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신수련생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올해 67세인 나는 중국 농촌에서 태어났고 2023년 2월에 법을 얻은 신수련생이다. 나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내가 법을 얻은 과정을 보고하고, 세인과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나누려 한다.
나는 어릴 때 집안이 가난해 학교에 다니지 못해 글자를 배우지 못했다. 젊은 시절 농사일 이외에 여유 시간에 뉴스를 들으며 공산당 언론에서 선전하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중공(중국공산당)의 장기적인 세뇌로 나는 완전한 무신론자가 되어 인과응보를 믿지 않았다. 신불(神佛)은 사람이 상상해낸 것이고, 보살은 흙으로 만든 것이며, 신을 믿는 것은 무지몽매한 표현이고 봉건 미신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현실은 예전의 인식을 다시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우리집에서 일어난 기적 때문이다.
1. 온갖 병에 시달리던 아내가 건강해지다
아내는 순박한 농촌 여성으로 영리하고 손재주가 좋으며 성격이 명랑하다. 말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며 선량하고 남을 잘 도와준다. 아내는 바느질을 잘해 평소 마을에서 누가 바느질을 부탁하면 거절한 적이 없다.
뜻밖에 아내는 30대부터 뇌혈관에 피가 잘 통하지 않아 정신이 흐리멍덩해졌다. 신경성 두통이 도지면 머리를 감싸 쥐고 벽을 들이받았고 아파서 울기만 했다. 또 경추골증식, 신경쇠약, 심한 불면증, 산후풍 등까지 겹쳐 그때부터 아내는 아무 일도 하지 못했고 성격도 거칠어졌다.
우리집은 아들딸과 함께 네 식구인데 나 혼자 농사를 지어 가족을 부양했다. 1년 내내 일해도 돈을 얼마 벌지 못해 방이 세 개 있는 낮고 낡은 건물에 살았는데, 집안에 제대로 된 가구가 없었고 교통수단은 낡은 자전거 한 대뿐이었다.
아내는 아픈 이후로 아무 일도 도와줄 수 없었다. 나는 집에서 아버지이자 어머니 노릇까지 해야 했고, 집에 돈이 조금만 있으면 아내의 약을 사야 했다. 나는 이 때문에 자주 아내에게 화를 냈고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화가 치밀었다.
우리는 사흘이 멀다고 다투거나 크게 싸웠다. 나는 자주 “우리집 돈은 전부 당신이 써버렸어!”라고 말했고 아내는 화가 나 울기만 했으며 자기 몸이 건강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아내는 예전에 “누가 내 병을 낫게 해주면 똥을 먹으라고 해도 먹을 거예요”라고 했다. 아내는 병에 시달려 죽지 못해 살았고 자살할 생각을 여러 번 했다.
1998년 여름, 파룬궁이 우리 고향에 전해졌다. 아내는 운 좋게 파룬궁을 연공한 지 두 달도 안 되어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지 않고, 돈 한 푼 들이지도 않고 몸이 건강해졌다. 예전에 누렇던 얼굴이 불그레하고도 부드러워졌으며 거칠었던 성격도 매우 온화해져서 그때부터 집 안팎 일을 모두 아내 혼자서 했고 항상 힘이 넘쳤다. 또 작은 양복점을 열어 인연 있는 중생에게 대법을 알렸다.
우리 가정은 그때부터 화목해졌고 나 또한 완전히 해방되어 외지에 돈을 벌러 나갔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늘에서 떨어진 떡을 우리 둘이 받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픈 사람만 만나면 “파룬궁을 수련하세요. 파룬궁은 정말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2.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혜택을 본다
아내가 연공한 후 온 가족은 덩달아 혜택을 보았다. 우선 아내가 아프지 않으니 우리는 의료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미 25년이 됐는데 아내는 약을 한 번도 먹지 않았다. 나는 외지에 돈을 벌러 나가 가정에 또 수입을 보탰다. 두 아이는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고 몸이 건강했으며 더는 예전처럼 그렇게 온종일 말다툼하지 않았고 철이 들었다.
아내가 혼자 집안일을 맡아 나는 집안 걱정을 하지 않고 홀가분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사람마다 부러워하는 행복한 가정이 됐다.
가장 인상 깊은 두 가지 일이 있다. 파룬따파가 위기의 순간에 우리 가족 세 명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1) 심각한 교통사고에 인명피해 없어
어느 한 해 겨울 음력 12월 23일 밤, 나와 셋째 남동생이 바퀴가 10개 달린 화물차를 몰고 맥주를 운송하러 청더(承德)로 향했다. 청더와 콴청(寬城)의 접경지대는 좁고 가파른 산길이 있다. 도로 한쪽은 높은 산이 있고 다른 한쪽은 깊이가 30~40m 되는 산골짜기였으며, 길옆에는 시멘트 돌로 된 가드레일이 있었다. 우리 차는 맥주를 가득 실어 무게가 10톤이 넘었다.
우리는 울퉁불퉁한 내리막을 천천히 몰고 갔는데 갑자기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 차가 급히 산골짜기로 향했고 길가에 있던 콘크리트 블록 3개가 차에 부딪혀 모두 뿌리째 뽑혔디. 연료 탱크, 차축과 앞바퀴 두 개가 모두 길가에 떨어졌고 차는 산골짜기로 굴러 내려갔다.
차가 산밑에서 10여m쯤 떨어진 곳까지 굴러갔을 때 나는 문득 아내가 평소 나에게 자주 했던 말이 생각났다. “위기를 만났을 때 9자진언(九字真言)을 염하세요.” 나는 엉겁결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쳤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창문에서 튕겨 나왔다. 앞 유리가 모두 깨졌기 때문이다. 나는 벼랑 끝에 있는 한 나뭇가지에 걸려 갈비뼈를 다쳤다.
아픔을 돌볼 겨를이 없이 나뭇가지에 엎드려 빠르게 굴러가는 차를 향해 셋째 동생의 이름을 불렀으나 회답이 없었다. 차가 산 아래로 추락한 후 산골짜기에서 셋째 동생의 우렁찬 응답이 들려 셋째 동생도 별일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나는 셋째 동생이 가슴이 핸들에 받쳐 피부가 한 군데 다치고 새끼발가락을 다친 것을 알았다.
셋째 동생 말에 따르면 차가 산 아래에 굴러갔을 때 마침 평평하고도 큰 돌이 있어 그곳에 안전하게 떨어졌다고 했다. 아내가 평소 셋째 동생에게 자주 대법 진상을 알렸기에 그도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는 볼품없이 망가졌다.
나중에 현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이 구간은 사고가 잦은 위험 구역입니다. 이곳에서 사고가 나면 아무도 살아나지 못했어요. 몇 년 전에 시멘트를 담은 대형 탱크로리가 산 아래에 떨어졌는데 기사는 시멘트에 파묻혀 죽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 형제가 운이 좋다면서 우리가 큰 재난에 죽지 않았으니 반드시 훗날에 복을 받을 거라고 말했다.
지금 이 일을 얘기해도 나는 여전히 눈물을 금치 못한다.
2) 대폭발을 기적적으로 피한 아들
내 아들에 대해 말해보겠다.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제철소에 취직했다. 아들은 지각한 적이 없고 매일 착실하게 일했는데 어느 날 어찌 된 일인지 늦잠을 자서 지각했다.
아들이 공장 문 앞에 막 도착했을 때 갑자기 공장에서 엄청난 폭발 소리가 들렸다. 사고가 난 장소는 바로 아들이 소속한 작업장이었다. 그날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 만약 아들이 지각하지 않았다면 재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 온 가족은 대법 사부님께서 아들을 이 치명적인 재난에서 구해주신 것임을 알고 있다. 대법 사부님의 은혜를 말로 표현할 수 없다.
3. 두려운 마음으로 인해 신께 죄를 지어 응보를 당하다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 두목 장쩌민은 권력욕에 이성을 잃었다. 당시 파룬궁을 수련한 사람이 너무 많았기에 파룬궁 창시자를 질투해 진선인(真·善·忍)을 믿는 선량한 대중을 공공연히 박해하기 시작했다.
선량한 아내는 무고하게 세뇌반에 감금됐고 ‘전향(수련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무기한 감금되고 정신적, 육체적인 학대를 받았다.
‘문화대혁명’을 겪은 나는 중공의 사악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족이 연루되고 아이들이 영향받고 행복한 삶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나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과감히 나서서 아내를 보호하고 박해를 저지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여러 번 세뇌반에 가서 ‘610(파룬궁 박해 기구)’ 관계자가 아내를 ‘전향’하도록 협조했다.
아내가 세뇌반에서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아내가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을 더는 허락하지 않았고 아내를 때리기까지 했다. 나는 대법 책을 찢고 집 문 앞에서 대법 책을 태웠으며, 아내가 연공할 때 쓰는 플레이어도 박살 냈다. 대법제자가 우리집에 오면 예전처럼 웃는 얼굴로 맞이하지 않고 약간 비꼬는 말을 했으며, 심하면 악담으로 상처를 주었고 심지어 쫓아내고 아내가 대법제자와 접촉하는 것을 더는 허락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뇌혈관종에 걸려 베이징 무장경찰병원에서 수술받고 한 달 넘게 입원하면서 30여만 위안을 썼다. 아내는 내가 응보를 받은 것이라고 했으나 나는 믿지 않았고 자신을 반성하지도 않았으며 잡곡을 먹어서 병이 난 것이라고 여겼다.
재작년 중공 바이러스(우한폐렴) 전염병이 돌 때 나는 아내 방 벽에 ‘전염병이 심할 때 자신을 구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스티커를 확 잡아떼서 갈기갈기 찢고 아내에게 욕을 퍼부었다. 아내는 당시 이성을 잃은 나의 미친 듯한 행동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이런 날 미워하지 않고 지난날과 다름없이 대해줬다.
며칠 후 아침, 나는 갑자기 왼쪽 몸이 감각이 없고 손발을 움직일 수 없었으며, 혀도 잘 돌아가지 않아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내는 급히 구급차를 불러 날 병원에 보냈다. 진단 후 의사는 뇌졸중에 걸렸다며 나에게 입원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나는 병원에서 18일 입원하면서 1만여 위안을 썼고 집안 저축을 거의 다 써버렸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 여기에 돈을 낭비하지 말고 집에 돌아가 천천히 요양하자”라고 했다. 아내는 퇴원 수속을 했다.
집에 돌아온 후 아내는 나에게 대법을 박해해 응보 받은 사례를 다시 한번 말해줬고 나는 그제야 좀 깨달을 수 있었다.
올해 초,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대사님께서 전 인류에게 발표하신 새 설법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한 대법제자가 나에게 가져다줬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듣고 나서 매우 놀랐다. 사부님의 자비가 마침내 날 일깨워 내 본성이 소생했다. 대법은 인류를 구하고 중생이 겪을 최후의 대재앙을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내심 깊은 곳에서부터 내가 당초 세뇌반에 가서 아내에게 ‘전향’하라고 설득한 것은 나쁜 행위였고, 대법 진상 자료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기에 대법 책과 대법 자료를 훼손한 것은 신께 죄를 지은 것이며, 내 병은 내가 많은 나쁜 일을 해서 불러온 응보임을 알았다.
아내는 내가 잘못을 정말로 인식한 것을 보고 나에게 밍후이왕에 성명을 발표해 신에게 용서를 빌라고 제안했다. 나는 즉시 동의하고 대법제자가 날 대신해 써준 성명서에 또박또박 서명했다.
4. 재난에서 복을 받고 반본귀진의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서다
현재 나는 매일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 9자진언을 염하고 있고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품고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하나씩 주고 상대방에게 9자진언을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또 매일 대법 사부님의 광저우 설법 녹음을 새겨듣는다.
나는 이제는 아내의 법공부, 수련과 밖에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 구하는 것을 매우 지지한다. 내가 진심으로 회개하자 사부님께서는 홍대한 자비로 내 잘못을 따지지 않고 내 몸을 조정해주셨다. 나는 매우 빨리 회복됐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나에게 천목(天目)을 열어주셨다. 처음에 내가 천목으로 본 것은 모두 기괴망측한 저령(低靈)이었는데 최근에 본 것은 모두 다른 공간의 놀랍고 아름다운 광경이다.
일흔에 가까운 내가 뜻밖에 이런 복을 얻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나는 반드시 사부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며,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좋은 일을 하며, 하늘과 신을 존경하면서 반본귀진(返本歸真) 수련의 길에서 용맹정진하겠다.
제자는 사존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크나큰 은혜와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막 입문해 수련을 시작했기에 적절하지 않은 부분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7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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