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심위(瀋威)
[명혜망] 나는 시골의 몹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남동생과 여동생은 아픈 어머니의 모유를 먹다가 죽었고 나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질병과 재난이 많았던 나는 항상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났다.
나는 25살에 결혼했다. 중공(중국공산당)의 사악한 산아제한 정책으로 우리집은 끝없는 압수 수색과 벌금을 물었고 아내는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었고, 중년에 아내를 잃었다. 실제로 처가 친척은 내가 고의로 아내를 죽였다며 날 고소하려 했고, 내가 투옥된 후 두 아이를 팔아 돈을 벌려 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이를 막아줬다. 나는 종종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 고통은 언제 끝날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일까?’
정법을 얻고 고진감래하다
내가 외지에 일하러 갔을 때 한 대법제자가 나에게 파룬궁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한 권 빌려줬다. 읽다 보니 책이 참 좋았고 내가 찾던 바로 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내 인생의 귀착점을 찾았다!’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로 하고 대법서적을 사러 왕복 200여km 떨어진 고향에 갔는데 사지 못했다. 나중에 현지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출판된 대법서적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수련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의 병이 다 나았다. 법공부를 통해 내가 생애 전반기에 왜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알게 됐고,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죄를 없애고 ‘진선인(真·善·忍)’ 우주 특성에 동화되어 선천적인 본성으로 돌아가 천국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됐다. 업력으로 가득 찬 사회 밑바닥에서 사부님의 제자가 되어 무한한 행복과 영광을 느꼈다!
구치소에서 사람을 구하다
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한 20여 년, 나는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러 번 박해를 받았다. 2016년 가을 어느 날 저녁, 나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기 위해 차를 몰고 수련생들을 인근 현(縣)으로 데려갔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수련생들은 여러 팀으로 나누어 자료를 배포했는데, 그중 한 팀의 수련생이 악의적인 신고로 납치됐다. 이곳은 집에서 수십 킬로 떨어져 있어 다른 수련생이 날 못 찾을까 봐 눈에 띄는 곳에서 수련생들이 차를 타기 기다렸다. 결국 경찰이 쫓아와 나와 차를 끌고 갔다. 가족과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나는 7일간의 단식 끝에 ‘처분보류’ 형식으로 풀려났다.
집에 돌아온 후 현지 경찰은 여러 차례 날 찾았지만 찾지 못해 수배령을 내렸다. 이후 내가 은행에 일을 보러 갔을 때 그들에게 포착됐다. 일을 다 보고 두 시간쯤 지나서 나에게 서류를 보완하러 오라는 은행의 전화를 받았다. 결국 도착하자마자 그곳에서 기다리던 사복 경찰들에게 납치됐다. 그들은 불법적으로 내 차와 돈, 진상 자료를 압수하고 날 구치소로 보냈다.
그들이 날 불법 심문할 때 나는 공검법(공안·검찰·법원) 기관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은 불법이고 범죄임을 지적하고, 날 무조건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죄수복 입기를 거부하고 연공을 견지했다. 그날 나는 부소장과 법의학자를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시켰다.
감방으로 돌아온 후 나는 감방에 있는 대부분 사람을 잇달아 삼퇴시켰고 삼퇴 명단을 가족을 통해 갖고 가게 했다. 감방을 바꾼 뒤 먼저 수감자 우두머리와 다른 수감자들도 차례차례 탈퇴시켰다.
감방 저쪽 편에 있는 수련생이 종종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면, 이쪽에서 삼퇴한 수감자들도 따라서 “파룬따파하오”를 외쳤는데 외치는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구치소에서 내 발에 채운 족쇄가 저절로 두 번 풀렸는데, 감옥경찰은 수감자 우두머리에게 특수 도구를 이용해 족쇄를 아주 꽉 조이라고 했다. 뜻밖에도 며칠 후 잠에서 깨어보니 족쇄가 또 풀린 것을 발견했다. 죄수들은 어안이 벙벙했고 대법제자가 진짜 초능력이 있고 대단하며, 신이 보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법정에서의 정사대전(正邪大戰)
3개월 후, 법원은 날 불법 판결했다. 재판 당일 큰딸 내외가 차를 몰고 수련생을 태우고 와서 발정념을 해줬고, 아들과 둘째 딸도 함께 갔다. 나중에 나는 여러 대의 차를 타고 간 수련생들이 구치소를 둘러싸고 근거리 발정념을 했고, 또한 많은 수련생이 집에서 발정념해 확고한 정체(整體)를 이룬 것을 알았다.
검사는 법정에서 내가 형법 300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내 차에 진상 자료, 진상 현수막 등이 몇 개 있는지 등 소위 증거물 수십 개를 나열했다. 변호사는 조목조목 반박하고 “법 집행을 파괴한 것은 그가 아니라 당신입니다. 파룬궁수련자는 어떠한 폭력 행위도 없으며,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가족과 사회에 백 가지 이로움은 있으나 한 가지 해로움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변호 과정 전체를 돌이켜보니 그들이 날 불법적으로 심문한 것이 아니라 변호사가 그들을 심문한 것이었다.
고문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나는 구치소로 돌아온 후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소장과 감옥경찰은 말했다. “당신이 연공하고 싶으면 연공하게 하고, 일하기 싫으면 일을 시키지 않았고, 죄수복을 입지 않아도 모두 당신의 의지에 따라줬는데 단식까지 하면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게 아닙니까? 배불리 잘 먹고 계속 공산당과 대항하면 안 됩니까? 몸이 망가지면 어떻게 공산당과 대항할 수 있습니까?”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제가 ‘진선인’에 따라 하는 것은 잘못이 없습니다. 저는 공산당과 싸우지 않습니다. 공산당은 저와 싸울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무조건 석방을 요구할 뿐입니다.”
감옥경찰이 나에게 족쇄와 수갑을 채우다가 며칠 후 족쇄로 손발을 동시에 채웠다. 나는 똑바로 걷지도 못하고 허리와 고개를 숙인 채 걸어야 했고,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할 때도 수갑과 족쇄를 풀지 않았으며, 경찰과 죄수 7~8명이 내 뺨을 때리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또 경찰 고무봉으로 엉덩이를 때리고 날 의자에 짓누르고 다른 의자에 내 다리와 발을 얹어 갈고리가 달린 굵은 철사나 대나무 막대기로 발바닥을 때렸다. 굵은 철사나 대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면 ‘휙휙’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고 발바닥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구치소의 몇몇 부소장은 매일 번갈아 가며 날 구타하고, 뺨을 때리고, 볼을 꼬집어서 내 입에 있는 살까지 짓물렀다. 또 내 입에 담배꽁초, 재 등을 쏟아부었다. 그들은 나에게 하루에 한 번씩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어느 날 한 무리 경찰이 음식을 절반 주입하고는 소장이 나에게 스스로 먹으라고 했다. 내가 거절하자 그는 냉소하더니 “안 먹으면 대변을 먹일 거야”라고 말하고 경찰에게 대변 한 봉지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들 7~8명은 수갑과 족쇄를 채운 채 날 눌렀다. 나는 온 힘을 다해도 피할 수 없었다. 부소장은 장갑을 끼고 대변을 내 입에 넣은 뒤 얼굴과 머리, 몸에 발라 온몸에 대변이 묻었다.
그들은 또 날 자지 못하게 했다. 눈을 감기만 하면 나를 죽어라 때리면서 ‘아오잉(熬鷹-수면 박탈 고문)’이라고 했다. 나는 소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날 자지 못하게 한 사람이 당신입니까? 당신이라면 나는 당신을 꼭 기억할 겁니다!” 그는 잠시 멍해지더니 날 부축하고 있던 죄수에게 “그를 재워”라고 말했다. 그들은 날 3박 4일 자지 못하게 했다.
날 굴복시키기 위해 구치소 경찰은 수감자 우두머리를 불러 내가 있었던 두 감방의 모든 수감자에게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는지에 관한 글을 쓰라고 강요했다. 소장의 권한과 압력으로 죄수들은 쓸 수밖에 없었다. 글자를 모르거나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써달라고 부탁했다. 두 명의 죄수만 쓰지 않았고 소장과 경찰도 써서 총 수십 부에 달했다.
다 쓴 뒤 소장과 경찰이 날 찾아와 면담했다. 내가 밥을 먹지 않으면 그들이 이런 증거를 법원에 넘겨 가중처벌 받게 하겠다고 했다. 나는 온종일 생각했다. ‘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온 것인가, 아니면 중생을 망치려고 여기에 있는 걸까? 이 두 감방에 있는 죄수들은 내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시켜 그들의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희망했는데, 그들이 날 신고하면 죄를 짓게 된다.’ 중생을 위해 신중히 고민한 끝에 나는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후 고발 자료를 쓰지 않은 수감자 두 명은 복을 받아 한 명은 조기 석방됐고, 다른 한 명은 돈을 쓰지 않고 감형을 받았으며 상대방도 고소하지 않았다.
단식한 지 엿새쯤 됐을 때, 그들은 날 병원으로 데려가서 독방에 가두고 감시카메라를 끈 다음 날 병원 침대에 ‘대(大)’자 모양으로 수갑을 채웠다. 한쪽 손에 채운 수갑을 침대에 묶고 발에는 두 쌍의 족쇄를 채웠는데 하나는 일반 족쇄였고 다른 하나는 전자 발찌였다. 그들은 내 발이 침대 다리에 단단히 닿도록 오른쪽 발 대부분이 침대 밖에 나오게 하고, 각 발목 아래에 두 개의 수갑을 더 추가했다. 이렇게 내 손과 발에는 총 6개의 수갑과 두 쌍의 족쇄가 채워져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경찰은 득의양양하며 “여기는 당신이 편안하게 있으라는 곳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경찰은 카메라 사각지대인 침대 밑에 서서 이미 꽉 조여진 내 오른발 수갑을 걷어차서 발과 다리가 너무 아팠다. 그리고 오른쪽 발과 다리를 바깥쪽과 아래쪽으로 밀고 당기고 비틀어서, 수갑을 꽉 조이게 했다. 수갑이 살을 파고들었는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구치소장도 “아무리 강직한 사람이라도 3일은 버틸 수 있지만 5일 넘게 버틴 사람은 없었지”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 큰 주사기로 내 배에 많은 물을 주입했다. 수액까지 놓아 얼마 후 배가 부풀어 오르고 소변을 보고 싶었지만 그들은 수갑을 풀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길게는 두 시간 넘게 기다리게 해서 나는 방광이 터질 것 같았다.
죽기보다 못한 일분일초를 나는 5~6일을 보냈다. 그들은 내가 병원에서 죽을까 봐 두려워서 날 구치소로 돌려보냈다. 내가 구치소로 돌아온 후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나를 박해가 가장 심한 감방에 감금했다. 수감자 우두머리는 신발 밑창으로 내 얼굴을 때리고 손으로 내 머리를 짓누르며, 한 발은 조여진 족쇄 축을 밟고 다른 발은 허공에 올려놓은 채 외발로 선 자세로 온몸의 무게를 내 종아리뼈에 실어 극심한 고통을 가했다.
구치소에서 그들은 나에게 45일 동안 족쇄를 채웠다. 나는 구치소를 떠날 때 나와 접촉한 모든 수감자와 박해에 가담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날 때린 수감자 우두머리도 삼퇴시켰다. 내가 구치소에 머물렀던 세 개의 감방 중 처음 두 감방 사람들은 대부분 삼퇴했다. 떠나기 이틀 전에 나는 단속이 엄한 감방의 대부분 사람을 탈퇴시켰다.
이후 중공 법원은 부당하게 2년을 선고하고 날 감옥에 감금했다.
감옥에서 진상을 알리고 인연 있는 사람을 구하다
감금되던 날, 두 명의 죄수가 날 차에서 부축해서 작업장으로 데리고 갔는데 나는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나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무슨 죄를 지었는지 물어봤다.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말했더니 다들 그럼 사형(師兄)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수련자들이었다.
감옥에서는 구치소에서 온갖 방법으로도 날 ‘전향(수련 포기)’시키지 못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전향’을 시도하지 않았다. 나는 죄수복을 입지 않고, 감옥 규칙을 외우지 않으며, 쪼그려 앉지 않고, 당기 게양식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노동하지 않고, 사당(邪黨: 공산당)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며, 마음대로 연공하겠다고 말했다. 감옥 구역장도 이를 인정하며 내 믿음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감옥에서 한때 나를 ‘전향’시키려 했는데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날 ‘전향’시켜 승진하고 부자가 되려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사람이 승진하고 돈을 벌려면 덕을 쌓고 선행해야 하며, 우주를 창조하고 생명을 창조한 ‘진선인’ 대법을 반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승진하지 못하고 돈도 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목숨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감옥에서는 나에 대한 ‘전향’을 포기했다.
나는 이곳에 박해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나와 그들 사이의 관계는 박해하고 박해받는 관계가 아니라, 구원하고 구원받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작업장에서 나는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수감자들의 작업을 돕고 물을 길어오는 일도 했다. 나는 음식을 가져오고 바람을 쐬는 기회를 이용해 수감자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감옥경찰을 포함한 수백 명이 진상을 들었다.
한 수련생이 ‘회개서’에 서명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썼다. 대략적인 뜻은 다음과 같았다.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우리를 구원해주셨는데 여기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거나, 사악(邪惡)에 뭔가를 보증하고 뭔가를 뉘우치면, 석방된 후 가족과 수련생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앞으로 무슨 면목으로 자비롭고 위대한 우리 사부님을 대면할 것인가?’
며칠 후 이 수련생은 일이 너무 버겁고 피곤해 체력이 따라가지 못해서 연공을 해야겠다고 감옥경찰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만약 연공을 허락하지 않으면 일하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경찰이 승낙해서 그는 연공할 수 있었다. 얼마 후 그는 감옥장에게 ‘회개서’를 폐기한다는 편지를 썼다. 나중에 수련생은 그의 감방에 있는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을 삼퇴시켰다.
나는 도서관에서 대법을 비방하는 책을 보고 다시는 중생을 해치지 못하도록 그것을 없앴다.
내가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감옥을 나갈 때, 경비실의 등기소 경찰이 나에게 “무슨 죄입니까? 이름이 뭡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쳐들고 가슴을 당당히 펴고 감옥 문을 나섰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날, 나는 호적을 옮기기 위해 지역 파출소에 갔다. 그들은 대법을 비방하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했는데 나는 말했다. “나한테 이러지 마세요. 내가 서명할 것 같으면 2년간 옥살이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옥살이를 한 겁니다.” 그들이 내 아들에게 서명하라고 설득했지만 아들은 “아버지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당당하게 파출소를 나왔다. 내가 떠난 후 파출소에서 호적을 옮기는 것을 처리해줬다.
나는 알고 있다. 법공부를 잘하고,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며, 사부님을 도와 인간 세상을 바로잡고 다그쳐 사람을 구하는 것만이, 대법제자들이 사부님께 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이다.
원문발표: 2023년 11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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