사법국은 모든 파룬궁수련자가 출소할 때 우리가 감옥에 가서 데려와야 석방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싫다고 하시면 가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온화하게 말했다. “오해하셨어요. 선생님이 가시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저 알아보는 겁니다.” 내 말을 듣고 그의 태도가 누그러졌고 그날 먼저 도착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전화하기로 약속했다.
남편이 출소하던 날 아침, 나와 아이들, 그리고 수련생 두 명이 먼저 도착했다. 나는 사건을 인계하기 위해 감옥에 가는 현지 사법부, 파출소, 주민센터 관계자에게 주려고 진상 편지, 청원서, 39호 문서, 50호 명령서 등 법률 문서를 미리 여러 부 준비했다.
오전 9시가 다 돼서야 L이 도착했다. 파출소와 주민센터 관계자는 오지 않았다. L이 전화했을 때 나는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와 인사하고 친근하게 아침 식사를 건네줬다. 그는 받지 않으려 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40~50대인 줄 알았는데 젊으시네요.” 나는 그의 차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몇 명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혼자 왔다며 차에 있는 사람은 여자친구라고 했다. “거리가 멀어서 졸음운전을 하면 위험해서 동행한 거예요.” 내가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 아침 식사는 제가 집에서 만든 거예요. 밖에서 살 수 없는 건데 맛있어요. 별것도 아니잖아요”라고 하니 그는 고마워하며 받아서 차에 앉은 여자친구에게 건넸다. 그의 여자친구도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가슴에 단 공산당 휘장을 가리키며 “당원이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사당 조직을 탈퇴하라고 했더니 그는 기뻐하며 탈퇴했다. 내가 미리 준비한 진상 편지, 고소장, 39호 문서, 50호 명령서 등 법률 문서를 그에게 건네주며 잘 보라고 당부하자 그는 받았다.
이때 남편도 나왔다. 남편을 데리고 나온 감옥경찰은 L에게 “우리는 이 사람을 오랫동안 ‘전향’시키는 작업을 해왔는데 ‘전향’하지 않았으니 돌아가서 계속 전향시키십시오”라고 했다.
L은 공산당을 탈퇴하고 나더니 표현이 아주 올발라졌고, 그 경찰을 형식적으로 대하며 석방증을 받고 남편과 함께 나왔다. 나오자마자 집 주소만 적으라고 했는데 나는 주소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L은 대략적인 범위면 된다고 했으나 나는 그를 바라보며 “대략적인 범위도 안 돼요. 아시겠죠?”라고 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우리에게 석방증을 주고 연락을 유지하자고 한 뒤 각자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L이 사무실에 돌아와서(서명, 주소 등 우리의 정보가 하나도 없기에) ‘업무 보고’를 할 수 없어서 다시 나에게 전화해 가족 수련생에게 주민센터 법률사무소에 가서 서명하고 우리의 현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거절하고 다시 진상을 알리고 이 일에 가담하지 말고 자신에게 밝은 길을 남기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난처하지 않게 내가 직접 그들과 소통하겠으니, 판사처 책임자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판사처 책임자에게 대법 진상과 우리 가족이 겪은 박해에 대해 말했다. 그 후 나는 진상 편지, 고소장, 청원서, 39호 문서, 50호 명령서 등 법률 문서를 그들에게 EMS로 보냈다.
다음날 온라인으로 확인해보니 모두 받았다고 서명한 것으로 나왔다. 그 후 그들은 다시는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
원문발표: 2023년 11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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