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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날 곤경에서 구해주시다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옥여의(玉如意, 본인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1968년에 태어난 저는 15살 때 류머티즘성 관절염에 걸려 오른쪽 다리가 아프고 힘이 없어 다리를 땅에 끌면서 걸었습니다. 어느 날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서던 저는 대문 밖에서 어머니가 오빠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의사가 네 여동생 병은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어. 평생 아이를 낳을 수 없고 얼마 살지 못하니 원하는 음식을 먹게 하라고 했어. 그러니 모든 걸 동생에게 양보하고 절대 화나게 하지 마.” 저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록 이런 상황이었지만 부모님은 포기하지 않고 절 데리고 베이징, 바오딩(保定), 탕산(唐山) 등에 있는 큰 병원에 가서 치료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병을 치료하는 데 월급을 거의 다 사용하셨고, 그래도 부족해서 돈을 빌려 치료했지만 저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외지에 사는 중의사가 마을에 와서 어머니는 절 진료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제가 몇 살인지 물었고 어머니는 15살이라고 답했습니다. 의사가 제 맥을 짚고 나서 한기(寒氣)가 너무 심하다면서 제 배꼽 아래에 침 한 대 놓았는데, 침 사이로 누런 물이 흘러나왔고 약 두 첩을 처방했으며 황주와 함께 마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이 다른 사람의 약과는 다르다며 매우 좋아 두 첩이면 된다고 했습니다. 치료 후, 비록 오른쪽 다리는 여전히 마비 상태로 무거웠지만 다리를 끌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 날 곤경에서 구해주시다

큰아들이 한 돌이 지났을 때 남편은 외도를 했고 둘째 아들을 낳았을 때는 아예 집에 돌아오지도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저를 잘 대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온종일 화가 났지만 속으로 참다 보니 몸이 점차 나빠졌습니다. 다리가 무겁고 부정맥, 비염, 위궤양, 고혈압, 잦은 두통 등으로 침과 주사 맞고 약도 먹었지만, 온몸이 나른하고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너무 괴로워 늘 자살하거나 출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속으로 ‘사람은 왜 살고 있지? 왜 세상에서 고생하지?’ ‘사람은 왜 병이 날까? 병에 걸리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1997년 여름, 저는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수련 후 온몸이 병이 없이 홀가분해졌고 마침내 사람에게 병이 없으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알게 됐습니다! 곤경에서 절 구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정 갈등을 해소하다

시어머니는 매년 생신 때마다 저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음식점을 이미 예약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식사 후 매번 우리만 돈을 내다보니 저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제게 “어머니, 할머니 생신에는 저희가 마땅히 돈을 내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내가 돈을 아까워하는 게 아니야. 네 삼촌이나 고모네 식구들은 왜 모두 공짜로 밥을 먹지?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아 우리가 돈을 냈어. 할아버지가 사신 새집을 숙모가 팔고는 30만 위안(약 5천만 원)을 할머니께 드리지 않아 할머니는 매우 화가 나셨지. 우린 새집을 사서 먼저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살게 드렸어. 할아버지네 집과 숙모네 집을 인테리어 할 때도 모두 우리가 돈을 냈어. 그들도 자식인데 왜 누구도 돈을 내지 않고 왜 우리만 늘 내야지?” 그러자 아들은 “어머니 제가 1천 위안(약 18만 원)을 드릴게요”라고 말해 저는 “아니, 나도 돈이 있단다”라고 말했습니다.

음식점에 가서 모두 제자리에 앉았고 가족과 친구들이 한담할 때 둘째 아들이 할머니에게 여쭈었습니다. “할머니, 아버지가 사주신 생신 선물 마음에 드세요?” 시어머니는 좋다고 하셨습니다. 시어머니가 금팔찌와 금목걸이를 착용한 모습을 본 저는 바로 얼굴을 찌푸렸고 속으로 그렇게 비싼 선물을 사면서 제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이런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때 정말 몇 마디 하려 했지만 저는 수련인이니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일은 마땅히 제가 해야 하는데 남편이 저를 대신해서 했으니 기뻐해야 하고 괴로워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제가 정말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순식간에 마음을 바꿔 진심으로 웃으며 시어머니께 잘 어울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제가 돈을 내려 하자 시동생이 쫓아와 돈을 내지 못하게 했고, 서로 내려고 하다가 결국 시동생이 돈을 냈습니다. 그 이후 음식점에 가서 식사하면 시동생과 시누이가 서로 돈을 내려 했습니다.

나중에 시어머니 생신에 저는 집에서 음식을 준비해 시동생과 시누이네 식구들을 모두 불렀습니다. 시어머니는 사람만 만나면 파룬궁이 정말 좋다고 말씀하셨고 평소에도 성심성의껏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셨습니다. 시댁 어르신들과 이웃들은 제가 파룬궁을 수련했기에 시어머니를 잘 모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어머니는 저를 진심으로 대하셨고 일이 있으면 제게 다 말씀하셨습니다.

시동생 일가는 시어머님 집과 위아래층에서 살면서 네 식구는 모두 시어머니 집에 가서 식사했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제게 시동생 일가가 공짜로 식사하면서 돈 한 푼도 내지 않았고 설 명절 때도 아무것도 사주지 않았으며, 마을에서 나눠준 식량도 주지 않아 식량과 기름이 부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겠어요”라고 말하며 시어머니에게 보관하신 식량이 없는지 묻자 다 팔았다고 하셔서 제가 부족분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해마다 시댁에 밀가루 20kg, 조 25kg, 기름 5리터 등을 수년간 보냈습니다. 나중에 제가 시어머니에게 식량이 부족하지 않은지 여쭈자 시어머니는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늘 남에게 제가 시댁에 늘 식량과 기름을 보내왔고 설 명절에도 돈을 적지 않게 썼으며, 일상에 필요한 물건을 모두 보내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은 외도하면서 저와 이혼했지만, 시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시면 저는 병문안을 갔습니다. 시어머니가 병원 음식을 드시지 못하고 당뇨병이 있자 둘째 아들은 제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 할머니를 우리집에서 식사하시게 하면 안 되나요?”라고 물어서 저는 음식을 준비할 테니 할머니를 모셔 오라고 했습니다. 시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신 동안 시어머니는 우리집에서 식사하셨고, 전남편이 저를 모질게 대하면서 이혼까지 한 상황에도 제가 한결같이 시어머니를 잘 모시자 시어머니는 매우 감동하셨습니다. 저의 선행에 시어머니는 감동해 늘 저에게 집에 와서 식사하라고 하셨고 가끔 맛있는 음식을 하면 제게 보내주셨으며, 제가 집에 없으면 문고리에 걸어놨습니다. 올해 하이난(海南)에 다녀오시면서 시어머니는 제게 실크 치마 하나를 선물하셨습니다.

수련한 후 저와 시어머니 및 시누이 사이의 갈등은 해소됐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계속 저를 배신했고 제게 준 상처는 정말 뼈에 사무쳐서 유독 남편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저는 사부님 말씀에 따라 선한 마음과 자비로 그들을 대했고 현재는 더는 전남편과 내연녀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둘째 아들이 결혼할 때 전날 밤에 제게 “어머니 내일 제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으시면 안 되나요?”라고 물어 저는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큰며느리가 둘째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후 돌아와서 제게 “어머니 둘째 아들이 그 내연녀를 어머니라고 불렀어요”라고 일렀지만 저는 그렇게 부르고 싶으면 불러도 된다고 했습니다.

전화위복

2015년 겨울밤, 우리 여자 수련생 네 명이 남자 수련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인근 시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도중에 차량 속도가 너무 빨라 커브를 돌 때 순식간에 1.8m 정도 되는 도랑에 떨어졌습니다. 위급한 상황에 수련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사부님 살려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제가 조수석에 앉았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기사와 위치가 바뀌어 제가 핸들과 운전석 사이에 끼였는데, 키 158에 체중이 99kg인 저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고 조수석 문도 열 수 없었습니다.

남자 수련생이 차에서 기어나간 후 두 손으로 저를 당겼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어 다른 수련생 셋을 먼저 나가게 했는데, 세 명이 제 몸을 누르며 앞으로 기어가야 했고 사람마다 발로 제 왼쪽 가슴을 밟고 나가야 해서 그때마다 제 가슴은 칼로 에이듯 아팠습니다. 남자 수련생은 그녀들을 차 밖으로 당겼고 나중에 그들은 저를 당겨서 빼낼 수 있었으며, 우리는 배수관을 통해 기어나갔습니다. 제가 차에서 기어 나와 보니 차 문과 배수관이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남자 수련생이 큰 크레인을 불러 그 사고 차량을 위로 옮겼습니다. 크레인 기사는 차가 깊은 도랑에 떨어져 네 바퀴가 위로 뒤집혔지만, 다친 사람이 없어 너무나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유리를 내릴 수 있었던 유일한 차 문이 배수관 입구와 마주 보고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한 사람도 탈출할 수 없었을 거라며 놀라워했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와 누운 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점심 식사 때 며느리가 손으로 제 등을 받쳐서야 앉을 수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어머님 괜찮으세요?”라고 물어서 제가 며느리에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고 제가 가지 않겠다고 해서 아이들은 떠들어댔습니다. 제가 “너희들은 걱정하지 마라, 사부님께서 날 보살피고 계셔”라고 말했지만 둘은 “안 돼요, 만약 변고라도 생기면 어떡해요?”라고 말했고 저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사흘째가 되자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른 수련생 집에 가서 병업관을 넘고 있으니 발정념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가는 길에서 저는 숨을 쉴 수 없어 세 번이나 휴식을 취한 후 겨우 수련생 집에 도착했고, 때마침 수련생들이 모두 법공부를 하고 있어 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수련생들은 저와 법으로 가늠해 교류했고 저를 도와 발정념을 했습니다. 발정념을 마치자 저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고 한 달이 지나자 완쾌됐습니다. 제자는 생명을 구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제도해주신 은혜에 사부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꼭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명을 완수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3년 5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5/23/4611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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