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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邪黨) 기관에서 수련한 일부 경험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97년 고향에서 ‘전법륜(轉法輪: 파룬궁 수련서)’ 한 권을 보내줘 호기심에 읽어봤다. 한번 보니 느낌이 매우 좋았고 단번에 다 보았다. 인생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문제에 대해 끝내 알게 됐고 사람으로서 진정한 목적은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眞)임을 알았다. 수련한 후 온몸이 가볍고 신체가 무척 편안해졌으며 진정으로 병이 없는 온몸이 가벼운 상태를 체험했다.

사악한 중공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나는 중공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세 차례 불법 수감을 겪었고 세 차례 불법 수감을 당했다. 두 차례 불법적으로 세뇌반에 갇히고 3년 반 강제노동을 당한 후, 1년 넘도록 유랑하기도 했다. 그 후 계속 회사에 출근했는데 대법 수련인으로서 업무를 잘하는 것은 당연했다. 대법제자로써 사당(邪黨: 공산당) 기관에서 일하면 박해를 막아야 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법공부를 많이 하고 발정념을 많이 하며 이성적으로 진상을 알려야 했다.

나는 ‘전향’(수련 포기)하지 않아 면직당했다. ‘610사무실’(파룬궁 탄압기구)을 우두머리로 하는 13개 당정(黨·政) 기관에서 결정해 내 공무원 자격을 정지시켰다. 내 사업 부서를 옮기려는 인사부의 결정에 난 동의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610사무실 주임을 찾았고 내 공무원 신분을 회복해줄 것을 요구했다. 610 주임은 자신도 처리할 힘이 없다며, 이 일은 13개 부서가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결국 나는 회사 안에서 신분 없는 직원이 됐고 월급 인상도 없었는데 모아 둔 돈도 없었다. 그러나 수련인으로서 소극적으로 일할 수는 없었고 아울러 일을 잘해야 했다. 내가 한 일은 상사, 동료, 심지어 다른 회사의 인정을 받았고, 업무 능력이 좋고 기술 수준이 높다고 날 평가했다. 회사의 핵심 상사도 모든 중·고급 등 기술 직함이 있는 직원들의 기술 수준이 모두 나보다 못하다고 했다.

한번은 구(區)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상무 부서기가 나와 면담할 때 말했다. “조직과 인사부가 왜 당신 같은 사람(파룬궁 수련을 계속해온 사람)을 계속 붙잡아두고 있는지 모르겠고, 당신도 우리 구에 기여한 바가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나는 중공이 감시하는 핵심 인물이고, 특히 막 직장에 다시 돌아와 일했기에 감시가 무척 엄했다. 아주 오랫동안 24시간 감시당했고 정법위, 610, 국보(국내안전보위국: 파룬궁 담당 공안부서) 등 상사들도 자주 회사에 와서 내 정황을 확인했다. 국보에서는 매일 직장에 왔고 내가 파룬궁 자료를 갖고 있는지 조사했다. 직장에서 610의 지시를 집행하기 위해 부서에서 7명을 파견해 직접 날 감독했다.

직장에서는 아침 출근 전과 점심 휴식 때 1시간이 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이 시간을 이용해 법공부를 했는데, 처음에는 가끔 두려운 마음이 생겼고 대법서적을 볼 때 되도록 남들이 보지 못하게 했다. 일부 동료는 내가 날마다 고개를 숙이고 책을 보는 것을 보고 다가와 무슨 책인지 물었다. 그러면 나는 펼쳐서 그에게 보여주긴 했지만 무슨 책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전법륜’을 보고 있는데 상사가 갑자기 내 앞에 오더니 무슨 책인지 물었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그에게 안의 내용을 보라고 했는데 그는 잠깐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지 못해 그냥 가버렸다.

처음 시작할 때 국보 대장은 회사에 와서 파룬궁 자료가 있는지 두 차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없다고 했고 이후에 그는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법공부하는 것도 심성을 제고하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천천히 갈수록 적어졌다. 나중에는 매일 아무 생각도 없었고 단지 시간을 다그쳐 ‘전법륜’을 외우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됐다. 나는 사무실에서 법공부한 지 이미 10여 년이 됐고, 지금까지 교란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지금 20일이면 ‘전법륜’을 한 번 외울 수 있다.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이렇게 사악한 환경 속에서 법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단지 법공부하려는 소원이 있었을 뿐,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법공부 환경을 주신 것이다.

중공 정법위, 610, 국보 등 관련 부서 상사와 직원들은 늘 회사에 와서 날 찾았고 내 상황을 파악하며 박해를 시도했다. 목적은 바로 나를 강박해 소위 ‘삼서(三書: 결렬서, 회개서, 보증서 등 수련 포기 각서)’를 쓰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기회를 이용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한번은 정법위, 610, 국보, 내가 다니는 회사 등에서 연합으로 소위 ‘교육 전향반’을 만들었는데, 오로지 나 한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정법위 상무 부서기가 사회를 보고 각 기관 간부가 참가했는데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그들에게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그 당시 관련 사람들이 모두 도착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진상자료를 배포했고, 먼저 정법위 상무 부서기한테 배포해 보게 했는데, 국보 대대장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이런 걸(파룬궁 진상자료 배포) 합니까? 지금 당신을 2~3년 노동 개조시키려고 연구 중입니다.” 그가 나를 경고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깨워주는 것인지 잘 몰랐다.

또 한번은 시 국보지대 대장이 다른 회사로 이동해 국보지대 경찰이 업무를 전면적으로 책임졌다. 그는 오자마자 나와 상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파룬궁의 상황을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호텔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하자고 했고 그도 동의했다. 호텔에서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고 파룬궁은 사람에게 진선인(真·善·忍)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며, 자신이 파룬궁을 수련한 체험을 말했다. 그리고 파룬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파룬궁은 진정한 불법(佛法)임을 사실로 증명했다. “중공의 TV와 신문 등은 파룬궁에 대해 먹칠하고 있는데 모두 가짜이고 날조한 겁니다.” “파룬궁을 모함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이고 장래에 모두 큰 보응을 받게 됩니다.” 그 당시 이 경찰은 내가 말한 진상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파룬궁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후에 또 기회가 있으면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이 경찰은 진상을 들은 후 더는 보이지 않았고, 또한 그가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다.

구(區) 국보 대대장이 직장에 가장 많이 왔다. 처음 시작할 때 그는 나에 대해 비교적 흉악했고 내 자료를 조사하고 또 ‘삼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나는 여러 번 그에게 진상을 알렸고 대법제자를 강요해 ‘삼서’를 쓰게 하고 전향시키는 것은 신과 부처님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라고 여러 번 말해줬다. “만약 제가 ‘삼서’를 쓰지 않는다면 저에 대해 책임질 뿐만 아니라, 당신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겁니다. 만약 제가 ‘3서’를 쓰면 저를 강박해서 쓰게 한 것인데, 당신은 신과 부처님께 죄를 지은 것이 되기에 저는 당신이 신께 죄를 짓는 것을 바라지 않고 응보를 받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자 국보대장의 태도는 곧 변했다. 지금 날 만나면 ‘○○ 형’이라고 부른다. 최근 회사에 몇 번 와서 나와 얘기할 때도 나에게 전향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공무를 보듯 하고는 가버렸다.

직장 동료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했다. 일부 동료는 진상을 들은 적이 있고, 또 일부 동료는 나에게서 진상을 들은 적이 없었지만 모두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정직하고 선량한 좋은 사람이 됐고, 신체가 건강하고 얼굴은 희고 발그레해 실제 나이보다 젊어보인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대법제자의 선량한 표현은 일정한 나비 효과를 일으켰다. 현지 일부 당정 상사와 부서, 하도급 업체 등 많은 사람은 모두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선량해지고 건강하고 업무 능력이 좋고 전문 기술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는데, 간접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작용을 일으켰다. 이전에 여러 회사 상사와 직원을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들은 날 잘 알지 못했다. 이제는 내 이름을 말하면 그들은 날 알아보며 매우 우호적으로 대한다. 직장에서는 삼퇴를 권해 겨우 5명이 탈퇴했다. 일부 동료는 비록 중공에서 탈퇴하겠다고 표시하지 않았지만 중공의 사악함에 대해 인정했고 일부 동료는 여전히 희망이 있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지 이미 26년이 됐다. 수련해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특별히 험악한 박해 속에서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법공부 덕분이었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공부를 잘해야 비로소 정념이 생긴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고 있다. 수련 속에서, 박해 속에서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문발표: 2023년 11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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