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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법회]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다

글/ 미국 워싱턴 DC 대법제자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 나의 어린 시절

어릴 적 저는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말을 잘 듣는 순한 아이였습니다. 집에서는 어른들 일을 잘 도왔고 숙제는 스스로 알아서 했으며 성적이 좋은데다 동생도 잘 돌봤습니다. 그래서 어디서나 늘 칭찬을 받았습니다.

외할머니는 저를 특별히 아끼셔서 어렸을 때부터 응석받이로 키우셨습니다. 부모님은 가끔 집에서 다투고 싸우셨지만, 외가댁을 가면 항상 밝고 편안했습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멋진 레스토랑에 가고, 파티를 열었으며, 고급 상점에서 쇼핑도 하고, 여행도 다니셨습니다. 또한 컨트리클럽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시간이 나면 이런 편안한 외가댁에 가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제가 여섯 살 때 부모님은 이혼하셨습니다. 몇 년 후, 어머니가 재혼하며 이 지역을 떠나려 하자 저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셨고 그 시기 외할머니는 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외할머니는 결국 제가 10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외할머니 뒤를 이어 저를 계속 애지중지 키우셨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저는 여전히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았습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대체로 잘 지냈습니다.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가정이 부유했고 그 친구의 가족들과 한 가족처럼 지내며 안락한 생활을 함께 누렸습니다. 제게 있어서 학교생활은 쉬웠습니다. 저는 많이 노력하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받는 것에 익숙했고, 사람들의 칭찬에도 익숙했습니다.

법을 얻기 전의 그 시절은 제게 너무나도 그리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련하면서 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저의 덕으로 이런 것들을 맞바꾼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어떤 것은 구세력이 주선했거나, 구세력에 의해 이용당한 것을 봤습니다.

2. 대법을 수련하면서 집착을 발견하다

법을 얻은 초기, 저는 어떻게 안으로 찾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의 집착은 쉽게 보였지만 제 집착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타인에게서 보이는 것은 내 모습의 반영이다’라는 속인들의 말조차 잊은 것 같았습니다. 사부님은 제고하려는 제 마음을 보시고 항상 제게 결코 없다고 생각하던 쟁투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너무 놀라 속인 친구에게 자신의 쟁투심을 발견했다고 하자 친구는 미소를 지으며 “사실 내가 말해 줄 수도 있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이 일에서 저는 우리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는 것을 다른 사람도 가끔 볼 수 있으며, 심지어는 우리 자신도 볼 수 없는 것을 그들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왜 안으로 찾지 못하는지, 무엇이 절 가로막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갑자기 한 수련생이 그의 집착을 이야기할 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집착을 말할 수 있지?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저는 제가 안으로 찾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아주 강한 집착, 바로 명예에 대한 집착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저를 나쁘게 보는 것은 물론, 저의 좋지 않은 면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은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 마음이 이렇듯 강력하고 깊이 은폐되어 있어 수련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제야 저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좋은 말과 좋은 평판을 듣고 싶어 하는 마음, 쟁투심 등과 같은 집착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집착은 아주 어릴 때부터 형성된 것으로 제게 자연스러운 일부인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저는 그것들을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의사가 되면서 이런 집착은 더욱 강해져 자신을 과시하고 남을 무시하고 얕보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저는 과시심·쟁투심·환희심·명예욕과 같은 집착은 모두 질투심에서 비롯됨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모두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질투심에 관해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공산당의 행동이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요? 구세력의 행동도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요?

우리는 질투와 이를 조장하는 모든 집착에 대해 매우 엄숙하게 대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좋지 않은 생각이 가끔 떠오릅니다. 그럴 때면 저는 이런 생각은 진짜 제가 아니라 다른 공간의 사악이 저를 통제하려 한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허용할수록 그것은 더 강렬해지고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작은 것으로 보고, 어느 층차에서 나타나든 제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3. 집착은 교활하다

수련하면서 저는 집착이 매우 교활함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편안함에 대한 집착은 쉽게 식별하고 제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은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 편안함에 대한 제 집착은 심지어 전생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만약 이 일이 마음에 든다면 편안함에 대한 집착으로 더 오랜 시간, 더 느리게 일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 있습니다. 또는 가끔 아무 생각 없이, 불평 없이 할 일을 하고 나면 ‘요즘 바쁘게 일했으니 좀 쉬어도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자만심이 싹트면 자아와 편안함에 대한 집착을 부추깁니다. 잘하고 있다고 느끼고 스스로 높게 평가하면 좀 쉬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정진하라고 하셨습니다. 자만심은 구세력이 악용할 수 있는 큰 누락입니다.

또한 제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 편안함에도 집착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정신적 위안을 얻고 싶은 욕구는 나와 타인에 대한 책임감, 부지런함, 안으로 찾는 것, 의지를 단련하는 것 등을 방해합니다.

사실 사람의 마음을 연마하는 것은 수련 과정의 일부입니다. 불편함을 피한다면 어떻게 제고할 수 있을까요? 어떤 상황에서는 잘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은 피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청구서를 납부하는 것을 싫어해서 남편에게 미루고 얘기조차 하기 싫어했습니다. 수년간 도맡아 온 남편도 때론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싫어하는 걸 알기에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럼 저는 왜 이 일을 모른 척했을까요? 사실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서 그 불편함을 피해 도피하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법공부를 통해 안일심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매우 교활한데 이것을 해야 한다거나, 혹은 저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둥 생각을 머릿속에 쉽게 심어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우리 자신의 자연스러운 생각인 것 같습니다. 마치 따뜻한 담요처럼 감싸서 우리를 편안하고 게으르게 만들어, 정, 두려움, 명예, 이익 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듭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구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기 생각과 습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안일심은 구세력이 대법제자들을 멸망시키려는 주요 수단 중 하나입니다.

쉽게 잠입할 수 있는 또 다른 집착은 원망심입니다. 작년에 저는 다음 상황을 겪으며 제 일이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계약직입니다. 회사 규정에 따라 하루 8시간 근무합니다. 하지만 상사는 제게 가장 규모가 크고 기한이 촉박한 업무를 배정했습니다. 이는 저에게 매우 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었고, 저는 장기간 무급으로 초과 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일을 하게 되어 기뻤고 고생도 기꺼이 감수했지만 곧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계약이 계속 연장되면서 자만심이 싹트기 시작했고, 부당한 대우에 대한 원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에는 너무 힘들어서 계약이 종료되든 말든 상관없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주 후, 회사는 이전에 계약을 최소 5개월 더 연장하겠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계약직 직원을 전부 해고했습니다.

이제 직업도 없으니 원망하는 집착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소한 일에도 갈수록 짜증을 내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아들이 방해하거나, 누군가 별도로 일을 해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생각을 제거하지 않아 하나의 강한 생명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인내심은 줄어들고 원망심은 커졌습니다. 거의 저 자신을 망가뜨릴 뻔한 사건을 겪고서야 이런 끔찍한 집착을 깨달았습니다.

원망심은 우리가 억울하거나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 생깁니다. 공산주의의 평등주의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 수련생들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대우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일들은 겉으로는 불공평해 보이지만 사실은 공평합니다.

다른 사람이 누가 우리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알려줄 때 그 집착은 쉽게 강화됩니다. 심지어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때 원망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련인입니다. 설령 남들이 우리를 억울하게 하고, 주변에서도 우리가 억울하다고 말해도 우리는 수련인의 관점에서 그것을 봐야 합니다. 제가 진 빚이든, 구세력의 간섭이든, 모두 반드시 내려놓아야 할 집착입니다. 모두 심성을 제고하는 기회 아닙니까? 저는 반드시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들이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면 저는 제고할 수 없습니다. 수련생이 지적했듯이, 어쩌면 누군가가 자신을 희생해 저의 제고를 도왔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원망심의 심각성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매우 교활하고 음흉하기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그것이 나타났을 때 저는 그것을 더 쉽게 알아챌 수 있고 제거할 수 있습니다.

4. 남은 시간 동안 더 잘하자

이제 우리 수련은 막바지가 되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충분히 잘하지 못했고, 아직도 많은 중생이 구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우리는 정진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시험과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상황을 개선하려 합니다.

제가 끊임없이 제고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매번 저에게 무슨 동기인지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제 동기가 순수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표면 밑에 있는 것은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엄마를 모시고 장을 보는 등과 같은 것은 겉보기에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조금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나중에 자신이 바쁠 때 함께 장을 봐달라는 이기심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남을 도울 때 과시심과 좋은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동기가 무엇인지 스스로에 물어보는 것은, 있지 말아야 할 집착을 발견하고 제거하며, 사람의 생각과 이기심을 없애고, 정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자신의 일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왜 ‘부정’할까요? 그것 또한 물질적 존재입니다. 최근 저의 깐징월드 채널의 구독자 수가 갑자기 늘었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빨리 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분명히 제 생각이 아니었지만, 저는 그 생각을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결과 채널의 구독자가 늘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음 날에는 구독을 취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한번은 채널이 다시 성장하자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러자 또 일부 사람들이 알림을 취소했습니다. 이는 저에게 일의 목적이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구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하라고 알려줬습니다. 사소해보이는 생각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마땅히 신의 생각과 일치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최근 발표하신 경문을 공부하면서 속인이든, 대법제자든,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고 대법제자 속에 있는 사람이든, 우리는 모두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에 우리는 정념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다른 수련생을 돕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로한 수련생이 어떤 일을 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 그를 말리거나, 누군가가 몸이 불편하다고 하면 단체 법학습에 참여하도록 격려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것에 동의하는 등은 표면적으로는 사려 깊거나 동정심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수련인의 관점에서 문제를 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수련생이 잘못된 길을 가도록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신 기회가 되면 서로가 법의 관점에서 상황을 볼 수 있도록, 친절하고 자비롭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도와야 합니다. 물론 최후에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그 자신의 몫이며 우리가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제안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이고 바르지 않다면 우리가 기여한 것은 무엇일까요?

동시에 이는 우리에게도 시험이 아닐까요? 우리의 생각과 반응이 무엇인지, 나타난 집착과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보는 게 아닐까요? 체면과 듣기 좋은 말을 해야 한다는 집착 때문에 심각한 상황에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거나, 그들이 저를 나쁘게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지적하지 않은 일부 수련생이 이미 세상을 떠나서 저는 후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작정 다른 사람을 따라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려야 합니다. 사부님의 최근 경문은 올바른 길을 이탈하거나 심지어 손실을 입힌 사람들에게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수련인이든 속인이든 우리는 그들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사실 길을 잃은 사람들이 가장 불쌍하고 가장 위험합니다. 지금 사회는 모든 게 뒤바뀌어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영향을 많이 받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법을 얻지 못하면 온갖 부정적인 요소에 저항하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습니다. 지금은 온갖 것들이 다 받아들여지고 심지어 칭찬까지 받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큰 관점에서 왜 여기에 있는지 자신을 일깨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음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웨스트버지니아로 여행을 가던 중 주유와 간단한 식사를 위해 휴게소에 들렀을 때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카운터 뒤에 세 청년이 서 있었는데, 그중 한 청년은 수염을 기르고 짙은 화장에 귀걸이를 하고 있었으며 머리는 밝은색으로 염색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좋지 않은 생각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곧 자신을 바로잡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연이란 없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도와야 한다.’ 한 청년이 다가와 저를 도왔습니다. 제가 그에게 연꽃과 대법 자료를 건네자 그는 기쁘게 받았습니다. 이때 수염을 기른 그 청년이 제 말을 듣고 다가왔습니다. 그에게도 작은 연꽃과 소책자를 주자 그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심지어는 그는 첫 번째 청년보다 훨씬 기뻐했고 대법이 좋다며 긍정까지 했습니다.

이 일은 저에게 어떠한 나쁜 생각이나 물질도 형성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일깨워 줬습니다. 제가 생각을 바로잡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제게 다가오지 않았거나, 제가 한 말을 거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와 그가 대표하는 모든 중생이 저 때문에 소멸될 수도 있었습니다. 중국 대법제자들은 사악에 통제되어 잔혹하게 자신들을 박해하던 자들도 구하려고 노력하는데, 제가 어찌 이런 사소한 마음에 상대를 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상황은 매우 엄숙합니다. 중생들은 우리가 주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마음을 분산하거나 움직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 그들을 구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몇 년 전, 사부님 말씀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인터넷에서 “충분하지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찾아봤습니다. 쉰들러는 그가 구출한 1100명의 유대인들로부터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곧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반지를 선물 받습니다. 하지만 쉰들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더 살릴 수도 있었어요. 돈을 더 벌었더라면…. 난, 난 너무 많은 돈을 낭비했어요. 당신은 상상도 못 할 거예요.” 한 유대인 남성이 그가 많은 일을 했다고 위로했지만 쉰들러는 “충분하지 못했어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재킷에서 금 브로치를 꺼냈고 “이 브로치…, 이것 때문에 누군가가 죽었어”라며 깨닫습니다. 그는 브로치를 사는 데 돈을 쓰지 않았다면 그 돈으로 한 사람을 더 살릴 수 있었음을 인식합니다. 다음 그는 흐느껴 울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생명을 더 구할 수 있었는데 제가 안 한 겁니다!” 이는 제 집착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에 집착할 가치가 있는가? 나도 쉰들러처럼 내 집착 때문에 한 사람을 더 구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울지는 않을까?’ 게다가 우리는 그것이 단지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 뒤에 수많은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많은 일이 맡겨졌는데, 어떻게 아직도 이기적일 수 있겠습니까?

발언을 마치면서, 수련생 여러분과 함께 사부님의 법 한 단락을 다시 학습하고자 합니다. 이 법은 항상 제게 수련의 엄숙함을 일깨워 줍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관건은, 대법제자 당신은 당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해야 한다는 것인데, 심지어 당신은 수련조차 정진하지 않고 당신은 별로 수련도 하지 않으며 수련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사람을 구하는 대법 항목 중에서 사람마음이 당신의 집착심을 이끌어 마음속으로 늘 분분히 불평한다. 당신이 불평할 게 뭐 있는가?!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하러 온 것인지 모른단 말인가?! 당신은 당신의 책임이 얼마나 중대한지 모른단 말인가?! 당신은 무수한 중생들이 당신이 구해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을 모르는데, 그것은 당신의 책임이다! 그것은 당신의 소원이다! 여러분이 함께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는 것은 기회이자 사람을 구하는 조건을 개창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잘 이용하지 못한다. 당신이, 대법제자가 반드시 잘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당신이 얼마나 큰 죄를 범하게 되는지 당신은 아는가?!”(각지설법14-2016 뉴욕법회설법)

제가 잘하지 못하면 많은 일에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볼 수 있는, 구원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부터 제 주변 환경, 제 우주와 제가 대표하는 생명, 사악의 수량, 유기물과 겉보기에 무기물처럼 보이는 것들, 순환하는 물질, 제가 대표하는 직업의 생명 등 많은 것들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부님의 안배는 가장 완벽합니다. 따를 수 있는지 없는지는 저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모든 게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어떤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도 구하고 있습니다. 집착을 버리고 업력을 전화(轉化)하며 위덕을 쌓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층차를 제고합니다.

션윈에서 본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한 군인이 속세를 포기하고 수련해 득도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겁에 질렸지만 그는 사부를 따라 주저 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습니다. 그 순간 저도 어렴풋이 자신이 그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저 없이 사부님을 따라 조롱박 속으로 뛰어든 그 사람처럼 말입니다.

이 말세에 제 신념과 결심을 놓치지 않고 굳건히 지키고 싶습니다.

이상은 저의 현 수준의 이해입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3년 10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10/11/4669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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