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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과 대법의 편에 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이번 생에 사부님을 도와 정법시기에 수련하는 대법제자는 역사상 전례가 없었고 예전에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짊어진 책임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대법제자가 매 단계를 잘 걷고 궁극적으로 오랜 서약을 실천할 수 있는 관건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부님과 대법의 편에 서는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일에 버거움을 느꼈다. 어느 날 밤 가부좌하고 있을 때 눈앞에 ‘사부님 편에 서라, 대법 편에 서라’라는 두 줄의 글귀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즉시 마음이 놓였다. 이 말은 내 생명의 근원에 심어져 내 경지에서 내가 알아야 할 의미를 알려줬다. 이 말은 나에게 무조건 대법에 동화하게 했고, 나중에 아무리 큰 번거로움과 곤란에 부딪혔어도 이 말을 생각하기만 하면 원망도 후회도 없었고, 집착과 자아도 없어졌다. 그 배후에 있는 거대한 힘이 날 더욱 확고하게 했다.

예를 들면 ‘왜 정법(正法)이 아직 끝나지 않지?’ ‘박해가 왜 여전히 심각하지?’를 사부님 편에서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가 아직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받지 못했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사부님의 자비이고 우리에게 계속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우선 본인이 이 기회를 잡고 더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수련하고 해야 할 일을 잘해야 한다. 주변 수련생이 정진하지 않거나 문제가 있는 것을 봤을 때 법을 더 공부해야 하고 법의 표준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가늠해야 한다. 자신을 잘 수련해야 다른 수련생을 도울 수 있다. 대법제자 사이에 문제와 갈등이 일어난 것을 봤을 때 우리는 사부님께서 누구도 배척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이 모두 모순 속에서 향상하게 하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물론 반대편으로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은 제외) 더 많은 법의 깊은 함의는 다만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사부님과 대법의 편에 선다는 말을 많은 수련생도 할 수는 있지만, 흔히 이 말을 개념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제에 부딪히면 늘 자신의 관점으로 대한다.

‘사부님 편에 서고, 대법 편에 선다’라는 말의 심오한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완전히 법에 있는 사람이 될 것이고 속인의 경지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데, 어떻게 속인의 어떤 것에 미혹되거나 집착해 끌려갈 수 있겠는가? 완전히 법에 있는 수련생은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사람을 구하는 데 있어 무사무아(無私無我)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기에 실제로 한 명이 수십 명을 감당할 수 있다. 어떤 지역에 그런 수련생이 없다면 그 지역의 손실은 매우 클 것이다.

한 현(縣) 소재지에는 표면적으로는 한 무리 사람이 수련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착실하게 수련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중에 어떤 국장이었던 할머니가 이 사람들의 ‘지도자’가 됐다. 그녀는 누군가를 어느 지역의 협조인으로, 누구를 어느 지역의 담당자로 임명했고, 누구는 무엇 무엇을 하라고 지정하고 심지어 수련생들에게서 모금해 사부님께서 중국에 돌아오시면 마중 가겠다며 차를 샀다. 나중에 그들은 또 이사회를 조직해 누군가가 부모상을 당했거나 자녀의 혼사, 출산이 있으면 찾아가 부조금을 냈다. 그러나 예식에 참여할 때 속인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냥 먹고 마시며 재미있게 보내기만 했다. 그들 중 한 사람에 따르면, 이 사람들은 모였을 때 수련과 사람들을 구하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모두 하나같이 교활하고 의심이 많으며, 아무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려 했으며 그 할머니를 황제처럼 받들었다. 이 상태가 약 10년 정도 지속됐다.

2019년 경, 머리에 당문화(黨文化: 공산당 문화)가 가득 차고 지도자가 되려는 열망이 강했던 그 할머니는 갑자기 불교를 수행하러 갔고 이 웃음거리는 드디어 끝이 났다. 이들 대부분은 현지 수련생 중에 잘 알려져 있었기에 그들이 이 지역에 얼마나 큰 피해를 끼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올해 이곳에서 또 심각한 박해가 발생했다.

수련 단체는 속인의 클럽이 아니다. 수련은 고생을 견디고 고생할 수 있어야 하며, 외로움을 견디고 차츰 사람의 모든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다. 정진하는 사람일수록 수련 성취하지 못하는 무서운 결과를 더욱 잘 알게 되고, 정진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결과가 무서운 것을 모른다. 어떤 사람은 계속 수련할 수 없어 속인사회의 복과 즐거움을 추구하러 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데,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신이 다 해줘야 하는가? 조건은 당신이 반드시 전세에 쌓은 복덕이 있어야 하고, 복덕으로 바꾸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우주의 법리로 결정된 것이어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말하면, 이는 복덕을 쌓는 근본 목적이 아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복덕을 많이 쌓음은, 자신이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닦는 데 쓰려는 것이 가장 관건이지, 인생의 일시적인 한 세(世)의 행복으로 바꾸기 위함이 아니다!”[1]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법에서 우리에게 이번 생의 친족, 세세생생의 친족, 천상의 친족과 중생은 우리가 구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고독과 괴로움은 우리 수련의 길에 있는 고비다. 우리는 자신을 잘 수련하는 동시에 중생을 구하고 있다.

층차가 제한되어 있으니 옳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원문발표: 2023년 8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8/20/4643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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