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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관념을 바꿔 시어머니를 선하게 대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1998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했고 올해 50여 세입니다. 수련에서 심성이 높아짐에 따라 저를 괴롭혔던 모든 질병이 사라졌고 가족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화목한 가정을 갖게 해주셨고 몸도 건강하게 해주셨습니다.

관념을 바꿔 시어머니를 선하게 대하다

남편과 결혼한 후 시어머니는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항상 꼬투리를 잡아 절 괴롭히셨습니다. 저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서 시어머니를 무시하고 원망했습니다. 결국 고부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집밥만 할 줄 알기에 가족 모임에서 주방 보조만 하고 주방장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어느 날, 우리가 시어머니댁에 식사하러 가서 저는 할 수 있는 일만 했습니다. 식사하려고 모두 식탁에 모여 앉자 저도 식탁에 앉으려 했는데 시어머니는 저에게 주방에 가라고 하고 주방 문을 닫고는 말씀하셨습니다. “교양있는 집안이라고 생각했는데 네 어머니가 널 어떻게 교육한 거니? 어른이 밥상에 앉기 전에 먼저 앉아서 먹으면 돼?” 평소 시어머니는 늘 제 어머니를 들먹이셨습니다. 하지만 제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너무 화가 나서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남편이 없으면 사람들이 있든 없든 시어머니는 절 구박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제 아들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손자 대신 외손자와 외손녀만 예뻐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절 괴롭히지 않으면 잠을 이루시지 못하실 정도였습니다.

시어머니와 얼굴을 붉히지 않기 위해 때로는 남편을 부추겨 시아버지께 이르게 합니다. 시아버지는 손자를 아끼시고 장손이라고 생각하시기에 손자 문제로 시어머니와 자주 다투셨습니다. 또 시어머니는 결벽증이 있어서 저를 시댁에서 재우지 않으셨습니다. 설날에 시어머니를 도와 만두를 빚고도 집에 바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후 법공부를 하면서 수련은 사람의 마음을 없애고 선(善)을 닦고 누구에게든 잘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물며 자기 가족은 더 말할 것도 없기에 저는 각 방면에서 노력해 자신을 바꾸었습니다.

이후 우리집은 새 아파트로 이사 갔고 시부모님은 우리집에 와서 지내셨습니다. 남편과 시아버지는 목소리가 크고 말투가 늘 싸우는 것 같았으며 사소한 일로 끊임없이 다툽니다. 부자가 서로 양보하지 않고 일에 부딪히면 모두 이기려 합니다. 그때 저는 일용직 일을 했는데 집안에서 다투는 꼴을 보기 싫어서 퇴근 후 집에 가고 싶지 않았고 항상 그들을 피했습니다.

나중에 교류할 때 수련생이 저에게 “그렇게 피하면 안 돼요”라며 일깨워줬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았습니다. 그들이 제 심성을 높여줬고 저의 조급한 마음, 원망을 닦게 해줬으니 제가 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작은시누이 집에 식사하러 갔습니다. 작은시누이는 “어머니가 새언니 집에 며칠 머무셨는데 목욕을 시켜드린 적이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도움을 청하신 적도 없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누이 얘기를 듣고 속으로 내키지 않았지만 시어머니께 여쭈었습니다. “어머님, 목욕시켜 드릴까요?” 하지만 시어머니는 “안 씻으련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것은 힘들까 봐 두려워하는 게 아닌가?’ 시어머니는 연세가 많으십니다. 대중목욕탕에서도 노인 혼자서는 목욕하지 못하게 합니다. ‘내가 도와드리지 않으면 어떻게 설을 잘 보내실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시어머니께 “제가 목욕 시켜드릴게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저의 진심을 믿지 못하고 잠시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셨지만 저는 진심으로 동의를 구했습니다.

저는 머리부터 감겨드리고 몸을 불리게 한 후 때를 밀어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얼마 후 “여길 잘 밀지 못했어”라고 하시고, 잠시 후 또 “여기도 안 됐어”라며 갖가지 트집을 잡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이상한 말투로 “내 딸보다 못 미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만족을 모르시네요. 저는 친정어머니께도 목욕을 시켜드린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갑자기 ‘이것은 불평과 원망 아닌가? 이 마음은 선하지 않다. 이건 내가 아니다. 이걸 갖지 않고 해체하겠다’라고 깨달았습니다.

평소에는 큰시누이와 작은시누이가 시부모님을 돌봐줬습니다. 저는 설날 전에 가서 주방과 집안을 청소하고 채소밭을 정리하는 등 일만 했고 시부모님 효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시어머니께서 제 심성을 높여주셨습니다. 진심으로 심성 제고의 기회를 주신 시어머니께 감사드렸습니다.

마음이 평온해진 후 저는 조금씩 시어머니를 씻기고 문질러드리면서 “어머님, 아프지 않으세요? 이렇게 밀면 편안하세요?”라고 말하며 마지막에 발까지 씻겨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오랜만에 편안히 목욕했구나. 몸이 뻣뻣했는데 목욕한 후 편안해졌어. 너무 편안해!”라며 만족해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아기처럼 저를 보며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다 씻은 후 시어머니가 추울까 봐 큰 수건을 드렸고 부축하며 목욕탕에서 모시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거실이 너무 조용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남편과 시아버지는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왜 아무런 인기척도 없지?’ 그때 남편과 시아버지는 주방에 서서 조용히 시어머니와 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남편 친구도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놀란 눈빛이었습니다. 저와 시어머니가 웃고 떠들어 대는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어머니를 부축해 침대에 올려 드리고 주방에 과일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리고 침대 옆에 앉아 과일을 잘라 시어머니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비스듬히 내 품에 기대어 며느리의 효도를 받았습니다. 시어머니의 흰머리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얼굴에 주름살을 보고 저는 코가 찡했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자비심이 나왔습니다. 저는 ‘수련인은 반드시 사부님 법에 따라 착실히 수련해야 한다! 진정하게 수련하지 않으면 이 생명을 밀어버릴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어머니가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션윈 CD를 권해드렸습니다.(그 당시 중국에서는 션윈 CD를 배포할 수 있었음) 이전에는 권해드려도 보지 않으셨는데 이번에 시어머니는 오랫동안 보셨습니다.

시어머니는 갑자기 과일을 먹다가 “너는 왜 먹지 않니?”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아까워서 안 먹는 것으로 생각하고 “너는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인데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네가 파룬궁을 수련 후 몇 년간 많이 변했어. 말년에 너의 보살핌을 받을지 몰랐다. 네가 결혼할 때 속으로 ‘왜 이런 며느리를 얻었을까?’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꿈에서도 내가 이런 복이 있을지 몰랐지. 네가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날 이렇게 잘 대하지 않았을 거야.”

저는 대법 수련인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일이든 남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완전히 남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시어머니 집에 가도 시어머니는 며칠 더 놀다 가라고 하십니다. 우리 둘은 한 침대에서 자고 시어머니는 때로 제가 추울까 봐 주무시면서 만져봅니다. 우리 둘은 한 사람이 잠들 때까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관념을 바꾸고 큰시누이를 이해하다

시댁의 큰일은 보통 큰시누이가 맡아서 합니다. 시부모님도 보살펴드리고 힘도 많이 들이고 돈도 많이 씁니다. 제 아들에게도 잘해주고 돈 쓰는 것도 인색하지 않습니다. 저는 큰시누이에게 늘 감사해합니다. 하지만 큰시누이는 단점이 있는데 말투가 모질고 야박한데다가 남의 말을 잘 전합니다.

저는 그런 큰시누이와 충돌을 피하려고 시댁에 가도 3년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매년 설에 저는 시댁에 일찍 가서 청소하고 시어머니께 “형님은 언제 오세요?”라고 묻습니다. 시간을 잘 계산해 도망갑니다. 그런데 2020년 설에는 큰시누이가 갑자기 먼저 와서 저는 시댁에 갇혀 도망치지 못했습니다.

설날 밥상에서 큰시누이는 시아버지가 손자만 예뻐하고 우리집만 챙겨준다며 크게 질투를 부려 시아버지와 다시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두 사람은 큰소리로 논쟁했고 서로 화가 나서 누구도 말리지 못했습니다. 저도 안으로 찾는 것을 잊었습니다. 제게 쟁투심이 없었다면 제 앞에서 이런 큰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먼저 시아버지의 화를 가라앉혀 드렸고, 달갑지는 않지만 주방에서 화가 나 있는 큰시누이에게 다가가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큰시누이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저를 향해 “네 남편은 아무것도 안 해! 돈도 안 내는 주제에 일도 안 하고, 우리는 많이 힘들었는데 결국 조카만 위한 꼴이 된 거잖아!”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큰시누이는 끊임없이 저를 비난했습니다. 이때 아주버니가 보고 들어와 말렸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아주버니는 하는 수 없이 저에게 “화내지 마세요. 갱년기가 와서 저래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이번에 저는 제고했어요. 형님을 원망하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80세 시어머니는 한쪽에서 두려운 눈빛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시어머니가 가련했습니다. 한쪽은 자신을 돌봐주는 딸이고, 한쪽은 시어머니를 위해 농사를 짓고 집안일도 해주는 며느리입니다.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어떻게 하실지 모르시는 것 같았습니다.

가정일로 다투는 것은 제게 쟁투심이 있고 이기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무슨 사람 마음이 있을까? 이기심이 있는 게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있어서 피하려 했구나. 원망심이 있었기에 큰시누이가 돈도 내고 힘을 쓰는 것도 원망했구나.’ 큰시누이는 다른 사람의 칭찬을 듣기 좋아하고 지식인이지만 중졸인 저보다 교양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큰시누이를 얕보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가 수련해야 하는 요소입니다. 저는 일에 부딪히면 피하려 했기에 갈등이 쌓인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제고하려 하지 않아 생긴 일이었습니다. 큰시누이의 각종 표현은 제 사람 마음을 폭로했습니다. 제 눈은 붉어졌습니다. 저는 관념을 바꿔야 합니다. 제가 생각을 바꾸자 누가 제 머리를 돌려놓은 것처럼 남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큰시누이 옆에 가서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형님, 우리가 잘못해 형님을 화나게 해드린 것 같아요. 화를 푸실 수 있으면 저에게 어떻게 하셔도 돼요. 형님이 우리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해주신 걸 알아요. 그해 형님이 입원하셨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아요. 집안에 큰일을 맡을 사람이 없어서요. 형님, 이 집은 형님이 없으면 안 돼요.” 제가 안으로 찾자 두 사람 사이의 전쟁이 금방 멈췄습니다. 큰시누이도 소리 지르지 않았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남편은 몸이 좋지 않아 집안일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집안의 큰일은 모두 큰시누이가 해야 했지만 좋은 것은 모두 남편과 아들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몇 년간 큰시누이도 답답했을 것입니다. 울분을 터놓을 사람도 없었고 저를 찾아도 저는 늘 피했습니다.

큰시누이는 말투가 부드러워졌습니다. “몇 년간 왜 날 피했어? 오늘은 도망 못 가. 억울한 일을 말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잖아. 내가 돈도 내고 일도 많이 했는데 아버지는 나와 상의도 없이 돈과 분양받은 새 아파트를 남동생에게만 주셨어.”

시아버지는 손자와 아들을 사랑하기에 아들에게 늘 몰래 돈을 주려 합니다. 제가 시아버지를 말려 봤지만 듣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아버님, 이렇게 하시면 안 돼요. 이건 아들만 사랑하는 거예요. 이러면 저는 시누이들과 잘 지낼 수 없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시아버지도 듣지 않고 남편도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시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수련하지 않았지만 말을 잘 듣고 일에 부딪히면 ‘진선인’에 따라 행동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형님이 화난 것은 두렵지 않고 형님 건강이 상할까 봐 걱정돼요. 몇 년간 제 잘못이 커요. 여태껏 형님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했어요.” 사실 큰시누이는 시부모님의 돈을 가지려는 것이 아니었고 시아버지의 일 처리가 불공평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늘 큰시누이를 피했습니다. 큰시누이는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랐고 하소연할 사람이 필요했으며 칭찬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기적이었고 남에게 꾸지람을 받을까 봐, 원망을 받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저는 참음을 해내지 못했고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는 것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수련인이고 사부님께서 계시고 수련생이 있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교류할 수 있고 심성제고를 할 수 있습니다. 큰시누이는 누가 있습니까? 저는 “형님, 죄송해요”라고 말했고 우리 둘의 원한은 제가 성실히 안으로 찾는 과정에서 해소됐습니다.

대법 박해 초기, 큰시누이는 가족이 박해에 연루될까 봐 제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제 가방을 뒤져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 성격도 강해서 큰시누이는 진상을 거절했습니다. 올해 새해, 몇 년간 돌아오지 않던 아들이 상하이에서 돌아왔습니다. 아들이 할아버지에게 안마, 족욕을 해드리고 약도 발라 드리고(시아버지는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듭니다.), 할머니를 도와 설거지하고 주방을 정리하며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들의 예의 바르고 선한 품성에 시부모님과 큰시누이는 크게 감동했습니다.

시아버지는 10여 명이 모인 가족 모임에서 큰소리로 “손자가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건 며느리가 대법을 수련한 덕분이다! 대법에서 사람이 되는 이치를 배워 손자도 모르는 사이에 혜택을 받았구나!”라고 말씀하시고 철이 든 손자를 자랑스럽게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 손자가 복을 얻었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큰시누이도 제 아들의 변화를 보고 아주 기뻐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제가 대법 일을 해도 이전처럼 심하게 반대하지 않습니다.

파룬따파는 너무 신기하고 안으로 찾는 것은 법보(法寶)입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밍후이왕 제24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3년 6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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