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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결혼은 인생의 대사입니다. 결혼 생활에 문제가 나타났다면 그것은 심성에 큰 문제가 나타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저와 남편은 지향점이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른 그런 유형이었습니다. 남편은 온갖 방식으로 제가 수련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해서 어쩔 수 없이 이혼에 동의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이러한 문제가 나타났다면, 여전히 대법제자에게 잘못이 있으며”[1].

저는 늘 남편이 저에게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하게 하고 제가 수련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강요했기에 제게는 잘못이 없고 남편이 중공(중국공산당) 무신론에 세뇌를 당해 착오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안으로 잘 찾지 못했습니다. 반성해봤습니다. 만약 제가 수련을 잘했다면 남편의 잘못된 관념을 바꾸도록 도울 수 있었을 것이며, 많은 대법제자는 모두 이런 체득과 교류가 있었는데 외부의 환경은 자신의 수련에 따라 바뀝니다. 이 점을 해내지 못한 것은 제가 잘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늘 남편이 잘못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의 이것이 나쁘고 저것이 나쁘다고 했지만 이제는 남편을 보지 않고 완전히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자신의 잘못만 찾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대법을 수호하는 것에는 잘못이 없다’라는 제 정념 배후에 수많은 사람의 집착심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상처받은 경험을 돌이켜보고 싶지 않았고 이혼하면 정을 끊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사실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혼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한쪽에 놓아둔 것에 불과했고, 그 쓰레기는 여전히 제 공간장에 놓여 있어 때때로 생각나면 괴로웠습니다. 이것은 바로 자신을 다시 파악해야 하고, 자신의 행동 근원을 살펴봐야 하며, 자신을 완벽하게 잘 수련해 법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더러운 것을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드럽지 못하다

평소에 우리 부부관계는 평등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엄격히 관리한다’는 요즘 세태처럼 남편을 엄격히 관리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저는 ‘평등’ 역시 틀렸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남녀 사이는 강(剛)과 유(柔)의 관계이므로 여자가 남자한테 억압받음이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왜 이 현상,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가? 무슨 여성의 자립자강(自立自强)을 선전함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가? 지금의 사람은 늘 현대인의 부패한 관념으로 고대인을 가늠하며 옛날에는 여성이 억압당했다고 여기는데, 사실 현대인이 생각하는 그런 일이 전혀 아니다. 중국 고대에는, 전 세계를 포함하여 서양 사회 역시 이러한 것으로 남자 그는 어떻게 자신의 아내를 대하며 자신의 아내를 보살피고 애호해야 하는지 알고, 그 아내 역시 남편을 보살필 줄 아는데, 음양은 바로 이렇게 병존하는 것이다.”[2]

중공이 ‘여성해방’을 선전하고 ‘남녀평등’을 제창해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것 같지만, 사실 가정생활에서 머릿속에 ‘평등’이라는 개념이 있으면 부부관계가 부드럽지 못합니다. 예컨대 남편은 제가 부드럽지 못하다고 싫어했는데 저는 어떻게 해야 부드럽다고 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남편은 “집에 돌아오면 당신은 내게 차를 따라줘야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뭔데 내가 차를 따라줘야 하나요? 당신은 왜 내게 차를 따라주지 않나요? 당신에게 일이 있으면 내게도 일이 있어요. 내 일은 당신 일보다 훨씬 힘들어요.” 남편은 “여인은 삼종사덕(三從四德)을 알아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조상의 전통이다. 남자는 덕행이 있고 여자는 여성이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모두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받들어 행했다. 하지만 당신은 공산당의 무신론을 믿고 하늘과 땅과 싸우며 남녀평등을 얘기하면서 내게 그런 요구를 하는데 당신은 여성을 자상하게 대할 줄 아는가? 당신이 내게 잘하고 내가 당신에게 잘하는 것은 상호적이고 기꺼이 진심으로 원해야 한다. 당신이 내게 잘못하므로 내게 부드러움이 있다고 해도 당신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왜 당신을 그렇게 섬겨야 하는가?’

저는 이런 쟁투심과 불평을 품고 ‘남녀평등’이라는 황당무계한 논리 속에서 여자로서 자신의 소중한 부드러움을 잊어버리고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계속해 남자와 강함을 다퉜습니다. 이것은 이미 음양이 뒤바뀐 것이고 음(陰)이면서 음(陰)답지 못한 변이된 생명이 된 것입니다. 비록 수련하면서 많이 고쳤지만 늘 조금 남겨두고 있었으며 자아(이기적인 나)를 완벽하게 잃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여자는 물과 같습니다. 물은 낮은 데로 흘러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낮은 데로 흐르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이 바로 물의 특성입니다. 그런데 저는 왜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을 원치 않고 자신이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당(邪黨: 공산당) 문화가 우주의 정상적인 음양 관계를 파괴하여 음성(陰性) 생명의 본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음양 학설에 따르면 여성은 마땅히 유(柔)해야 하며 강(剛)해서는 안 된다. 남자는 양강(陽剛)에 속하고 여자는 음유(陰柔)에 속한다. 강유(剛柔)가 함께 결합하면 보증하고 매우 조화롭다.”[2]

이것은 매우 심각한 한 가지 문제였습니다. 20년이 넘도록 저 역시 이번 생에 여자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품성을 수련해내지 못한 데다가 성격이 강해서 남자 같았습니다.

의심이 강하다

남편에게 저 외에 남녀 관계가 있다고 의심하는 것은 제게 가장 큰 마음의 병이었고 거의 정신이 이상해질 뻔했습니다. 대법이 저를 구해줘서야 점차 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나아졌다고만 말할 수 있을 뿐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으며, 가끔 남편의 내연녀와 싸우는 악몽을 꾸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대해 오랫동안 어떻게 부부관계를 처리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서로 충절을 지키고 존경하며 백년해로할 수 있을까? 이왕 나와 결혼했는데 왜 다른 여자를 좋아할까? 어떻게 남편을 대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마음을 넓게 가질 수 있을까?’ 저는 법에서 어떻게 부부의 정을 봐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남편을 의심하는 것은 남편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마땅히 신의 안배를 믿어야 합니다. 이번 생에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있는 것도 모두 전생의 인연으로 정해진 것이고 모두 제가 법을 얻기 위해 온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상대방을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은연중 사회 조류에 휩쓸려가는 상대를 전통으로 되돌아오도록 일깨워주고 은혜와 원한 속에서 정이라는 업의 빚을 갚는 것입니다. 남편을 자신의 사적인 소유물이 아닌 중생으로 여겨야 합니다. 자신의 아이조차 자신에게 속하지 않으며 그들은 모두 신의 백성입니다. 매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을 주재하며 모두 자신의 길을 걷습니다. 수련인으로서 두 사람 사이의 갈등과 충돌을 이용해 안으로 찾고 관념을 바꾸어 이기적인 정을 이타적인 자비로 전환해야 합니다.

의심과 믿음은 대립하는 것으로, 의심이 생기면 믿음은 사라집니다. 부부 사이의 인연과 신의 안배를 믿어야 합니다. 믿음에 기초해야 비로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남편이 잘 되기를 위해서 한다면 자신이 무언가 잃어버릴까 봐 두렵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해낼 수 없습니다.

원망

저는 정이 매우 많아 남편이 제게 준 충격도 매우 컸습니다. 자신이 받고 싶은 사랑을 받을 수 없거나, 남편이 다른 여자 앞에서 자신을 뽐내거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이 모든 일은 전부 번거로움과 원망, 그리고 증오를 자라게 했으며 장기적인 원망과 증오는 자신에게 수많은 부정적인 정서를 형성하게 했습니다. 비록 수련 후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깨끗이 없애지 못했으며, 특히 이혼한 후 남편의 이름만 거론돼도 원망만 했습니다.

저는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마음을 조절하고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 원망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없애야 합니다. 남편의 나쁜 점을 생각하지 말고 좋은 점만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은 저에게 소업(消業)시켜주는 것이고 제가 심성을 향상하는 것을 도우며 저를 위해 수많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었습니다. 저는 마땅히 남편에게 감사해야 하고 남편이 저를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닦아 준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남편보다 제게 더 잘해 준 사람은 없는데, 예전에 품었던 이기적인 생각들은 늘 남편이 제게 잘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신의 위치에서 보면 남편이 제 수련을 돕고 있는 것으로 제게 가장 잘해 주는 사람이므로 마땅히 내심에서 우러나와 남편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마음

저는 남편이 작은 이득을 취하기 좋아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매번 남편이 그런 모습을 보면 유난히 괴로웠고 이혼에 이르기까지 이 일을 어떻게 대해야 제가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할까?’ 저는 제가 마음을 움직여 화를 내기만 하면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이 만약 외도를 한다면 남몰래 하는 것이어서 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며, 공공의 이익을 해치고 자기 잇속만 차리는 일은 눈앞에서 보였고, 말해도 듣지 않으면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을 중생으로 여겼습니다. 그 중생이 저지른 각종 나쁜 일이 다 있는데 제가 마음을 움직인들 소용이 있을까요? 내려놔야 합니다.

악념(惡念)을 움직이다

별거하고 이혼한 뒤 남편은 늘 저에 대해 나쁜 말을 했습니다. 제 친척과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가족들이 남편의 말을 전해왔을 때 저는 남편이 거짓말한다고 말했고 일의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가족들은 진상을 알게 됐습니다. 가족들은 말했습니다. “누가 이 일을 물어보면 말해야 해. 안 그러면 남편 말만 듣고 네가 나쁜 사람인 줄 알 거야.” 저도 정을 움직였기에 말할 때 남편의 나쁜 언행을 폭로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장해 남편을 추악하게 묘사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다시 설명했을 뿐이었습니다. 설령 이렇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이렇게 하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쟁투심 아닌가요? 그러면 인(忍)을 해내지 못한 것이며 그것 역시 악념을 움직인 것이며 남편의 나쁜 일면에 이끌린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알려주면 되고 남편의 추악한 일면은 폭로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것은 별로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실이 어떠한지는 이미 그곳에 놓여 있고 신도 보실 수 있는데 왜 사람들에게 굳이 보여주려고 할까요? 자신의 마음이 법에 있지 않은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자신의 정념을 지켜야 합니다.

당문화 사유로 법을 수호하다

남편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에 저와 함께 1년간 파룬궁을 수련했고 남편도 매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탄압하자 남편은 즉시 회사에서 ‘공산당원은 연공하지 않는다’라는 보증서에 서명했습니다. 그 뒤로 수련생이 밖에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천안문에 가서 법을 실증할 때 남편은 정치에 참여한다고 생각했고, 파룬궁이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 제 수련을 막았고 진상을 알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늘 기회를 찾아 진상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남편이 중공을 수호하고 대법을 나쁘게 말하는 것을 들을 때면 저도 참지 못하고 화가 불같이 치밀었으며 이어서 한차례 설전이 펼쳐졌습니다. 지난 후에야 이렇게 하면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심지어 다음번에 이런 상황이 나타나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생각해뒀지만, 관건적인 시각이면 여전히 안 되었고 계속해 남편과 다퉜습니다. 이혼하기 전까지도 계속 다투다 보니 원한이 매우 깊이 쌓였습니다.

이혼 후 저도 자신의 잘못을 찾았고 점차 남편에 대한 원망을 내려놨습니다. 최근에 자신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때는 마음속으로 대법을 수호한다고 생각했고 입으로는 말끝마다 대법이 좋다고 했지만, 실제로 말과 행동은 모두 법에 있지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저는 문득 제가 사용한 것은 몇십 년간 당문화(黨文化: 공산당 문화) 속에서 형성된 논리적 사유이며, 구세력과 공산사교가 제게 주입한 사악한 사유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투쟁하고 악으로 악을 다스리며, 다툴수록 사람 마음이 강해지고 싸울수록 갈등이 더욱 커집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욱 어려워져 결국에 제각기 제 갈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구세력이 사람을 소멸하려고 안배한 길을 걸은 게 아닐까요?

사실 사부님께서는 줄곧 우리에게 갈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씀해주셨습니다. “문제가 나타나면 자신이 법리와 비틀어진 것이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 이 비틀어진 것을 풀어주고 정리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식은 바로 어떤 일에 부딪히면, 앞으로 맞받아 내밀거나 앞으로 맞부딪치며 앞으로 쫓아가면서 해결하지 말고, 마음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서 해결하는 것이다.”[3] 그러나 중요한 시각이면 법리가 떠오르지 않아서 활용하지 못했으며 줄곧 앞으로 쫓아갔고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여전히 자신이 매우 정의롭고 용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당이 우리에게 주입한 쟁투심, 원망, 과시심, 모든 것을 의심하는 등 악념을 자신으로 여기면서, 저도 모르게 사당의 사유가 대법이 차지해야 할 신성한 자리를 점하게 만들었으니, 이로 보아 사당 문화가 사람을 얼마나 깊이 해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 뿌리를 캐는 과정을 통해 마침내 우리의 이혼을 초래한 중요한 원인을 찾았습니다. 내부적인 원인은 제가 당문화의 독소를 깨끗이 제거하지 못해 사부님의 법을 이용해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지 못한 것입니다. 외부적인 원인은 중공의 파룬궁 박해로 가족에게 마음의 공포를 초래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편은 수련을 포기했으며, 우리집을 보호하기 위해 남편은 제가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제가 남편의 욕설과 구타,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자 이혼해야 했습니다.

중공은 저의 남편, 우리집을 망쳤습니다.

3년간 내버려 뒀던 부부의 은혜와 원한을 사부님의 가르침으로 낱낱이 밝혀내 처리할 수 있었고,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수많은 더러운 마음을 찾아냈으며, 허위적인 거짓과 이기적인 자신을 폭로하고서야 진정으로 선량하고 청정한 저의 위치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0-맨해튼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미국법회설법-뉴욕좌담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7-미국수도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3년 2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2/25/4495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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