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80세에 억울하게 3년 형을 선고받은 다롄시 파룬궁수련자 왕위허(王玉和)가 감옥에서 박해받아 몸이 허약해졌지만 병보석이 거부당했다.
왕위허는 2021년 12월 31일 비밀리에 랴오닝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1년 6개월 박해당한 후 2023년 6월 14일, 그녀의 가족이 면회 시 그녀가 몸이 허약하고 발걸음 내딛기를 힘들어하며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녀의 딸이 82세인 어머니의 병보석을 신청했지만 감옥 측은 거부했다.
왕위허와 딸 쑨차이옌(孫彩豔), 사위 궈치(郭琪)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면서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행했다. 2015년 7월 1일, 왕위허는 ‘진선인’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3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때 거센 압력에 왕위허는 고혈압과 뇌졸중 병세를 보이며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녔다. 2018년 왕위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법원 형사재판소장 쑨시허(孫錫河)가 왕위허에 대한 모함 사건을 담당하면서 다시 그녀를 구속했다. 2021년 10월 14일, 다롄시 사건처리대대 류위(柳鈺, 음역)와 양 씨 등 경찰이 그녀의 딸 집에 갑자기 뛰어들어 왕위허가 혼자 있는 틈을 타 납치했고 12월 31일 왕위허는 랴오닝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딸이 감옥에 면회 갈 때마다 왕위허는 감방에서 면회실 문 입구까지 다른 사람이 휠체어를 밀고 와야 했으며, 그녀는 허약한 몸으로 간신히 걸어서 면회 창구까지 왔다.
2023년 6월 14일, 왕위허의 딸이 재차 랴오닝 여자감옥에 어머니를 면회하러 갔을 때, 왕위허는 발걸음을 내딛기가 힘들고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왕위허가 “지급한 신발이 너무 커서 걷기 힘들어. 내가 한 켤레를 샀는데 아직 받지 못했어”라고 말했다. 면회 시간은 기존 20분에서 10분으로 줄었는데, ‘이유’는 왕위허가 음식을 다 먹지 않아 벌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상황을 목격한 딸은 2023년 8월 9일 왕위허의 병보석 신청을 제출했으나 제5소대의 대장 리 씨는 거부하며 가족과의 전화 통화와 면회까지 중단하겠다고 협박했다.
중공에 박해당한 왕위허 노인 일가
1) 왕위허와 딸이 동시에 불법형을 선고받고 가족 한 명이 박해당하다
9년 전, 즉 2014년 7월 21일 당시 73세였던 왕위허는 남편을 데리고 치과에 갔는데, 미행한 다롄시 중산구 공안분국 해군광장 파출소와 춘하이(春海)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되고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같은 시간에 딸 쑨차이옌도 집에서 같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되고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그 후 쑨차이옌은 다롄시 사허커우구 법원에서 무고하게 3년 3개월 형을 선고받았고, 2015년 6월 30일 랴오닝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2015년 7월 1일, 왕위허는 다롄시 사허커우구 법원에 불법적으로 3년 형을 선고받았고 고혈압과 뇌졸중 두 가지 병세가 나타나 집으로 돌아왔지만 어쩔 수 없어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녔다.
2018년 왕위허는 집에 돌아온 후, 다롄시 사허커우구 헤이스자오(黑石礁) 파출소 경찰과 헤이스자오 주민센터 사람들에게 여러 번 소란을 당했다.
동시에 왕위허의 딸과 사위 궈치는 수차례 다롄시 사허커우구 공안분국 난사(南沙) 파출소 경찰 및 난사 주민센터, 허우산(後山) 주민센터 사람들의 전화와 방문 등 소란을 받았다.
왕위허의 남편은 원래 뇌장애로 정신 상황이 좋지 못해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왕위허와 딸, 사위가 수년간 주민센터의 터무니없는 소란과 경찰의 협박, 납치 박해 등을 당하자 남편은 온종일 공포 속에서 생활해야 했고 장기적인 정신적 압력으로 건강이 날로 악화돼 2019년에 세상을 떠났다.
2) 사위가 불법 강제노동을 당하고 거센 압력으로 세상을 떠나다
2001년 2월 19일, 집에서 쉬고 있던 왕위허의 사위 궈치는 직장 상사로부터 확인 사항이 있으니 직장에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가 직장에 들어서자마자 헤이스자오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이튿날 새벽 2시경, 경찰은 궈치의 열쇠로 그의 집에 들어가 진상자료를 네 봉투를 강탈했다.
경찰은 또 출산이 임박한 궈치의 아내 쑨차이옌을 납치하려다가 그녀가 너무 놀라 배를 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한밤중에 뭘 하려는 거죠? 왜 날 못살게 굴어요? 낮에 다시 말하면 안 되나요?”라고 울면서 하소연하자 그날 밤 함께 납치하지 않았다.
날이 밝자마자 경찰은 다시 집을 찾아와 그녀를 납치하고 가택수색을 했으며 향로와 연공용 방석을 강탈했다.
궈치는 비밀리에 불법적으로 3년 강제노동을 당했지만, 중공 인원은 가족에게 통보하지 않았다. 가족이 여러 곳에서 수소문한 끝에 궈치가 다롄 노동수용소에 납치된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가 태어난 지 2개월 후, 쑨차이옌은 시어머니와 함께 아이를 안고 노동수용소에 가서 궈치와의 면회를 요구했으나 파룬궁 창시자를 욕하는 종이에 서명하지 않으면 불가하다고 했다. 쑨차이옌은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 않으려고 서명하지 않아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만나려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양심에 어긋나는 서명을 한 후 아이를 안고 궈치를 만났다.
다롄 노동수용소에서 경찰은 귀치의 파룬궁 수련을 포기시키기 위해 각종 고문으로 박해했다. 옷을 모두 벗기고 낭아봉으로 때렸고, 여러 개의 전기봉으로 민감한 부위를 충격했으며,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궈치는 온몸에 옴이 올랐다. 정신과 육체적 박해로 궈치는 온몸이 붓고 소변을 보지 못했으며 숨쉬기 어려웠다. 2002년 2월, 궈치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의사는 사구체신염으로 판정했으며 수시로 생명이 위태로웠다.
그래서 노동수용소 경찰은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고 가족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은 모두 도망가 결국 모든 비용은 가족이 부담해야 했다. 19일간 치료 후 궈치는 퇴원했다.
퇴원 후 노동수용소 경찰은 늘 궈치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고 그를 다시 수용소에 데려다 박해하려 했다. 궈치와 쑨차이옌 부부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셋방에서 살면서 돌아가지 못했다. 2008년에 이르러 부부는 집에 돌아왔다.
궈치의 아버지는 파킨슨병에 걸린 지 10여 년이 됐고, 쑨차이옌과 궈치는 매일 아버지에게 파룬궁 설법 동영상을 보여주며 정성껏 보살펴서 병세가 점차 좋아졌다. 노인은 집에서 바닥 청소, 식탁 닦기 등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과 함께 밖에 내려가 햇볕을 쬐다가 스스로 5층에 올라왔는데, 그의 회복은 의학계의 기적이었다.
하지만 2014년 7월 21일, 경찰이 집을 마구 뒤지고 효도하던 며느리를 납치했으며, 그 후에도 경찰이 늘 와서 괴롭히는 것을 목격한 궈치의 아버지는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침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궈치는 그때 아내와 장모가 갑자기 불법 납치돼 70대에 정신이 좋지 못한 장인, 침상에 계시는 아버지, 연로하신 어머니 및 13살 딸, 5살 아들을 전부 보살펴야 했는데, 그가 받은 압력을 짐작할 수 있다. 2016년 6월 궈치의 아버지는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
2017년 10월, 쑨차이옌이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출옥하기 전날, 다롄시 사허커우구 난사 파출소, 난사 주민센터, 허우산 주민센터 사람이 쑨차이옌을 데려오려면 파출소와 주민센터에 왔다 가라고 궈치에게 통보했다.
쑨차이옌은 출옥할 때 몸이 박해로 인해 극도로 허약해져 몇 걸음 걷다가 앉아서 쉬어야 했다. 궈치는 아내를 집에 직접 데려오지 않고 다른 곳에 숨겼다. 아침에 궈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아내를 보살피러 갔고 아이가 수업을 마치면 데려오면서 쑨차이옌을 걱정 없이 몸조리하게 했다. 2개월 후 궈치는 쑨차이옌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때 다롄시 사허커우구 난사 파출소, 난사 주민센터, 허우산 주민센터는 끊임없이 전화를 걸거나 방문해 궈치와 그의 어머니를 괴롭혔다. 궈치는 줄곧 아내를 대신해 각종 압력을 감당했다.
2019년 궈치의 장인(왕위허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2021년 6월 15일, 궈치는 몸과 마음이 감당하기 어려운 극한상황에 달해 장기부전, 쇼크로 병원에 가서 응급처치했으나 불행하게 51세 나이로 49세인 아내, 12살 아들, 20살 딸 및 80세인 어머니와 장모를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났다.
궈치와 그의 장인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자 왕위허와 쑨차이옌 모녀의 생활은 의지할 곳이 없게 됐다.
80세 왕위허가 감옥에 납치돼 박해당하다
2015년 7월, 왕위허에게 억울한 형을 선고했던 다롄시 사허커우구 법원 판사 리볜장(李邊疆)이 퇴직한 후 법원 형사재판소장 쑨시허가 이 모함 사건을 담당하면서 다시 불법 감금 명령을 내렸다.
2021년 10월 14일, 다롄시 사허커우구 공안분국 헤이스차오 파출소 사건처리대대 류위(柳鈺, 음역)와 양 씨 등 경찰이 그녀의 딸 집에 갑자기 뛰어들어 왕위허가 혼자 있는 틈을 타 납치해 불법 감금했고 가족과 변호사 면회를 거부했다.
2021년 12월 31일, 왕위허는 랴오닝 여자감옥에 납치돼 박해받았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왕위허는 2023년 4월부터 다롄 진푸신(金普新)구 사회보험국으로부터 불법적으로 퇴직금 지급을 중단당했다.
현재 82세의 고령인 왕위허는 단지 ‘진선인’을 믿는다는 이유로 불법적으로 랴오닝성 여자감옥에 감금됐고, 몸이 허약해져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다. 딸이 병보석을 신청했으나 감옥에서는 거부하며 면회를 중단하겠다고 협박했다.
왕위허의 딸이 랴오닝성 여자감옥에 보낸 공개편지
랴오닝성 여자감옥 11감구 담당자에게
저는 왕위허의 딸이고 최근에 ‘감외(監外)집행 규범화에 관한 의견’ 제1조 제5항 내용에서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만 65세 이상 수감자가 감외집행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을 봤습니다.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기준은 식사, 몸 돌리기, 대소변, 옷을 입거나 세수하고 양치질하는 등 다섯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라도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 왕위허는 이미 82세 고령에 건강이 매우 좋지 않고 고혈압과 뇌졸중 두 가지 위태로운 질병이 있어 매일 반신불수의 몸을 지탱하면서 스스로 생활하지 못하십니다. 이 상황은 감외집행 조건에 완전히 부합됩니다. 하지만 제가 병보석 신청서를 제5소대 리 대장에게 제출했으나 그녀는 받지 않고 협박하며 “당신 어머니를 만나려고요? 제가 보건대 만나지 않는 게 좋겠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어머니를 뵙지 못할까 봐 “아니요,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번엔 만나게 해주겠지만 파룬궁을 지지하는 말을 조금이라도 하기만 하면 가족과의 통화 및 면회를 중단시키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에 과로로 허리디스크, 요추관협착증 등 질병으로 많은 의사를 찾아 치료했지만 완쾌되지 못했습니다. 중의사를 찾아 마사지를 받았고, 부항, 물리치료, 온천욕 등을 했으며, 양의사를 찾으니 수술할 수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수술 도중 사망할 수 있다고 해서 보존 치료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질병에 시달려 괴롭기 그지없었고 가족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1996년, 어머니가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질병이 완쾌됐고 젊은이보다 걸음걸이가 빨랐으며 집안일도 모두 하실 수 있어 온 가족은 정말 기뻤습니다.
그러나 1999년 장쩌민 집단은 소인배의 질투 때문에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고 주민센터 직원들은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고 협박했습니다. 아버지는 두려워서 어머니에게 수련을 포기할 것을 강요해서 어머니는 어쩔 수 없어 수련을 중단하셨습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한쪽 눈은 잘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셨고, 약국에 가서 연로한 중의사를 찾아 치료했는데, 중의사가 직접 만든 캡슐 약을 줘서 며칠 복용하자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중의사를 찾아갔는데 10월 1일 연휴 기간에 그는 놀라서 고향으로 달아났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중의사가 잘못 치료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까 봐 어머니를 데리고 병원에 갈 수 없어 그대로 방치하셨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리 대사님께서만 어머니를 구하실 수 있으니 파룬궁을 배우게 하세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누군가 네 어머니를 일어서게 하면 난 그에게 절을 올릴 거야, 그럼 네가 배워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다시 설법 녹음을 듣기 시작하셨고 들은 지 이틀이 되자 어머니는 스스로 벽을 짚고 화장실에 다니실 수 있었고 일주일도 안 되어 완쾌됐습니다. 또 얼마 지나서 어머니의 눈도 나아졌는데, 이것은 치료하기 어려운 유전 질환이었고 저의 외할아버지와 이모는 모두 안저(眼底)가 문제 있어 거의 실명에 이르렀습니다. 저희 온 가족은 리 대사님께서 생명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렸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어 어머니는 다년간 확고하게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셨고 더 많은 사람이 파룬궁의 복음을 얻게 하려고 주변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알리면서 자신의 질병이 파룬궁을 수련해서 나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장 선량한 행위를 장쩌민 집단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014년, 어머니는 불법적으로 납치돼 다롄 야오자(姚家) 구치소에 감금되셨고 구치소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하게 해서 어머니는 또 혈압이 올라 한 달 후 처분보류를 받으셨습니다. 집에 돌아오신 후 파출소, 주민센터에서 끊임없이 소란을 피워 어머니는 심신에 심한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2015년, 어머니는 억울하게 3년 형을 선고받았고 극심한 압력을 받아 또 뇌졸중 증상이 나타나 스스로 생활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공은 어머니를 가만두지 않았고 2018년 80세 때 형을 집행한다며 랴오닝성 여자감옥에 보냈습니다. 세상에 부모 없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누가 자기 부모가 건강하고 편안하게 보내길 바라지 않나요? 어머니는 파룬궁을 수련해 나으셨는데, 이 복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 더 많은 부모가 건강해지면 좋지 않나요? 어머니가 법의 어느 조항을 어겼나요? 기어이 노인에게 형을 선고해 감옥에 감금해야 하나요?
딸인 저는 82세 고령의 어머니가 반신불수의 몸으로 감옥의 엄혹한 환경에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실지 하루도 걱정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현재어머니는 수시로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저는 정말 어머니가 어느 날 지탱하시지 못해 갑자기 쓰러질까 봐 두렵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선량한 사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어머니가 이런 상황이라면 무조건 방법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게 할 겁니다. 그래서 제 어머니 왕위허의 병보석을 도와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하늘에서 여러분의 선행을 기록할 것이고, 여러분의 선행은 자신에게 복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와 같은 감구(監區)에 70~80세, 심지어 거의 90세에 가까운 노인 수련생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중공은 파룬궁이 나쁘다고 말하는데 어디가 나쁜가요? 돈을 받지 않고 병이 낫게 하는 게 잘못됐나요? 정부와 가정을 위해 많은 치료비를 절약한 게 좋지 않나요? 그들이 병이 나으면 자녀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어 사회를 위해 크게 공헌하는 게 아닌가요? 누굴 해쳤나요? 또 누구에게 불리한가요? 이런 노인들에 대해 중공은 형을 선고해 감옥에 감금했고 게다가 휠체어에 앉은 채 감옥에 갇혔는데, 도대체 누가 법률을 파괴하나요? 누가 사람을 해치나요? 누가 진정한 범인인가요?
최근 동영상 하나 있는데, 상하이 쉬후이(徐匯)구 가오유(高郵)로에 사는 퇴직한 노교수(‘사린 가스’ 제조 전문가)가 주민위원회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일할 때는 머리를 써야 하고 정부에 이용당해 ‘희생양’이 되지 마세요!” “‘문화대혁명’ 시기 후반에 저는 대학원생이었고 그때 우리 학교에서 ‘세 가지 부류’를 처리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단순해서 ‘마오쩌둥’의 말을 잘 들었지만 결국 그는 교수들을 해쳤기에 문화혁명 후 감옥에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 여기 일부 사람들이 일할 때 저는 머리를 쓰라고 했어요! 제가(이렇게 하면) 합법인가요?” 노교수는 또 말했습니다. “법을 어기는 일을 하면 처벌받을 수 있어요! 상사나 정책이 요구한 사항은 법을 어기는 방패가 아닙니다. 당신은 성인인데 그것이 위법인지 모르나요?”
오래전 한 다큐멘터리에서 보았습니다. 공산주의 아래에 있던 동독의 일부 젊은이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면서 성공적으로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주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한 사람도 있었는데, 크리스 귀프로이라고 부르는 20세 동독 청년은 베를린 장벽을 넘다가 잉그 헨리크라고 부르는 경비병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몇 개월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크리스 귀프로이는 역사상 베를린 장벽을 넘다 사망한 마지막 사망자가 됐습니다.
1992년 2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2년 후 잉그 헨리크는 살인죄로 법정에 고발됐습니다. 공개 심판에서 잉그 헨리크는 자신을 위해 변호하면서 “그때 저는 법과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판사 시어도어 세델은 인정하지 않으며 “합법적인 일이 전부 정확한 건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델 판사는 헨리크와 같은 병사는 ‘매우 긴 책임 사슬’의 가장 말단에 있지만, 그들이 권력을 대신해 살인한다고 자신의 양심을 저버릴 권리는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잉그 헨리크는 살인죄로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한 판사는 당시 법정에서 지적했습니다. “병사가 상부의 명령을 집행하지 않으면 유죄이지만, 총을 제대로 쏘지 못한 것은 무죄다. 마음과 생각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때 당신은 총부리를 1cm 위로 올릴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알았을 것이며, 이것은 당신이 당연히 감당해야 할 양심적 의무였다.” 사실 한 사람의 진정한 능력과 지혜는 복잡한 상황에서 솜씨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상부도 인정하게 하고 동시에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해 좋은 사람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파룬궁은 중국에서 완전히 합법적이고 여러분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입니다. 2006년 1월 1일에 중국에서 실시한 ‘공무원법’ 제9장 제60조에 ‘분명한 법을 어기는 결정이나 명령을 집행한 공무원은 마땅히 해당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규정을 다시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위법 명령을 집행하고도 처벌을 피하려는 사람에 대해 이 조항은 그의 퇴로를 끊어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모두 진상을 알고 아름다운 미래가 있길 기원합니다.
왕위허의 딸
원문발표: 2023년 8월 2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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