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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란이 발생한 후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22년 5월 20일은 코로나 봉쇄 시기였다. 오후에 외출하는데 두 여자가 날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돌아서서 그들을 따라가자 그들은 겁을 먹고 빠르게 도망가버렸다. 나는 이것이 또 사악한 중공(중국공산당)이 한 짓임을 알고 매우 화가 났다. 나는 ‘공산당은 왜 아직도 무너지지 않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매우 분개했다.

안으로 찾아보니 뜻밖에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요 몇 년간 나는 계속 법공부를 했지만 정말로 마음에 와닿게 했는지, 진정하게 법을 얻었는지 의심스러웠다. 나는 내가 아직 법에 의문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전법륜’을 열심히 공부했더니 답은 모두 책 속에 있었다.

그간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전법륜’ 학습을 중시한 적이 없었다. 사부님께서 이 책에 천기(天機)를 모두 써주셨지만 나는 아직도 둥타이왕(動態網)의 속인 뉴스에 집착하면서 형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보면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자신을 반성해봤다.

첫째,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는데 왜 아직도 이런 문제에 부딪히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물론 단지 이 두 가지 정황만이 아니며, 일부 사람이 장기적으로 병에 대해 집착하는 것도 위험하다. 어떤 사람은 대법을 수련하면 병이 낫고 보호우산(保護傘)이 있게 되므로, 오직 대법제자 중에 들어가기만 하면, 병이 없을 것이며, 무엇이든 모두 두렵지 않다고 한다. 이는 얼마나 강한 사람의 마음인가? 진정하게 착실하게 수련하고자 온 것인가? 대법을 보호우산으로 여기는가? 설사 시작에는 이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해도, 역시 하나의 집착이다.”[1]

나는 대법을 보호우산으로 여긴 게 아닌가? 내가 대법제자가 됐다고 난이 없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가?

둘째, 원망과 불만은 어디서 생기는 것인가? 이런 문제에 부딪힐 때 나는 어떤 태도로 이런 교란을 대해야 하는가?

나는 내가 속인의 표준, 속인이 말하는 공정과 정의로 고층차의 일을 대하려 한 게 아닌지 자신에게서 찾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데 당신 속인들이 날 이렇게 대하다니? 나는 당신들을 구하려 하는데, 당신들은 도리어 날 방해하다니?’ 나는 이 지역에서 진상 전단지를 배포하다가 신고를 당했고, 이 때문에 억울하게 재판을 받고 감옥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 후 회사에서 해고됐고 이혼도 당했다. 그래서 이후 나는 수고스럽더라고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그것은 박해를 당한 후 트라우마가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나는 신기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40대로 보이는 인도 공주가 인도 전통 복장을 입고 작은 국가를 방문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옆에 있던 강에서 전통 복장을 입은 미모의 여자가 나타나(태국이나 스리랑카 출신 같았음) 내게 선물을 주었다. 인도 공주는 문화, 예절, 복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말투는 매우 오만하고 무례했다. 나중에 이 작은 국가 백성들은 내게 국보를 선물했는데, 그것은 콩으로 쓴 당나라 시였고 선물 상자 안에 있었다. 인도 공주는 보더니 질투가 나서 손을 휘둘러 선물 상자를 뒤집어엎었다. 그 국가의 문화가 자기 국가를 넘어설까 봐 두려워한 것이다. 나는 옆에서 이를 묵묵히 지켜보면서 그 공주를 매우 나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곧 나 자신임을 알았다. 내 행동은 그들 국가에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다줬고 심지어 이 영향은 매우 깊고 오래 지속됐다.

이 꿈은 내가 이 지역에서 난을 당한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나는 이곳에서 감시당하고 박해당했으며, 심지어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했지만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생생세세 지은 업력을 모두 갚아야 했다.

나는 1999년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22살밖에 되지 않은 가냘픈 여대생이었다. 나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허베이성의 한 수련생 집에서 경찰에 납치됐고, 나중에 우리 지역으로 옮겨져 거주지를 감시당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술에 취한 사람이 날 찾아왔다.(아마 경찰이었을 것) 그는 내게 원한이 있는 것처럼(나는 여기서 다른 수련생 두 명과 같이 감시를 당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들은 건드리지 않았음) 날 보자마자 따귀를 계속 때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날 보호해주시고 내게 아주 조금만 감당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 일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내가 진짜로 본 것인지 헛것을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장면을 보았다. 한 청나라 공주가 채찍을 들고 한 병사를 무자비하게 때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 공주였고 실제로 내가 그 병사를 때리고 있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는 묘지가 있었는데 그 묘지를 보니 원망심이 전부 사라졌다. 지금도 나는 날 때렸던 그 사람을 전혀 원망하지 않는다.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열심히 안으로 찾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나는 이 많은 생각들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진정한 자신에게서 오는 것인지, 생생세세 형성된 관념인지, 각종 층차의 생명이 내 사상을 교란하는 것인지 똑똑히 알지 못했다.

나는 도대체 수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수련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임을 알았지만,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이 길이 평탄하고 아무 시련도 없을 수 있는가? 나는 생생세세 다른 사람에게 빚을 졌고 각종 층차에서 신에게 빚을 졌을 텐데 모두 갚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내가 수련한다고 모든 빚을 무효로 할 수 있는가? 사람 속에서 형성된 각종 집착, 좋지 않은 마음을 갖고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이미 우리를 도와 무수한 업력을 없애주셨다고 매우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속인들처럼 눈으로 직접 봐야만 믿었고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비록 마음속으로는 똑똑히 사부님의 매 구절 법이 진법(眞法)이고 진리임을 알고 있고, 평소 법공부를 하면서 사부님의 이 말씀을 천 번도 넘게 봤지만 지금에서야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해주셨는지, 제자들에게 무엇을 주셨는지, 제자들을 위해 무엇을 감당하셨는지 알게 됐다. 정말 불은호탕(佛恩浩蕩)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하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2]

내 현 층차에서의 이해는 이렇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빚은 업보를 금생에 다 갚게 하려고 하시기에, 만약 아무 난이 없다면 정말 수련할 수 없다. 이런 난들은 자신이 빚진 것이기에 전부 갚아야 한다.

나는 또 현재 자신이 ‘고생’을 거부하는 마음이 아주 커서 ‘고생’을 건드리지 못하고 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보호하려 하는 등, ‘고생’에 대해 아주 큰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련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내 목적은 반본귀진(返本歸真)이었고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사실은 고생을 겪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열심히 안으로 찾아보면서 다시는 누군가를 질책하거나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또 꿈을 하나 꾸었다.(물론 나는 꿈에 의존해 수련하지 않는다. 반드시 법으로 가늠해 꿈이 자신의 집착심을 만족시키거나 더 강화시키는지, 아니면 자신을 깨우쳐서 더 정진하게 하는지 보아야 한다. 꿈은 가끔은 시험이거나 일깨움일 수 있으며 가끔은 미래에 발생할 일을 예언하기도 한다.) 그곳에는 방이 하나 있었고 방 안에는 창문이 하나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은 밖에서 이 창문을 열고 싶어 했지만 어떻게 해도 열지 못했다. 이 방 안의 창문을 여는 방법은 마치 ‘골드바흐의 추측’같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그런데 내가 그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살짝 밀어보니 바로 열렸다. 원래 이 창문은 안에서 밖으로 밀어야 열리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내 마음속의 문을 연 것 같았다. 박해당한 후 나는 두려움이 너무 커서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았다. 나는 이런 난세에서, 이렇게 사악한 환경에서, 이렇게 가혹한 박해 속에서 걸어 나갈 용기가 없었고 다시 신고당하고 박해당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또 이 세상의 좋은 사람들이 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에 온 목적은 자신을 잘 수련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내가 세상에 온 의의는 무엇인가? 나는 상처 받기 두려워하면서 안일하고 박해가 없는 나날만 바라고 있었다.

사부님 법의 매 구절은 모두 틀림없으며 단지 자신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나는 마치 망망한 바다의 물 한 방울처럼 보잘것없어 아무리 대법의 무궁무진한 법리를 배워도 끝에 도달할 수 없다. 향후 나는 안으로 찾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이 법을 지키고 원망이나 집착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갈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3-시카고 법회’

 

원문발표: 2023년 6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6/30/4445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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