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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으로 마음의 문을 열다

글/ 중국 후베이 대법제자 링쯔(靈子)

[밍후이왕] 저는 중공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박해하기 전에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동료에게서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빌려다가 읽기 시작했었는데 “真(쩐)ㆍ善(싼)ㆍ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1]라는 부분을 읽자 가슴이 떨리고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대법이 자신이 줄곧 찾던 것임을 깨달아 흥분을 느꼈고 꼭 잘 수련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때 저는 막 28살이 됐습니다. 저는 신체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대법의 가르침에 확신이 있었기에 수련하기 시작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경쇠약, 불면증, 편두통, 위경련, 유전성 심장병 등 증상이 모두 사라져 매일 상쾌하고 활기차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수련 후 저는 제 삶이 왜 그렇게 슬펐는지 이해하게 됐고 인생의 좌절과 불행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게 되어 더는 방황하지 않고 인생의 방향을 찾게 됐습니다. 원래 상냥하고 착했던 저는 더 밝고 낙관적으로 됐으며 다른 사람을 더 잘 배려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년간 수련하면서 저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파룬따파의 기적과 아름다움을 목격했습니다.

어머니와의 악연을 풀다

어린 시절 저는 어머니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딸보다 아들을 더 선호하셨기에, 어렸을 때 제가 조금만 잘못해도 절 꾸짖고 때리셨고 웃는 모습으로 저와 얘기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어머니는 항상 집 안팎 일 때문에 바쁘셨고 두 오빠는 저와 거의 놀아주지 않았으며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자주 외출하셨습니다. 외롭고 고독하게 자라면서 저는 내성적이고 예민하고 의심이 많고 우울한 성격이 됐습니다. 점차 자라면서 어머니가 저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저도 어머니와 점점 멀어졌습니다. 결혼 후 저를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는 더욱 나빠지셨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잘 대해주지 않으셨지만, 남편과 저는 물건을 사고 수리하는 등 친정의 크고 작은 일을 돌봐드렸습니다. 가족 중 누가 병이 나 입원하게 되면 어머니는 즉시 저에게 연락해 돈을 내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2000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입원하시자 병간호는 남편과 제 몫이 됐습니다. 수년간 어머니는 집에 도움이 필요하거나 올케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제게 전화로 답답함을 토로하셨습니다. 그런데 보통 제가 한마디도 하기 전에 “더는 할 말 없다”라고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딸은 제가 외할머니 가족의 110, 120, 119라고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기신 30만 위안(약 6천만 원)이 넘는 저축을 두 오빠에게 나눠주셨고 지금 저희가 사는 아버지가 남긴 방 3개짜리 주택에 대한 상속권도 포기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지만 어머니는 마음이 놓이지 않으셨는지 남편에게 포기각서를 쓰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무관심과 불의에 직면해 저는 겉으로는 침묵했지만 속으로는 분했고 화가 났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사랑과 재산을 아들에게 주셨지만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딸인 제가 떠맡았으니 말입니다. 사부님께서 수련자는 ‘진선인(真ㆍ善ㆍ忍)’에 따라 어디에서나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수련자이기에 부모님을 더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마음은 괴로웠지만 최선을 다해 자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분하고 미운 마음을 억누르고 눈물을 머금으며 억지로 참았습니다. 법을 계속 공부하면서 내면에서 자신을 진정으로 개변시켜 금전과 정을 내려놓고 어머니 입장에 서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마음의 용량이 점차 커졌고 선(善)의 힘이 마음속 증오를 해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때때로 감정적인 반복이 나타났는데 저는 항상 자신에게 경고했습니다. ‘너는 수련인이므로 사부님 가르침대로 잘해야 한다.’ 그리하여 매번 이성이 감정을 이겼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진정으로 잘하려는 마음이 있음을 보시고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없애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나중에 어머니의 무리한 요구에 직면해도 저는 서서히 화내지 않고 대신 어머니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이해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근면하고 성실하며 선량하게 사신 분이었고 아들들을 위해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지만 어머니께 효도하는 아들은 없었습니다. 특히 2000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아들들을 정신적 지주로 삼으셨지만 아무도 어머니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여든이 넘으셔서 거동이 불편해진 어머니를 보면서 안타까웠습니다. 중국의 전통적인 미덕에서는 효가 최우선이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저를 어떻게 대하든 딸로서 의무를 다하고 어머니가 노년을 즐길 수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연세가 많으시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식욕도 아주 좋으십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좋아하시는 찐빵, 만두, 돼지갈비, 미트볼 등을 만들어 냉장고에 가득 채워 드립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미루지 않고 해드려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어머니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면 마음속으로 안도감과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업무 중에서 동료와의 고충을 풀다

2003년, 저는 재무실로 전근해 회계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재무실에는 경리와 10년 경력의 회계사가 있었고 회사는 많은 중임을 저에게 맡겼습니다. 할 일이 별로 없어 마음이 불안해진 회계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저를 괴롭혔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마음에 새기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모두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매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사무실에 일찍 나와서 물을 끓이고 바닥을 걸레질하고 책상을 깨끗이 닦았습니다. 일이 바쁘지 않을 때는 회계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법 진상을 알렸습니다. 나중에 또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줬습니다.

중국에서는 사악한 당문화(黨文化: 공산당 문화)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서로 적이 되어 싸웠는데 회사 경영진의 이익 충돌이 재무실까지 파급됐습니다. 부사장이 회계사의 불만을 이용해 본사에 익명 편지를 써서 파룬궁 수련을 하는 저를 모함했습니다. 본사 조사팀이 우리 재무실의 업무실태를 조사하러 왔을 때, 저는 그 회계사가 연관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대법이 누명을 쓰고 있어 많은 사람이 악당의 거짓말에 세뇌돼 진상을 모르고 있고, 사부님께서는 우리 대법제자들에게 이러한 세인을 구하라고 하셨기에 조용히 자신을 타일렀습니다. ‘주변에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나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마음속 분노와 증오를 대법에서 수련해낸 선으로 풀어내야 한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평소처럼 친절하게 그녀를 대했고, 사부님의 보호가 있었기에 저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대법의 선(善)으로 저는 점차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회계사는 갑자기 학교로부터 딸이 급성 맹장염이 발작해 배가 몹시 아프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회계사는 몹시 초조해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빨리 딸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하세요. 그러면 통증이 완화될 거예요.” 그러면서 이전에 제 딸이 9자진언(九字真言)을 암송해 복을 받은 사례를 알려줬습니다. 회계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복잡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저를 바라봤습니다.

나중에 저를 신고했던 부사장은 직장을 옮겼습니다. 저는 대법의 가르침에 따라 항상 선으로 마음의 용량을 넓혔습니다. 묵묵히 전반 과정을 지켜보던 많은 동료들이 진상을 알고 삼퇴했으며 회계사도 삼퇴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사무실에서 저에게 진심으로 “파룬궁 수련인들은 정말 훌륭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구치소에서 중생에게 선을 베풀다

2018년, 파룬궁 진상 자료를 붙였다는 이유로 기소된 저는 납치돼 구치소에 감금됐습니다.

처음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저는 마음이 텅 비었고 무섭고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점차 마음을 가다듬고 정념을 확고히 했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법을 외우고 가부좌를 했으며, 감방에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으며 대법으로 수련해 낸 자비로 주변의 모든 일을 대했습니다.

그곳에는 마약 중독자가 있었는데 마약 증세가 나타나면 그녀는 무기력해져 앉지도 못했기에 물 마시고 밥 먹는 데도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구치소 경찰은 그녀에게 감방 통로 콘크리트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게 했습니다. 그녀는 매일 구토했고 며칠 동안 옷을 갈아입지 못해 모두들 냄새 나는 그녀를 싫어했습니다. 저는 매일 음식을 갖다주고 물을 따라주면서 그녀를 돌봤는데 나중에 그녀는 앉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매일 저녁 가부좌를 하는 제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가부좌를 마치자 그녀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연공하는 여사님 옆에 앉아 있으니 너무 편해요! 며칠간 이렇게 편한 적이 없었어요!”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사부님께서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1]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대법제자들이 연공하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혜택을 받습니다.” 대법 진상을 알게 된 그녀는 삼퇴를 했을 뿐만 아니라 저에게 연공을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구치소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저는 “매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워도 똑같이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제 동생 전화번호를 알려드릴 테니 출소하시면 제게 연공을 가르쳐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감방장이 다른 수감자들에게 제가 연공하는 것을 막으라고 하자 그녀가 나서서 저를 두둔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감방 창문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제게 수혈해주는 꿈을 꿨는데 피가 새빨갰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좋은 징조라고 말하더니 과연 며칠 뒤 그녀는 4개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예상 밖 결과에 그녀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제가 처음 감방장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을 때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관찰을 통해 진상을 알고 삼퇴한 사람들이 다양한 정도의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고 구금 37일 만에 출소하는 일도 목격했습니다. 매일 제 옆에 앉아 진상을 듣고 연공을 배우겠다던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낮잠을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경찰이 찾아와 그녀를 부르더니 출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을 따라 문을 나서려던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저보고 “여사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저도 얼른 “집에 돌아가면 내가 한 말을 꼭 기억해!”(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라는 뜻)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감방장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왜 집에 가는데 당신에게 고맙다고 하나요?” 저는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고 삼퇴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낮잠 시간이라서 자고 나서 보자고 했습니다. 기상 종이 울리자 감방장은 얼른 일어나더니 저에게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불을 정리하면서 얘기를 했는데 이번에 그녀는 주저 없이 삼퇴했습니다. 이때 누군가 달려와서 바람 쐬는 곳에 삼퇴할 사람이 몇 명 더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알았어요, 정리가 끝나면 가서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감방장이 달려와 “제가 정리할 테니 가서 도와주세요, 그게 더 중요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여러 사람이 방장을 따라 삼퇴했습니다. 그때부터 방장은 제가 연공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구치소 내 10평 남짓한 감방에는 20명, 많을 때는 30여 명이 수감됐습니다. 20여 명은 침대에서 잘 수 있었고 나머지는 통로 콘크리트 바닥에서 자야 합니다. 때로는 한밤중에 돌아눕다가 실수로 옆 사람을 건드려 다툴 때도 있습니다. 1년 365일 거의 모든 식사는 누렇게 변한 밥과 채소 잎 몇 개가 둥둥 떠다니는 모래가 섞인 국이었고, 라면수프마저 서로 다투었는데 기름기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1~2주에 한 번씩 감방 입구로 식당차가 다가와서 음식을 팔았는데 야채는 20위안, 고기가 들어간 건 40~50위안에 팔았습니다. 아무리 비싸도 수감자들은 앞다투어 샀습니다. 한 사람당 매일 마실 수 있는 더운물은 두 컵에 불과했기에 수감자들은 매일 더운물을 두고 싸우는 일이 잦았습니다. 구치소의 열악한 환경은 인간 본성의 악이 확대되고 선이 묻혀 버리게 하는, 말 그대로 인간 지옥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제자들은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마다 타인을 배려했습니다. 다른 감방에서 이감한 수감자 중 아직 영치금이 없는 사람이 많았는데, 먹고 쓰는 데 불편하면 그들은 먼저 대법제자들을 찾았습니다. 명절 때면 과일과 간식을 조금씩 살 수 있었는데 저는 그들에게 과일과 간식을 나눠줬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법제자들의 진지한 태도, 선량한 품성과 양보하고 관용하는 경지는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재판의 압박, 열악한 생활 환경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들은 우울해졌고 짜증을 냈으며 불면증으로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찾아 고충을 털어놨습니다. 저는 대법 법리로 일깨워줬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다투는 일이 줄어들고 잠도 잘 자게 됐습니다. 그들은 제게 전화번호를 주면서 집에 돌아가면 꼭 연락해달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제 형량을 알고 “그날 꼭 데리러 올게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진상을 알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대법에 감사를 표하던 감동적인 순간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감옥으로 납치되던 날 아침, 사람들이 바람 쐬는 곳에 모여 앉아 점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철문을 ‘쾅’하고 닫으며 저를 데리고 나가자 갑자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돌아보니 감방에 있던 많은 사람이 바람 쐬는 곳 문 입구에 서서 저를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3년 3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3/5/4526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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