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랴오닝성 보도) 파룬궁 수련으로 새 생명을 얻었던 랴오닝성 파룬궁수련자 장더진(蔣德金)이 구치소에서 박해당해 2004년 사망한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잉커우(營口)시 다스차오(大石橋)시에 살았던 장더진은 병이 많아 폐인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으나, 1998년 여름 파룬궁을 수련한 후 건강을 회복하고 새 삶을 얻었다.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다. 2002년, 장더진은 파출소장 잔웨이(展偉)와 마을 주임 한단(韓丹)에게 납치됐다. 구치소에서 박해당한 장더진은 피를 심하게 토하고 간 복수로 2004년 12월 4일 사망했다.
장더진의 부인 리야전(李亞珍)도 두 차례 불법적으로 강제 노동수용소에 감금됐고, 같은 해 15살이었던 아들은 1년간 세 차례나 불법 감금됐다.
1. 대법 수련으로 얻은 새로운 생명
장더진은 원래 다스차오시 펀수이(分水) 마을에서 일했다. 그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전에는 신장 수술, 비장 절제, 위장 3분의 2 절제, 역류성 식도염, 혈전, 심장병, 뇌 혈액 공급 부족, 저혈당, 혈전, 담낭염, 간경화, 장 경련, 폐 균열 등 다양한 질병을 앓아 노동 능력이 없는 폐인이었다.
부인 역시 B형 간염, 위염, 담낭염, 신경과민, 심장병, 부인병, 허리디스크, 산후풍, 편두통, 저혈압, 강직성 척추염, 무릎관절염에 시달리고 있었고, 아들인 장웨이리(蔣維利)도 편도선염이 있어 열이 나고 감기에 자주 걸렸다.
1998년 여름, 장더진은 다스차오시 관툰(官屯) 초등학교에 있는 파룬궁 연공장에서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구해 사흘 만에 다 읽고 난 뒤 건강이 나날이 좋아졌다. 얼굴에서 근심이 사라지고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남편의 큰 변화를 보고 부인도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랜 세월 풀리지 않던 삶의 의미를 책을 통해 단번에 깨닫고 크게 감탄했다. 이 책은 정말 보서(寶書)구나! 연공한 다음 날부터 그녀의 몸도 정화되어 심장병이 완전히 나았다.
아들도 법공부와 연공을 한 후 병이 사라져 장더진과 가족은 파룬궁 수련으로 모두 병이 없는 상태가 됐다. 좋아진 건강 덕분에 일도 많이 할 수 있게 된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서 이전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온 가족은 성격이 밝아져 삶이 행복했고, 매사에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고 주변 모든 사람을 친절하게 대했다.
당시 장더진의 직장은 펀수이 마을에 있었는데 수입이 충분하지 않았던 직장은 임금을 덜 지급해, 2002년에는 3만 2천 위안이 넘는 임금이 체불됐다.(2002년, 체불된 임금을 파룬궁 수련을 했다는 이유로 돌려받지 못했음) 그는 한 달 수입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었다
2. 좋은 사람이 구타로 목숨을 잃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이 이끄는 공산당은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다스차오시 펀수이 파출소의 잔웨이 소장은 장더진 집에 와 책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다 제출했고 이제 당신만 남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원래 파룬궁을 연마했었지만 상황이 바뀌자 파룬궁 박해의 앞잡이가 되어 온종일 장더진을 감시했다. 그는 나중에 저우융캉과 함께 찍은 사진을 펀수이 파출소 벽에 걸어놓고 그것을 자랑했다.
2001년 어느 날, 다이스차오시 관둔진의 관리였던 가오쥔위(高軍尉)는 장더진을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장더진은 점심 식사 중 심장병이 발병해 관툰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병세가 위중해 석방됐다.
2002년 5월쯤, 중국공산당은 파룬궁수련자 한 명을 붙잡으면 2천 위안의 보너스를 주었다. 잔웨이 소장과 마을 주임 한단은 2천 위안을 벌기 위해 장더진을 납치했다. 먼저 그를 구치소에 불법 감금한 뒤 다시 다스차오 구치소로 이송했다. 구치소 간수는 꼬투리를 잡아 그를 심하게 때렸다.(그 후 더 무거운 형을 선고받고 감방 밖으로 끌려 나가 심한 구타를 당했다는 보도가 있음) 그들은 부드러운 철사로 장더진의 온몸을 구타했고 이것으로 때리면 밖에서는 안 보이는 내상(內傷)을 입는다고 했다.
심하게 맞은 장더진은 많은 양의 피를 토했다. 그는 기절할 때까지 맞아서 다스차오 철도병원에 입원해 응급처치를 받았다. 철도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출혈이 너무 심해 팔 동맥에서 피를 뽑지 못하고 다리 동맥에서 조금 뽑아 검사했다. 일주일 후에야 그는 깨어났는데 회복 기간에도 가족 면회가 금지됐다. 당시 구치소의 리(李) 소장이 장더진을 석방하기 위해 잔웨이 소장을 찾아갔지만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구치소장은 그를 세 번이나 찾아간 후에야 비로소 장더진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장더진은 한 달여 동안 혼자 집에 누워있다 겨우 걸을 수 있었으나 배에 복수가 차 온몸이 계속 부어올랐다. 당시 그의 아내도 마싼자(馬三家) 수용소에 불법 감금돼 박해당하던 중이라 그를 돌봐 줄 사람도, 치료할 돈도 없었으며 밤에는 집에 잠복해 그를 감시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2년 뒤인 2004년 12월 4일, 장더진은 겨우 51세 나이로 박해 속에서 억울하게 사망했다.
아버지가 겪은 심한 박해로 큰 충격을 받은 아들은 지금까지도 그 일을 직접 언급하지 못한다.
3. ‘진선인’에 대한 믿음을 이유로 두 차례 강제수용소에 감금된 아내
2002년 3월 25일, 장더진의 아내 리야전은 다른 수련자를 찾아갔다가 누군가의 신고로 다이시차오시 진차오(金橋) 분국에 납치됐다. 그녀는 구치소에서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하고 2년간 불법적으로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랴오닝성 마싼자 노동수용소에서는 매일 자정이 넘어서야 잠을 재웠다. 그녀가 그곳에서 받았던 대우는 매우 비인간적이었다.
2005년 7월 12일, 리야전은 기차역에서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9평)’과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갖고 있다가, 하얼빈 철도공안지국 경찰의 불법 수색을 받고 빼앗긴 후 2년간 강제노동을 받았다. 그러나 병원에서 진행한 신체검사에 불합격돼 2년간 노동수용소 밖에서 강제노동이 집행됐다.
2007년, 펀수이 파출소에서 경찰 두 명이 리야전의 집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우고 그녀의 사진 두 장을 빼앗아 갔다.
4. 1년간 세 차례나 불법 투옥된 15살 아들
2002년 3월 초, 장더진의 아들 장웨이리는 다른 수련자 집에 갔다가 다스차오 진차오(金橋) 분국에 납치돼 15일간 불법 감금됐다. 당시 15살이었던 장웨이리는 2002년 5월에 아버지가 납치된 후, 15일간 불법 감금됐다.
2002년 9월 말, 아들은 다른 수련자를 도와 곡식을 줍던 중, 관툰 파출소로 다시 납치돼 35일간 불법 감금됐다. 그 이후로 그는 학업을 중단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덕분에 장더진의 가족은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으나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 장쩌민 일당이 장기간에 걸쳐 자행하는 비인도적인 박해로 행복했던 한 가정이 파괴됐다. 심지어 어린 자녀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명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러한 잔인한 박해가 오늘날 중국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원문발표: 2023년 11월 2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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