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5년 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서양인 제자입니다. 수련 전의 일을 되돌아보니, 사부님께서는 때때로 제게 생각과 믿음을 형성하도록 일깨워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기회와 인연이 왔을 때 대법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사부님께서는 저를 여러 번 구해주셨습니다. 비록 어려운 적도 있었으나 수련 전의 제 삶은 유쾌하고 즐거웠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며 쇼핑과 외식, 그리고 여행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속된 삶의 방식에는 뭔가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철학과 종교에 관련된 여러 과목을 공부하며 불교에 공감했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습니다. 자라면서 조직적인 종교의 위선과 광신에 거부감이 있었으나, 교회 몇 군데를 다녀본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신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보시지 표면을 보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 일을 하는 동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만약 지금 세상에 구세주가 나타나도 이런 난잡한 세상에서는 아무도 그의 출현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라고 한탄했습니다. 저는 그 절망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 점점 더 편안한 생활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대법과 인연이 닿기 전까지는 때때로 하나님과 돈독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으나, 저는 결국 어떠한 신성한 존재와의 연결도 망설였습니다.
다그쳐 따라잡다
처음 ‘전법륜(轉法輪: 파룬궁 수련서)’을 다 읽었을 때 이것을 영원히 따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줄곧 찾아왔던 것을 찾았음을 알았습니다.
다음 두 달 동안은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있어서 각지 설법을 모두 읽어 법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사부님의 배치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반드시 빨리 따라잡아 중생을 구하는 서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사부님께서 어느 날 밤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꿈속에서 제가 한 수련생을 따라가려고 서둘러 공항을 나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매우 빠르게 걸었는데 많은 군중이 제 앞길을 막았습니다. 저는 그녀를 따라잡기 위해 계속 빙빙 돌아야 했습니다. 그녀가 제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해서 따라잡기가 무척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좀 있으니 누군가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무의식 속에서 그녀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우주 정법이 며칠 전에 끝났어요. 그래서 우리는 층차(層次)가 어디인지 정해졌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혼란스러워 왜 아무도 그 말을 제게 해주지 않았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남동생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진상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로 인해 중생이 입은 큰 손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많이 울었습니다. 저는 사태가 엄중하기에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안으로 찾다
안으로 찾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안으로 찾기 시작한 지 몇 개월 후 다른 이들의 집착은 잘 보였지만, 정작 저 자신의 집착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받았던 암시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에게서 제가 무척 싫어하는 면을 봅니다. 그러다 돌연 그것이 절 괴롭히는 이유는 저한테 그것과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결점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 거울을 제가 남들을 심하게 괴롭힌 것과 같은 큰일에만 적용했습니다. 어떤 일을 만나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도, 안으로 찾는다는 것의 의미도 몰랐습니다.
처음 수련을 시작했을 때 안으로 찾지 못한 이유는 체면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게도 좋지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남들도 저를 그렇게 평가해 주길 원했습니다. 법공부가 깊어지면서 이 집착심은 줄어들었습니다. 제고하기를 진심으로 원했던 저는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밍후이왕에 실린 안으로 찾는 글들을 보는 데 시간을 썼습니다.
경쟁에 대한 집착을 없애다
저의 이런 마음을 보신 사부님께서 한가지 집착을 보게 해주셨는데 그것은 쟁투심이었습니다. 저는 이상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난 쟁투심이 없는데!’ 저는 남들에게 제가 쟁투심이 없다고 자랑했고, 그런 건 남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강렬한 쟁투심이 제 속에 깊이 숨겨져 있었는데도 저는 낮은 도덕적 기준으로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일에서 쟁투심을 느꼈다면 틀림없이 다른 일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의를 기울이자, 제가 의외로 쟁투심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는 놀랐습니다. 예를 들면 차를 운전할 때 길을 가로채는 행위 등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속인 사회 중에서 서로 다투고 빼앗고, 서로 속고 속이면서 개인의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는데, 이런 마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특히 오늘날 공을 배우는 사람은 이런 마음을 더욱 내려놓아야 한다.”[1]
이 구절을 찾고 보니 사부님께서 강의를 시작하시자마자 쟁투심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 보였습니다. 쟁투심은 사람을 업신여기고 과시하며 발광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수련하기 전에는 제가 질투심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집착을 지적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것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쉽게 식별할 수 있고 없애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집착심을 버리지 않으려 합니다. 특히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렇습니다. 자신에게 그것을 버리고 싶은지 물었을 때 싫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척 강한 집착심입니다. 버리고 싶지 않은 요소를 제거하려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제고해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진정한 저 자신이 아닌, 남아있는 집착심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의 힘
수련 후, 제가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심성을 제고했을 때 일어났던 기적 두 가지를 공유하겠습니다.
제가 션윈을 도왔던 첫해에 밤에 차를 지키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밤을 새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이것이 바른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바로잡았고, 다음 해에 밤에 차를 지키는 경비를 맡게 됐습니다.
그날 저녁, 어떤 이가 제게 경비 현장으로 가기 전에 낮잠을 자 두라고 조언했습니다. 무언가를 걱정하는 사람마음이 움직여서인지 자고 일어나니 오히려 더 피곤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자 시간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졸다가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습니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 잠을 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척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별일 아닌 일로 들리지만, 당시 저로서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1분이 1년처럼 느껴졌고, 마치 5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교대할 수련생이 조금 일찍 와서는, 제가 새로 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그에게 감사하고 떠나려 했을 때 피곤해하는 다른 수련생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고생하고 있는 그녀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괜찮다며 더 있을 수 있으니 제게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계속 우기자 그녀는 웃으며 고맙다고 하고는 차를 타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가려다 다시 돌아온 제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머리가 너무나 맑아진 것입니다. 밤새 잘 쉬고 깨어난 것처럼 맑고 활력이 넘쳤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이 교대하러 오자 저는 가볍게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남을 생각하며 자비를 베푸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힘이 있는지 느꼈습니다.
또 한번은 행사에 참여해 연공 시범을 보일 때였습니다. 어느 가을 아침, 그곳에 도착하자 뼛속까지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에 물건들이 날아가 사방에 흩어졌습니다. 경험이 없어 연공복 위에 입을 겨울용 대법 외투를 준비하지 않아서, 별생각 없이 평범한 제 외투를 바닥에 내려놨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새틴으로 만들어진 연공복을 벗었습니다. 그때 날씨가 상당히 춥다는 것을 느낀 저는 연공 내내 추위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처음에는 ‘연공복만 입었는데도 왜 따뜻했을까?’라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손과 얼굴도 춥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게 정념이 있고 중생을 구하겠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셨던 것입니다.
내가 바뀌면 주변 모든 것이 변한다
수련 후 첫 겨울,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한 노부부를 만났는데 남편은 청력이 몹시 나빴습니다. 그에게 말을 걸자 그는 들리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큰 소리로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더 크게 말해도 듣지 못하자 그의 부인이 보청기를 끼라고 했으나 그는 “아니, 저 사람이 더 크게 말해야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더욱 큰 소리로 말하다 목이 쉴 뻔했습니다. 결국 저는 “다른 의사와 약속을 잡으세요. 그러면 더 잘 들을 수 있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그럴 필요 없어요. 당신이 여기에 있으니 오늘 건강검진을 받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무례한 행동에 예전 같으면 벌써 자리를 박차고 나갔겠지만, 지금은 숨을 깊게 쉬고 자신은 수련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제게 따졌습니다. 왜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지, 제 행동이 전문 직업인으로서 마땅한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이런 행동이 당신 아들에게 모범이 될까요?”라며 이 일과 관련 없는 말까지 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사람은 당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사실 그는 제 집착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차분하게 들으며 얼굴에는 미소를 띠었습니다. 5분 후 그가 말을 마치자 저는 웃으며 “그렇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고 자신을 방어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가 온종일 소리를 질러도 짜증스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그는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검진이 끝난 후 그는 제게 가족사진을 보여주는 등 상냥하게 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워낙 인상적이라 이전에 공유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변하면 주변도 변합니다.(물론 상황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이 원칙을 잊고 비틀거리다 넘어질 때도 있지만 제고하려고 노력합니다.
저와 어머니는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대법에 대한 모욕적인 내용을 알게 된 어머니는 제게는 알려주지 않고 제 남편과 아들, 그리고 올케에게 전했는데, 그들은 어머니에게서 무엇을 들었는지 제게 말해줬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왜 제게 직접 묻지 않았는지 의아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들은 들은 것을 제게 전하지 말라는 어머니 말씀에 동의했다고 했기에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번에 가족 문제를 대처하면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기회라고 여겼습니다.
2년 전 여름, 어머니는 혈당이 높아 병원에 가셔야 했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올케는 제게 전화로 이 일을 알렸습니다. 이미 1년간 이 병으로 시달렸지만 제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어머니는 제 올케와 사촌 동생에게 제게는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이번에도 제게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제게 그 일을 여태껏 숨겨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너무 놀랐습니다. 어떤 문제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안으로 찾았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말씀하시지 못했던 이유는 명백했습니다. 인내심이 없었던 제가 어머니를 자주 혼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음식 문제에 있어서 어머니는 어떻게 먹어야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셨기에 수련 전에 그 문제로 다툰 적이 있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저는 자신의 관점을 증명하고, 제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며, 어머니보다 제가 아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의학을 공부한 저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여기시며 제 말을 듣지 않아 늘 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실 어머니의 행동은 제 문제를 비추고 있었지만 저는 직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싸우고 학식을 자랑하고 논쟁을 즐기는 등 강렬한 승부욕이 있었습니다.
수련 후에도 어머니와의 사이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에 대해 조금 참았을 뿐이지 진정한 인내심이나 선량함은 없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그렇게 오랫동안 건강 문제를 제게 알리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다음 날, 어머니와 대화하면서 혈당이나 음식 문제는 말하지 않고 그저 어머니의 기분은 어떤지, 제가 뭐라도 도울 일이 있는지만 물었습니다. 선량한 마음이 나오니 어머니와 이야기를 잘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지금 어머니는 제게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어머니는 션윈을 보러 가고, 집에는 연꽃 호신부를 걸어놓는가 하면, 제게서 연꽃과 홍보 전단지를 가져가 이웃에게 주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대법의 각도에서 몇 차례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머니는 지혜로운 딸이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맺음말
저는 아직도 버려야 할 집착심과 관념, 그리고 제고해야 할 점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교류 글을 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좋았던 수련 과정뿐만 아니라, 대법의 기적도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은 시간에 각자 자신을 제고하고 최선의 노력으로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기를 바랍니다. 쉽지 않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그렇게 하기로 서약했습니다. 이 일을 잘하려면 법공부를 잘하고 심성을 높여야 하는데, 수련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머리를 맑게 해서 목적 없이 법공부에 전념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우리는 최후의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해야 할 일을 잘해야 자신을 책임질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책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3년 7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7/1/4618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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