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아내와 함께 대법을 수련했다. 중국공산당(중공)이 박해한 후 우리는 직장과 이웃, 친척, 친구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아름다움과 진상을 알렸다. 나는 일찍 세 번이나 불법적으로 감옥에 갇혔다.
그것은 2013년 말 노동교양제도가 종료된 후, 감옥 취조실에서 ‘6.10’ 요원이 나에게 한 말이다. “당신이 ‘전향’하지 않으면 노동교양제도가 없어져도 당신을 집에 보내지 않겠어요. 세뇌반에 가두어 다시 세뇌시켜 드리겠어요. ‘전향’하지 않으면 판결할 수 있는데 중형으로 판결할 수 있으며 집에 가지 못하게 하겠어요. 당신 집 환경이 너무 안 좋아요. ‘전향’하지 않으면 아내를 망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죽일 수도 있으며 죽이지 못하면 당신 아내를 죽일 수도 있어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당신 아들에게 손을 쓸 수도 있고 아들을 공직에서 해고할 수도 있으며 아들이 일자리가 없어 수입원이 끊기면 당신 며느리는 당신 아들과 이혼할 것이고 아들, 며느리는 당신을 찾아와서 결판낼 것이며 당신을 욕하고 때릴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불안에 떨게 할 것입니다. 어쨌든 당신은 편히 살 수 없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게 하겠습니다!”
나는 “어디로 ‘전향’하라고 하나요? 나의 혈관에 흐르는 것은 모두 ‘진선인(真·善·忍)’이며 모든 세포는 모두 ‘진선인’입니다. 미시적인 데에서 거시적인 것까지 ‘진선인’이 없는 곳이 없으며 어디를 가든 모두 ‘진선인’입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은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을 이렇게 대하면 안 됩니다. 하늘은 눈이 있으며 하늘의 눈은 바로 저울이며 이 저울을 천평(天平)이라고 합니다. 조금도 틀리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천평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선악에는 보답이 있고 조금이라도 틀리지 않으며 하늘이 저울질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큰소리로 웃으며 “저울? 무슨 저울, 공산당이 저울입니다. 파룬궁을 대할 때 나는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라’ ‘때려죽였으면 자살로 간주하고 신원을 밝히지 말고 바로 화장하라’ ‘필요하면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하라’라는 지시대로 이행합니다.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두고 보시죠!”라고 했다.
“전에는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믿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하늘을 믿지 않고 신을 믿지 않으며 또 덕도 싫고 무법천지여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죠. 하지만 저는 수련자의 사명에 따라 당신이 저를 저버려도 저는 당신을 저버리지 않으며 여전히 당신을 구하고 싶어요”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일어나서 갔다.
이 감옥에서 나는 20개월 넘게 불법 감금되어 완전히 고립되었고 TV와 신문을 볼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감옥 경찰은 나에게 한 마디도 밖으로 새지 못하고 밖의 것은 조금도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
종일 바오자(包夹, 수감자로 이루어진 감시원) 세 명이 감시하는데 밤에 잘 때는 머리 앞과 발 뒤에도 감시카메라가 있으며 문 앞에 또 앉아서 당직서는 사람이 있는데 방귀를 뀌어도 달려와서 보고 적어서 보고한다. 내가 종일 보는 것은 높은 벽, 철창, 전력망이다. 바깥 사정과 집안일도 ‘6.10’이 알려준 것 외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2014년 봄, 나는 캄캄하고 어두운 큰 철문을 나섰다. 이때 ‘6.10’ 요원이 나에게 “여러 번 생각해봤는데 당신을 집으로 보내 아내의 마지막을 보게 하려고 해요. 필경 당신들은 수십 년 된 부부죠. 내가 인정은 있지요”라고 했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문틀을 짚고 눈이 빠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앞의 아내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목소리가 쉬었고 반응이 느리고 온몸이 부어 비틀거리며 걸었다. 나는 아내에게 “왜 법공부를 하지 않고 연공을 하지 않았어요?”라고 물었다.
한참 뒤에 아내는 “당신의 소식을 들을 수 없고 당신도 내 상황을 모르잖아요. 당신이 불법적으로 잡혀간 그날 밤, 그 사람들이 나를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감금하고 알 수 없는 약물을 강제로 주사했어요. 그 후 머리가 어지럽고 손발이 저리고 온몸에 힘이 없어요. 한 달이 넘은 후 나는 구치소를 나와 또 세뇌반에 불법 감금됐어요. 세뇌반에서 귀와 코에서 피가 나고 입에서 피를 토하고 대소변에도 피가 섞여 나오는 등의 증상이 나타났어요. 세뇌반에서 날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교도소에 보냈어요. 교도소에서 받기를 거부하자 아들을 불러 집으로 데려가게 하고 교도소 밖에서 집행한다고 하였어요. 집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해 몸이 좀 나아지면 그 사람들이 또 나를 불법적으로 세뇌반으로 끌고 갔고 세뇌반에서 박해받아 생활을 자립하지 못하자 또 아들에게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어요. 이렇게 반복적으로 못살게 굴었어요. 나중에는 글자도 안 보이고 연공하려고 하면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가부좌도 되지 않다가 이렇게 됐어요. 나는 당신이 일찍 집에 돌아와서 내가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사람을 구하는 것을 도와주길 얼마나 바랐는데요. 예전 같으면 얼마나 좋아요!”라고 했다.
아내의 좋은 소망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떠나기 전 그날 오후, 아내는 스스로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먼저 쉬었다. 저녁에 날씨가 갑자기 바뀌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자정 무렵 아내의 심장이 멎었다. 임종 직전 아내는 “나는 행운아예요. 이번 생에 대법제자가 되고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제자가 돼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단지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완성하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아내가 떠난 후 나는 정념이 부족했다. 두 수련생과 소통한 후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했다.
다음날 어찌 된 일인지 옛 친구, 옛 이웃이 오고 아내의 동창, 옛 동료가 오고 옛 직장의 공회 주석(노조위원장)도 왔다. 배달된 화환과 꽃바구니는 위층 집의 빈소에서 복도를 따라 아래층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복 공안도 왔다. 사람들은 “공안이 아니라 공해예요!”라고 수군거렸다. 별말을 다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사복 경찰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6.10’ 요원도 왔으나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5~6분 서 있다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만약 이 패거리들이 여기서 제멋대로 지껄인다면 때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노부인은 아내의 영정을 보고 “나는 다 나았는데 당신은 가셨네요. 당신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온 가족을 구해주셨습니다. 그때 당신은 당신에게 감사드리지 말고 파룬따파에 감사드리고 리훙쯔 사부님께 감사드리라고 하셨지요! 오늘 나는 파룬따파에 감사드리고 리훙쯔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세 번 절하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바깥은 어둠이 내린 듯 흐리고 가랑비가 하소연하듯 흐느꼈다.
아들이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나는 현장에 있는 두 수련생과 함께 의논했다. 수련생은 말했다. 작은 홀은 안 돼요. 보아하니 최소한 중 홀은 있어야 해요. 대련은 ‘평생 좋은 일을 하여 만고에 이름을 남기고, 선경은 귀빈을 맞이해 불국에 금불상이 늘었네’라고 바꿔야 신분에 맞지요.
아들이 바로 연락해서 휴대폰을 스피커로 해 놓았는데 상대방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대련의 내용은 당신의 요구에 따라 바꾸고 사이즈를 조금 더 크게 하고 (문 앞 정면이 크기 때문에) 홀을 큰 홀로 바꾸어 ‘왕더(旺德)’홀에 배치했습니다. 만족하나요? 만약 만족한다면 우리는 바로 배치할 것입니다. 원래 협의한 총가격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고인에 대한 우리의 존경과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나는 아들에게 돈은 더 내겠다고 말하라고 했다. 상대방은 돈을 더 내는 문제는 내일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비가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내렸다. 사흘째 되는 날 새벽 6시에 장례식장에서 예약한 버스가 도착했고 비도 그쳤으며 친지들이 재빨리 차에 올랐다. 한겨울인데다 비가 많이 내려 교통이 뜸했고 빨강 신호등에도 거의 걸리지 않은 채 7시 정각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내가 차에서 내렸을 때 아내의 옛 동창생을 가득 실은 버스가 거의 동시에 도착한 것을 알았다. 아내의 옛 직장 버스는 공회 주석이 동료들을 인솔하여 이미 먼저 도착했고 또 많은 자가용도 여러 대 도착했는데 그들이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내의 옛 직장 공회 주석이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겠다며 두 손으로 추도사를 건네며 먼저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쳐 달라고 할 줄은 더더욱 생각지도 못했다.
파룬궁이 박해당한 지 10년이 넘도록 우리 부부의 책임자 중 누구도 우리를 이렇게 대하지 않았다. 뜻밖의 일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는 나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듯 “당신 부부는 모든 일에 남을 위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마치 남을 위해 사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먼저 세상을 떠난 당신의 아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부족한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뒤늦은 공정한 말입니다. 이 말을 나는 우리 직장의 일인자에게 했습니다. 그는 나를 불러서 그와 직장을 대표해 추도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목숨을 구한 사람은 떠났고 그녀는 우리를 위해 간 것입니다. 이때 나서서 공정한 말과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다면 사람입니까? 또 구원받을 자격이 있겠습니까? 마음이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왕더 홀은 장엄하고 엄숙하게 배치되었고 사람들이 가득 서 있었다. 사방에 꽃바구니와 화환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공회 주석의 연설이 구구절절 정확하고 진실했으며 홀은 고요했다. 그 후 아내의 옛 동창들도 대표를 보내 이야기를 했고 옛 동료 대표도 연설하려 했다. 서로 오랜만에 마음속의 이야기를 하는데 인정이 두텁고 정의감이 강하며 심지어 눈물이 나도록 감동적이었다.
사회자가 나에게 “한 말씀 좀 해주시죠”라고 청했고 나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사회자가 다시 청하자 나는 일어나서 아내 영정 쪽으로 가서 아내와 나란히 서서 여러 사람에게 세 차례 허리를 굽혀 답례했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세 번 답례했다. 그때 나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이 대법의 진상을 알고 대법의 구원을 받았으며 깨달은 본성이 살아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후 모든 사람은 낮고 애잔한 애도 음악에 맞춰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과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아내는 금빛 꽃밭에 평화롭게 누워있고 사람들은 눈물을 머금고 대면했다. 가족과 은인은 헤어지기 아쉬워하고 눈물과 함께 흐느끼는 소리가 천지를 감동했다.
영결식이 끝나자 공회 주석과 아내의 옛 동창들은 묘지까지 못 가고 오후에 일이 있어 먼저 가겠다며 거듭 사과했다. 나는 그들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며 거듭 감사드렸다. 그들도 재차 우리 부부에게 고맙다며 다시 감사함을 표했다.
아내를 잘 안장하고 모두 묵묵히 차에 올랐다.
묘지에서 내려와 회식하는 식당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 2시가 되었다. 식당 주인을 비롯한 많은 직원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은 미리 연락해서 여섯 상의 음식상을 예약했는데 사람이 앉기에는 부족했다. 나는 사장에게 “ 테이블 두 개를 더 추가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사장은 즉시 로비를 향해 “준비한 두 상에 음식을 갖다주세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그 시각 나는 식욕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사장의 손을 잡고 뒤 홀에 가 사장의 세심한 친절에 감사드렸고 결제하려 했다. 사장은 “어제 댁의 아들이 다 계산했고 서비스에 관해서는 정말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부족한 점을 양해해 주셔서 이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아들이 어제 계산한 게 여섯 테이블인데 두 테이블을 더 내겠습니다” 사장은 절대로 받지 않겠다며 “당신과 나의 이 계산을 정확하게 할 수 없습니다. 당신 부부는 나에게 그렇게 많은 진상자료를 주었고 한 푼도 원하지 않았으며 진상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중공 사당의 모든 조직에서 탈퇴해 우리 가족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식당에 온 많은 손님도 이익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감사도 받지 않고 우리에게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대법에 감사드리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9자진언을 명심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식당은 장사가 번창하고 떠들썩합니다. 이 정을 어떻게 계산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이것은 대법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하라고 하신 것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고 사명이며, 이는 음식값과 별개입니다. 연회비는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반드시 받아야 하며 현지의 풍습에 따르면 받지 않으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사장님께 좋지 않다고 하니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사장은 눈시울을 적셨다. “당신 수련인들은 이렇게 매사에 남을 위하고 한마음으로 모두를 위하고 마음속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보답하고 싶은데 당신은 기회도 안 주고 체면도 봐주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친지들을 보내고 나는 집으로 왔다. 내가 사는 건물 앞에서 누군가가 서성거리는 것을 보니 바로 이전의 이웃이었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나에게 “언니가 떠난 이렇게 큰일을 왜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나요? 내가 배웅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고, 오빠는 너무 한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 남편은 기율검사위원회 사람……” 그녀는 나의 말을 끊고 “사람이 기율위원회 사람이지 마음도 기율위원회입니까?!”라고 말했다. 그녀는 목이 메어 “생명을 구해준 은인을 보내 주고 싶은데 마음을 표현할 기회도 주지 않네요”라며 말했다. 나는 즉시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며 “원망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편치 않아 생명의 은인에게 미안하고 평생 큰 유감이 됐어요”라고 했다.
훗날 한 옛 상사가 나를 보고 “악비는 승승장군으로 민족의 영웅이지만 송고종 시대에 살다가 진회에게 모함을 당했어요…”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마음이 뜨거워지고 한 줄기 따뜻한 열류가 빠르게 온몸을 통과했다. 진상을 안 생명의 양심 귀환과 품성의 승화, 경지가 향상되고 있음을 실감하고 대법의 위대함, 사부님의 자비와 제자의 조사구인(助師救人) 책임이 막중함과 사명의 영광을 더욱 깊이 깨달았다.
원문발표: 2023년 5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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