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갈등이 생기면 자신을 수련자로 대해야 한다

글/ 미명(未名)

[명혜망] 나는 수련 중에서 명예에 집착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을 최근에야 깊이 깨달았다. 평소 원래 다른 사람의 칭찬을 듣기 좋아했는데, 속인 중의 직급과 사회적 지위의 변화에 따라 명예에 대한 집착이 더욱 심하게 드러났다.

나는 사장님과 함께 있거나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 누군가 사장님이나 다른 동료에게 존경심만 나타내도 화가 나서 그를 경멸하거나 속으로 미워했다. 그동안 이 문제가 계속 있었지만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문제가 생기면 가끔 자신이 수련자라는 것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좋은 제고의 기회로 여기지 못하고 대부분 괴로워하면서 화를 참지 못했다. 결국 속인의 사고방식에 따라 다른 사람이 날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사장님과 동료는 극진히 대하면서도 나한테는 그렇지 못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강한 부정적인 사유에 빠지곤 했는데, 때로는 하루 이틀이 지나도 마음이 내려가지 않아 괴로웠다. 아무튼 이 문제에서 관을 잘 넘지 못했다.

최근 몇 년간 줄곧 법을 외우면서 이 마음을 갈수록 똑똑하게 인식하게 됐다. 오늘 나보다 직급이 낮은 동료 양 씨가 나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지시했는데, 다른 한 동료인 장 씨의 뜻이라고 했다. 나는 양 씨가 감히 나에게 지시를 내린 것은 나를 안중에 두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또 분명 장 씨가 뒤에서 그녀를 부추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들 둘이 짜고 그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양 씨가 장 씨만 존중하고 나는 존중하지 않는다는 등의 부정적인 생각이 잇따라 떠올랐다.

좀 정신이 돌아오자 나는 이번에는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주이스(主意識)가 똑똑하게 자신을 수련자로 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정념으로 자신을 요구하니 분노가 점차 가라앉았다. 마음이 진정되고 나서 되돌아보니, 양 씨는 사실 나에게 명령한 것도 아니었고 둘이 짠 것도 아니었다. 모두 내 부정적인 사유가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든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나는 이 수련 체험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수련인을 놓고 말하면 어떤 문제에서 인식이 제고되지 못했다면 이 문제에서 우리는 여전히 속인이다. 반면 어떤 문제에서 우리의 인식이 올라왔고, 뼈를 깎는 심성 충돌 속에서 수련자의 요구에 따라 심성을 지켜내면서 한 번, 두 번, 갈수록 더 잘한다면 사부님께서 좋지 않은 것들을 제거해주신다. 그러면 우리는 이 문제에서 수련해 올라오게 되고, 이 문제에서 우리는 속인을 초월한 사람이 된다. 지금 내가 이해하기론, 갈등이 생기는 그 순간 진정으로 심성을 지키려면 속인의 인내도 있어야 하고, 법리에 대한 분명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을 수련자로 생각하고 수련자의 정념으로 자신을 주도해야 한다.

나는 이 같은 문제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매번 결국은 속인의 사고 방식을 택하고 말았다. 왜 늘 속인의 방식으로 문제를 대하면서 잘하지 못할까? 분명 법공부를 하면서 상태가 좋을 때면 질투, 화, 쟁투 등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왜 전혀 다른 두 가지 상태가 나타나는지 생각해보니, 갈등이 생기는 순간에 나는 자신을 수련자로 명확히 대하지 못했고, 단순히 속인의 인내로 질투, 화, 불평, 쟁투심 등을 대했기 때문이었다. 속인은 가장 약한 생명인데 다른 공간의 생명을 제압하고 제거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이런 나쁜 마음을 줄곧 제거하지 못했고 결국 속인의 사유를 따르게 된 것이었다.

이번에 내가 자신을 명확히 수련자로 대하고 그런 좋지 못한 마음을 제거하겠다고 생각하자 훨씬 잘할 수 있었다. 자신을 수련자로 대할 수 있는지 여부도 수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는가 없는가? 자신을 수련자로 대한다면 수련에서 빠른 돌파가 있게 되지만 속인으로 생각하면 제고하기 매우 어렵다. 우리의 기점과 목표가 명확하다면 그런 좋지 않은 마음을 제거하기 매우 쉬워진다.

사부님께서는 ‘북미 제1기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큰 법이 인류사회에서 전해지고 있는데 한 사람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쉬울 것인지 당신은 생각해 보라. 우리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 말해보자. 용광로의 쇳물에 나무꼬투리 하나가 떨어져 들어가면 순식간에 그것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이렇게 큰 법으로 당신 한 사람을 받아들여 당신 몸의 업력을 없애주고 당신의 좋지 못한 생각을 없애버리는 등등 등등, 그것은 대단히 쉬운 일이다. 이렇게 큰 위력이 있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는가? 우리는 속인사회에서 이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수련하는 것은 수련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다시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즉 완전히 당신을 버리고 다시 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자신이 진정하게 수련해야만 비로소 당신 자신이다.”

물론 갈등이 생기는 순간에 자신을 수련자로 대할 수 있는 것은 보통 속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법공부가 뒷받침 돼야 한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우선 대법제자라는 신분을 소중히 여기고, 수련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느긋하게 수련해서는 틀림없이 안 된다. 다음은 집착심을 제거하겠다는 명확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매번 차분하게 찾아보면 나는 모두 한 더미의 집착심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집착심을 찾아냈다면 적극적으로 수련해야 한다. 법의 기점에 서서 법공부를 잘하고 자신의 문제점을 찾고 집착심을 찾는 족족 제거해 속인의 생각이 자신의 머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9/4/46489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9/4/464899.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