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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막막함을 대법이 없애주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수련을 오래 했지만 깨달음이 부족한 수련생이다. 매년 법회 때마다 나는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글을 쓰지 않았지만, 수련생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와 가족이 대법의 혜택을 받은 특별한 체험을 써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위대함과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를 실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 마음속 막막함을 대법이 없애주다

어릴 적 나는 순수하고 활기찼으며 삶에 대한 동경과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크면서 그것들은 모두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현실의 격차 속에서 절망했고, 얼떨결에 결혼하고 출산했는데 날이 갈수록 저속해졌다. 예쁜 옷을 사지 못하면 우울했고 일하면서 힘들다고 불평했으며, 가족의 한마디 불평에 울화가 치밀었고 마음속에는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후 좋은 일자리를 찾고 돈을 좀 벌어 예쁜 옷을 살 수 있었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알 수 없이 괴로웠고 이유 없이 울고 싶었다. 가슴이 뭔가 막혀 있는 것처럼 답답했는데 한참을 울어서야 조금 개운했다. 가정 갈등을 겪을 때면 인생이 너무 힘들었는데 심신이 극도로 피곤하다 보니 공황, 가슴 답답함과 빈혈, 어지럼증, 요근 손상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이러한 병들로 나는 고통에 허덕였는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사람은 왜 사는지, 뭘 위해 사는지 생각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1994년, 나와 남편은 광저우(廣州) 체육관에서 위대하신 사부님을 뵐 수 있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내 마음속 혼란을 없애주고 사람은 왜 사는지, 사람은 왜 고통과 고난이 있는지, 갈등과 원망으로 얽힌 인연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을 알게 됐다. 사부님 설법을 들으면서 나는 눈물을 금치 못했으며 마음속으로 계속해 ‘나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겠다! 나는 진선인을 수련하겠다!’라고 외쳤다.

아홉 번 강의를 듣고 체육관을 나오자 나는 머리가 깨끗이 씻긴 것처럼 추호의 나쁜 생각이 없었으며 누군가가 내 앞에서 돈다발을 떨어뜨려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가볍고 편했으며 질병이 모두 사라졌고 29년간 증세가 한 번도 재발하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우리는 수련을 시작했다. 이 단체는 사회 계층 구분이 없었고 시기와 기만 없이 수련생들은 서로 진심으로 대하고 도우면서 가족보다 더 가까웠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사회에서 오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건강하며 즐거운 사람이 되어 매일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나의 변화는 집안 매 사람에게 전해졌는데, 그들도 기분이 좋아졌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으며 가정은 평화로운 기운으로 가득했다.

그 당시 우리는 여가를 활용해 아침저녁으로 법공부하고 연공했으며 집에서 월, 수, 금 저녁에 법공부 팀을 만들어 인근 수련생들은 우리집에서 단체 법공부를 했다. 아침에는 야외에서 함께 연공하면서 주말에는 시장 국영기업 또는 현, 농촌 지역에 가서 ‘파룬따파 무료 연공 전수’ 현수막과 ‘파룬궁 소개’ 현수막을 걸고 대법을 알렸다. 내 열 몇 살 된 아들은 주말에 나와 함께 연공했는데 그 기간에 나는 성취감과 행복에 휩싸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뭘 얻었는지 물었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은 건강한 몸과 화목한 가정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넓어진 마음, 경지의 승화와 특별한 체험,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이 있다고 했다.

우리 시에는 연공장 한 곳에서 10여 개, 수십 개 연공장으로 빠르게 확장됐으며, 시 체육관에서 소집했던 법회에는 5천여 명이 참가했다.

2. 시국이 변해 대법을 실증하다

1999년 7월 20일, 사당(邪黨: 공산당)은 파룬궁을 광적으로 박해했다. 7월 19일, 남편을 포함한 수련생 6명이 갑자기 납치됐다. 그 당시 정말 먹구름이 뒤덮이고 말할 수 없는 공포가 하늘을 뒤덮는 것 같았다. 가족들의 공포와 두려움에 나는 할 말을 잃었고 그저 “우리는 나쁜 일을 하지 않았어요. 두려워 마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니는 슬픔을 참으며 온종일 먹지 못하셨고 찐빵 반 조각을 손에 들고 아들 행방을 알아보려고 비틀거리며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다가, 결국 찐빵을 그대로 들고 무기력하게 집으로 돌아오시곤 했다. 시아버지는 공안국에 가서 아들을 위해 사악한 경찰에게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는 수련생들이 나와 말하는 것을 보면 놀라서 수련생에게 빨리 가라고 했으며, 아버지는 사악한 경찰이 우리집에 침입하는 것을 보고 놀라 몸을 사시나무 떨 듯했다. 그때 전국에서 얼마나 많은 부모가 공포와 고통 속에 있었겠는가! 우리집 어른 네 분 중 세 분은 이러한 생이별을 겪으면서 공포와 걱정 속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8월 초, 나는 공개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열어주시어 빨리 구상할 수 있었다. 밤새 나는 두 장의 공개편지를 썼고, 작은 조카딸이 베껴 쓰는 것을 도와 새벽까지 6통의 편지를 쓸 수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나가 6개의 버스 정류장에 붙였는데 사람들이 파룬궁 진상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처음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한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보호와 도움에 감사드렸다!

그 후 대법을 실증하는 과정에 나는 수차례 납치와 강제노동을 받았고, 수갑과 족쇄가 채워졌으며, 심한 구타와 전기 충격을 당했고, 강제로 음식과 소금을 주입당했으며, 밤낮 자지 못하게 하면서 ‘전향(수련 포기)’을 강요당했고, 마약중독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확고하게 걸어올 수 있었다.

마굴(魔窟: 감옥이나 노동수용소 등을 의미)에서 나왔을 때 나는 수련생과 걸으면서 교류했다. 호숫가를 지날 때 우리는 큰 연공장이 있었던 장소를 봤는데, 예전에 단체 연공했던 장면이 떠오르며 마음이 서글퍼졌다. 우리는 그곳에 현수막을 쳐서 연공장을 파괴하는 다른 공간의 사악한 것들을 제거하기로 했다. 준비를 마치고 이른 아침, 우리는 그곳에 몇 미터가 되는 빨간 바탕에 흰 페인트로 쓴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한번은 시 공안국을 지날 때 나는 우연히 길가에 있는 만화에 사부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봤다. 다시 자세히 봤더니 대법을 비방하는 만화였다. 나는 사악이 사부님을 비방하고 사부님의 이미지를 훼손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밤중 나는 자전거를 타고 그곳에 가서 빠른 속도로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때 길에는 가끔 사람들이 다녔지만 나는 누가 보든 신경 쓰지 않고 스프레이를 다 뿌리고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그 몇 년간 나는 늦은 밤에 나가 전단지와 스티커를 붙였고 자체로 제작한 작은 현수막을 걸었는데,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3. 가족이 혜택을 받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자주 감기에 걸리고 열이 났는데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입원했다. 직장에서 장기 휴가를 주면 우리 부부는 병원에서 아들을 돌봐야 했다. 수련 후 우리 부부는 아침저녁으로 법공부하고 연공하느라 바빴고, 휴일에는 파룬궁을 알리러 외출해야 했는데 아들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한번은 아들이 상의를 들어 올리며 “엄마, 이게 뭐예요?”라고 물었다. 아들 허리를 살펴보니 작은 손 크기의 붉은 반점이 두 개 보였다. 반점 위에는 콩알만 한 고름이 생겼다. 나도 어릴 적에 이런 병에 걸렸고 허리에 고름이 다 퍼지면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깜짝 놀랐다. 나는 아들에게 “보통 사람은 평생 언제 어떤 병에 걸리는 것이 다 배치되어 있지만 수련하는 사람은 사부님께서 그의 인생을 바꿔주신단다”라고 말했다. 아들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었다. 나는 매일 30분씩 법공부를 하라고 했다. 아들이 “15분 만해도 될까요?”라고 묻자 나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마침 새로운 수련생이 사부님 설법 동영상을 보게 됐는데 아들도 함께 보겠다고 했다. 3~4강을 보게 될 때 나는 아들 고름이 생각났다. 아들이 옷을 걷어 올리자 붉은 반점은 사라졌고 피부에는 흰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나는 흥분해서 “사부님께서 널 관리해주고 계시니 열심히 배워!”라고 말했다. 아들도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아들은 매일 방과 후 숙제를 먼저 했으며 저녁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다. 마침 작은 조카딸도 대법을 배우려 했기에 두 아이가 함께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99년 7월까지 배웠지만 사악은 대법 책을 강탈해 갔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이모가 모두 아들에게 엄마(나)의 수련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라고 했지만 아들은 답하지 않았다. 악인은 매일 문을 두드리며 괴롭혔지만 아들은 참고 그들과 싸우지 않았다. 한번은 한 무리 악인들이 날 집에서 끌고 나가는 것을 보자 아들은 본능적으로 달려가 그들을 막았지만 그들은 아들 팔을 뒤로 비틀고 목을 조였다. 나는 차에 들어가기 전 고개 돌려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그 당시 나는 계속해 박해를 받았고 아들은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성장했다. 여름 방학에 집에 돌아와 우리가 법공부하면 아들도 함께했다. 그 후 아들은 성장해 타지에 가서 일하면서 법공부하는 환경을 잃었다. 아들이 처음으로 운전해 산으로 놀러 갔는데 반쯤 올라갔을 때 더는 올라가지 못하고 차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아들은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랐는데 어떻게 됐는지 차는 멈췄다. 집에 돌아와 차가 어떻게 멈췄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내가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거라고 하자 아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제 아들은 30대가 되어 가정을 꾸리고 자녀가 있지만 매일 집과 돈을 위해 바삐 보내고 수련하지 않는다. 나는 아들을 잘 이끌지 못해 그가 속인 속에 떨어진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언젠가 아들이 다시 대법 수련을 해서 이 만고의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1997년, 언니는 대법 수련을 시작해 몸과 마음이 정화됐다. 오빠도 연공장에 갔지만 며칠 견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빠는 대법을 믿었고 몸이 좋지 않으면 가부좌를 했다. 우리 자매가 사악에게 납치됐을 때 오빠는 공안국에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

한번은 오빠가 밖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길에 있는 구덩이에 빠져 다리가 골절됐다. 병원에서는 1천 위안을 내라고 했지만 오빠는 돈이 없어 고통을 참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오빠에게 사부님 설법 녹음을 듣게 했다. 한밤중까지 듣자 오빠는 다리가 당겨지는 것을 느꼈고 뼈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날 훨씬 나아졌고 침대에서 내려와도 통증이 덜했으며 걸을 수 있었다.

오빠는 평소 마작을 좋아했는데 올해 2월, 오빠는 마작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정신을 차리자 오빠는 병이 없다며 치료를 거부했다. 의사들이 반강제로 CT 검사를 마쳤는데 상태가 심각하고 출혈이 많아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다. 마침 조카가 발 골절로 수술받고 나에게 전화했다.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오빠는 가부좌하고 병상에 앉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하오”를 계속 외우고 있었다.

다음날 의사가 “100에서 7을 빼고, 다시 7을 빼고, 다시 7을 빼면 몇인가요?”라고 묻자 오빠는 다 정확히 대답했다. 그러자 의사는 수술하지 않고 보존 치료를 하기로 하고 오빠는 매일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다. 오빠는 손과 다리가 저리고 괴로우면 가부좌하고 침대에 앉아 매일 사부님 설법 녹음을 들었는데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조금 더 좋아지면 집에 돌아가 나와 함께 수련하고 싶다고 졸랐는데, 나는 몇 걸음을 걸을 수 있을 때 집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몇 걸음 걸을 수 있어도 의사는 뇌에 부종이 있고 출혈점이 흡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원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오빠에게 며칠 더 입원하자고 권했고 7일 더 링거주사를 맞았지만, 부종은 계속 있었고 출혈은 흡수되지 않았다. 조카는 의사 말에 따르려 했지만 오빠는 주사를 맞기 싫다며 바늘을 뽑아 버리고 나에게 화를 냈는데, 나는 조카에게 집에 가 며칠 있다 다시 와보자고 설득했다.

나는 오빠를 우리집으로 데리고 가 사부님 설법 동영상을 보여줬다. 네 강의를 보고 다시 CT를 찍자 의사는 출혈이 모두 흡수됐고 부종도 없어져 다시는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고 하자 오빠는 매우 기뻐했으며 대법의 기적을 다시 경험하게 됐다.

4. 기적

1998년경, 연공장에서 수련생들이 앉아 정공(靜功)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쿵쿵’ 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니, 한 노년 남자 수련생이 가부좌하고 공중에 떠 있었다. 그는 빙글빙글 돌면서 위아래로 몇 분간 오르내리다 멈췄는데 모든 수련생은 다 봤다. 이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주천이 통하면 공중으로 뜰 수 있다는 법리를 증명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연공을 마치고 조용히 침대에 기대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맑은 하늘 아래 기와색 같은 작은 돌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작은 산은 기와색 평평한 돌로 쌓여 있었고 돌은 물로 씻은 것처럼 매우 깨끗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와, 내 천목이 열렸구나’라고 생각하자 그 장면은 즉시 사라졌다. 나는 바로 사부님께서 느낌이 없어도 천목이 열렸다는 것을 알려주셨음을 깨달았다.

한번은 친구가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그는 나에게 술을 마시라고 권했다. 나는 수련인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했지만 그가 여전히 술을 권했기에 마지못해 억지로 조금 마시겠다고 했다. 그가 나에게 반 잔 정도 따라줬지만 나는 너무 많다고 하면서 다시 그의 잔에 덜어주려 했다. 그는 술잔을 잡고 붓지 못하게 했는데 갑자기 술잔이 깨졌다. 윗부분은 친구 손에, 아랫부분은 내 손에 있었는데 나와 친구는 깜짝 놀랐다. 술잔은 포도주잔과 비슷한 긴 잔으로 도자기로 된 것이었다. 잔 입구는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넓었으며 두께도 있어서 웬만해서는 부러질 수 없었다. 이 장면을 본 친구는 “혹시 너희 사부님께서 날 나무라시는 게 아닐까?”라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니고 사부님께서 날 궁지에서 나오도록 도와주신 거라고 했다.

어느 날 아침, 늦잠을 자서 연공장에 갈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우리 부부는 집에서 함께 연공과 가부좌를 했다. 그때 날은 아직 밝지 않았다. 가지(加持) 자세를 할 때 나는 우연히 내 손등과 팔에 있는 뼈들이 밝은 형광등처럼 환한 것을 봤다. 그때는 잘못 본 줄 알고 다시 눈을 떠서 봤는데 정말 밝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 뼈가 백옥처럼 정화됐다는 것을 보여주셨음을 알았다. 다시 한번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박해받는 동안 악인은 내 등을 북 두드리는 것처럼 ‘쿵쿵’하며 두드렸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악인들이 내 몸에 전기충격을 가할 때도 전기 충격기에서는 전기가 번쩍이며 ‘찌직’ 소리가 났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날 위해 감당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노동수용소에 들어갔을 때 나는 여러 가지 색상의 작은 파룬이 내 앞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고 사부님께서 바로 옆에 계신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장시간 발정념을 하면서 자신의 공간장을 깨끗이 정화했다. 그러자 법공부할 때 졸리고 가부좌할 때 흐리멍덩하고 발정념할 때 손이 떨어지는 현상이 좋아졌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작년부터 ‘전법륜(轉法輪)’을 외우기 시작하면서 심성은 크게 제고됐고 몸과 마음의 승화를 느낄 수 있었으며, 법리에 대해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집착도 보였고 정념도 강해졌으며, 나는 또 안정된 마음가짐으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9/21/4650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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