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리룬쩌(李潤澤)
[밍후이왕] 나는 2007년에 법을 얻었다. 그 후 계속 의문이 있었는데, 바로 해외 대법제자들은 왜 사부님께서 중국에서 법을 전하실 때처럼 매일 단체 법공부와 단체 야외 연공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사부님의 설법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단체법 공부와 단체 야외 연공은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수련 형식이며 수련생들의 제고에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수련 형식은 어떠한가? 내가 아는 대부분 지역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만 단체 법공부를 하고, 단체 연공도 주말에 하루나 이틀만 한다. 내가 아는 지역에서는 법공부 때, 사회자가 법공부를 마친 후 심득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대부분 발언하는 사람이 없다. 이는 방금 전 법공부를 통해 제고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사회자는 더 이상 이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물어봐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법공부 후 바로 진상 알리기나 법 실증에 대한 교류를 시작하는데, 여기에 대해선 발언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또 다른 형식은 항목을 하는 대법제자들이 온라인으로 법공부를 하는 것인데, 일부 지역에서는 전체 법공부도 온라인으로 한다. 온라인 법공부의 효과는 어떤가? 나는 개인적으로 효과가 매우 나쁘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법공부는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읽고 다른 사람들이 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우리 수련생들은 모두 아직 업력과 집착심이 있어 다른 사람이 들을 때 그 수련생의 업력과 집착심이 다른 사람들의 머리에 주입된다. 이는 법공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로 업력과 집착심을 주입하는 것과 같다. 사부님의 설법과 사부님의 목소리만이 제자들에게 업력을 없애줄 수 있다!
온라인 법공부는 또 어떤 단점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우선 신성함이 없다! 비록 대법제자들은 컴퓨터로 연결됐지만 매 한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것은 컴퓨터라 법공부의 신성함이 있을 수 있겠는가? 둘째는 ‘비학비수(比學比修)’할 수 없다. 온라인은 대면 단체 법공부 때처럼 서로 비교할 환경이 없기에 ‘비학비수’의 효과를 얻을 수 없다. 나는 모 지역 대면 단체 법공부 때 한 여 수련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부좌를 하고 양손으로 책을 받쳐 들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해낼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하고 싶었고 나에게 촉진이 됐다. 셋째는, 법에 대해 불경하는 것이다. 온라인 법공부 때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볼 수 없기에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심지어 다른 사람이 책을 읽을 때 다른 곳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데 이는 법에 대해 불경하는 것이다. 넷째, 법공부 효과가 좋지 않다. 온라인으로 법공부할 때 어떤 대법제자는 책으로 공부하지만 여전히 컴퓨터를 마주해야 하고 어떤 수련생은 컴퓨터 화면에서 읽는다. 알다시피 컴퓨터는 교란이 될 수 있다. 모니터에 법공부 페이지 외 다른 프로그램도 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법공부에 집중하기 어렵다. 각자 돌아가며 책을 읽기에 자신이 유창하게 읽는지, 목소리는 어떤지 등에 신경 쓰느라 마음을 진정으로 법공부에 두기 어렵다.
이 밖에 대부분 해외 대법제자들은 한 가지 이상 항목에 참여하고 있는데, 항목마다 온라인 법공부를 조직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대법제자는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공부하면서 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못하고 현지 법공부에 참가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어 해외 대법제자들의 법공부와 수련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지 않다면 밍후이편집부도 연속 세 편의 글을 발표해 ‘해외 불학회’에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항목 책임자들이 온라인 법공부를 아무리 많이 조직해도 소용이 없다.
그동안 해외 대법제자들은 수련 심득 체험을 아주 적게 발표했다. 그래서 밍후이 교류 글은 대부분 중국 대법제자들이 발표한 글들이었다. 이번에도 밍후이 편집부가 세 편의 글을 발표했지만 바다에 자갈을 던진 것처럼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즉,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중 한 편은 과거의 일을 언급했는데, 사부님께서도 설법하신 사건이지만 이 일은 지금도 중단되지 않고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해외 대법제자들은 현재의 법공부와 수련 방식, 상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밍후이 편집부는 ‘책임을 지다’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0년 이후에 법을 얻은 많은 신 수련생이 더 이상 단체 법공부와 연공장에 마땅히 있어야 할 분위기와 순정(純淨)함을 모르게 됐다.” 그렇다, 신수련생인 나도 집에서 조용히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이 매우 좋은 줄 안다. 그래서 거의 ‘단독 수련’을 하고 있다. 비록 법공부를 통해 ‘단체 법공부’와 ‘단체 야외 연공’이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겨 놓은 수련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방식에 의문을 품었다. 이는 큰 문제지만 내가 조성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주 1회 단체 법공부와 주 최대 2회(소수 지역은 매일) 단체 연공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법공부가 마음에 와닿지 않는 수련생들을 위해 법 외우기를 조직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파룬따파의해(法輪大法義解)’에서 이미 수련생들에게 법을 외울 것을 ‘권고’하셨다. 이 설법은 1994년에 하신 것인데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는가? 지금 법을 외울 수 있는 해외 수련생과 대법제자가 몇이나 되는가? 나는 모두들 ‘파룬따파의해’를 다시 공부할 것을 제안한다. 어떤 대법제자들은 오래된 설법을 읽지 않는데, 이는 큰 누락이며 사부님에 대한 불경이다.
해외에는 고압적인 박해가 없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구세력의 배치를 개변해 비로소 우리에게 열어준 환경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중국 대법제자들은 그처럼 고압적인 환경에서도 매일 단체법 법공부를 조직하고 있다! 모두 사부님의 제자인데 왜 해외에서는 할 수 없는가? 만약 전 세계 대법제자들이 사부님께서 직접 법을 전하실 때의 중국 대법제자들과 같은 정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지금 어떤 상황이겠는가?! 아마 “인간 세상에서 강대한 불법(佛法)의 재현(再現)”[1]이 나타났을 것이며, 사람마다 대법을 우러러봤을 것이다!
이미 고착된 상태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변하려고 한다면 스승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불학회 책임자가 더 많은 법공부와 연공을 조직할 경우, 신수련생과 노수련생들 모두 협력하길 바란다.
나는 비슷한 글은 세 번 작성했는데, 이번에는 전과 달리 거의 한 번에 완성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슬픈’ 느낌이 들었고 사부님의 가지(加持)를 느꼈다. 전에는 원고를 써놓고도 신수련생이었기에 투고하지 않았다. 내용이 전면적이지 못할까 봐 두렵기도 했고, 뿌리 깊은 ‘가짜 자아’가 개변을 두려워하며 ‘해낼 수 없다’는 의념을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점을 더 많이 보게 되면서 나는 다시 이 글을 썼다. 지난 7월 8일 밍후이왕에 발표된 ‘해외 신수련생이 밍후이편집부에 보낸 편지’라는 글도 나에게 용기를 줬다. 내가 원래 달았던 제목도 ‘해외 신수련생의 바람’이었는데 나중에 ‘미국 신수련생의 바람’으로 바꿨다. 내가 전에 썼던 원고에서 미국 수련생들은 사부님께서 계신 곳에 있고, 대부분 자가용이 있어 단체 법공부와 연공에서 앞장서길 바란다는 희망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층차의 제한으로 부적절한 곳이 있을 수 있으니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고하는 말’
원문발표: 2023년 7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3/7/16/4630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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