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혜진(慧眞)
[밍후이왕] 1년여의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병으로 누워 계시다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뼈저리게 이익과 정에 대한 집착을 닦아 버리는 계기가 됐다. 나는 집착을 버리는 과정이 바로 현대의 변이된 관념을 없애고 전통으로 돌아가는 승화 과정임을 깨달았다.
나는 1997년 3월에 대법을 얻어 수련하기 시작했다. 1999년 ‘7·20’ 이후 사당(邪黨, 공산당)의 박해로 10년 이상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공직에서 쫓겨났으며, 남편은 감당하기 어려운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나와 이혼했다. 감옥에서 나온 후 이미 빈털터리가 된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때로는 가정부 일을 하다 보니 집에 돌아갈 수 없어 어머니를 보살펴드릴 수 없었다.
2년 후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내 연금으로 우리 모녀가 쓰기에 충분하니 가정부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엄마에게 밥을 지어 주렴.” 간절히 부탁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마음이 찡해 어머니의 어려움을 생각하게 됐다. 내가 불법 수감된 동안 어머니는 4000여 일간 고통 속에서 밤낮을 보내셨다. 딸의 생사와 안위가 걱정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양쪽 귀가 먹고 눈물마저 말라 버린 어머니는 딸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딸과 한자리에 모이기를 갈망하셨다. 10여 년간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제 여든이 되신 어머니를 정말 잘 보살펴드려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시간제 일만 했기에 어머니를 돌봐드릴 시간이 많아졌다.
얼마 후 내가 월급이 적은 시간제 일을 하는 것을 보신 어머니는 매달 몇백 위안의 용돈을 주셨다. 어머니를 보살펴드리는 것이 자식으로서 당연한 의무이기에 나는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굳이 주시겠다는 어머니를 설득할 방법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받았다.
어머니는 “전에 한 이웃집 할머니는 자신을 보살펴 주는 딸에게 매달 1800위안씩 주셨어. 지금은 그러는 거야”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서 부모를 모시는 자식에게 돈을 주는 것이 요즘 사회의 기풍이 됐고 지금 사회가 이러하다는 뜻이다. 어머니는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고 나도 시일이 지나면서 이익에 대한 마음과 불평이 생겼으며, 어머니가 돈을 적게 주신다고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중에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되자 나는 수련생에게 이 일을 말했다. 수련생도 말했다. “왜 아르바이트를 하시나요? 엄마를 보살펴드리니 대신 오빠와 언니에게 돈을 달라고 하세요.” 몇몇 수련생이 이렇게 말하자 내 마음은 더 섭섭했다. 억울함이 치솟으며 오빠와 언니를 원망하고 질투했다. 이 일에서 법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지 않고, 이미 미끄러져 내려간 도덕적 기준으로 문제를 보았다. 사실 이 문제에서 이미 속인으로 떨어졌는데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지난여름,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 스스로 생활하기 어려워지시자 언니들이 돌아가며 보살펴드렸다. 하루는 언니가 없는 틈을 타 어머니는 평생 모은 돈 몇만 위안을 꺼내 내게 맡기며 그 돈을 마음대로 쓰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대법을 수련하는 나만 믿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어머니를 세심하게 보살펴드리며 다른 아들딸이 할 수 없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프신 지 4개월여 만에 갑자기 식사를 못 하고 온몸이 아프며 고열이 가시지 않는 등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셨다. 나는 매우 초조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실까 봐 두려워 몰래 눈물을 흘리곤 했다.
어느 날, 가부좌할 때 또 어머니를 떠올리며 마음이 조용하지 못했다. 이때 나는 재빨리 깨닫게 됐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다는 것을 의식하고 안으로 잘 찾아보려 했다. 9년간 어머니와 서로 굳게 의지하며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감정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의존심과 수련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해줬으면 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그리고 어머니가 용돈을 많이 주셔서 경제적으로도 좀 의존하게 됐다. 이것을 깨닫게 된 나는 자책감을 느꼈다. 진작 안으로 찾아 그것을 발견하고 제거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이것은 평소 법에 따라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아 생긴 것이므로, 어려운 상황이 닥치자 고비를 넘길 수 없었다. 깨달은 후 그것을 해체한다는 정념을 내보내면서, 앞으로 반드시 법에서 잘 수련할 것을 자신에게 요구했다.
한 달여의 치료 끝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가족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집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온갖 집착이 밀려왔고 특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외로움과 쓸쓸함, 무력감을 더 많이 느꼈다. 이 순간 사부님이 말씀하신 “당신들은 적막이 사람의 일체를 소각한다는 것을 모른다.”[1]라는 법을 깊이 깨닫게 됐다.
매번 마음이 한계에 다다를 때마다 사부님을 부르며 모든 집착을 해체한다는 정념을 내보냈다. 나는 또 항상 이 법을 외웠다. “당신은 육도윤회 중에서 당신의 어머니가 인류였든, 인류가 아니었든 다 헤아릴 수 없다. 생생세세(生生世世)에 당신은 자녀가 얼마인지도 헤아릴 수 없다. 어느 누가 당신의 어머니고, 어느 누가 당신의 자녀인지, 두 눈을 감기만 하면 누구도 누구를 알아보지 못하며, 당신이 진 업(業)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 사람은 미혹 중에 있기 때문에 곧 이런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그의 자녀를 내려놓지 못하여 어떠어떠하게 좋았는데 그가 죽었다 하고, 그의 어머니가 어떠어떠하게 좋았는데 역시 죽었다고 그는 그지없이 비통해하는데, 그야말로 후반생에 마치 그것을 따라가려는 듯하다. 당신은 생각해 보지 않는데, 이것은 당신을 시달리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런 형식으로 당신을 편안히 지내지 못하게 한다.”[2]
사부님의 도움으로 나는 점차 가족을 잃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대법의 위력과 자비로운 사부님의 위대함을 깨닫게 됐다.
삶이 고달프자 이익에 대한 마음이 자꾸 뒤집혀 나왔다. 날 도와주지 않고 어머니가 남겨 주신 돈도 다 주지 않은 오빠와 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수련생에게 “요즘은 어느 자식이 부모를 시중들었으면 부모의 돈은 그에게 주는 게 아닌가요?”라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지 등을 말했는데 사실 놓지 못한 이익에 대한 마음에 핑계를 댄 것이다.
나중에 한 수련생이 내 말을 듣고 엄숙하게 말했다. “사실 과거에는 부모를 공경하고 노인을 부양하는 것이 자녀들의 의무였어요. 노인을 보살피며 돈을 원하는 것은 현대의 변이된 관념 아닌가요?” 나는 수련생의 말에 가슴이 뜨끔해졌다. 수련생의 말은 나를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그렇다, 어머니를 보살펴드리는 것은 딸로서 당연한 의무인데 왜 자꾸 돈을 달라고 할까? 이건 현대의 변이된 관념에 따라 문제를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는 게 아닌가?’ 바른 일념이 생기는 순간 온몸이 가벼워졌다. 생각이 법의 기준에 부합하자 사부님께서 몸에 좋지 않은 물질을 제거해주셔서 내 공간이 맑아졌음을 깨닫게 됐다. 사부님께서는 정말 우리 곁에서 제자를 보호해주신다. ‘제자는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가 사부님께 심려를 끼쳤습니다.’
이번 난을 겪으면서 수련의 엄숙함과 법이 우리에 대한 요구가 점점 더 높아지기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안 된다는 것을 더 절실히 체득했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수련의 마지막 순간에 반드시 현대의 변이된 관념을 닦아 버려야 하며, 모든 잘못된 사상과 행동을 바로잡아야 진정 법에 동화되어 사부님과 함께 아름다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현 단계의 일부 수련 체득으로,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3년 7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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