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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어려움과 기쁨

글/ 미국 서양인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청년 대법제자인 동시에 미국 페이톈대학 미들타운 캠퍼스 4학년생으로 데이터 과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수련한 지 6년 가까이 됐고 오늘 여러분들과 제 수련의 길에서의 일부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1. 학업, 수련과 일의 균형을 이루다

2019년 법회 기간에 저는 처음 페이톈대학 미들타운 캠퍼스에 왔습니다. 학교를 보고 몹시 흥분돼 마음속으로 ‘만약 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불과 몇 개월 후 저는 이 학교에 합격했습니다.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입학하도록 안배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미들타운으로 이사 와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지만 주변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데다 경제적 여건상 한 학기만 학교에 있을 수 있었고, 그 후에는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비록 이 점은 알고 있었지만 사부님께서는 이미 제가 이 학교에 오도록 안배해주셨다는 느낌이 들어 저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제가 입학할 때 직면했던 수많은 도전은 일종 교란임을 깨달았습니다.

첫 학기에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수입원이 없이 생활비를 어떻게 감당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18개 학점을 이수하는 동시에 또 다른 대법 항목 일도 했습니다. 학기 막바지에 이르자 저는 더욱 초조해졌고 어떻게 이 학교에 남을 수 있을지 걱정했습니다. 오기 전에 학비 지불에 문제가 생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 고생을 자초한 것이 아닌지 염려됐습니다.

어느 날 법공부를 한 후, 제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아닌지는 결코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제가 여기에 있기를 원하시는지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 중에서는 수련의 길을 배치한 것이고 잘 넘기지 못하는 것은 인위적인 요소이다. 수련은 매우 복잡한 일이기 때문에, 모든 일이 다 같을 수도 없고, 당신에게 나타난 일이라 해서 그에게도 나타나게 할 수 없으며, 같은 일이라 할지라도 모두 같게 처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미혹 속에서 수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모두 같다고 한다면 이 미혹은 없어지게 된다. 여러분은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두 알게 되어, “오,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니 아주 잘 됐는데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라고 한다. 그것은 수련이라고 할 수 없다.”[1]

제가 페이톈대학에 온 것은 사부님의 요구이므로 저는 생활비에 대해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필경 집착은 자신에게 더 많은 번거로움을 가져다줄 뿐이니까요. 이런 집착을 내려놓기 시작하자 한 수련생이 제게 근처 상가에서 일할 것을 추천해주면서 자신이 직접 가게 사장에게 저를 소개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게 사장과 면접을 보게 됐고 상당한 급여를 성공적으로 협상했습니다. 받게 될 금액을 계산해보니 생활비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이것이 잘 안배된 것임을 곧 깨닫고 매우 감격했으며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해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일과 학업, 그리고 다른 대법 항목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평일에는 대부분 시간을 모두 학교에서 수업을 받거나 과제를 하거나 다른 책무를 했습니다. 주말에는 가게에서 일했는데, 일반적으로 퇴근 후에는 더 많은 시간을 과제에 들여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계획을 고수할 동기부여가 있었지만 한동안 시간이 지나자 견디지 못할 정도로 피곤해졌습니다. 특히 겨울이 올 무렵이면 더욱 그랬습니다. 멕시코의 따뜻한 기후와 애리조나주의 무더위에 익숙해져 몇 년을 살았기에 제게 이곳 겨울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아직도 평펑 내리는 눈 속에서 몸을 떨며 날씨가 조금이라도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면서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던 주말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은 제게 심성을 높이고 소업(消業)하게 하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고생스러움은 수련 과정의 일부이며 이런 기회가 있어야 자신을 제고할 수 있기에 마땅히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나 수련과 생활에서 균형을 유지하기는 결코 쉽지 않아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련이 느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학업을 최우선 자리에 놓고 때로는 법공부와 연공을 놓쳤으며, 자신의 학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많은 시간과 정력을 학업에 쏟았지만 성적은 예전보다 좋지 않았습니다.

중간고사를 본 후 문제점을 깨달았습니다. 시험 기간에 자신이 잘하지 못한 것을 매우 분명하게 알게 되어 몹시 실망스러웠습니다. 몇 시간 뒤 복도에서 교수님을 만나게 됐는데, 저는 교수님이 실망을 표현하시면서 제가 현재 얼마나 엉망인지 알려주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뜻밖에도 “마지막으로 법공부한 게 언제죠?”라고 물으셔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를 일깨워주신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법공부를 느슨히 했으며 법공부를 하더라도 완전히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법공부를 할 때면 사상이 분산되어 일·학교·생활에 관한 수많은 잡념이 저를 집중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후 학업에서 부진한 이유가 수련에서 부진한 탓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항상 몇몇 수련 이야기를 들었고 밍후이왕에서도 일부 문장을 봤습니다. 수련생들은 전심전력을 다해 수련과 법공부를 첫 자리에 놓았는데, 이는 그들이 업무와 학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나타내도록 돕는다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이 점을 믿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성찰해보니 정말 몹시 실망스러웠습니다! 제 마음에 편안함, 자만, 체면, 추구에 대한 집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각적으로 법공부와 연공을 첫 자리에 놓았습니다. 아침에 인터넷에서 두 시간짜리 연공 음악을 틀어놓고 연공하고, 매일 ‘전법륜’을 한 강의 씩 공부하는 것 외에 각지 설법도 공부했습니다.

비록 즉시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수련 상태가 개선됨에 따라 수업시간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고, 과제를 완성하는 것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생활과 수련, 그리고 속인사회의 직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극단으로 갈 수 없고 그렇다고 자만해서도 안 됩니다. 생활 속에서 우리는 마땅히 법공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이렇게 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올바르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2. 환경이 바뀌니 수련이 달라지다

중공(중국공산당) 바이러스 팬데믹 때,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자 제 수련 상태가 또 악화됐습니다. 직장도 잃게 됐고 주변 상황도 불분명해졌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저는 이런 일들을 상당히 곤혹스러워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며, 믿음과 정념도 불안정했습니다. 비록 오빠와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지만 여전히 자신이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어도 별다른 진전이 없게 느껴졌습니다.

학기가 끝날 무렵, 멕시코 고향으로 돌아가 여름방학을 보내려 했습니다. 당시 페이톈에서는 한창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멕시코에 있더라도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 친구의 집이 여름 동안 비어 있었고 그들은 제가 그곳에 묵는 것을 허락해 여름방학 기간에 저는 혼자 그곳에 있으려 했습니다.

저는 거의 6년 전에 법을 얻었습니다. 수련을 막 시작했을 때, 여태껏 법공부와 연공에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는 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설령 주변에 사람이 없어도 법공부와 연공 외에 다른 일은 소용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에게 매우 경각심을 갖고 있었고 자신을 엄격히 요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자신이 매우 열정적인 수련생이었으며 그때의 그 수련하는 마음은 존경할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많은 수련생과 함께 있는 환경에서는 환경에 의존해 자신의 수련을 지탱하기 쉽습니다. 이 점을 저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멕시코에 돌아간 후 비교해보니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심리적 저항이 훨씬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자신의 수련이 환경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환경은 자신이 조성하는 것이다. 사람이 많아 함께 연공하면 확실히 아주 좋다. 하나는 서로 연구 토론하고 서로 증진하며 이런 수련 중의 일들을 같이 담론하면 수련의 신심을 증강시킬 수 있다. 동시에 집단적으로 연공하는 마당의 에너지는 대단히 커서 확실히 사람의 수련에 대해서는 좋은 점이 있는데, 이 점은 틀림없다.”[2]

처음에는 정진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컴퓨터나 휴대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TV나 유튜브를 보게 됐습니다. 자신이 느슨해진 것을 알아차리자 적극적으로 매일 젊은 수련생들의 온라인 법공부에 참여해 자신의 법공부 시간표를 유지했습니다. 이는 제게 매우 큰 도움이 됐으며 이런 기회가 있는 것에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비록 온라인으로 법공부를 하고 다른 수련생들과 온라인에서 교류하지만, 매번 할 때마다 변함없이 매우 강한 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3. 고생을 겪는 것과 삶을 누리는 것

외로움을 느낀 저는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일반인들의 다른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많은 경우 온라인 법공부가 끝나면 한밤중에 저의 숲속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때로는 그날의 법공부를 포기했습니다.

저는 많은 시간을 일반인들과 함께 보내며 더 많은 시간을 ‘삶을 누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매우 편안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미들타운은 매우 추운 곳이었고 매일 시시각각 일을 해야 했으며, 주변에는 모두 문화가 확연히 다른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제가 알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이제 저는 따뜻한 날씨로 돌아왔고 주변에 친구가 있어 재미있는 활동, 맛있는 음식이 있는 데다가 저의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미들타운은 엉망이었다. 난 그곳에서 고통만 받은 것 같아. 나는 왜 그곳에 있었을까? 왜 그곳에 가는 걸 선택했을까?’ 또 수많은 다른 유사한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심지어 저는 학교를 그만두고 멕시코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때 당신들이 법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면 많은 속인의 집착이 생기게 마련이고, 나아가 각종 사람의 마음이 다 나올 것이다. 어느 한 가지 일에 대해, 심지어 아주 중요한 일에 대해, 모두 사람 마음으로 문제를 보고, 사람 마음으로 하다 보면, 오랜 시일이 지나면 당신이 하는 항목 역시 잘하기가 어렵다. 법 공부를 하지 않기에, 속인의 집착도 많아지고 갈수록 두드러질 것이며, 당신 또한 갈수록 속인 같고 사람에게 주는 느낌도 수련인 같지 않을 것이다.”[3]

저는 사부님께서 설명하신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생각은 갈수록 사람의 생각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신 가장 기본적인 법리도 잊어버렸습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고생을 두려워할까? 무엇 때문에 고통을 두려워할까? 나는 무엇 때문에 편안함과 행복을 추구할까? 무엇 때문에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까?’ 너무나 분명하게도 제 마음 상태는 틀린 것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 한 수련생과 이야기를 나눈 후 저는 망상 속에서 깨어나게 됐고 가능한 한 온라인 법공부에 계속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저는 정신적 기점과 이성을 회복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만약 미들타운이 사부님의 안배라면 제가 어떻게 불평을 할 수 있을까요? 사부님의 안배를 따르지 않는 것은 구세력(舊勢力)을 따르는 것입니다. 저는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했습니다. 이런 소극적인 생각이 바로 구세력이 제가 페이톈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시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름이 끝나감에 따라 새 학기의 시작도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많은 멕시코 친구들이 저를 위해 이별 파티를 열어주려 했습니다.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저는 참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예상한 바대로 대다수 친구가 모두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습니다. 저도 잘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어 차를 마시면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제가 다시 새롭게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제가 법을 얻기 전의 과거를 떠올리게 했고, 당시 제 행동은 그들과 똑같았습니다. 이것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솔직하게 물어보고 반성하기 매우 좋은 과정이었습니다. ‘나는 여기에 머물러야 할까? 삶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노는 것이 즐거울까? 아니면 자신을 수련하며 향상시켜 고생을 낙으로 삼으며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는 것이 즐거울까?’ 그 순간 선택은 매우 쉬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친한 친구가 다가와 “너 왜 그래?”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테이블을 둘러보았고 친구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습니다. 비록 모든 친구가 대법을 알고 대법이 좋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아무도 수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고층차의 생명이 모두 법을 얻기 위해 내려왔지만, 속세에 깊이 미혹되어 환상 속에 길을 잃었으니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너희들은 모두 높은 곳에 있던 생명이었어. 인간 세상에 와서 오히려 환상 속에서 길을 잃은 거야. 난 정말 슬픈 느낌이 들어”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친구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친구의 명백한 일면이 제 뜻을 이해한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정말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과도 같았습니다. “당신이 만약 선한 마음으로 일체 자신의 사(私)적인 것이 없이, 자신을 조금도 고려함이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한다면, 당신이 그에게 한 말은, 그로 하여금 당신에게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라고.”[4]

이번 일을 겪은 후 저는 반드시 미들타운으로 돌아가서 꼭 자신의 서약을 이행하며 사부님의 안배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맺음말

지난 6년간 수련의 길에서 끊임없이 어려움과 기쁨을 겪었습니다. 대단히 행운이라고 느낀 점은 대법을 얻고 여러 가지 대법 항목에 참가한 것입니다. 이런 경험들이 여러분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가 모두 하나의 정체(整體)가 되어 제고되기를 희망합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적절하지 않은 부분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창춘(長春)보도원법회 설법’

(2023 미들타운 페이톈대학 수련 심득교류 원고)

 

원문발표: 2023년 4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4/28/4592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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