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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법회] 반석같이 굳건한 바른 믿음이 펼쳐 보인 대법의 위력 (1)

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저는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지금은 70대입니다. 20년이 넘는 수련 가운데서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반석같이 굳건한 믿음을 유지해야 하며, 이것이 대법제자가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깊이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과 정념을 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착실하고 진정하게 수련하며, 착실하고 착실하게 심성을 높여야 합니다.

제20회 명혜망 중국법회를 맞이해 사부님께 저의 수련 심득을 보고드리겠습니다.

1. 악랄한 환경에서 착실한 수련을 견지하며 대법을 수호하다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중국공산당은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법에 대한 바른말을 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습니다. 베이징에서 저는 많은 위험을 겪었지만 모두 사부님의 보호 아래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수련생이 걸어 나와서 청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돌아와서 그들이 나오기를 바라며 교류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누명을 쓰고 2년간 부당하게 강제 노동수용소에 갇혔습니다.

제가 불법적으로 감금된 수용소는 살인이 흔한 악명 높은 사악한 소굴이었습니다. 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저는 다른 수련생 두 명과 함께 한 방에 갇혔습니다. 그날 오후, 한 수련생이 함께 연공하는 방식으로 대법을 수호하자고 제안했고 저도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구치소에서 심한 박해를 경험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있었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저는 수련생들에게 “먼저 연공하세요, 저는 나중에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두 수련생은 제 말에 영향을 받지 않고 즉시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곧 경찰에 의해 수갑이 채워져 끌려갔습니다.

두 수련생이 떠난 후 생각하면 할수록 제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두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날 돕기 위해 배치해주신 분들이 아닌가? 왜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후퇴했을까? 이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닌가? 두려움도 집착 아닌가?’ 저는 사부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전법륜)

저는 두려움을 없애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대법을 수호하고 대법을 실증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사악하고 끔찍한 환경에서 두려움을 떨쳐버린다는 것이 어찌 말처럼 쉬울까요? 저는 몇 번이고 용기를 냈지만 몇 번이고 포기했습니다. 열흘이 지난 후 마침내 그날 밤 연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야간 당직자가 사람을 매우 사납게 때리는 조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 포기했습니다.

​열흘 정도 더 지나고 나서 다시 한번 밤에 연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감방 당직자는 그렇게 사나운 조장은 아니었지만, 감방 밖 통로에 있는 당직 조장은 훨씬 더 사납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 사람 손에 넘어가면 어떤 매를 맞을지 몰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저는 물러났습니다. 그 후 저는 후회와 자책감, 좌절감을 느꼈고, 돌파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해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라는 사부님 말씀을 떠올리며 반드시 해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보름이 넘는 고통을 겪으며 두려운 마음과 정념 사이의 줄다리기를 반복한 끝에 마침내 정념이 우세했습니다. 어떤 박해를 받더라도,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연공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저는 밤에 정공(靜功)을 연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밤에 침대에서 일어나 보니 매우 사나운 당직 조장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수인(手印)을 하는 동안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이 약간 떨렸습니다. 수인하고 나니 불안했던 마음이 서서히 진정됐습니다. 감방 밖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제가 수인을 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마치 저를 보지 못한 듯했습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조용히 연공하고 있는데 드디어 조장에게 발각됐습니다. 그는 나무 의자를 집어 들고 저에게 내리치면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 후 저는 엄청난 홀가분함을 느꼈고 마침내 두려운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두려운 마음을 떨쳐버린 이 경험은 앞으로 박해에 맞서고 대법을 실증할 수 있는 확고한 토대가 됐습니다. 그 후로 저는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고 싶을 때 정의를 위해 조금도 주저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전처럼 겁에 질려 있지도 않고, 질질 끌지도 않았습니다.

​강화 훈련대에서 3개월을 보낸 후 저는 위생원으로 배치됐습니다. 이 자리는 생산 업무가 없는 쉬운 자리였고, 많은 사람이 돈을 주고 인맥을 쌓아도 구하기 어려운 자리였기에 수감자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곳에서 2년간의 부당한 강제노역을 편안하게 마친다면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닐까? 수련자로서 어떤 환경에 있든 수련과 대법을 실증하는 것을 잊을 수 없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대법을 비방하는 벽보 내용을 지우려고 했습니다. 벽보에 가서 제거해 버리려 하는데 이미 내용이 바뀐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다른 방법으로 대법을 실증하기로 했습니다. 지난번에는 밤에 실내에서 연공을 했지만 이번에는 대낮의 공개석상에서 연공하기로 했습니다.

마침 일요일이었던 그날은 수백 명 죄수 전체가 일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연공을 시작하자마자 누군가 “누군가 파룬궁을 연마하고 있어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직후 누군가가 당황한 목소리로 “빨리 가서 경찰에게 신고해!”라고 외쳤습니다. 수백 명의 수감자가 제가 연공하는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눈을 살짝 감고 첫 번째 공법부터 시작해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연공했습니다. 세 번째 공법을 시작했을 때 한 경찰관이 부드럽게 제 손을 잡고 “당신이 연공하는 것을 잠시 지켜보니 파룬궁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말을 마치자 저에게 수갑만 채우고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공개적으로 연공해 위생원 자리를 잃었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저는 편안함이나 즐거움을 추구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련생이 경찰에게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했고 저는 이를 막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경찰은 격분해 저를 15일간 독방에 감금했습니다. 독방의 환경은 매우 열악했고 겨울이라 날씨가 매우 추웠습니다. 독방에 있는 소위 침대는 폭이 1미터 정도 되는 콘크리트였습니다. 처음 이틀 동안은 하루에 두 끼만 제공됐는데 양도 아주 적었습니다. 경찰은 저를 얼어 죽게 하려고 아주 얇은 옷만 입게 했습니다. 처음 이틀 동안은 이불을 주지 않았고, 셋째 날에는 아주 얇은 이불을 줬는데 덮지 않은 것과 똑같았습니다.

저는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전법륜)라고 하신 사부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이것이 수련에서 제고할 좋은 기회가 아닌가? 예전에 일하느라 바빴던 나에게 이렇게 많은 시간과 고요한 환경이 어디 있었어?’ 저는 이 시간을 잘 활용해 착실하고 착실하게 수련에서 향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매일 시간을 쪼개 연공하고 법을 외웠습니다. 한동안은 법을 외우고, 한동안은 연공하고, 번갈아 하다 보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잠을 거의 자지 않았지만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외울 수 있는 법이 많지 않았기에 ‘홍음’, ‘정진요지’, ‘전법륜’에서 기억나는 내용을 반복해 외웠습니다.

다른 기공을 연마할 때는 결가부좌가 쉬웠고 아프지도 않았으며 다리가 매우 유연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갑자기 다리가 뻣뻣해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결가부좌는 말할 것도 없고 반가부좌조차도 매우 어려웠는데, 다리가 높이 치켜 올라갔고 아픈 것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다른 공법은 푸왠선(副元神)이 수련하는 것이지만, 파룬따파는 주왠선(主元神)이 수련하는 것이기에 분명히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업력이 많다는 사실도 한 가지 이유인데, 업력이 많아서 업을 소멸해야 하고 고통을 겪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항상 결가부좌를 돌파하고 싶었는데, 이제 시간이 넉넉해졌으니 이것은 좋은 기회가 아닌가?’ 저는 점진적으로 시간을 조금씩 늘렸습니다. 시간을 볼 수 없었기에 법의 한 구절이나 ‘홍음’ 한 구절을 10번씩 외우는 것을 1분으로 삼았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시간이 될 때까지는 절대 내려놓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미리 설정한 시간에 도달했을 때 만족하지 않고 종종 10분이나 20분을 더 하는 ‘보상’을 자신에게 주었습니다. 극심한 통증 때문에 계속 땀을 흘려 처음에는 셔츠가 젖고 바지가 젖었는데, 젖었다가 마르고, 마르면 또 젖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했지만, 저는 추위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곧 저는 1시간 이상 결가부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견뎌냈습니다.

며칠 후 저는 더 이상 시간을 정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아침 밥을 먹은 후부터 점심밥을 가져다줄 때에서야 다리를 풀었는데 두 끼 사이에 약 4시간 동안 다리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다리를 틀고 앉자마자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점점 통증이 심해지더니 온몸의 모든 부위에 통증이 느껴지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확장됐습니다! 저는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라는 사부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계속 견지하며 다리를 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고통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고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눈물과 땀이 함께 흘러내렸고, 고통 속에서 시간이 일분일초씩 흘러갔습니다. 마침내 식사 시간이 되어 발을 내려놓았습니다. 저는 침대에서 바닥으로 힘겹게 굴러떨어져 내려왔고 다시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문으로 기어가 떨리는 손으로 밥그릇을 건네받아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 다음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1시간 이상 누워있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밥이 식은 지 한참 지난 후였습니다.

​비록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반가부좌도 힘들던 것에서 단번에 몇 시간 동안 결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동시에 저는 다른 공간의 번티(本體)가 매우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며칠 후 ‘포잔첸서우파(佛展千手法)’를 연마할 때 ‘썬선허이, 뚱찡쑤이지(身神合一, 動靜隨機)’(대원만법-2, 동작도해) 구결을 막 염하자마자 갑자기 ‘몸(身)’과 ‘신(神)’이 정말 하나로 합쳐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제가 있는 경지에서 몸과 신이 합쳐진다는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우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제 몸도 크게 변했고 얼굴 혈색이 좋고 활력이 넘쳐서 독방에 갇힌 사람임을 알 수 없었습니다. 저와 같은 시간에 감금된 사람 중 일부는 저보다 더 많은 옷을 입고 저보다 더 두껍게 덮고 있었지만, 감금 기간이 끝날 때 그들의 얼굴은 모두 누렇게 됐고 몹시 수척했으며, 눈빛은 흐리멍덩한 것이 얼이 빠진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후 제 인내력은 훨씬 더 강해졌습니다.

‘밧줄 묶기’는 감옥과 강제수용소에서 가장 잔인하고 강력한 고문 수단입니다. 수감자들은 ‘밧줄 묶기’라는 말만 들어도 겁을 먹습니다. 이 방법은 특수 제작된 갈색 밧줄로 어깨부터 손목까지 한 바퀴 한 바퀴 묶은 다음 밧줄을 세게 당기는 것입니다. 밧줄이 살 속으로 조여들어 팔 전체에 혈액이 순환되지 않게 한 다음 양손을 다시 뒤로 묶습니다. 힘의 강도와 시간을 잘 파악하지 못하면 양손이 불구가 되기 쉽습니다.

밧줄을 묶을 때는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고 풀 때의 고통은 더욱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나일론이나 삼끈 같은 끈 대신 갈색 밧줄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갈색 밧줄은 매우 거칠고 가시가 있기에 팽팽하게 당길 때 피부가 찢어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갈색 털은 바늘로 찌르는 것과 같아서 통증의 정도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수용소 측은 저에게 수련을 포기하게 하려고 두 명의 경찰관에게 저를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 갈색 밧줄로 손을 묶으라고 지시했습니다. 한쪽에 한 명씩 두 경찰관은 제 한쪽 손을 두 발로 동시에 밟으며 밧줄을 세게 잡아당겼습니다. 제 손이 급격히 부어오르고 부은 살이 밧줄을 완전히 감싸고 손이 녹색으로 변했습니다.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타협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두 명의 경찰이 제 손을 등 뒤로 묶고 목에서 가슴 위로 밧줄을 교차시킨 다음 등에 매듭을 묶었습니다. 그런 다음 쇠 파이프를 밧줄 사이에 넣고 가능한 한 세게 비틀었습니다. 이것은 원래의 큰 고통에 더해 저에게 큰 고통을 안겨줬습니다. 경찰은 악의적으로 “아직도 파룬궁 수련을 할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의식을 잃기 직전이었지만, 단호하면서도 침착하게 “파룬궁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말을 마치자 경찰이 멍해졌습니다. 잠시 후 경찰은 “시간을 잘 봐”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은 몇 분에 불과했지만 너무 길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다 되자 그들은 밧줄을 풀었습니다. 그들이 밧줄을 풀었을 때 저는 강한 전기 충격을 받은 것 같았고 동시에 수백만 개의 바늘에 찔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밧줄에는 조이면서 찢어진 피부로 가득 차 있었고, 제 팔 전체에는 살에 박힌 채로 남겨진 밧줄 가시가 가득했으며, 피범벅이 된 제 팔은 피부가 찢기고 살갗이 터져 있었습니다.

보름 후 팔에 딱지가 생기기 시작했고, 딱지가 생기면서 노란 물이 흘러내렸고 흉터가 완전히 사라지는 데 10년이나 걸렸습니다. 밧줄이 묶인 후에 한 달 내내 양손에 감각이 없었고 밥을 먹을 때 젓가락질도 할 수 없어 그릇에 입을 대고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련생 몇 명과 저는 단속 소대에 배치됐습니다. 이 중대는 감옥 중의 감옥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랜 기간 굶주림에 시달리게 하고, 체벌의 일종으로 매일 뛰고 걷기, 체조 등등을 강요당했습니다. 수용소의 음식은 이미 열악했지만, 단속 소대에서는 훨씬 더 나빴고 양도 매우 적었습니다. 먹는 채소 대부분은 농부들이 원치 않는 채소로, 아마 돼지에게 먹여도 좋아하지 않을 것들입니다. 채소 잎은 모두 누렇게 시들었고 줄기가 매우 긴 씹거나 삼키기 어려운 부분을 썬 것인데 수감자들은 ‘총알 껍질’이라고 불렀습니다. 채소에는 기름기가 거의 없었고 심지어 국 위에 벌레가 떠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양이 적었습니다. 아침 찐빵은 마작 타일만큼 작고 쌀죽은 그릇 바닥에만 약간의 쌀알이 있는 작은 양의 멀건 물이었습니다.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대법제자의 책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소대 회의가 열릴 때마다, 그리고 경찰의 연설에 대법을 비방하는 단어가 포함될 때마다, 10여 명의 수련생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쳤습니다. 경찰이 수용소 죄수에게 우리의 입을 막으라고 했지만, 죄수들은 그냥 시늉만 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우리와 함께 외치며 도와주기도 했고 때로는 우리보다 더 크게 외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성격이 묵묵하고 말이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특히 공공장소에서는 쉽게 긴장하고 표현하기 어려워합니다. 한번은 마을 회의에서 저에게 연설하라고 했는데, 저는 충분히 준비했지만 무대에 올랐을 때 몇 분 동안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며 한마디도 못 했습니다. 결국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속에서 쑥스럽게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은 너무 좋고 파룬따파는 너무 좋다. 내가 여전히 그렇게 무뚝뚝하고 말이 없다면 어떻게 중국공산당(중공)이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을 명확히 밝히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까? 나중에 나가서 대법을 더 잘 실증하고 진상을 분명히 알리며 사부님의 정법을 도울 수 있으려면 수용소에 머무는 동안 이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 저는 수용소의 식량 통제 및 수감자들에 대한 학대 문제를 돌파구로 삼아 실제로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을 연마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박해를 반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매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대에서 발표한 식비 지출표를 반복해서 숙지하고, 발표된 데이터와 실제 데이터 사이의 차이를 추정했습니다. 그 결과 수용소의 식비 지출 내역이 심각하게 위조됐고, 거액의 자금이 횡령 및 은닉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한 수감자가 아주 오래된 채소를 한가득 싣고 정문을 통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달려가 그가 들고 있던 야채를 집어 들고 급식 담당 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형편없는 야채를 구입했는지 확인하고 일일이 정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주임이 오자 머릿속이 하얘져서 생각했던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관리소장은 저를 미쳤다고 하며 심하게 구타했습니다. 저는 기죽지 않고 다시 한번 돌파구를 잡을 기회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제가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정치협상회의, 전국인민대표대회, 부녀연합회에서 대표단을 구성해 수용소를 참관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저는 찐빵을 먹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참관단에게 수감자들을 학대하고 식비를 횡령하고 통제하는 수용소의 악행을 폭로하기 위한 증거로 사용하려 했습니다. 참관단 전체가 소대로 들어갔을 때 저는 경찰에게 “상황을 반영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동의하든 안 하든 상관하지 않고 저는 방문객들을 향해 곧장 걸어갔습니다. 경찰은 당황하며 저를 막기 위해 “수용소에 문제를 일으키려는 수감자가 있고 누군가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라고 외쳤습니다. 참관단은 겁에 질려 떼를 지어 뛰쳐나갔고, 몇몇은 당황한 나머지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그제야 경찰에게 먼저 말하지 말고 참관단에게 직접 다가가 수용소의 악행을 폭로해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참관은 수용소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인데, 그들은 제가 그렇게 큰 혼란을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전국 선진 노동수용소 평가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당시 수용소에 베이징의 고위 ‘610(파룬궁 탄압기구)’ 관리가 현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수감자들과 경찰 모두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고 그 결과가 매우 심각할 것으로 생각했으며, 어떤 가혹한 보복과 박해를 겪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부님께서 계시는데 뭐가 두려워? 그들은 이미 밧줄을 묶는 가장 잔인한 박해를 가했으니 더 이상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맞아 죽는 것이었지만 대법제자는 우주의 진리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저녁에 중대장이 저를 불러 면담했습니다. 저는 “죄수들의 식량을 가로채는 것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큰 죄입니다. 음식을 너무 적게 주는 것은 수감자들의 건강을 심하게 해치는 것입니다. 모든 수감자가 단속 소대에 들어가면 처음 3일간은 음식을 전혀 주지 않고, 다음 3일간은 하루에 한 끼만, 그다음 3일 동안은 두 끼만, 열흘째 되는 날에만 세 끼를 줍니다. 끼니마다 음식의 질이 매우 떨어질 뿐만 아니라 양도 매우 적습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그들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중대장은 “여기는 단속 소대이기에 엄격히 통제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 하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럼 누가 당신에게 식량을 가로채고 수감자들을 학대할 권한을 줬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문서를 보여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게시한 월별 식료품 수입 및 지출 명세서를 주의 깊게 분석했는데, 재무부에서 중대에 할당한 금액과 중대가 실제로 지출한 금액 사이에 최소 1만 위안의 차이가 있습니다. 한 달에 1만 위안, 1년에 12만 위안인데 이 돈은 어디로 갔습니까? 명확하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중대장은 기가 꺾었습니다. 저는 하나씩 그에게 장부를 계산해줬습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사부님의 도움으로 머리가 맑고 이성적이며 명료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중대장은 한 시간 넘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 말을 계속 들었습니다.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수감자들이 왜 당신들에게 그렇게 심하게 고문당하고 있으며, 왜 여전히 ‘얼진궁(二進宮)’, ‘산진궁(三進宮)’(전과자가 거듭 죄를 저질러 두 번, 세 번 감옥에 들어가는 것)하며 반복해서 들어올까요? 그것은 당신들의 사악한 방법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전혀 바꿀 수 없고, 그들이 나갈 때 여전히 악한 일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파룬궁은 왜 진정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악을 버리고 선으로 향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파룬궁은 진선인을 통해 사람들의 선한 생각을 깨우치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선해야 하고 삶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때문인데, 악습이나 나쁜 습관을 지니고 있던 많은 수련생이 수련 후 정말 더 나은 방향으로 변했습니다.” 중대장은 조용히 제 말을 듣고는 기숙사로 돌아가서 자라고 했습니다.

제가 당할 것으로 생각했던 모든 종류의 박해가 사라졌습니다. 수감자들과 수련생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수십 년간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그런 큰 사건에 대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제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고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빵은 평소보다 훨씬 커졌고 쌀죽도 훨씬 더 걸쭉해졌습니다. 수감자들은 흥분하고 감격했습니다. 그들은 수련생을 보자 모두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우며 “파룬궁은 정말 대단해, 정말 대단해!”라고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법이 만든 위대한 대법제자가 아니라면 누가 잔인한 박해를 받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그 이후로 제 표현 능력과 말솜씨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지위가 어떻든, 상대방이 고위 관료이거나 전문가나 교수이더라도 저는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고 항상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종종 몇 마디 간단한 말만으로도 정곡을 찔러 사악한 박해를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계속 말하라고 하면 한 번에 몇 시간씩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였고, 생각은 명확하고 이치에 맞고 논리성이 강했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았지만 ‘말하는 능력’ 때문에 박해받지 않았습니다. 제 입은 사악을 제거하고 박해를 깨뜨리는 데 사용하는 날카로운 검이 됐고, 세상을 깨우고 모든 존재를 구하는 데 사용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제가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가나 교수라고 생각하면서 지식이 풍부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저는 중학교 학력 수준일 뿐이며 저의 지혜를 열어 준 것은 파룬따파입니다.

2. 정념으로 박해를 타파하다

​수용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평소 친분이 있던 젊은 경찰 샤오멍(小孟, 가명)이 찾아와 시청에서 저와 면담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마자 경찰차에 강제로 태워져 시 ‘610’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세뇌반으로 끌려갔습니다. 지방 정부는 두 사람을 감시팀으로 보냈는데, 그중 한 명은 되는대로 살아가는, 평소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는 매우 흉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곳은 중공이 많은 돈을 투자하고 경비가 삼엄한 매우 사악한 세뇌반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박해에 가담하는 모든 사람은 많은 보조금을 받을 뿐만 아니라 매일 좋은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 도시의 많은 수련자가 그곳에서 박해받았습니다. 수용소에서 두려움을 버린 기초를 다졌기에 저는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전법륜)를 확고히 믿었습니다.

세뇌반에 도착한 둘째 날, 도시에서 온 소위 ‘전향(수련 포기)’ 전문가가 도착했습니다. 그는 “옆방 사람도 전향했으니 당신도 전향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전향은 좋은 일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향’에는 전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악이 바르게 변하는 것이고, 악이 선으로 변하는 것이며, 악이 좋은 데로 변하는 것입니다. 맞나요? 여러분은 이 원칙을 염두에 두고 행동했나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겁니다!” 제가 말을 마치자 그는 도망쳤습니다. 그 후 그는 다시는 제 방에 올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저를 ‘전향’시키려고 시도한 다른 여러 사람이 차례로 패배했습니다. 저를 감시하던 사람은 그들을 비웃으며 “당신들이 아직도 그를 ‘전향’시키려고 하지만 보아하니 당신들이 그에게 ‘전향’될 것 같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설득할 수 없어서 대법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보여주자 저는 말했습니다. “이 세뇌반은 저를 위해 꾸린 것이니 제가 먼저여야 하고, 이 방에 있는 모든 것은 저를 위한 것이어야 하므로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법률 학습반이라고 하셨으니 법률 채널을 시청합시다.” 저는 TV 리모컨을 들고 방송 프로그램을 선택했는데, 마침 ‘오늘 법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부당한 감금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즉시 그들에게 법을 알려줬습니다. “저는 아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시민인데, 저를 이곳에 납치한 것은 사설 감옥을 차려 놓고 부당하게 감금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법을 어기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법학박사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세뇌반 사람들은 매일 밤 모여 대법제자를 어떻게 박해할지 논의했습니다. 제 방의 책임자는 매일 밤 회의에 참석해 제 상황을 상사에게 보고하는 동시에 박해 지침을 전달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매일 어떤 회의에 참석합니까? 돌아와서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십니까? 당신은 우선 주된 것과 부차적인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 이렇게 좋은 음식과 높은 임금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저 덕분입니다. 당신은 제 것을 먹고, 제 돈을 쓰면서 저를 회의에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내일부터는 회의에 가지 마세요. 제가 회의에 참여하겠습니다!”

그들은 저를 ‘전향’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저로 인해 항상 망신스러운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강제수용소에 저를 보내려 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한 방으로 불렀는데 책상 뒤에 경찰 한 명이 앉아 있었고 건장한 경찰 두 명이 그 옆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자마자 그들이 저에게 진술을 요구하고 부당하게 강제수용소에 가두려는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경찰이 제 이름, 성별, 태어난 연도 등을 물었습니다. 경찰이 제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협조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영감이 떠올라 “제 이름도 모르는데 저를 납치하고 가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떠날 겁니다.” 그렇게 말한 후 저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복도에서 저는 큰 소리로 “우리 파룬궁수련생이 그렇게 만만합니까? 그냥 납치해 가둬도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몇몇 경찰이 저를 쫓아와 일부러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파룬궁 구호를 외치며 저를 때리려 했지만 저의 정념에 의해 제지됐습니다.

저는 비교적 흉악한 감시자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배짱이 있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며 정의감이 있는 좋은 사람입니다. 오늘 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저를 해치려고 마음대로 사실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뜻밖의 재난이나 변고가 생기게 한다면 당신도 연루될 겁니다.” 그는 듣고 나서 양심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저는 다시 현(縣)으로 돌아왔습니다. ‘610’은 저를 ‘전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저를 독방에 가두고 저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보냈는데, 더 이상 ‘전향’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1년 후 제 몸에 병업 상태가 나타났고 경찰이 저를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저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수련생이고 원래 건강했지만 그들이 저를 부당하게 가두고 박해했기에 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마음대로 사설 감옥을 세웠고 이제는 병원 병동을 감옥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빨리 병원 경비원에게 전화해 체포하십시오.” 저는 경찰에게도 말했습니다. “만약 저를 수술해야 한다면, 문제가 발생하면 당신들 중 누가 책임질 겁니까? 당신들 중 누가 감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당신들 중 누가 보증서를 작성해도 문제가 없다면 그에게 쓰라고 하십시오. 문제가 생기면 저는 그를 찾겠습니다.” 아무도 감히 보증을 서지 않았기에 그들은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제 몸은 곧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계속)

 

원문발표: 2023년 11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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