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교류할 때면 일부 수련생들은 늘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일들과 넘었던 관들을 말한다. 자기가 갈등 속에서 어떻게 하고, 어떻게 심성을 가늠했으며, 최후에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튼 일부 수련생들은 그렇게 해서 관을 넘었다고 여겼다.
또 일부 수련생들, 노년 수련생 가운데 이런 경우가 많은데, 자신과 가족이나 수련생 간에 마찰이 생겼는데 깊이 안으로 찾지 않는다. 단언하듯 “그 사람이 제 심성을 제고시켜줍니다”라는 한마디로 그 전반 사건을 정리해버린다. 또 자신은 높은 자태를 품고 상대방과 똑같이 대하지 않았다고 하는 식인데, 역시 관을 넘었다고 여긴다.
나는 수련생이 나에게 이런 일들을 이야기하거나 전해줄 때, 제삼자로서 이러한 깨닫는 방식에 대해 좀 다른 견해가 있다. 천박한 견해지만 수련생들과 토론하고 싶다.
이러한 수련생들이 갈등 앞에서 일의 표면 현상에 이끌리지 않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한 대법 수련자가 높은 표준으로 자신의 사상 경지를 요구했다는 것을 체현했다. 그러나 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과 ‘내 심성을 제고시켜준다’는 식으로 깨닫는 데는 좀 미혹성이 있는 것 같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좀 이기적이다. 왜냐하면 이건 수련자가 갈등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단지 자신의 상태가 어땠는지 그 표현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본의 아니게 만족감이 자라게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갈등에서 기타 여러 방면을 홀시하게 만들 수 있는데, 수련자가 일의 표면 현상에 따라 더욱 깊이 있게 안으로 찾는 것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갈등과 관계있는 한 명으로서 이 일이 왜 내 신변에서 생겼을까? 무슨 잠재적인 집착이 내 사유를 바르지 않게 하거나 언행이 부족하게 만들어 일이 이런 국면으로 변하게 했는가? 나는 상대방 각도에서 고려했는가? 갈등에서 상대방에게 무슨 고통과 상처를 주었는가? 나는 마땅히 어떻게 마주하고 해결하며 이 손실을 미봉해 비로소 상대방에게 자신이나 대법에 대해 좋지 않은 견해가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하면 아마도 이번 갈등의 ‘진짜 범인’인 자신의 집착심을 끄집어낼 수 있고, 결국 대법을 실증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세세히 파본다면 그 속에 섞여 있는 마음이 한둘이 아니라 아주 많은 집착심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첫걸음을 떼면 이미 그것을 폭로했고 그것을 인식한 것이다. 이어서 그것을 중시하며 실천 속에서, 시련 속에서, 심지어 뼈를 깎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것을 닦아 없애야 한다. 동시에 발정념을 더 많이 해서 이런 부패한 물질이 자신의 공간장에서 철저히 떠나고 더욱이 말끔히 제거되게 해야 한다.
물론 수련 초기에 수련인이 갈등을 마주하고 관건적인 시각에 담담하게 심성을 지키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는 확실히 한 수련자의 착실한 수련을 체현해내는 것이다. 일정한 경지에서 수련자에 대한 법의 요구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정법 노정이 앞으로 추진되면서 우리도 개인 수련에서 전면적으로 정법 수련으로 넘어가야 한다. 사부님께서 설법 속에서 끊임없이 대법제자에게 깨달음을 주시고 개시해주시기에, 상대적으로 대법제자의 수련 표준도 끊임없이 제고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갈등을 통해 진정으로 대법에 비춰 심도 있게 안으로 찾으면 더 많은 집착심을 찾을 수 있고, 아울러 그것들을 제거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해주신 수련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약간의 개인 인식이다. 만약 단편적인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시정해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7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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