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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돌보는 과정에서 공산당 문화를 없애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현재 55세인 저는 1999년 5월 20일에 법을 얻었습니다. 20여 년 수련 과정에서 고비를 넘긴 후의 기쁨도 있었고 넘어진 후의 뉘우침과 한탄도 있었지만 가장 큰 소감은 사부님에 대한 무한한 감사입니다! 수련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사부님께서 제게 주신 수련의 기연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습니다. 여기서 지난 한 해 동안 수련에서 얻은 수확을 수련생 여러분들과 나누려 합니다.

1. 시련

2022년 4월 초, 우리 시에서 대법제자를 대규모로 납치하고 교란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가 매우 많았고 범위가 넓었으며 시간이 길어져 9월 중순까지 많은 대법제자(파룬궁 수련자)가 납치됐습니다. 이 일은 제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운 좋게도 사부님의 보호와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저는 병업(病業) 가상으로 거동할 수 없는 수련생인 아버지를 모시고 안전하게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세를 맡아 살게 됐습니다. 셋집에 들고서야 긴장했던 마음이 가라앉았고 자신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저에게 셋집을 장만해준 수련생이 우리가 이사 올 때 아래층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우리를 매우 주시했다며 그다지 안전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을 듣자 저는 인기척이 나거나 누군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만 들어도 불안해졌습니다.

수련생이 자신이 소장하던 교류문장들을 가져와 제게 보여줬습니다. 무의식중에 저는 지금의 제 상황과 비슷한 교류문장을 보았습니다. 수련생이 가져온 글을 다 읽은 후, 저는 정신을 집중해 사부님의 설법을 읽었고 마음이 점차 안정됐습니다. 두려움을 없애지 않으면 어디에 가더라도 안 되며 사악은 모두 따라다닐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박해가 아님을 깨닫고 발정념(發正念)을 강화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저처럼 발정념을 강화하지 않자 저는 곧 화가 나서 야단쳤는데 제 몸 가득 있던 당문화(黨文化: 공산당 문화)가 전부 드러났습니다.

처음에 법공부를 할 때 부정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흘러나와서 끊임없이 배척하고서야 머릿속에 법이 겨우 들어오게 됐습니다. 저는 또 법공부 팀에 가서 수련생들과 함께 두 번 정도 법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업 가상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스스로 침대에서 오르내리거나 물건을 잡고 스스로 화장실에 다녀오실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제가 안아드리거나 밀어드려야 침대에 오르내리실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요강도 침대맡에 놓아두고 관리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손을 전혀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때 저는 정말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1]의 느낌이 들었으며 남편에 대한 원망이 한층 더 강해졌습니다. 남편이 경찰에게 제가 아버지 댁에서 함께 산다고 알려주지만 않았어도 제가 아버지를 모시고 집을 떠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이웃조차 날 보호해주는데 그가 날 배신하다니.’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올랐습니다.

원망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없애지 않자 번거로움이 또 늘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밤에 아홉 번이나 화장실에 다녀오셔야 했고 매번 볼일을 많이 보지 않더라도 또 가셔야 했습니다. 설령 화장실에 가지 않더라도 머리를 움직여달라고 소리치셨는데 꼭 마치 절 괴롭히시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심성을 지킬 수 있었지만 며칠 지나자 좀 버거워졌고 참을 수 없게 되어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상대하지 않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잠들면 저도 잠깐 잠을 잤습니다. 저는 매일 다섯 세트 연공을 전부 하도록 보장했고 가능한 한 법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수련생은 제게 현재 대법 일에 서두르기 보다는 자신을 잘 조정하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저는 가능한 한 법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수련생은 제게 각종 편리한 여건을 제공해줬습니다. 여기서 저는 수련생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수련인에게는 우연한 일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이렇게 빈번하게 밤에 일어나시는 것은 일종 교란 아닐까요? 저는 곧 ‘아버지를 이용해 날 박해하는 사악한 요소를 해체한다’라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그러자 점차 아버지는 더는 밤에 자주 일어나지 않으셨고 저도 좀 쉴 수 있었습니다.

2. 자신의 당문화를 닦아 없애다

어느 날 밤, 저는 평소처럼 아버지를 안아서 침대에서 내려오시게 했습니다. 갑자기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너무 불효했고 속인보다도 못했습니다. 수련인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저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사당(邪黨: 공산당)에게 박해받아 감옥에 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거의 80대가 됐어도 저에 대한 박해를 줄이기 위해 매월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기차를 타고 저를 보러 오셨습니다. 저는 지금 요만한 고생을 겪으면서도 불평하고 있으니 심성이 너무 형편없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눈물이 가득 흘러내렸습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생각하고 행한 일들을 반성하면서 점차 가닥이 잡혔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에는 가족에 대한 정뿐만이 아닌 심한 당문화가 있었습니다. 매번 아버지가 침대에 누워계시면서도 법공부를 하지 않으시면 기분이 나빴고 법공부를 하시면 위안이 됐습니다. 아버지가 ‘정진’하지 않으면 바로 잔소리를 했는데 마치 아이를 다루듯 훈계했습니다. 저는 왜 아버지를 이렇게 대했을까요? 저는 아버지가 잘 수련하지 않다가 어머니처럼 세상을 떠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아버지를 잃고 한 수련생을 잃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제 수련하는 좋은 환경까지 잃게 될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아버지가 잘되기 위해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대법을 이용해 제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던 더러운 심리였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무사무아(無私無我)는 내가 당신들에게 요구한 수련 중에서 도달해야 하는 것”[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요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제 요구에 따라 하지 않으면 즉시 원망했습니다. 제가 깨달은 법리를 억지로 아버지에게 주입하려 했는데 당연히 아버지는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며 어떨 때는 역효과가 나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저는 심지어 협박하는 말투로 법공부를 하시라고 했고 아버지가 좀 쉬었다가 다시 하겠다고 하시면 저는 화를 내며 “다그쳐 법공부를 하지 않으면 건강이 더 나빠지실 거예요. 그러면 병원에 보내드릴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절대 병원에 가지 않으실 거라는 걸 압니다. 저도 아버지를 병원에 보내지 않겠지만 말은 이렇게 했는데, 이것은 진(真)이 아닌 당문화이며 다른 사람을 협박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법공부를 하면서 아버지가 줄을 건너뛰거나 글자를 틀리게 읽으시면 저는 어디가 틀렸는지 지적해드리지 않고 다시 읽게 했는데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내지 정확히 읽으실 때까지 시켰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이 어디가 틀렸는지 전혀 모르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문화대혁명 때 비판·투쟁 집회를 열듯이 아버지를 지적했는데 완전히 당문화 중의 ‘투쟁’이었습니다.

또 발정념 시간만 되면 아버지에게 소리쳤습니다. 아버지가 만약 곧장 앉아서 발정념을 하지 않으면 저는 나쁜 눈빛으로 바라봤고 아버지의 동작이 느리거나 서두르지 않으시면 피가 끓어올랐으며, 확성기처럼 큰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며칠 전 저는 또 참지 못하고 화를 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해체 당문화’ 녹음을 듣게 해드렸는데 아버지는 확고히 거절하며 눈을 부릅뜨고 “안 들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즉시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들려드리려고 해도 안 들으시는군요. 당문화가 아버지를 가로막고 법을 얻지 못하게 하잖아요. 20년이나 법공부를 했는데 아직도 제게 관정(灌頂)이 뭔지, 사부님께서 파룬(法輪)을 넣어주시는 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시는데 도대체 뭘 배우신 거예요?”

사실 당문화가 저를 가로막고 있었는데 진정으로 법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아버지는 책을 볼 수 없어서 한번은 제가 각지설법을 읽어드리려 하자 아버지는 배가 고파서 식사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또 화가 나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점심을 먹으신 지 3시간밖에 안 되는데 또 드시겠다고요? 법공부가 중요할까요, 식사가 중요할까요? 식사하시려면 하세요, 전 상관하지 않겠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발정념도 제게 알려달라고 하지 마시고요. 연공하고 싶으면 혼자 하시고요. 앞으로 독촉해달라고 하지 마세요. 저도 좀 덜 걱정하고 싶어요.’

이것은 모두 ‘나, 나, 나’가 아닌가요? 제가 시키는 대로만 아버지가 해야 한다면 이것은 얼마나 강압적인가요? 겉으로는 아버지를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전히 자아를 내려놓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진정으로 아버지가 잘되기 위해서라면 평온하고 자비롭게 아버지를 대해야 합니다. 저는 자신의 매우 뿌리 깊은 그 ‘사(私)’를 보았습니다.

수련생 간의 인연은 모두 성연(聖緣)입니다. 저는 반드시 자신의 당문화를 없애고 수련생인 아버지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아버지와 함께 정진해 착실히 수련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기쁘게도 제가 이 원고를 거의 마칠 무렵 제 심성도 많이 향상됐고 아버지의 병업 가상도 매우 큰 호전이 생겼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표현은 다 제 수련을 돕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마음고생(苦其心志)’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미국중부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3년 2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2/28/4572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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